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 것 같다’는 사연으로 시작하는 그 글이 역겨웠던 건 작가의 욕망이 그대로 보였기 때문이다. 눈을 끄는 자극적인 문장을 앞에 배치하는 건 글쓰기 기법인데 많은 이에게 읽히려는 욕망이 서려 있다. 그는 사연 속 청년에게 ‘미안’하다며 ‘청년과 같은 처지인 사람에 공감하자’고 했다. 하지만 작가가 진심으로 그 청년의 아픔에 공감했다면 일부러 청년의 자극적인 말을 골라 문두에 배치하지는 못했을 거다. 위선을 감추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강원도에 큰 산불이 났을 때 여러 정치인이 현장을 방문했다. 재난 상황에서 직접 현장을 살피는
결혼이 ‘사랑의 결실’이라고 믿는 사람이 아직도 꽤 있을까? 전통적으로 결혼은 국가와 국가가 동맹의 수단으로, 집안과 집안이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활용되었다. 왕건은 고려를 건국하는 과정에 29명의 부인을 두었고, 궁지기에 불과했던 한명회는 온갖 혼인 관계를 통해 국상 지위를 누렸다. 그의 딸은 연이어 예종과 성종의 정비가 되기도 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세대 할머니를 생각해보라. 신랑 얼굴도 모른 채 그저 하라니까 했던 게 결혼 아니던가? 집안과 집안의 이익을 도모하는 ‘담합’ 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결혼은 철저하게 이해관
국민들한테 단골로 두들겨 맞는 통계가 있다. 바로 실업률과 물가 통계다. 두 통계 모두 월별로 작성되는 동향통계인데, 산업활동동향, 가계동향, 인구동향 통계 등 월별로 작성되는 다른 동향통계에 견주어 유독 두 통계가 언론이나 국민들한테 욕을 먹어왔다. 그 이유는 우리가 체감하는 경제 실상과 통계가 너무나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물가통계를 보자. 2000년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01년, 2008년, 2011년에 4%를 조금 넘은 것을 빼면 나머지 해에는 모두 3%대나 그 이하로 나타났다. 2013년 이후에
“우리나라 최고법은 헌법이 아니라 ‘국민정서법이다.” 몇 달 전 세상을 등진 노회찬 의원이 한 말이다. 국회의원에게는 이롭지만 일반 국민에게는 해로운 입법을 할 때, 이 말은 정당성을 얻는다. 소위 주인-대리인 문제다. 특히 법 적용 과정에서 ’사법불신‘이 팽배할 때, 이 말은 폭넓은 지지를 받는다. 사법부가 권력과 권력형 기업인 등을 이해할 수 없는 감싸주기로 일관하는 때도 그렇다. ‘국민정서법’은 명문화해 있지는 않지만, 당사자의 행위를 일정하게 강제하는 결과를 낳는다. 가수 유승준 입대 거부 사건이 그 예다. 그는 미국시민권을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인생의 허무함을 보여주면서도 순수한 사랑을 추구한다. 영화는 인생의 허무함을 죽음으로 보여준다. 영화 스토리의 중축을 담당하는 세계 최고 부호 마담 D는 엄청난 부를 거머쥐었지만 아들에게 살해당한다. 전설적인 호텔 지배인이자 마담 D의 연인 구스타브도 연인의 부를 상속받으며 방탕한 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되었지만 총 한 방에 죽는다. 호텔 로비 보이 제로와 케이크 가게 종업원 아가사는 온갖 역경을 헤치며 결혼으로 사랑을 완성하지만, 2년 뒤 아가사와 자녀는 지금의 의술로 일주일이면 낫는 단순한 병에
인터넷은 누구에게나 열린 ‘정보의 바다’였다. 사람들은 자유롭고 공평하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과 같은 거대 인터넷기업은 개인정보 데이터를 끌어 모아 관리하고, 이에 기반한 여러가지 서비스로 수십조 원을 벌어들인다. 정부는 이들과 결탁해 인터넷을 시민을 감시하는 도구로 전락시켰다. 인터넷 기업은 이용자가 재미로 올리는 SNS와 호기심에 검색하는 단어를 통해서 먹이를 섭취한다. ‘빅데이터’라 불리는 ‘괴물’의 사료는 이용자들의 자발적 노동으로 만들어진다. 인터넷이 문제가 되는 건 인터넷 거대기
몸에 잘 어울리는 옷차림을 한 채 육감적인 몸매를 보여주는 그녀를 본능적으로 눈알이 빠져라 다시 본다. 물론 취업준비생 신분이던 내게 그녀는 핸드폰 화면 속에서만 존재했다. 당장 만나러 가고 싶었지만 자괴심과 가벼운 주머니가 발목을 잡았다. 예쁜 그녀 곁에는 괜찮은 남자들도 많을 것이다. 만나봐야 주눅만 들겠지.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신의 직장에 ‘입성’한 뒤에는 더는 망설일 필요가 없게 됐다. 직장 등급에 따라 배우자 격도 달라진다고 아버지가 누누이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합격 소식을 듣자마자 그녀에게 꾸준히 연락해 접근했다. 남
쌍용자동차 노사가 지난달 14일 해고자 전원 복직에 합의하면서 남은 해고자 119명이 9년여 만에 자기들 일자리로 돌아간다. 이들은 모두 복직하지만 돌아올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엄인섭, 황대원, 임무창, 이윤영, 김주중……2009년 6월 대량해고로 일터에서 쫓겨난 뒤 생활고와 후유증 등으로 극한적 선택을 하거나 병마 등으로 세상을 떠난 스물여섯 쌍용차 해고자들.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쫓겨나 복직과 재취업을 위해 몸부림치다 죽음의 길로 가버린 그들을 떠올리며, 조금만 더 빨리 해법을 찾았다면 희생을 줄일 수 있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딸아이를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 표현이 서툴렀을 뿐 누구보다 애지중지하며 키웠다.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채워주지는 못했지만 배우고 싶다는 건 무리해서라도 하게 해줬다. 여느 직장인처럼 굴욕적인 일에 때려치우고 싶은 날이 많았다. 그래도 버텨온 건 딸 때문이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았던 걸까? 딸아이는 크게 속 썩이는 일 없이 커 줬다. 이름 있는 대학을 나오고 번듯한 직장에 들어간 딸은 내 큰 자랑거리였다.그런데 그런 딸아이가 내게 배신을 안겼다. 나이가 차도 결혼에 관한 얘기를 하지 않아 은근히 걱정스러웠지만 만나는 사람이
진화심리학은 사람의 삶을 선택의 연속된 과정으로 본다. 선택 영역은 다양하지만 세 가지가 핵심이다. 경제적 이익 영역, 사회집단 차별 영역, 그리고 번식 전략 영역이 그것이다. 보수는 경제적 자유주의, 차별 묵인, 성적 엄숙주의를 대변한다. 진보는 자원 재분배, 차별 철폐, 성적 자유주의를 대변한다.사람은 자기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보와 보수 중 한 노선을 선택한다. 세 쟁점에서 진보·보수는 일관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일관된 태도는 오히려 예외적이다. 경제적 이익 영역에서 진보적이라고 그 사람이 사회집단 차별 영역
눈에 한 번 씐 콩깍지는 잘 벗겨지지 않는다. 류동민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랑에 빠지면 그 대상이 되는 이가 무슨 행동을 해도 사랑스럽게 보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한 채 사랑할 이유만 찾기 때문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한 번 미운 사람이 다시 좋아지지 않는 까닭은 계속해서 미워할 이유만 찾기 때문일 거다.얼마 전 청량리역 근처를 지나면서 누군가 공사장 철벽에 빨간 래커로 ‘짱깨새끼들’이라 써놓은 걸 보았다. 중국인을 콕 찍어 혐오를 드러낸 단어였다. 분노에 가득 찬 듯 휘갈겨 쓴 문장이 이어졌다. "중국 노
<어린 왕자>를 쓴 생텍쥐페리와 <노인과 바다>를 쓴 헤밍웨이, 그리고 김영미 PD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전쟁의 참혹함 속에 드러나는 인간의 민낯을 저널리스트로서 겪었다는 점, 그런데도 행동주의자로 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 아닐까? 김영미 독립 PD가 한국 언론에서 독보적인 분쟁지역 전문 저널리스트라는 사실에 이견을 달 사람을 없을 터이다.“미군 종군기자 프로그램 참여 때 가장 걱정되는 건 ‘미군에 우호적이지 않은 내용이 나갔을 때 이들이 어떻게 반응할까’라는 거였죠. 다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을지도 궁금했고요. 이런 물
“군인은 나라의 군사주권을 담보하고 있는 집단 아닙니까? 그러면 ‘우리가 다 할 수 있습니다’ ‘아니 모자라도 우리가 할게요’ 해야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대한민국 군대에서 이 기개가 사라졌단 거죠. (계속 미군에 의존하다 보니) 아무리 국방비를 늘려줘도 우리에겐 미국이 있어야 하고 미국이 우리를 도와줘야 한다고 하는 겁니다.”노무현 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과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종석(60)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 27일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에 출연해 우리 군의 개혁 필요성을 역설했다. 통일,
“광대, 나 할 말 있어.”지난 5월 23일 제주시 아라이동 은성사회복지관의 보물섬학교 임시교실. 13세부터 16세까지 남녀 청소년 11명이 네모난 앉은뱅이 탁자를 디귿자로 이어 붙여 빙 둘러 앉아 있다. 곱슬머리에 모자 달린 웃옷을 입은 남학생이 손을 들고 ‘광대’를 부르자 흰 칠판 앞에 앉아 있던 선생님이 미소를 띠며 발언기회를 준다. 아이들이 ‘광대’라고 부르는 선생님은 보물섬학교에서 8년째 가르치고 있는 김광철(31) 교사다. 이 학교 아이들은 선생님의 별명을 부르며 친구처럼 서로 말을 놓는다.선생님 별명을 부르고 말을 놓는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세례 갑질’ 이후 한진그룹 일가의 빗나간 행태를 제보하는 직원들이 줄을 이었다. 단체 채팅방 한계치인 1천 명을 돌파해 방이 2개가 되었다. 억눌려 있던 직원들은 신부님 앞에서 고해성사하듯 지난날을 고백한다. 급기야 아시아나로 불이 옮겨 붙어 총수 퇴진을 요구하는 연합시위까지 벌어지고 있다. 남들은 못 들어가서 안달인 대기업 직원들도 오너 앞에서는 ‘을’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노동자 취급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인 ‘슈퍼을’의 마음은 어떨까?신자유주의 물결로 등장한 비정규직 중 ‘특수고용노동자’가
주인공 박차오름은 등장부터 발차기를 선보인다. 지하철에서 성추행당하는 여학생을 보자 큰소리를 치고 성추행범이 덤비자 발차기로 그의 가랑이 사이를 가격한다. 박차오름은 지하철 쩍벌남처럼 다리를 벌려 쩍벌남의 다리를 오므리게 만들고 시끄럽게 통화하는 아줌마에게 “내가 왜 당신 애 사정을 들어야 하냐”며 일침을 가한다. 모두가 불편하지만 침묵하는 상황에서 박차오름은 참지 않고 상황을 변화시킨다. <미스 함무라비>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 박차오름은 서울중앙지법 초임 판사다. 서울중앙지법을 배경으로 하는 이 드라마는 현직 부장판사인 문유석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가장 가난한 나라의 하나인 북한의 젊은 지도자 김정은이 동등한 입장에서 악수와 대화를 하는 장면이 상징하는 게 뭘까요. 올해로 북한이 수립된 지 70년입니다. 그 기간 동안 북한은 일관되게 미국과의 적대관계 해소를 갈망했어요. 이번 북미정상회담으로 북한이 이런 부분을 크게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여러 방송인터뷰에서 ‘김정은을 신뢰한다’고 거듭 말한 것입니다. 불신 때문에 핵과 미사일이 생긴 건데, 불신과 적대가 사라진 자리에 신뢰가 생긴다면 이제 핵은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