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재난

▲ 박희영 기자

지난 8월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을 놓고 공론화가 진행 중인 가운데, 원전 인근 주민 중 건설 중단에 반대하는 이를 인터뷰한 일이 있다. 그는 “원전 핵폐기물 처리 비용 문제가 걱정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우리가 잘살게 만들어줬으면, 이후 비용은 뛰어난 기술력을 가질 미래세대가 부담할 일”이라고 답했다.

불확실성 속에서 인간의 미래에 대한 견해는 대략 두 학파로 나뉜다: 인간은 출중한 지성과 영혼을 지녔기에 다른 모든 종을 결박하는 생태의 원칙으로부터 예외가 된다고 주장하는 면책특권주의자와 인간을 자연 세계에 견고하게 예속된 하나의 생물종으로 보자는 환경주의자. 그는 분명 전자에 속할 것이다.

토양 고갈? 핵융합에너지로 바닷물을 탈염분화하면 된다. 생물 멸종? 그것이 자연의 순리라면 인간은 지질학적 시간에서 멸망을 기다리는 대기자의 긴 줄 맨 끝에 서 있다고 믿는다. 자원? 인간의 천재성이 새롭게 발생하는 문제를 차례로 처리한다면, 우리의 행성은 영원히 지속하고도 남을 만큼 충분한 자원이 있다. 이들은 어떤 경우라도 우리 인간은 자연을 자유롭게 이용하면서 생명의 질서를 창조해왔다고 믿는다.

▲ 과학적 재능과 기업가적 능력이 기울어가는 생물권을 비슷한 방법으로 조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인간이 조정할 수 있는 생물학적 평형은 없다. ⓒ pixabay

세계 곳곳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추구하면서 자원 탐색은 인구 증가보다 훨씬 더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경작할 수 있는 토지나 음식, 깨끗한 물, 자연 생태계를 위한 공간 등 삶의 질을 결정하는 자원은 한정돼 있다.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저서 <우리는 지금도 야생을 산다: 인간 본성의 근원을 찾아서>에서 ‘자원의 수요는 매 10~15년 사이 갑절씩 늘어나는 과학 지식의 증가와 맞먹고, 환경을 좀먹는 기술도 동등한 비율로 증가하며 휠씬 가속화할 것’이라고 한다. 일정한 간격마다 갑절씩 소비하는 추세는 소름 끼칠 정도로 갑작스러운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지구의 한계를 극복할 인간의 능력을 측정할 수 있을까? 문제는 우리가 벼랑 가장자리에서 경주하고 있는지, 환상적인 미래로 이륙하기 위해 속력을 내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전례가 없는 일이고, 이해의 한계를 넘는다. 생태학자들은 종종 백합 연못에 관한 프랑스 수수께끼를 예로 든다. 연못에 하나의 백합 부엽이 있었는데, 다음 날 그 백합은 두 개로 늘어났다. 그 후 그것들의 각 자손은 배가 된다. 30일째가 되면 연못은 백합 부엽으로 가득 찬다. 연못의 절반이 백합 부엽으로 채워지는 때는? 답은 29일째 날이다. 재생 불가능한 자원이 반 정도 사용됐을 때, 우리는 이미 그것이 끝장나는 시점에서 겨우 한 단계 전에 가 있을 것이라는 경고다.

북한 핵실험에 따른 방사성 물질 누출은 경계하면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방사성 물질 누출 피해사례를 보고도 원전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에드워드 윌슨은 “인간의 유전자는 사소한 문제와 일상생활에서 겪는 갈등으로 사람을 속 타게 하고, 자신의 상태나 종족의 안전에 대한 하찮은 도전에도 신속하고 종종 맹렬하게 반응하지만, 대단한 지진이나 엄청난 폭풍과 같은 자연재해의 가능성과 충격은 과소평가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이 근시안적 혼동에 관해 그는 “삶은 불확실하며 짧았기 때문에 가까운 미래와 조기 번식에만 면밀히 주의를 기울이도록 권장됐다”며 “한두 세기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거대한 재난은 잊히거나 전설로 변했다”고 설명한다. 인간의 마음은 한두 세대가 넘지 않는 기간을 보내면서 불과 몇 년 사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오늘날에도 그럭저럭 편하게 작동한다. 과거에 단기적 사고를 하게 하는 유전자를 가진 인간은 더 오래 살아남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많은 자손을 남겼다. 그렇게 살아남은 인간이 생태계를 파괴하고, 다른 생물종의 삶을 단축한다.

다른 생명체를 무시하는 면책특권주의는 실패한다. 매번 발생하는 위기를 해결할 것처럼 보이는 과학적 재능과 기업가적 능력이, 기울어가는 생물권을 비슷한 방법으로 조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하나의 정원 안에 옮겨 놓기에 세계는 너무 복잡하다. 인간이 조정할 수 있는 생물학적 평형은 없다.

전 세계적 규모의 위기는 다음 세대에는 더욱 증가할 것이고, 이는 청년들이 기성세대보다 환경을 더 많이 걱정하게 만든다. 인구 증가는 경제 성장에 도움 되지만,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인구와 기술이 모두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시간의 척도도 단축돼왔다. 우리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보다 훨씬 더 현명하게 생태계를 이해하고 자원을 사용해야 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양영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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