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조경수 노인 도시락 배달기사

“도시락을 배달하면서 필요하면 전기수리 같은 것도 해줘요. 콩도 심어주고 깨도 베어주고….”

도시락을 실은 냉동탑차가 ‘덜컹’ ‘끼익-‘하며 시골길을 달린다. 운전석엔 까만 마스크를 쓴 조경수(53) 씨가 앉았다. 그는 2012년부터 제천시니어클럽에 소속돼 도시락을 배달하는 운전기사다. 시니어클럽 소속 오색정식품제작단에서 만든 도시락을 혼자 살거나 몸이 불편한 노인에게 배달한다. 그는 매일 170~200km 정도 운전한다. 경북 상주에서 서울까지 매일 달리는 셈이다.

익숙한 경로라 속도를 낼 법한데, 조경수 기사는 조수석에 앉은 기자를 배려하느라 신경 써서 운전하는 듯했다. 그는 도시락을 배달받는 사람들 이름을 죄다 외우고 있었다. 기자가 “저 집엔 누가 사세요”라고 물었더니 “저 집엔 000 할머니가 계셨는데 저번 수해로 집이 다 떠내려가서 요양원에 들어가셨어요”라고 답했다. 

운전석에서 내려 탑차 뒤편에 있는 냉동고를 열고 도시락을 꺼내 전달한 뒤 다시 운전석으로 돌아오기까지 길면 3~4분, 짧으면 1~2분이 걸린다. 굳이 사람들 이름과 사정을 알지 않아도 무리 없이 해낼 수 있는 일이지만, 도시락을 전달하며 꼭 사람들 안부를 묻고 기억해 뒀다. 거동이 불편한 어느 할머니는 도시락을 전달받은 뒤, 12층 자기 집 베란다로 나와 조 기사의 탑차가 떠날 때까지 바라봤다.

도시락 배달은 오전과 오후 일정으로 나뉜다. 소속 기사는 둘이다. 조경수 기사는 주로 청풍면, 덕산면 등 시 외곽을 담당하고 신대현 기사는 아파트가 몰려 있는 시내를 담당한다. 기자가 동행 취재한 날은 화요일이어서 조 기사의 배달 물량은 밥 56개와 반찬 28개였다. 매주 수요일은 밥 94개와 반찬 47개로 늘어나고 주말 도시락까지 함께 전달하는 금요일은 밥 150개와 반찬 75개를 실어 나른다. 총 263명이 도시락을 받는다.

고독사한 노인 발견하기도

부모 곁을 항상 지킬 수 없는 자식에게 그는 믿음직스러운 대리인이다. 어느 도시락 수급 노인의 자녀는 일하느라 부모와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어서 집안에 관찰카메라를 달아 놨다. 바깥일을 하다가 부모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등 문제가 발생하면 조경수 기사에게 ‘SOS’를 친다. 

“딸이 일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집안을 살펴요. 이쪽 방에 부모가 들어갔는데 안 나오잖아요. 그럼 카톡으로 깨우라고 온다고. 자기는 올 시간이 안 되니까. 가서 깨우려고 하면 어떨 때는 느낌이 ‘쎄’할 때도 있고 그래요. 그런데 벌떡 일어나면 더 놀라.”

▲ 지난 11월 16일 조경수 기사(가운데)와 동행한 김현주 기자(오른쪽)가 한 노인에게 도시락을 전달한 뒤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신지인

도시락 지급 기준은 소득 등 공통 기준이 있지만, 동사무소마다 다르다. 차상위 계층이나 저소득 독거노인을 우선으로 한다. 읍·면·동사무소에서 도시락 수급 신청을 받아 제천시에 전달하면, 시에서 명단을 작성해 시니어클럽에 전달한다. 사망이나 전출이 아니라면 정해진 수급기간은 따로 없다. 제천시가 운영하는 재가노인 식사 배달사업은 시니어클럽과 연계해서 하는 경로 하나뿐이며 2021년 도시락 배달사업에 배정된 예산은 3억3,700만원이다. 김현정 제천시청 노인장애인과 주무관은 “지난해 말 표본 80명으로 자체 조사한 결과, 수혜자들은 식단 취향이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도시락 배달사업에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배달하다 보면 도시락 지급 기준에는 들지 않아도 실제로는 도시락을 받아야 하는 주민을 발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느 노인은 자녀가 수입이 있어 도시락 수혜 조건이 안 되지만 자녀가 일을 해 집에 늘 혼자 있다. 이런 사실을 기사들이 알게 되면 시니어클럽 사무실에 알리고 사무실에서 도시락을 더 공급한 뒤 동사무소에 현황을 알린다. 

도시락 배달을 하다가 홀로 죽어 있는 노인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그가 도시락을 배달하며 일부러 안부를 확인하고 인사하는 이유다. 사망자를 발견하면 기사가 사무실에 연락해 장례 절차 등을 해결한다. 

주고받는 이들 사이 신뢰 쌓여

첫 번째 배달지인 중앙아파트 앞에 주차하고 운전석에서 내린 조경수 기사는 일회용 도시락 3개가 담긴 검은 비닐봉지 2개를 집어 들었다. 아파트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여기는 제가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데 아마 할머니 할아버지가 산책하러 나가셨을 것”이라며 도시락을 두고 나왔다. 비밀번호를 알려줄 만큼 신뢰하는 관계다. 

▲ 조경수 기사가 첫 번째 집 앞에서 도시락을 챙기고 있다. 그는 2012년부터 시니어클럽 소속 기사로 일한다. ⓒ 신지인

그에게 도시락 배달은 단순히 돈을 받고 하는 ‘일’ 이상이다. 그는 “눈이 와 길이 막히면 차를 세워놓고 걸어서라도 도시락을 배달한다”며 “배달을 빼먹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이 집 할머니는 화투 치는 것을 좋아하시고’, ‘저 집은 불독을 키운다’는 식으로 취미와 집안 형편까지 꿰고 있었다. 

“어르신들이라 혼자 계신데 안 가면 궁금해요. 일주일에 두 번씩 보는데 정이 들죠. 근무가 없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물가에 고기 잡으러 갔는데 근처에 도시락 받는 집이 있으면 들르기도 해요. 도시락을 전해주는 게 일이기도 하지만 그걸 통해 이웃이 되는 거죠. (도시락 받는 분들도) 산에서 감 같은 거 열리면 주말에 따러 오라고 하고 그래요.”

도시락을 받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일부러 문 앞까지 배웅 나오는 분들도 있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고마움을 표한다.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냐는 질문에 조 기사는 “돈을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답했다. 

“정신 없으신 분들은 돈을 주기도 해요. 자식들이 준 돈을 가지고 있다가 밥값이라고 챙겨주는 거예요. 안 받으면 짜증을 내니까 할 수 없이 받아서 다음에 갈 때 양말 같은 거 사서 갖다 주기도 했어요. 어떤 할아버지는 명절 때 꼭 양말을 사서 챙겨주더라고요.”

“먹기 쉽고 만들기 쉬운 걸로”

도시락은 제천시니어클럽에서 운영하는 오색정식품제작단에서 만든다. 시니어클럽은 노인의 사회참여 확대를 목표로 노인 일자리 지원사업을 하는 기관으로 노인복지법에 근거해 운영한다. 전국에 178개 시니어클럽이 있다. 제천시니어클럽은 명락복지재단 소속으로 2011년에 개관했다. 도시락 배달사업을 하는 오색정식품제작단뿐 아니라 보안문서 파쇄나 재활용품 수거 업무를 하는 ‘그린자원’, 두부를 만들어 판매하는 ‘골목식당의 두부이야기’ 등 6개 매장을 운영한다. 제천시니어클럽에 소속돼 일하는 노인들만 1천 명이 넘는다. 그중 29명이 도시락 만드는 일을 한다.

오색정식품제작단 소속 조리사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조별로 일한다. 오전 도시락 담당조는 새벽 5시에 나와서 8시에 퇴근하고, 오후 도시락을 담당하는 조는 9시에 나와서 12시에 퇴근한다. 다음 날 나갈 도시락 재료 손질을 위해 오후에 출근하는 조도 있다. 보통 주 3회 출근해 하루 3시간쯤 일한다. 연령대는 60대후반~80대초반으로 70대가 많다. 주 3회 하루 3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한 달에 33만원 정도 번다.

오색정식품제작단의 실무를 맡고 있는 홍은미 노인일자리담당관은 메뉴 구성부터 노인들이 먹기 좋은 것으로 꼼꼼하게 챙긴다. 지난해 11월 23일 도시락 메뉴는 생선가스, 비엔나야채볶음, 열무김치, 고추지무침, 배추김치였다.

“식단은 직접 챙겨요. 드시는 분들을 생각하면 질긴 것은 빼야 하니까 식단을 짤 때 제약이 있어요. 두부나 묵 종류를 많이 쓰고, 고기도 육류보다는 생선을 써요. 만드시는 분들도 생각해야 해요. 젊은 세대가 먹는 음식은 어르신께서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안 먹어 본 음식을 만들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메뉴가 쉬워야 해요.” 

▲ 조리사 손을 거쳐 완성된 도시락은 제천시의 각 지역으로 배달된다. ⓒ 김현주

배고픔과 외로움 덜어주는 도시락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20년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16.5%를 차지한다. 독거노인은 19.6%다. 65세 이상 인구 다섯에 하나는 혼자 산다는 뜻이다. 독거노인비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노인 인구가 증가하는 만큼 노인 복지에 신경 쓰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은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18년 기준 노인 인구 10만 명당 48.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도시락 배달사업에서 도시락은 배고픔을 해결하는 수단 그 이상이다. 도시락을 만들고 배달하는 과정에서 현장 전문가들은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물으며 노인들의 우울이나 고독을 살핀다. 평소와 다른 분위기나 얼굴색을 보고 그들이 처한 문제를 발견하기도 한다. 문제의 발견은 문제 해결의 시작이다. 

“도시락 예산 올려야” 

노인 복지 차원에서 도시락 배달사업은 긍정 효과가 뚜렷하지만 개선할 점도 있다. 유용식 세명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자체나 복지관 등에서 운영하는 노인 대상 도시락 배달사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두 가지 개선점을 지적했다. 첫째는 비용 문제다. 유 교수는 “보통 도시락 사업에서 한 끼당 비용이 제한적이다 보니 영양 등을 고려해 식단을 짜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선별복지의 한계다. 제천 시니어클럽처럼 도시락 배달사업은 대개 일정 연령을 넘긴 모든 노인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기준을 따져 선별 지급한다. 유 교수는 “경계에 있는 노인은 도시락을 받는 사람과 받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가 백지장 한 장 정도”라며 “수혜자로 선정되면 도시락을 받고 안 되면 아예 받지 못하니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편집 : 이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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