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김현주 기자

내 친구 이름은 ‘산금달’이다. 우리는 21살 때 태국 북서쪽에 있는 마을 빠이에서 처음 만났다. 산 씨를 처음 봤을 때 “이름이 왜 산금달이냐”고 물었더니 금달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 원래 이름은 강은혜야. 이름은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원하지 않아도 얻게 되는 운명 같은 거잖아. 나는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 강, 은, 혜(해) 반대가 산, 금, 달이잖아? 그래서 내 이름을 산금달이라고 다시 지었어. 근데 생각해보니까 결국 새로 지은 이름도 내 원래 이름에 얽매여 있는 거더라.”

45일을 여행하며 9.7kg짜리 가방도 꽤 가볍다고 생각했는데, 금달이 가방은 5kg이었다. “현주야. 여행할 때 가지고 다니는 짐은 전생에 쌓은 업보래” 금달이는 한국으로 돌아와 다니던 대학을 자퇴했고, 본인이 좋아하는 바다 곁에 있겠다며 프리다이빙 강사 자격증을 땄다. ‘결국 원래 이름에 얽매여 있더라’고 말할 때 머쓱하게 웃기는 했지만, 금달이는 자기 삶의 방식을 자기가 정하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고교 시절 학교에서는 성적순으로 우열반을 나눠 서울로 대학을 갈 수 있는 아이들에게 특혜를 부여했고, 시험 성적을 잘 받으면 평소에는 아는 척하지 않던 선생님이 친절하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어른들 말처럼 더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올라온 서울에서 나는 방황했다. 

기대와 달리 서울은 화려하기만 한 곳은 아니었다. 대학 신입생 때, 명동 프렌차이즈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점장은 한국어를 못하는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주문하지도 않은 토핑을 추가해 500원씩 더 받아내라고 했다.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속으로만 생각했다. 점장한테 밉보여 득 될 게 없었다. 

대학 동기는 피곤해하는 나를 보며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라고 했다. 그 시간에 공부하는 게 이득이라고 했다. 걱정하는 말인 줄 알면서도 매월 50만 원을 월세로 내야 하는 나와 서울에 집이 있는 그 친구는 다르다는 게 속상해서 곱게 듣지 못했다. 아마 누군가는 그 월세도 부담돼 대학을 포기해야 했을지 모르지만. 

생각보다 치사한 삶에 배신감을 느끼고, 아르바이트를 해 모은 돈으로 도망치듯 떠난 여행에서 금달이를 만났다. 금달이는 내가 ‘좋은 삶’이라고 알던 것과 전혀 다르게 살면서도 행복해 보였다. 처음에는 신기했고, 다음에는 부러웠고, 결국에는 위로가 됐다. 이렇게 살아도 행복할 수 있구나. 좀 더 오래 여행을 하면 더 넓은 세상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2년 동안 돈을 모아 다시 여행을 떠났다. 

삶엔 다양한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도, 우리는 선뜻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없다. 여행에서 새로운 길을 설레는 마음으로 선택하는 것처럼, 일상이 여행과 같으려면 잘못 가도 돌아오면 괜찮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 Pixabay
삶엔 다양한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도, 우리는 선뜻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없다. 여행에서 새로운 길을 설레는 마음으로 선택하는 것처럼, 일상이 여행과 같으려면 잘못 가도 돌아오면 괜찮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 Pixabay

인도에서 만난 어느 동생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언니, 내가 여행하면서 깨달은 건 세상 어딘가엔 나를 받아줄 곳이 적어도 하나는 있다는 거야” 내 인생이 아무리 망가져도,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싫어해도 나를 받아줄 곳 하나 있다는 믿음. 누군가는 도피라 부르겠지만, 어디든 도망칠 곳 있다는 믿음은 역설적으로 지금 발붙이고 있는 곳에서 씩씩하게 살아갈 용기를 줬다.

스물일곱. 학생이라고 하기도 직장인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상황. 주변에 우울해하는 친구들이 많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책하고, 더 나은 성과를 내지 못해 괴로워한다. 이유 없는 자신감에 하늘로 솟구쳤다가 다시 이유 모를 불안감에 땅으로 곤두박질친다. 다들 죽어라 앞을 향해 달리니 휴식은 퇴보다. 실패하면 비빌 언덕이 없다. ‘친구들아, 운명은 우리가 개척하는 거야’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값싼 위로 같아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사회가 나와 내 친구들에게 더 많은 가능성을 제시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대학에 가지 않아도 괜찮다. 대기업에 가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지식 노동이 아니라 육체 노동을 해도 일하다 죽지 않을 수 있다. 서울로 가지 않아도, 당신이 사는 지역에서도 아프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지금 집을 사지 않아도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다. 한 달에 300시간씩 일하지 않아도 회사에서 잘리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내 주변에 더 많은 금달이가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금달이는 여전히 자기 속도대로 살고 있다. 요즘은 서핑을 가르친다. 나는 금달이가 할머니가 돼서도 지금 같았으면 좋겠다. 그럼 그때는 자신 있게 ‘마음대로 살아도 괜찮더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편집 : 유재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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