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김현주 기자

우리나라의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에서 대표적으로 소외된 집단이 청년이다. 21대 국회의원 300명 중 82%가 5060이다. 40대까지 포함하면 의석의 94.7%를 차지한다. 2030은 4.3%에 불과하다. 대표적인 청년 정치인은 국민의힘 소속 이준석이다. 아직 국회의원은 아니지만 국민의힘 당 대표로 선출된 만큼 정치적 영향력이 크다. 하지만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뒤 26살에 박근혜에게 발탁돼 정치를 시작한 그가 평택항에서 일하다 300kg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죽은 이선호 씨나 공군부대에서 상관에게 성추행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20대 여군을 대변할 수는 없다.

제도권 정치에서 청년이 과소 대표되는 핵심 이유는 선거제도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소선거구 다수대표제를 채택한다. 100표 중 51표를 얻으면 49표를 얻은 2위 후보를 제치고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 1등에게 가지 않은 표는 사표가 되는 승자독식 구조다. 1등을 못 하면 당선되지 않으니 시간과 돈을 쓸 청년 정치인이 나오기 어렵다. 유권자 입장에서도 내 표를 사표로 만드느니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 표를 몰아주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게다가 저출생 기조로 2030 청년 인구는 기성세대보다 적어서 청년 세대가 100% 결집해도 과소 대표될 수밖에 없다. 청년을 대변하는 정치를 하려면 청년이 양적으로 충족돼야 하는데 소선거구 다수대표제에선 사실상 불가능하다.

▲ 국민의힘 당 대표로 이준석이 선출됐다.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였던 5명 중 주호영, 홍문표, 나경원, 조경태 후보는 5060이고, 이준석은 유일한 30대다. 하지만 이준석 한 명이 '청년'을 대표할 수는 없다. Ⓒ 연합뉴스

‘질적 변화’를 위해서는 제도권 정치 내에서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양적 충족’이라는 전제를 충족해야 한다. 헤겔의 변증법에 기초한 양질전환 법칙에 따르면 양적 변화가 쌓여 질적 변화를 일으킨다. 물이 100도가 되면 수증기로 변하는 것처럼 사회 발전 과정도 양질전환 법칙에 따른다. 개별로 존재하던 노동자들이 모여 정치세력이 되거나 가사노동에서 벗어난 여성들이 직업을 가져 여성 노동 환경이 개선된 것이 그 사례다.

질적 변화를 위한 양적 충족을 위해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다. 문제는 정치적 실현 가능성이다. 20대 국회에서 의석수 확대를 포함한 선거제 개편 논의가 있었지만, 동물 국회 논란을 거치며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새 선거제도는 위성 정당까지 난립하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흐지부지 끝났다. 선거제 개편은 기득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기성 정치인들의 이해와 충돌한다. 그들의 손에 맡겨두면 시민의 이익을 위한 결정이 나오기 어렵다. 정치권은 손을 떼고 시민이 숙의 과정을 통해 직접 선거제도를 개정해야 한다. 특정 세대에 결정권이 치우친 독점의 정치로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없다. 

레이프하트는 민주주의를 다수결 민주주의와 합의 민주주의로 분류했다. 전자에서 후자로 갈수록 ‘더 많은 시민’의 의견이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에 반영되므로 시민이 주인이라는 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더 나은 성과를 끌어낸다. 우리나라는 '가능한 많은 다수'가 아닌 '단순 다수'가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다수결 민주주의 국가다. 합의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많은 '이준석'이 필요하다. 


편집 : 방재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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