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기자학교] 세명고 윤석찬 교사

사단법인 <단비뉴스>는 고교학점제 도입에 맞춰 제천교육지원청과 함께 지난해에 이어 이번 1학기에도 '미디어 콘텐츠 일반' 공동교육과정을 운영해왔습니다. 매주 화요일 저녁 7시부터 3시간씩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진행된 이 과정은 미디어는 물론 팬데믹, 다문화사회, 위험사회 등 학생들 자신이 처한 사회환경을 이해하는 주제 강연과 글쓰기 강연을 9차례 하고, 미디어 제작 체험을 2차례 해봄으로써 진로모색에도 도움을 주도록 설계됐습니다. 이제 그 결과물을 <단비뉴스>에 연재하니 그들의 눈에 비친 지역사회의 모습을 기사와 영상으로 확인하세요. (편집자)

선생은 여러 학생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학생이 좋은 선생을 만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충북 제천시 세명고등학교에는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며 ‘세명고 꽃사슴’이라 불리는 선생이 있다. 취재진이 지난 5월 18일과 6월 2일, 세명고 윤석찬 선생을 체육관과 교무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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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에 나타난 써레꾼

세명고 운동장에 가면 가끔 원을 그리며 뱅뱅 도는 승용차 한 대를 볼 수 있다. 1학년 체육 과목을 담당하는 윤석찬 선생은 1주일에 한 번씩 1교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자기 차 뒤에 알파벳 H 모양 쇠막대기를 달고 운동장을 뱅뱅 돈다. 운동장을 평탄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평탄 작업을 하지 않으면 움푹 파인 땅이나 돌에 학생들이 다치는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25년째 학생들을 위해 운동장 평탄 작업을 하고 있다. 학생들은 선생님 모습을 ‘논 가는 소 같다’고 표현한다. 

▲ 윤석찬 선생이 차에 H 모양 쇠막대기를 달고 운동장 평탄 작업을 하고 있다. © 장정아

체육 교사로 변신한 씨름선수

윤석찬 선생은 씨름선수 출신이다. 체격이 좋아 국민학교 때 씨름을 권유받았고, 선수로 발탁됐다. 선수 생활을 하며 영남대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했다. 프로 선수나 코치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학생들과 어울리는 교사 생활을 선망했다. 1990년에 개교 3년을 맞은 세명고에서 교직을 시작했다. 당시 학생들과 대여섯 살 차이밖에 안 나 형처럼, 오빠처럼 학생들과 어울렸다. 

학생들은 지금도 윤 선생을 아빠나 삼촌처럼 따른다. 그는 학교에서 ‘간식 나눠주는 선생님’으로 유명하다. 그는 집안 형편이 안 좋아 선수 생활을 하면서도 아침밥을 거르거나 점심때 수돗물로 배를 채운 적도 있다. 요즘은 가난해서 밥을 굶는 학생은 드물지만, 시간에 쫓겨 밥을 못 먹고 등교한 학생을 위해 윤 선생은 간단한 먹을거리를 챙겨 둔다. 가끔 길이나 복도에서 마주친 학생들한테 ‘잘 먹었습니다’라는 인사를 받는 이유다. 아이들도 선생님의 진심을 느낀다. 세명고 3학년 박채은 학생은 “선생님께서 학생들을 참 아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열심히 체육 활동을 한 뒤엔 물 마시고 싶은 사람 이리 오라고 하시면서 얼린 물 몇 통을 내주세요. 한번은 오전 체육 시간에 지나가는 말로 ‘배고프다’고 했더니 선생님께서 집에서 싸 오신 밥이랑 멸치 같은 반찬을 꺼내주셨어요.”

▲ 세명고 부임 한 해 전인 1989년의 윤석찬 선생. 25살 청년이 이제는 32년 차 ‘아저씨 선생님’이 됐다. © 윤석찬 제공

체육 시간만이라도 스트레스 없길

윤석찬 선생은 “학생들이 입시를 준비하며 받는 스트레스를 체육 시간에 날릴 수 있게 하고 싶다”며 ‘하고 싶고, 안전하고, 재미있는 체육 시간’을 만드는 게 자기 역할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사용한 체육 기구들을 뒷정리하는 것도 대개 그의 몫이다. 

매년 5월에 하던 체육대회가 코로나19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취소됐다. 윤 선생은 “협동심과 리더십을 기를 수 있는 체육대회가 취소된다면 무언가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고 학교에 건의했다. 학생들이 활동하며 스트레스를 날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체육대회는 열리지 못했지만, 체육대회를 간소화한 풋살 경기가 열렸다. 학년별로 남학생 8팀, 여학생 4~5팀 정도가 참여해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 세명고 운동장에서 풋살 경기를 하는 학생들. © 윤석찬 제공

선생님은 앞이 아닌 뒤에 있는 사람

그도 누군가의 제자였다. 윤석찬 선생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 운동이 너무 힘들어 중간에 그만둘까 생각하며 방황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씨름부 감독을 하던 은사는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마음을 잡으라”며 그를 이끌어 주었다. 사제 관계는 졸업한 지 30년이 넘은 지금도 이어진다. 윤 선생은 매년 스승의 날이 되면 카네이션과 약간의 용돈을 은사에게 보낸다.  

그는 자기 은사처럼 어려움에 처한 학생이 엇나가지 않도록 도와주는 선생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몇 년 전 세명고 한 선생이 딸 셋을 남기고 암으로 별세했다. 당시 7살이던 막내는 나중에 세명고에 진학했다. 윤 선생은 그 학생에게 매년 200만원을 남몰래 지원했다. 그는 “선생은 앞에서 끌고 나가는 리더가 아니라 뒤에서 도와주고 봐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평소 장난스럽게 학생들에게 다가가는 선생이지만, 고민이 있는 학생들 이야기는 진지하게 들어준다.

▲ 윤석찬 선생이 체육 시간에 한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장정아

“내가 아이들을 먼저 좋아해 주면 아이들도 나를 좋아해 줘요. 아이들을 보자마자 인상을 쓰고, 싫은 말을 하면 아이들도 선생을 좋아할 수가 없어요. 나처럼 나이가 있어도 춤 동작 한번, 웃기는 말 한마디 해주면서 내 나이를 낮추면 아이들도 편하게 다가와요.”

* 장정아·전현주·최서우 기자는 세명고 3학년 학생들입니다.

* 취재·첨삭지도: 김현주(단비뉴스 기자), 이봉수(단비뉴스 대표)


편집: 이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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