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소수자다] ③ 화상

 

자신을 차별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혐오와 차별은 공기처럼 은은하게 퍼져있다. 사람들은 은연중에 누군가를 차별하고, 스스로도 차별받는다. 우리 모두 어떤 면에서건 ‘소수자성’(minority)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단비뉴스>는 2030 청년들이 지닌 소수자 문제를 심층 취재하여 보도한다.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석 달 동안 겉모습 때문에 차별받아온 다섯 유형의 청년을 50명 이상 만났다. 그들과 동행하거나 대화하며 일상에서 벌어지는 차별의 순간을 기록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밝힌 소수자 가운데 한 명은 취재에 참여한 기자라는 점을 미리 밝힌다. 실명 보도를 원칙으로 했으나, 2차 가해를 막기 위해 일부는 가명을 활용했다. 얼굴 비공개를 요청한 경우 사진과 영상에 모자이크를 덧입혔다.

성별, 소득, 지역, 학력 등의 구분 짓기에서 벗어나는 일은 이해와 공감에서 시작한다. 서로를 향한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이때, 청년 세대부터 ‘우리 안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연대의 주체가 되자고 제안한다. 11명 청년들의 이야기가 소수자의 삶을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편집자 주)

① 얼굴색이 다른 나도 같은 사람입니다

② 사회가 만든 죄인, 나는 비만인입니다

 

 

 

 

전신 35%의 화상을 입었다. 4년 전 관리자로 일하던 프랜차이즈 고깃집에서 불이 났다. 불은 눈 바로 앞까지 널름거렸다. 천장에서는 기름기 섞인 불이 비처럼 쏟아졌다. 하지만 소화기가 작동하지 않았다. 이미 불은 눈 바로 앞까지 번져 있었다. 보경 씨는 가게에 갇혔다. 화장실로 피했다. 가만히 있어야 할지, 밖으로 뛰쳐나가야 할지 생각했다. 밖에서는 119나 구급차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대로는 죽겠다 싶었다. 몸에 물을 적셨다. 걸레 삶는 용도로 쓰던 스테인리스 냄비를 얼굴에 뒤집어쓰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두 달 정도 혼수상태로 지냈다. 이제 화상 때문에 얼굴에 붉은빛이 돈다. 상체는 2~3도, 양손은 4도 화상을 입었다. 사고 당시, 손바닥을 제외한 손의 거의 모든 피부가 녹아 뼈가 드러났다. 연골과 관절도 망가졌다. 왼손가락은 굽혀지지 않아 항상 쫙 편 모양이다. 오른손가락은 항상 굽어 있다.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어도 손으로 정교한 작업을 하기 어렵다.

 

▲ 화재 당시, 보경 씨는 사진과 비슷한 모양의 냄비를 뒤집어쓰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 김현주

 

 

 


 

 


※ 아래 타임라인은 보경 씨의 경험을 하루로 압축․재구성한 내용입니다.

 

 

 

06:00

보경 씨가 전기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한다. 흘끔 쳐다보는 사람, “왜 이렇게 많이 다쳤냐”고 묻는 사람이 싫어 대중교통을 꺼리게 됐다. 물류센터 셔틀버스 기사인 그는 3개월 단위로 계약을 연장한다. 셔틀 기사 중엔 보경 씨 같은 사람이 많다. 어떤 이는 눈 한쪽이 불편해 보이고, 다른 이는 다리 한쪽을 전다. 그들은 서로의 이름이나 사연을 묻지 않는다.

 

11:00

보경 씨가 셔틀버스 기사로만 일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직업은 여러 개다. 오늘은 백화점 발레파킹 기사 면접을 보기로 했다. 백화점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영업한다. 새벽같이 출근하지 않아도 되니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다. 물류센터 셔틀버스 기사보다 수입도 낫다. 사고 이후 강남에 있는 술집에서 발레파킹 일을 8개월 정도 해본 적이 있기에 보경 씨는 면접에 자신 있었다.

 

12:00

백화점 안 어느 사무실에 40대 초반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보경 씨 손에 있는 화상 흉터를 슬쩍 쳐다봤다. 운전하는 데 무리가 없는지 물었다.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또 다른 면접관은 머리를 자를 수 있느냐고 물었다. 머리를 자르겠다고 답했다. 일하는 동안 장갑을 낄 수 있겠냐고 묻는다. 손이 구부러져 장갑을 끼기 어려울 것 같다고 답했다. 면접관은 검토 후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연락은 없었다.

 

 

▲ 보경 씨는 손에 4도 화상을 입었다. 4도 화상은 피부를 포함해 신경, 근육, 뼈까지 다친 정도다. ⓒ 김현주

 

 

12:30

면접을 끝내고 나오면서, ‘사고 이후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보경 씨는 생각했다. 사고 전,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공개하면 하루에 수십 통씩 연락이 왔다. 지금은 한 달에 전화 한두 통으로 줄었다. 사고 전,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같이 하던 동료들이 당시 받던 연봉의 두세 배를 주겠다며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지만 물거품이 됐다. 10년이 넘는 서비스직 경력은 화상 앞에서 무력했다.

 

13:00

버스 정류장에서 보경 씨는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싸맸다. 사고 때 코 안쪽 살이 녹아 숨쉬기 힘들다. 마스크를 쓰면 답답해서 더 힘들다. 그래도 흉터를 가렸으므로 마음은 편하다. 버스에 올라탔다. 사람이 가득했다. 보경 씨는 노약자석에 앉았다. 화상 때문에 손가락이 안 굽어져 손잡이를 못 잡는다. 카페에 가서 일회용 컵을 잡을 때도 옆이 아니라 위를 잡는다. 옆을 잡으려면 오른손으로 살짝 컵을 잡고, 떨어지지 않도록 왼손으로 바닥을 받쳐야 한다. 한 중년 남성이 다가왔다. “젊은 친구가 노약자석에 왜 앉아 있어!” 중년 남성은 보경 씨가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강요했다. 보경 씨는 억울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14:00

식당에 도착했다. 공유주방을 임대해 어머니와 지난 3월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4평 크기 주방만 있는 배달전문점이다. 주방에서 다쳤는데 주방에서 일하는 게 무섭지 않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트라우마를 제외하더라도, 주방은 불 때문에 온도가 급격히 변하니 화상을 입은 사람에게 친절한 공간은 아니다. 화상을 입어 녹은 피부에는 땀샘이 없어 체온조절이 어렵다. 손가락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계란 하나 잡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다. 마우스 클릭이나 키보드 타이핑이 어려워 사무직도 못 한다. 10년 넘게 식당에서 일한 보경 씨가 꾸준히 일할 수 있는 곳은 식당뿐이다.

 

 

▲ 보경 씨가 요리를 하는 모습이다. 주방에서 화재 사고를 경험했지만, 보경 씨가 주방을 떠나기는 쉽지 않다. ⓒ 김현주

 

 

15:00

주문이 거의 없는 시간, 간이 의자를 펴 주방에 앉았다. 가만히 있으니 통증이 더 잘 느껴졌다. 왼손은 불타는 것 같고, 오른손은 망치로 맞는 듯하다.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왔다. 사고 이후 담배를 처음 피울 때는 겨우 1~2cm짜리 불이 무서워 다른 사람에게 불을 붙여달라고 부탁했다. 그래도 삶이 고달프니 다시 담배를 찾게 됐다.

 

15:30

근처에 일 때문에 왔다는 친구가 가게에 들렀다. 친구에게 캔 음료를 건넸다. 보경 씨도 마시려 했지만 계속 헛손질을 한다. 캔을 한 번에 따지 못하는 보경 씨를 보고 친구가 대신해 주겠다고 말했다. 보경 씨는 캔을 딸 수 있다. 시간이 조금 필요할 뿐이다. 친구의 도움은 고맙지만, 캔 하나도 따지 못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 같아 착잡하다.

 

16:00

늦은 점심으로 햄버거를 사 왔다. 보경 씨는 햄버거를 좋아하지만 사고 이후로는 햄버거를 먹기 불편하다. 오른손으로 햄버거를 살짝 잡고, 바닥으로 햄버거가 떨어지지 않도록 왼손으로 받친다. 화재 때 입 주변이 녹아내렸다. 수술하면서 입이 작아졌다. 햄버거 같은 음식을 먹을 때 소스를 입 주변에 묻히고, 재료를 흘리게 된다. 햄버거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먹기 민망한 음식이 됐다.

 

17:00

보경 씨가 근처 편의점에 들렀다. 못 보던 직원이 있다. 계산하려고 하자 직원이 물었다. “젊은 친구가 대낮부터 술을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화를 내고 싶었다. 하지만 웃는 얼굴로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그에게 화내면 자기만 이상한 사람이 될 게 뻔했다. 이런 일은 반복됐다. 길에서 모르는 남성이, 홍대에 가려고 탄 택시의 기사가 붉은빛이 도는 보경 씨의 얼굴을 보며 술 마신 사람으로 오해하고 오지랖을 부렸다.

 

 

▲ 사람들은 화상 흉터 때문에 붉어진 보경 씨의 얼굴을 보고 술에 취했냐고 묻곤 한다. 보경 씨는 그럴 때마다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게 된다. ⓒ 김현주

 

 

21:00

보경 씨는 대리기사 일도 한다. 손님을 태우고 가는 길, 음주단속 하던 경찰이 보경 씨에게 음주 측정기를 불기도 전에 내리라고 한다. 빨간 얼굴을 보고는 술 마신 거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화상 흉터라고 설명했다. 이런 일은 예전에도 있었다. 병원에서 집으로 차를 몰고 오던 날, 화상 흉터라고 설명했는데도 경찰은 무작정 내리라고 했다. 말싸움을 하느라 30분가량 자리에 묶여 있었다. 그 후로 빨간 얼굴을 가리려고 색조화장품을 쓰기 시작했다. 사고 전에는 스킨, 로션도 안 발랐다.

 

24:00

퇴근 후 집에 도착한 보경 씨가 샤워를 하고 빨래를 돌린다. 빨래를 널고 나니 새벽 1시가 넘었다. 바로 자도 내일 출근 시간을 맞추려면 4시간밖에 못 잔다. 그마저도 통증과 가려움 때문에 자다 깨길 반복한다. 수면제를 먹고 눕는다.

 

 


 

 

 

 

 

보경 씨는 스테인리스 냄비를 뒤집어쓰고 화재 현장에서 뛰쳐나왔다. 불길이 얼굴에 직접 닿지는 않았지만, 열기는 닿았다. 눈, 볼, 귀 부분에 특히 흔적이 남았다. 눈두덩 살이 녹아 약간 잘라내는 수술도 받았다. 원래 있던 살을 잘라냈기 때문에 눈이 완전히 감기지 않는다. 눈이 감기지 않으니 안구 건조증이 생겼다. 밖에 나갈 때는 햇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하려고 선글라스를 챙긴다.

 

보경 씨는 화상 흉터를 가리고 싶어 색조화장품을 샀다. 파운데이션과 컨실러가 함께 있는 ‘듀얼’ 제품이다. 보경 씨는 ‘내추럴 베이지’ 색상을 쓴다. 21~23호 정도의 피부 색상이다. 모공을 메워 색조 화장이 잘 먹히도록 프라이머도 사용한다.

 

보경 씨의 주방엔 유독 손잡이 달린 조리도구가 많다. 컵이나 계량컵도 손잡이 달린 것으로 구매한다. 손이 굽은 보경 씨에겐 손잡이 컵이 좋다. 일회용 컵을 잡을 때도 옆이 아니라 컵 입구가 있는 위를 잡는다. 옆을 잡으려면 오른손으로 살짝 컵을 잡고, 떨어지지 않도록 왼손으로 바닥을 받쳐야 한다.

 

화상을 입어 녹은 피부에는 땀샘이 없다. 불을 쓰는 주방은 온도가 급격히 변하지만 체온 조절이 어렵다. 주방에 있는 에어컨은 고장 나 여름 내내 작동이 안 됐다. 보경 씨는 공유주방 복도에 선풍기를 갖다 놨다.

 

보경 씨는 사비를 들여 ‘K급 강화액 소화기’를 샀다. K급 강화액 소화기는 분말 형태인 일반 소화기보다 3배 정도 비싸지만, 주방에서 발생하는 화재에 대처하기에 더 낫다. 소화기는 보경 씨가 임대해 장사하고 있는 공유 주방 복도에 놓여있다.

 

보경 씨는 칼질에 자부심이 있었다. 마늘을 빻을 때도 칼 옆면으로 한 번 내리치면 그만이었다. 사고 이후로 칼질을 아예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칼을 꽉 쥐기 어렵고 오래 들고 있으면 손이 아프다. 요즘은 채칼과 믹서기를 많이 사용하게 된다.

 

보경 씨는 매일 20알 정도의 약을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나눠 먹는다. 중추신경안정제, 스테로이드성 진통제, 마약성 진통제, 항생제, 수면제, 항우울제 등이다. 증상이 나아지지 않고, 내성이 생겨 약의 용량이 점점 늘고 있다. 먹으면 정신이 멍하다.

 

게임을 좋아했다. 특히 RPG 게임인 ‘리니지’를 좋아했다. 게임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화상을 입은 뒤, 마우스를 이용하는 게 어려워졌다. 키보드는 독수리 타법으로 친다. 지난해 초, 화상 관련 단체에서 사무직으로 일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컴퓨터 사용이 어렵다는 점도 거절의 이유였다. 게임도 안 한 지 오래다.

 

 

 

 


 

 

 

 

1. 화상을 입으면 장애로 분류된다 → 절반의 사실

지체장애인, 정신장애인, 시각장애인이라는 말은 익숙하다. 하지만 화상장애인이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다. 언론은 화상을 입은 사람을 표현할 때 ‘화상환자’라는 말을 쓴다. 화상장애인이라는 말이 낯선 이유는 화상이 장애 분류 기준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장애인복지법은 장애인을 ‘신체적ㆍ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라고 정의한다. 정의에 따른 장애 분류는 15가지다. 그 15가지 범주에 화상은 포함되지 않는다. 장애로 분류되지 않으니 취업지원이나 생계 지원 같은 각종 복지 혜택에서도 제외된다. 보건복지부는 화상을 장애가 아니라 ‘질환’으로 본다. 화상 환자가 장애인으로 판정받는 경우는 따로 있다. 화상으로 신체 일부를 잘라낼 경우 ‘지체장애’로 판정받고, 안면에 화상을 입을 경우 ‘안면장애’로 판별 받는다.

장애인복지법 제18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이 생활기능을 익히거나 되찾을 수 있도록 필요한 기능치료와 심리치료 등 재활의료를 제공하고 장애인의 장애를 보완할 수 있는 장애인보조기구를 제공하는 등 필요한 정책을 강구하여야 한다’라고 국가의 책임을 정의한다. 하지만 장애로 인정받지 못하는 화상의 경우 보험 처리가 안 되는 비급여 항목이 많다.

대표적으로 보습제가 있다. 화상을 입어 부풀어 오르는 피부를 ‘떡살’이라고 한다. 떡살이 있는 피부는 체온 조절이 되지 않고 수분이 없다. 간지럽고 아프기 때문에 보습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보습제는 화장품으로 분류되어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된다. 화상 흉터를 줄이기 위해 입는 압박옷도 마찬가지다. 그밖에 흉터 연고, 인공피부, 흉터관리 용품 등도 비급여로 분류된다. 2015년 기준 산업재해 화상환자의 경우 비급여부담률이 22.3%로 나타났다. 산재보험 전체 비급여 부담률 7.7%의 3배에 이른다. 오찬일 화상환자 해바라기 자조모임 회장은 “화상이 16번째 장애등급으로 분류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오 회장 역시 2007년 화재 사고로 전신에 59% 화상을 입은 뒤 30번이 넘는 수술을 한 화상 경험자다. 해바라기 자조모임을 통해 화상 환자가 경제적·사회적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2. 화상경험자가 상처를 극복하는 것은 마음의 문제다 → 거짓

사람들은 화상경험자를 차별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대신 불쌍하게 여긴다. 미디어에서도 화상경험자를 대놓고 비하하지 않는다. 하지만 화상경험자들은 EBS <나눔0700>, SBS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등 후원금 모금을 위한 방송에 자주 등장하며 ‘불쌍하고 도와줘야 할 사람’으로 그려진다.

보경 씨는 인터뷰에서 “불쌍하다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화상경험자를 불쌍하게 여기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처럼 대하는 시선이 곧 사회적 장벽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화상경험자는 사회적 시선을 내면화해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게 되기도 한다. 이러한 무력감은 가족에게도 번진다. 한림대 한강성심병원의 2005년 조사에 따르면 화상환자 보호자의 66.4%가 우울증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고통을 나누는 것은 화상 환자에게 더 큰 괴로움이다. 한국에서는 매년 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화상 치료를 받는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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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콘텐츠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됐습니다.

 

 


편집: 심미영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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