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슬플 비’(悲)는 ‘아닐 비’(非)에 ‘마음 심’(心)을 합친 말이다. 요즘 말로 하면 ‘마음이 영 아니다’란 뜻이다. ‘연민’(憐愍)이란 단어의 앞 글자는 ‘불쌍히 여길 연’ 또는 ‘이웃 인’으로 읽어도 되니 ‘이웃을 불쌍히 여긴다’는 뜻이 들어있다. 연민은 남의 슬픔을 헤아리는 마음인데 자기 것도 아닌 남의 슬픔을 오랫동안 헤아리기는 쉽지 않다.타인의 슬픔에 진정으로 공감하고, 연민을 지니려면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기억’이다. 남의 슬픔을 흘려버리지 않으려면 기억해야 하고 그래야 지속적인 공감능력이 생긴다. 지금은
드라마 인기는 무서웠다. 한국 교육 현실을 신랄하게 묘사한 드라마는 풍자와 코믹을 더하며 시청자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SKY 캐슬’은 TV 속에만 있지 않았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딸이 특혜 입학 논란에 휩싸였다. 불법성 여부는 조사 후라야 판가름 나겠지만, 국민들이 느끼는 위화감은 이미 깊고 넓다. 성균관대 교수의 딸은 부모가 꾸민 거짓 연구 실적으로 서울대 치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한 것이 드러났다. 서울대는 입학 허가를 취소하기로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건 빙산의 일각일 뿐, 드러나지 않은 사례는
내 동생은 스타벅스 후원자다. 후원금을 보내서가 아니라, 정기적으로 물품을 사기 때문이다. 동생은 취미로 텀블러를 수집한다. 각국 스타벅스에서, 또는 새로운 디자인이 출시될 때마다 스타벅스 텀블러를 산다. 엊그제 선반 위에 스타벅스 텀블러가 또 하나 늘었다. ‘거대 다국적기업을 왜 후원하느냐’고 한 소리 하긴 했지만 새로 놓인 예쁜 텀블러에 눈길이 간다. 보기 좋은 컵이 맛도 좋게 하려나? 나도 새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보고 싶은 욕망이 한 켠에 생긴다.우리는 ‘사야만 살 수 있는 사회’에 산다. 무언가를 사야 삶 속의 기본 욕구를
15세기 중반 이후 양모 산업이 돈벌이가 되자 영국 지주들은 농민들이 함께 농사 짓던 공유지와 숲 등에 울타리를 치고 양을 방목했다. ‘인클로저(울타리치기)’로 불린 이 폭력적, 강압적 토지사유화로 수많은 농민들이 삶의 터전을 뺏기고 임금노동자가 됐다. 이런 과정에서 자본주의의 토대라 할 수 있는 사유재산권이 확립되고 새로운 산업에 투입될 노동자층이 형성됐다.18세기에 본격 등장한 방적기(실 잣는 기계)와 방직기(천 짜는 기계)는 면직물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하면서 수많은 수공업 종사자들을 도탄에 빠트렸다. 그러나 이 기계들과 함께
월세 50만원. 내 첫 자취집은 신촌 인근이었다. 대학가라서 빈 방이 많지 않았고, 겨우 구한 집은 쾌적하지 못했다. 집 앞과 옆에 모텔이 있었고 밤에는 어둑한 가로등 하나가 전부였다. 문을 열면 모든 게 한눈에 들어오는 좁은 방에 세간살이가 다 들어가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특히 답답한 건 창문이었다. 좁은 창문에 달린 쇠창살, 햇볕은 창문 크기만큼 잠시 들었다가 지나갔다. 집은 회색 골목 속 좁은 감옥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몇 개월이 지났을까, 나는 점점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졌다. 숨 막히는 공간은 내 삶 자체를 답답하게
‘제로레이팅(Zero-rating)’은 콘텐츠 사업자가 이동통신사와 제휴해 이용자의 데이터 이용료를 면제하거나 할인해주는 제도다. 이용자가 데이터를 써도 그 비용을 이통사나 콘텐츠 제작사가 대신 납부하기 때문에 ‘0원 요금제’라 부른다. 작년 포켓몬고 열풍이 불 때, SKT가 제로레이팅으로 앱을 제공해 280TB 데이터 비용을 이용자에게 물지 않았던 것이 대표적이다. 방통위는 제로레이팅이 통신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고 보고 허용 방침임을 밝혔다. 이미 3대 통신사는 각각 게임 등 업체와 제로레이팅 계약을 맺었다. 소비자 인식조사에
초등학교 4학년, 나는 점심시간이 가장 싫었다. 누가 나와 점심을 먹으러 가줄지 항상 눈치를 봐야 했던 탓이다. 한번은 친구와 함께 밥을 먹고 싶어 꼬박 5시간 정성스레 그린 만화 캐릭터를 선물한 적도 있다. 그림을 받은 친구는 머뭇거리며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함께 밥을 먹으러 가주었다. 그러나 다음 날 또 외톨이가 됐다. 삼삼오오 모여 재잘대고 별 것 아닌 일에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는 점심시간이 내게는 전혀 즐겁지 않았다. 늘 눈에 띄지 않게 ‘혼밥’을 먹었던 나는 ‘왕따’였다.인간 뇌 속에는 수많은 서랍장이
“하아. 진짜 시간이 너무 없는 거 있지.” 취직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그는 디자인 회사에 다닌다. 야근에 주말 근무에 온통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는 그는 자리에 앉아 각종 음식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 하나랑 갈릭 스테이크, 고르곤졸라 피자랑 토마토 리조또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주문에 놀라 “다 먹을 수 있냐”고 물어보니 짤막한 대답이 돌아온다. “어차피 지금 아니면 쓸 시간도 없는데.” 열심히 일해 소득을 올려도 쓸 시간이 없다는 얘기다. 뭔가 씁쓸했다.흔히 ‘소득’과 ‘시간’은 반비례 관계처럼 여
다윗은 이스라엘 왕으로서, 소년 시절에 돌팔매로 거인 골리앗을 때려 눕혔다. 이야기가 처음부터 옆으로 빠지지만, 대체 어린 소년이 키가 270㎝나 됐다는 중무장 거인을 돌멩이로 한 방에 죽이는 게 가능했을까? 이 사건의 진실을 둘러싸고 <히스토리 채널> 등에서 실제로 실험을 해보기도 했다. 옛날에는 돌멩이가 쓸모 있는 전쟁 무기였고, 돌멩이를 던지는 도구가 많이 개발됐다. 다윗이 사용한 돌멩이 던지기 도구를 재현하여 실험해본 결과 날아가는 속도가 시속 200㎞를 넘었다. 충분히 투구를 깨트리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힘이다.다윗왕이
우리는 모두 누군가와 연결되어 살아간다. 타인이나 세상과 연결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연결의 부재는 단절이고, 단절은 고립과 소외를 의미한다. 치매 환자도 예외는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치매에 걸리더라도 우리는 주변 사람들과 연결돼 잘 살 수 있어야 한다. 치매에 걸린 이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색함 없이 살아가고, 타인과 연결되는 모습을 유쾌하게 그려낸 다큐멘터리가 있다. 최근 방송된 ‘KBS스페셜-주문을 잊은 음식점’이다. 음식점이 주문을 잊었다니? 프로그램은 경증 치매 판정을 받은
"나 이대 나온 여자야." 부르디외가 말한 구별짓기의 바탕이 되는 사회적 문화적 자산에는 '자격증'이 포함된다. 자격증은 졸업증과 학위증 등 제도적으로 공인된 증서다. 부르디외는 체화한 교양이나 고가 예술품 취향뿐 아니라 '자격증' 역시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나누는 하나의 분류체계가 된다고 했다. 학벌과 각종 시험 등의 자격증 체계 속에서 개인은 자신의 정치, 사회, 문화적 위계를 발견한다. 이것은 계급서열로 이어진다. 즉 '계급'이 교육을 통해 생산되고 물려진다는 것이다. 영화 속 여자는, 이대를 나오지 않은 여자들보다 서열 우위를
‘언론의 고장’ 옥천에서 7~8일, 이틀간 ‘청암 송건호 언론문화제’가 열렸다. 송건호 선생의 정론직필 언론 정신을 잇고 언론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2011년 이후 끊겼던 언론문화제가 7년 만에 부활한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 한국 언론 상당수는 국민의 알 권리를 저버리고 제 잇속 챙기기에 바빴다. 기자들은 각종 편파, 왜곡, 거짓 보도를 일삼아 '기레기'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언론을 향한 불신이 팽배한 한국에서 언론의 바른길이 열릴 수 있을까? <단비뉴스> 지역농촌취재팀이 충북 옥천을 찾아갔다.독재정권 시절, 정도
“아니, 이렇게 비속한 그림을 그리다니!” 혜원 신윤복은 조선 시대 대표적인 에로티시즘 화가다. 그는 당시 사회에서 금기시하던 남녀의 밀회, 구애를 서슴없이 그림에 담아냈다. 남성과 양반 중심 사회에서 은폐되어야 했던 여성을 회화의 주체로 전면 등장시켰다. 그의 그림에서 여성은 생기 어린 표정과 행동으로 스스로를 드러내고어 ‘성욕’의 적극적 주체가 된다. ‘과부’란 그림이 대표적이다. 생식의 계절, 분홍 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무 아래 개 두 마리가 짝짓기하고, 소복 입은 과부는 그것을 보며 피식 웃는다. 옆의 시누이는 웃지 말라고
‘삶’의 의미는 역설적으로 ‘죽음’을 옆에 두었을 때 가장 극명히 드러난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는 인식은 삶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 지금 당장은 찬란하고 반짝거리는 것들도 죽음과 대비했을 때는 힘을 잃고 무색해진다. 인간에 관한 사유는 ‘삶과 죽음에 관한 물음과 답변’일 따름이다. 삶에 관한 질문과 사유는 죽음의 연장선 위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 누군가는 말했다. 그에게 사과나무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이자 삶의
길은 자연을 본받는다노자는 <도덕경>에서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길을 본받는데, 길은 스스로 그러함(自然)을 본받는다’고 했다. 한반도의 척추, 백두대간의 중간 즈음을 가로지르는 대관령(大關嶺). 그 고갯길 구비구비를 따라 두르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대관령 옛길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지역∙농촌문제세미나] 답사팀이 만나러 간다.대관령은 넓게는 강원도 영서와 영동, 좁게는 평창과 강릉을 잇는 고갯길이다. 수많은 선비가 과거를 보러 한양에 가려고 대관령을 넘었고, 강릉에서 생산되는 해산물과 농산
“빨간 맛 궁금해 허니.” 나는 허밍으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남조선예술단의 평양공연 중 으뜸은 레드벨벳의 노래와 안무였다. 비교할 수 없는 외모 때문도 있지만, 그들의 노래 제목이 바로 ‘빨간 맛’ 아닌가? 나는 빨간색을 사랑한다. 자랑스런 북조선의 상징 색이자 정열의 색깔! 15호 관저로 돌아와 책상서랍을 뒤졌다. 구석 끝에서 빨간 색 낡은 수첩을 찾았다. 스위스에서 유학할 때 썼던 일기장이다. 18년 전 소년 시절 일기를 읽어내려 가던 손이 한 페이지에서 멈췄다. ‘2000. 4. 15.
“주물하라. 나를 통해 무엇이든 창조할 수 있을지니. 외치라, 플라스틱!” 마법의 주문을 알려줄게. 방법은 간단해. 내 이름을 부르면 돼. P-L-A-S-T-I-C. 이상한 사이비 주문 같다고? 아니야. 인간은 플라스틱 세상에서 마법사처럼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만들 수 있어. 바로 나 만능 플라스틱이 그것을 가능케 하니까.Plassein이란 그리스 어원처럼, ‘주물하다’ ‘형태를 만들다’가 원래 내 뜻이지. 많은 이들이 ‘플라스틱’ 하면 정형화한 명사, 틀이 있는 물체를 떠올리지만 사실 나는 형태가 정해지지 않은 ‘동사’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