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니] 부장판사가 쓴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주인공 박차오름은 등장부터 발차기를 선보인다. 지하철에서 성추행당하는 여학생을 보자 큰소리를 치고 성추행범이 덤비자 발차기로 그의 가랑이 사이를 가격한다. 박차오름은 지하철 쩍벌남처럼 다리를 벌려 쩍벌남의 다리를 오므리게 만들고 시끄럽게 통화하는 아줌마에게 “내가 왜 당신 애 사정을 들어야 하냐”며 일침을 가한다. 모두가 불편하지만 침묵하는 상황에서 박차오름은 참지 않고 상황을 변화시킨다. 

<미스 함무라비>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 박차오름은 서울중앙지법 초임 판사다. 서울중앙지법을 배경으로 하는 이 드라마는 현직 부장판사인 문유석 판사의 원작소설 <미스 함무라비>를 드라마화한 것이다. 대본 역시 문유석 판사가 집필한다. JTBC가 시청률 전쟁의 고지를 탈환하고자 작년 12월 부활시킨 월화드라마 기대작이다.

▲ 쩍벌남처럼 행동해 쩍벌남을 퇴치하는 박차오름. ⓒ JTBC <미스 함무라비>

우리 사회 축소판인 법원의 민낯

<미스 함무라비>는 현직 부장판사가 쓰기 때문에 사실성이 높을 것으로 기대하게 된다. 드라마 배경인 서울중앙지법은 보수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환경으로 묘사된다. 성추행범을 잡은 박차오름이 기사화하자 한세상 부장판사는 조직에 튀는 행동을 했다며 그를 나무란다, 성추행당하는 여성은 짧은 치마를 입었기 때문이라는 훈계와 함께.

학벌 차별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한세상 부장판사는 남들보다 오래 고시촌 생활을 하고 대학도 듣보잡이라는 이유로 비주류로 평가받는다. 정보왕 판사 또한 서울법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주류에 편승할 수 없다. 이는 정보왕이 다른 선배 판사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드러난다. 배곤대 부장판사는 후배 판사들을 사시·연수원 수석, 대학 2학년 때 고시 합격한 이력 등으로 서열화한다. 이 과정에서 정보왕은 서울법대를 졸업하지 못한 사실을 고백하며 다른 판사들에게 고개를 숙인다.

돈이 정의보다 우선시 되는 모습도 나타난다. 임바른 판사는 자신을 변호사로 스카우트하려는 법무법인에서 조 단위 다단계 사기범을 목격한다. 선배 변호사는 사기범을 부회장이라 부르며 고개를 숙이고 다단계 사기범이 오히려 거들먹거린다. 사기범은 “판사로 근무하면 밥이나 먹고 다닐 수 있냐”며 임바른을 대놓고 무시한다. 임바른은 선배 변호사에게 흉악범을 변호하냐며 항의했지만 선배 변호사는 흉악범이라도 의뢰인이라면 그의 권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되레 임바른을 꾸짖는다.

세상의 벽에 날계란 던지기

박차오름은 환경에 타협하지 않고 소신대로 행동하는 저항적 캐릭터다. 판사로 임용된 지 이틀째, 그는 분홍색 화려한 무늬 미니스커트를 입고 출근한다. 높은 하이힐을 신고 출근한 그를 보고 주변 직원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응원하거나, 못마땅한 눈초리를 보내는 편으로 갈린다. 한세상 부장판사가 그에게 판사로서 옳지 못한 옷차림새라고 나무라자 그는 한 판사의 지적에 순응하는 듯 옷을 갈아입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갈아입은 옷은 눈만 내놓는 이슬람 전통복 니캅이다. 이런 차림을 하고 그는 한 부장판사를 향해 ‘여자가 조신하게 입지 않아 문제를 일으킨 것이지 남자는 아무 잘못이 없지 않냐’고 대응하는데 전날 한 부장판사가 한 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 박차오름은 여성 차별적인 발언에 이슬람 전통 옷을 입는 행동으로 저항한다. ⓒ JTBC <미스 함무라비>

그는 다른 판사들이 외면하는 피켓 시위자에게도 관심을 보인다. 의료사고로 아들을 잃었는데도 재판에 져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시위자였다. 박차오름이 시위자와 함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임바른 판사는 그를 막아선다. 전날 임바른이 시위자를 응대하다가 뺨을 맞았기 때문이다. 제정신이 아닌 시위자니 조심하라는 임바른에게 박차오름은 ‘아들 잃은 어미가 제정신일 순 없다’며 오히려 임바른 판사를 나무란다. 박차오름은 법 잣대를 들이대며 약자를 외면하는 다른 판사와 다르게 약자 편에 서서 마음으로 이해한다. 

임바른은 박차오름에게 ‘튀는 사람은 이 조직에서 버티기 힘들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박차오름은 불평하기보다 부딪치겠다고 대답한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지만 높고 단단한 벽과 그 벽에 부딪혀 깨지는 달걀이 있다면 언제나 달걀 편에 서겠다는 것이다.

기호학을 통해 본 박차오름

드라마는 박차오름을 이상주의 캐릭터로 표현했다. 박차오름이란 이름의 함의도 그 연장선이다. 드라마에서 또라이로 불리는 박차오름은 자기 소신대로 행동한다. 기존 법원 구성원들과 다른 모습이다. 박차오름이 보이는 남다른 모습은 그가 저항하는 캐릭터임을 보여준다. 이런 저항을 통해 그는 우리 사회의 지배담론을 깨는 역할을 한다. 성폭력을 바라보는 남성 중심적인 시각에 일침을 가하고 여성에게 불합리한 보수적인 관습을 비꼰다. 그는 약자에게 불리한 법과 제도의 비인간성도 비판한다.

▲ 박차오름은 의료사고로 숨진 아들을 둔 어머니의 사연을 듣고 가슴으로 다가간다. ⓒ JTBC <미스 함무라비>

박차오름은 불합리한 사회 구조를 인식하면서도 저항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반면 임바른은 사회 구조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변호사 제의를 거절하며 명확하게 소신을 밝히던 과거 자기 모습을 배부른 소리 했다며 반성한다. 과거와는 다르게 점차 세상과 타협하는 태도다. 현실적인 우리네 모습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16부작 예정인 이 드라마는 9회가 방송된 지난 19일까지 4~5% 사이 시청률을 보여주고 있다. 성공작이라는 평가를 받기 어려운 기록이다. 시청률이 ‘양적’ 지표이기는 하지만 ‘질적’ 내용이 담보되지 않고는 높은 시청률 기록이 어렵다는 것은 상식이다.

사법부의 ‘신뢰’ 문제를 ‘가벼움’으로 패러디하기? 

일반적인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의 스토리텔링과 연출을 받아들이고 공감하기가 어렵다. 선악 구도가 지나치게 단순하고 비현실적인 에피소드가 나열되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이름으로 드러내는 방식도 비현실적이다. 초등학교 학예회에서나 쓸법한 치기어린 방식이다. 진지하기보다는 가벼운, 또는 아마추어리즘을 표방한 드라마로 보인다. 이미 우리나라 시청자들은 넷플릭스의 <하우스 오브 카드>나 HBO의 <뉴스룸> 등을 대부분 시청했다. 스토리텔링의 리얼리티가 웬만히 확보되지 않은 내용으로는 만족시키기 어려운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검찰을 포함한 사법부의 ‘신뢰’ 문제가 연일 이슈로 부각되는 상황이다. 박차오름이나 임바른, 한세상 같은 인물군과 이들간 관계 설정으로는 현실의 복잡한 이면을 드러내기 어렵다. 현직 부장판사가 직접 대본을 쓴 것으로 알려진 이 드라마는 과거 <용의 눈물>이 그랬던 것처럼 현실의 패러디나 은유를 보여주지도 못하고 있다.

현직 부장판사는 이 드라마 대본을 집필하면서, 그리고 JTBC는 이 드라마를 방송하면서 아직도 이 사안을 진지하게 다루기 어려운, 정체를 알 수 없는 압박을 느낀 것일까? 그래서 현실의 무거움을 ‘계란 던지기’로 가볍게 대응하고 만 것일까?


편집 :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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