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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하다는 건 평범하다는 거야

기사승인 2021.09.10  11:3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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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PD dend0710@gmail.com

- [미디어비평] 영화 '애비규환'

자신이 살아온 삶과 다른 삶을 경험하기 전까지, ‘우물 안 개구리’라는 속담처럼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전부라 생각하는 때가 있다. 자신만의 기준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잠시일 뿐, 우리는 곧 현실에서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어린 시절 나의 삶에서 슈퍼맨 같았던 부모는 보통 서민이었고, 나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던 사람들도 각자 자신의 아픔과 눈물을 감추며 고군분투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사회에서 뜻밖에 일어나는 불행한 일들로 평범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고 창피해 숨겨야 되는 결함으로 여기곤 한다. 사랑의 약속을 깨고 이혼하고,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갖는 일도 흉으로 취급된다.

 

 

 
▲ 혼전 임신을 한 토일은 남자친구 호훈과 함께 임신 5개월째에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부모를 찾아온다. ⓒ 리틀빅픽처스

최하나 감독의 영화 <애비규환>에는 평범한 가족이 흔하게 접하기 어려운 이혼과 재혼 그리고 혼전임신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특별한 가족이 등장한다. 토일(정수정 분)은 연하의 남자친구 호훈(신재휘 분)과 사랑으로 임신하게 되고, 출산 후 5개년 PPT를 발표하며 결혼을 선언한다. 돌아온 것은 “넌 대체 누굴 닮아 그 모양이냐”는 엄마 선명(장혜진 분)의 호통이었다. 토일은 엄마와 재혼한 아빠 태효(최덕문 분)를 보며 “친딸이었으면 축복해줬겠지”라 말하고 누굴 닮았는지 직접 확인하겠다며 나선다. 영화는 토일이 이름도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는 친아버지를 찾으러 나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정상가족보다 중요한 것

“니하고 느그 엄마가 더 좋음마 안 괘안캤나” (너하고 네 엄마가 더 좋은 거면 괜찮은 거 아니겠나?)

   
▲ 외할머니는 이혼과 재혼을 한 딸과, 혼전 임신을 한 손녀가 세상에 보이기 부끄럽지만 딸과 손녀가 좋은 것이 먼저라 말한다. ⓒ 리틀빅픽처스

자신의 과거를 찾으러 대구로 내려간 토일은 외할머니에게 “집구석이 개판이다! 개판! 느그 엄마 이혼하고 재혼한 것도 모자라 느까지 이카나”라 꾸중을 듣는다. 토일은 15년만에 만난 친구 복남(장햇살 분)에게 어머니가 재혼하느라 말도 못하고 이사를 갔다고 설명한다. 복남은 “그라네. 야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이 동네 얼마나 좁은데. 여서 계속 살았으면 온 동네에서 개지랄났대이”라 답한다. 이혼과 재혼을 하는 가정이 과거에 비해 점차 늘어나 접하기 어렵지 않고, 실제로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매해 10만 쌍에 가까운 부부가 이혼을 한다. 그러나 아직도 이혼을 한 여성에 대한 사회의 불편한 관심과 시선들은 여전하다. 선명은 오지랖과 같은 사회적 시선을 피해 대구를 벗어난 것이다.

토일은 친아버지를 찾으러 다니다 대구에서 지낸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엄마와 함께 썰매장에 갔을 때, 토일은 힘들게 썰매를 들고 가는 엄마에게 “우리도 아빠랑 같이 오면 된다 아이가”라 투정을 부린다. 엄마 선명은 토일에게 “토일아 아빠는 우리랑 이런 데 같이 안 온다”며, “이제 우리는 아빠랑 같이 안 살 거다”라 조심스럽게 말해준다. 토일이 발레학원이 가기 싫어 오리배를 타러 간 날, 엄마와 같은 학교 선생님인 태효 아저씨를 처음 만난다. 어린 토일은 처음 보자 마자 “저 아저씨는 누군데?”라 묻고, 오리배를 타러 갈 때 “근데 아저씨는 왜 가노?”라 말하며 경계한다. 엄마 선명은 토일에게 “네가 큰 오리 타보고 싶다 했잖아. 큰 오리는 4인용이라 우리 둘이 못 탄다 아이가?”라 말한다. 태효는 익살스럽게 작은 오리배보다 큰 오리배를 탈 때 더 빠르다며 “큰 오리가 방구를 부욱 뀌면 작은 오리를 다 따라잡아. 되게 빨라! 오리배 타러 갈래?”라 말하며 토일을 웃게 만든다.

감독은 어린 시절 토일의 과거 회상 장면으로, 가족에게 있어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해 슬하에 자녀를 두고 사는 전형적인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보다 가족 구성원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딸 토일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는 친아버지, 엄마 직장 동료일 뿐인데도 토일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 시간을 함께 보내는 태효를 통해, 부모와 자식 관계는 피만이 아니라 말한다. 혼전 임신한 토일과 이혼과 재혼을 선택한 엄마 선명을 부끄러워하던 외할머니는, 친아버지를 찾는 토일에게 “동네 남사스럽고 조상들 볼 낯이 없어도 니하고 느그 엄마가 더 좋음마 안 괘안캤나(너하고 네 엄마가 더 좋다면 괜찮은 거 아니겠나?)”라 하며 “닮고 싶은 사람 닮으면 된다”고 여태껏 표현하지 않은 진심을 전한다.

실패해도 괜찮아

“엄마는 결혼하고 이혼하기라도 했지. 나는 벌써 이렇게 됐잖아. 이게 뭐야.”

친아버지를 찾으러 가기 전, 토일은 “(친아버지를 찾는데) 상처를 왜 받아? 지금 엄마, 아빠보다 더 심하겠어?”라 자신있게 말했지만, 우연히 찾은 친아버지 환규(이해영 분)가 토일을 알아보지 못하고, 여태까지 자신을 만나러 올 생각조차 안 했다는 것에 실망하고 서울로 돌아온다. 서울로 돌아왔지만 갑자기 남자친구 호훈이 연락이 안 된다. 호훈을 찾기 위해 토일과 엄마와 아빠 그리고 갑자기 찾아온 또 다른 아빠까지 온 가족이 나간다.

   
▲ 토일과 세 부모가 함께 연락이 끊긴 남자친구 호훈을 찾기 위해 나선다. ⓒ 리틀빅픽처스

온 가족이 함께 호훈을 찾는 동안 토일은 자신이 호훈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제대로 없다는 걸 깨닫는다. “결혼을 결심한 이유가 무엇인데?”라는 부모의 질문에, “일단 잘 생겼지!”라는 이유 외에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했다. 연락이 안 되는 호훈을 두고, 부모들은 토일에게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 ‘혼자 아이 키우는 것보다는 둘이 사는 게 괜찮지 않겠냐’,  ‘남편까지 키우는 것보다는 혼자 사는 게 낫다’고 각각 다른 의견을 냈다. 토일은 생각이 깊어진다.

온 가족이 힘을 모아 겨우 호훈을 찾아냈을 때, 호훈은 토일을 보고 “누나 많이 놀랬지, 미안해용” 이라 웃으며 가볍게 넘기려 한다. 토일은 믿음을 주지 않는 호훈을 보고 “결혼 안 할래”라 선언한다. 지금 호훈과 결혼을 하면 사라졌던 아빠 환규처럼 호훈이 다시 사라져 버릴까 봐, 엄마 선명처럼 자신도 이혼을 하게 될까 봐 두려워한다. 시작 전부터 다 망해버린 것 같이 말하는 토일에게, 엄마는 “나라고 망할 줄 알고 결혼했겠냐? 잘 살 줄 알았지”라고 말한다. “그것을 꼭 살아봐야 알아?”라 묻는 토일에게 선명과 태효는 “나도 그 때는 너처럼 똑똑한 줄 알았다”, “생각해보면 망해도 완전히 망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이 인간 때문에 너랑도 만났잖아?’’라 대답한다. 

가족으로, 부부로 살면서 실망을 하거나 후회를 할 때도 있지만, 행복하고 기쁜 일도 분명 있다는 것을 토일에게 일깨워준다. 그렇다. 살아가면서 실패해도 괜찮다. 우리의 인생은 1초의 승부를 겨루는 단거리 선수도, 한계에 도전하는 장거리 선수도 아니다. 처음을 잘못 시작한다고 삶이 망하는 것도 아니고, 높은 순위에 들지 못하거나 완주를 못 한다고 의미가 없는 삶이 되는 것도 아니다. 소소하지만, 소박한 행복, 내 옆에 누군가 있어 손을 내밀고 맞잡고 함께 걸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영화는 소곤거린다.

사회는 꽃으로 가득한 온실이 아니라 잡초들이 함께하는 들판

   
▲ 사람들이 엄마와 함께 결혼식에 입장하는 신부를 어떻게 볼까, 결혼식을 올린 딸이 잘 살까 걱정하는 엄마 선명에게, 토일은 "왜, 우리도 잘 살고 있잖아"라 말한다. ⓒ 리틀빅픽처스

결혼식장에서 엄마 선명이 토일과 함께 신부 입장을 한다. 타인들의 시선이 신경쓰이고, 딸 토일이 자신처럼 이혼을 할까 봐 불안해하는 엄마 선명에게 토일은 자신 있게 말한다. “왜, 우리도 잘 살고 있잖아.” 마침내 토일은 결혼이 실패할 수 있다는 두려움과 삶의 평범함을 받아들인 당당한 주체로서 선다.

<애비규환>은 불완전하지만 세상과 벅찬 싸움을 하며 살아가는 존재인 우리들에게, 평범한 삶과 평범하지 않은 삶이 무엇이고 어떻게 다른지 묻는다. 타인들의 불편한 시선과 관심을 받는 삶이면 어떤가. 불완전하다는 건 평범하다는 것이다. 유행가 가사처럼 ’그림 같은 집’에서 ‘사랑하는 우리 님’과 살지 못하더라도, 찌질한 우리들의 삶이야말로 진짜가 아닌가. <애비규환>은 뛰어나지도 않고 보통인, 평범한 나와 너, 우리 삶에 대한 찬가다.


편집 : 임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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