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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환자와 세상을 잇는 다리

기사승인 2018.09.21  21:3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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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를 보니] ‘주문을 잊은 음식점’이 보여준 공감의 연결

우리는 모두 누군가와 연결되어 살아간다. 타인이나 세상과 연결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연결의 부재는 단절이고, 단절은 고립과 소외를 의미한다. 치매 환자도 예외는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치매에 걸리더라도 우리는 주변 사람들과 연결돼 잘 살 수 있어야 한다. 치매에 걸린 이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색함 없이 살아가고, 타인과 연결되는 모습을 유쾌하게 그려낸 다큐멘터리가 있다. 최근 방송된 ‘KBS스페셜-주문을 잊은 음식점’이다.

   
▲ <주문을 잊은 음식점> 첫 화면 갈무리. ⓒ KBS

음식점이 주문을 잊었다니? 프로그램은 경증 치매 판정을 받은 7,80대 노인 다섯이 음식점 서빙을 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실제로 이들은 주문을 받다 말고 손님과 수다를 떨거나, 메뉴판을 갖다 주지 않거나, 디저트 내오는 일을 깜빡하곤 한다. 하지만 그것을 두고 얼굴을 붉히거나 불쾌해하는 손님은 없다. 여기는 주문을 잊은 음식점이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일본 NHK ‘오더 미스테이크’ 프로젝트의 발상을 차용했다. 서울 지역 26곳 치매 안심센터와 KBS 스크롤을 통해 참가자를 모집했고, 총 다섯 참가자가 선정됐다. 매일 운동을 하고 약을 챙겨먹는 맏형 이춘봉 할아버지(83), 웃으면서 손님을 호객하고 “구~웃”을 외치는 최인조 할아버지(77), 보기만 해도 유쾌한 에너자이저 정옥 할머니(78), 식당 냅킨에 아기자기 꽃을 수놓는 미자 할머니(76)가 주인공들이다. 인트로부터 청춘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에서 볼 법한 아기자기한 인물 소개가 이어진다.

   
▲ 인트로의 아기자기한 인물 소개 갈무리. ⓒ KBS

식당에 알림 말이 붙어있지 않았다면 정말 치매인 줄 생각지 못했을 거라는 어느 손님 말처럼 다섯 참가자는 모든 것을 큰 무리 없이 해낸다. 치매 경증 환자는 일반인과 거의 구분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은 거의 모든 일상생활이 가능하며, 어쩔 수 없이 실수를 저지르긴 하지만 스스로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프로그램에서도 첫 서빙을 해낸 후 남몰래 긴장했던 숨을 몰아쉬기도 하고, 아끼던 제자가 찾아와도 몇 시간 뒤에는 기억하지 못하는 헤프닝이 벌어지곤 한다. 하지만 음식점이 운영되는 이틀 동안 다섯 어르신은 매순간 밝게 웃고 손님과 교류하며 서빙을 해낸다.

   
▲ 첫 주문을 무사히 서빙한 후,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는 최인조 할아버지. 화면 갈무리. ⓒ KBS

화면이나 분위기만 보면 치매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지 잊을 정도로 이 다큐멘터리의 분위기는 유쾌하다. 연출을 맡은 길다영 PD는 “치매를 앓아도 항상 우울한 삶을 사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고, 그래서 가볍고 경쾌한 느낌을 많이 줬다”고 얘기했다. 프로그램은 크게 두 가지 구성 방식으로 이뤄진다. 우리에게 친근한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전통 다큐멘터리 방식을 교직했다. 음식점 안의 좌충우돌과 발랄한 에피소드는 식당 내 곳곳의 관찰카메라를 통해 현장감 있게 전해지고, 출연자와 손님들 인터뷰가 삽입된다. 그 리얼리티의 중간마다 출연자 어르신 각각을 내레이션이 있는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담아낸다. 리얼리티가 기반이지만 개인 이야기를 잔잔하게 얹어 치매 환자와 가족, 사회와의 연결 지점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구성이다.

   
▲ <주문을 잊은 음식점>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밝으며 생기 넘친다. 화면 갈무리. ⓒ KBS

기존 다큐멘터리였다면 어땠을까? 대부분 미디어에서 치매는 무겁고 어둡고 때로는 극적인 소재로 다루어졌다. 상황설명-인터뷰-문제제기-제언 식의 구성으로 재현되었을 것이다. 중증치매환자의 상황을 상세히 묘사하고, 가족들이 겪는 고통과 어려움을 인터뷰하며, 현실적 대책이나 치료를 강구하는 순서다. 각종 통계지표도 어김없이 제시된다. 이런 방식의 재현은 정확한 정보를 주고 현재 삶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뚜렷한 메시지를 남긴다. 하지만 보는 이는 일종의 경각심과 두려움을 느낌과 동시에 치매를 ‘타자화’하게 된다. 나와는 거리가 먼 치매로, 내 주변에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대상으로 거리를 두고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프로그램을 보며 이것이 타인 이야기가 아니고 내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음식점 점장으로 출연한 송은이는 “치매 어르신들을 단순히 걱정스런 눈빛으로 보게 되진 않을 것 같다”며 “조금 더 나아가서 생각하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때로는 밀려드는 손님에 허둥대거나 서빙하다 말고 손님 자리에 앉아 함께 대화하며 하하호호 웃는 순간들과 장면을 통해, 그 누구보다 열심히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통해, 그 모두를 일관되게 ‘무겁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굉장히 일상적으로 재현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우리는 치매 노인이 질병을 가진 환자가 아니라 함께 어울리며 살아갈 이웃이라고 느끼게 된다. 치매를 타자화한 관점이 아닌 ‘우리의 문제’라는 관점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방송 후반부 정광호 할머니 인터뷰 갈무리. 할머니는 이 음식점은 쉽게 잊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 KBS

이종수 교수는 “포스트 텔레비전 시대의 다큐멘터리 트렌드’에서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스토리텔링이 ‘일상적 대화체’로 전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친밀성, 오락성, 개인성 등의 가치를 다큐멘터리로 확장한다. 이런 방식으로 일상적 삶의 모습과 보통사람들의 다양한 사적 경험을 토로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점점 늘고 있다. 사람들은 거창하고 대단한 사회 이슈보다 소소한 남의 일상을 말하거나 엿보기를 좋아한다. 그것이 자기 생활과 공감할 수 있는 것일 때 시청자들은 대단한 리얼리티를 느낀다. ‘나도 저랬음 직하다’는 이입의 지점이 공감을 만들고, 나아가 다큐의 리얼리티를 만드는 것이다.

리얼리티가 대중적 인기를 얻고 사적 경험을 토로하는 것이 하나의 미학이 된 시대에는 기존과 다른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다큐멘터리는 원래 대중적 매체라기보다 소수의 취향에 어필하는 ‘엘리트’ 장르에 가까웠다. 정보 전달, 사실적 주장, 지식 교육 등이 다큐멘터리의 주기능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정보를 전달하고 지식을 교육할 뿐 아니라 ‘감정적 공명’을 형성한다. 그 감정적 공명 안에서 시청자는 그냥 보고 느끼고 메시지를 받아들이게 된다. 인물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생각하며 세상과 연결됨을 느낀다. 이를 위해서는 정해진 답, 뚜렷한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청자가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열린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사실을 주장하고 전달하는 것이 아닌, 소소한 맥락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공감에 기반한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것이다.

“병원에만 가고 집에만 있는 게 아니라 감기를 얘기하듯 치매에 걸렸다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음식점에 온 누군가의 얘기를 들으며 우리 사회 치매 노인에게 필요한 것은 격리 수용이나 치료가 아니라, 눈 맞추고 나누는 대화와 일상적 접촉임을 느낀다. 이종수에 따르면 다큐멘터리의 의미는 텍스트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를 다큐로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전제, 지향점, 시청방식에 의해 결정된다.

   
▲ 음식점에서 자연스레 주변 치매 어른들에 관한 얘기를 나누는 손님들. 화면 갈무리. ⓒ KBS

‘주문을 잊은 음식점’은 다면적 ‘연결’을 보여준다. 치매 환자들이 이웃과 세상과 이어질 수 있는 연결을 보여주고, 동시에 다큐멘터리와 시청자가 이어지는 ‘공감의 연결’을 보여준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연결이 다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사회 안에서 연결된 채로 살아야 한다’는 문제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느끼게 할 ‘연결의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것이다. ‘주문을 잊은 음식점’은 그 연결 지점을 다채로이 보여주었다.


편집 : 이민호 기자

조현아 PD joninj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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