충북 단양군은 관광도시다. 단양은 한 해 관광객 1000만 명이 방문하는 곳으로 군 수입의 많은 부분을 관광이 차지하고 있다. 2018년 기준, 관광지 입장 수입은 77억 8000만 원으로 군의 전체 세외수입 가운데 39.6%를 차지했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관광객이 줄어드는 위기 속에서도 대외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도 받았다. 단양군은 지난해 초 '한국관광 100선'에 5년 연속 선정되고, 15건의 대외 수상을 했으며, 올해는 43개 주요 사업에서 472억 원의 국비도 확보했다. 단양군 관광정책과 유숙미 팀장은 “앞으로 공격적인 관
내 친구 이름은 ‘산금달’이다. 우리는 21살 때 태국 북서쪽에 있는 마을 빠이에서 처음 만났다. 산 씨를 처음 봤을 때 “이름이 왜 산금달이냐”고 물었더니 금달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 원래 이름은 강은혜야. 이름은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원하지 않아도 얻게 되는 운명 같은 거잖아. 나는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 강, 은, 혜(해) 반대가 산, 금, 달이잖아? 그래서 내 이름을 산금달이라고 다시 지었어. 근데 생각해보니까 결국 새로 지은 이름도 내 원래 이름에 얽매여 있는 거더라.”45일을 여행하며 9.7kg짜리 가방도 꽤 가볍다고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도를 좋아한다. 봄은 모두가 설레는 시기라 혼자 외톨이가 된 거 같아 서글프고 가을은 수확의 시기라 나에게도 성취가 있어야 할 것 같아 좀 부담스럽다. 그래서 초여름과 초가을이 좋다. 봄이 끝나가고 초록이 우거질 무렵 선선한 저녁 공기는 적당히 들떠 있었다.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사서, 공원 벤치에 앉아 친구와 수다를 떠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없다. 약간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숨을 들이마실 때 느껴지는 청량감이 좋았다. 오늘(23일)이 처서.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감돌아 ‘처서가 지나면 모기
나를 포함해 고등학교 친구들 12명이 모인 단체 채팅방이 있다. 우리는 전라북도 군산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12명 중 9명이 학업과 직장을 이유로 서울에 왔다. 남은 3명 중 2명은 같은 이유로 군산 인근 대도시로 떠났고, 1명만이 온전히 군산에 남아있다. 대학 때문에 군산에서 서울로 갔다가, 직장 때문에 전라도 전주에 사는 친구 A는 서울에 있는 직장을 잡으려 틈틈이 입사 시험을 치르고 면접을 보러 다니다가 최근 이직에 성공했다. 전주로 대학을 간 친구 B는 취직을 서울로 했고, 월세가 비교적 저렴한 관악구에 자취방을 구했다. 군
2019년 겨울, 친구 셋과 함께 전라남도에 있는 절에 갔다. 나는 그해 여름 마지막 학기를 끝내고 본격적으로 언론사 입사시험에 뛰어든 차였다. 나에게 주지 스님은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물었다. 기자라고 했더니, 스님은 다짜고짜 ‘똑바로 하라’고 했다.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말에 뼈가 있었다. 무엇을 똑바로 하라는 건지 굳이 묻지 않았다. 씁쓸했지만 대꾸할 말이 없었다. 기자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돌아왔던 주변의 익숙한 반응 중 하나였다.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에서 시행한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언론은 2017년부터 4년 연속
우리나라의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에서 대표적으로 소외된 집단이 청년이다. 21대 국회의원 300명 중 82%가 5060이다. 40대까지 포함하면 의석의 94.7%를 차지한다. 2030은 4.3%에 불과하다. 대표적인 청년 정치인은 국민의힘 소속 이준석이다. 아직 국회의원은 아니지만 국민의힘 당 대표로 선출된 만큼 정치적 영향력이 크다. 하지만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뒤 26살에 박근혜에게 발탁돼 정치를 시작한 그가 평택항에서 일하다 300kg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죽은 이선호 씨나 공군부대에서 상관에게 성추행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
선생은 여러 학생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학생이 좋은 선생을 만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충북 제천시 세명고등학교에는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며 ‘세명고 꽃사슴’이라 불리는 선생이 있다. 취재진이 지난 5월 18일과 6월 2일, 세명고 윤석찬 선생을 체육관과 교무실에서 만났다. (3배속 한 영상입니다)운동장에 나타난 써레꾼세명고 운동장에 가면 가끔 원을 그리며 뱅뱅 도는 승용차 한 대를 볼 수 있다. 1학년 체육 과목을 담당하는 윤석찬 선생은 1주일에 한 번씩 1교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자기 차 뒤에 알파벳 H 모양 쇠막대
떠들썩했던 할아버지 장례식장내가 처음으로 경험한 죽음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다. 당시 중학생이던 나는 학교에서 외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선생님이 쉬는 시간에 찾아와 소식을 전해주셨다. 얼떨떨했다. 엄마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나는 할아버지와 떨어져 살아 거의 보지 못했기에 그의 죽음이 실감 나지 않았지만, 엄마에게는 아빠의 죽음이었다. 성인이 된 지금도 힘든 일이 있을 땐 부모님이 제일 먼저 생각나는데, 그때 엄마가 아빠를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외할아버지의 죽음을 맞은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생각했다. 까
최근의 부동산 가격상승은 ‘보이지 않는 손’의 실패다. 영국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는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맞추는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해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유익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서 그런 결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케이비(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지난해 2월 9억 원을 넘었다. 월 300만 원을 버는 직장인이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도 약 25년이 걸리는 돈이다. 어지간한 직장인이 서울에서 집을 사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부동산을 가진 이들이 앉아
대학 합격증을 받아 들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살 곳을 찾는 일이었다. 입학한 대학과 본가는 고속버스를 타고 2시간 30분 걸리니 통학은 불가능했다. 기숙사는 1순위 주거 공간이었다. 학교 주변 원룸과 비교해 월세가 약간 싸고 보증금이 없었다. 다행히 기숙사 신청 공지에는 ‘서울, 경기, 인천 외 지역 거주자’를 1순위로 뽑겠다고 적혀 있었다. 혹시 몰라 기숙사 행정팀에 전화를 걸어 물었다. “ㅇㅇ시에 사는데 기숙사 선정이 될까요?” 담당자는 “당연히 될 테니 걱정말라”고 했다. 하지만 얼마 후 발표된 기숙사 입소자 명단에 나는 물론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근처 KDB생명타워 앞에 작은 공원이 있다. 집에서 ‘따릉이’를 타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서울역으로 가다 보면 공원 앞을 지난다. 공원은 서울역 12번 출구와 맞닿아 있어 근처를 지날 때면 퀴퀴한 냄새가 난다. 어느 여름 날, 등을 보인 사내의 발 아래로 가느다란 물줄기가 흐르는 것을 보고 악취의 원인을 알았다. 변변한 운동기구나 놀이기구 없이 앉을 자리 몇 개가 전부인 공원에는 쪽방촌 주민들이 나와 앉아있다. 그들 옆에는 쓰레기와 빈 술병이 굴러다닌다. 그중에는 더운 여름에도 패딩을 입거나 눈에 초점이 없
고등학교 3학년생이 수능을 2주 앞두고 학교를 그만두었다. ‘세상에 대한 환멸과 미래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득 차 있던’ 그는 호주로 날아가 아홉 달간 청소를 하며 돈을 모았다. 그 돈으로 호주 체류일 포함 702일 동안 24개 나라를 돌아다녔다. 페이스북에 <수능 대신 세계일주> 페이지를 개설하고 낯선 곳에서 겪은 일들을 꾸준히 기록했다. 만 열여덟에 한국을 떠난 청년은 스물이 되어 돌아왔고, 이듬해인 2016년 페북 페이지와 같은 이름의 책을 냈다. 책은 입소문을 타며 2019년 3쇄를 찍었다. 고등학생의 대학진학률이 70%를 넘
“도시락을 배달하면서 필요하면 전기수리 같은 것도 해줘요. 콩도 심어주고 깨도 베어주고….”도시락을 실은 냉동탑차가 ‘덜컹’ ‘끼익-‘하며 시골길을 달린다. 운전석엔 까만 마스크를 쓴 조경수(53) 씨가 앉았다. 그는 2012년부터 제천시니어클럽에 소속돼 도시락을 배달하는 운전기사다. 시니어클럽 소속 오색정식품제작단에서 만든 도시락을 혼자 살거나 몸이 불편한 노인에게 배달한다. 그는 매일 170~200km 정도 운전한다. 경북 상주에서 서울까지 매일 달리는 셈이다.익숙한 경로라 속도를 낼 법한데, 조경수 기사는 조수석에 앉은 기자를
엄마 손가락엔 지문이 없다오랜만에 고향에 갔다. 엄마가 거래처에 송금한다며 인터넷 뱅킹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엄마는 변화에 무디다. 머리 스타일만 봐도 알 수 있다. 일주일 전에 찍은 사진도, 10년 전 사진도, 갓 난 나를 안고 서있는 사진에서도 이마를 훤히 드러내고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노란 고무줄로 묶은 모양은 한결같다. 엄마에게 최신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엄마, 지문인식 등록하면 매번 비밀번호 입력 안 해도 돼서 편해. 내가 등록해줄까?” 엄마가 답했다. “나는 그거 못해.” 나는 다시 덤볐다
속보(速報)는 말 그대로 빠른 보도를 일컫는다. 영어로는 ‘Breaking news’라고 하는데 진행 중인 방송을 잠시 멈추고 급하게 내보내야 할 만큼 중요한 소식이기 때문이다. 지진이나 재난 상황을 알려 대피하도록 하거나,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가 어떤지 다른 언론사보다 빨리 알리기 위해, 대통령의 파면 여부를 전하기 위해 언론사들은 속보 경쟁을 한다. 단독은 특정 언론사가 다른 언론사는 구하지 못한 정보를 보도했을 때 붙이는 말이다. ‘단 하나’라고 이름 붙일 만한 특별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깊이
포르투에서 산티아고까지 10여 일간 순례길을 걸었다.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게 즐거웠다. 포르투갈 서쪽 해안선을 따라 걸으면 보이는 대서양은 한국의 동해와 다를 바 없었지만 괜히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후줄근한 옷과 너저분한 가방을 걸치고 있으니 잔뜩 꾸민 관광객이 아니라 소박한 현지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의 순례길은 여행에 가까웠다. 걸으며 만난 사람들은 대개 나와 마찬가지로, 종교적 이유보다는 여행을 목적으로 순례길을 걸었다. 순례길은 본래 순례자를 위한 길이다. 순례자는 걸으며 신이 겪었
이름은 운명을 상징한다. 이름은 어떤 대상을 지칭하는 기호이지만 이름 자체가 그 대상은 아니다. ‘복순이’라는 이름을 가진 시골집 개가 있다고 치자. 복순이라는 이름은 기호이고 그 이름이 가리키는 대상은 개다. 아마 개의 주인은 ‘복을 불러오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어 줬을 것이다. 사람 이름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 이름이 그의 운명을 상징한다고 생각해 이름을 해석해 비평의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새로 태어난 아기 이름을 지을 때 고민하는 것은 아이의 삶이 이름 뜻처럼 잘 풀리기를 바라는 소망의 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