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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갇힌 사람들

기사승인 2021.02.06  15: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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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슬 기자 yeslowly@gmail.com

- [상상사전] ‘길’

   
▲ 이예슬 기자

자주 길을 헤맸다. 예상 밖 취업으로 불시착한 서울은 구석구석 어찌나 낯설고 복잡한 길뿐인지, 2년 넘게 살아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지도앱을 보고 걸어도 길을 잃기 일쑤였다. 자주 지나던 곳이 서울역, 여의도, 시청, 영등포역 등지라 더 그랬다. 사람도 건물도 많은 그곳들에는 끝이 없어 보이는 길도 많았다.

그 아득한 길 위에 사람이 있다. 문화복합공간으로 변신한 옛 서울역사 앞은 전시를 보러 온 멋쟁이 젊은이들로 붐빈다. 여의도 공원 맞은편 새로 생긴 주상복합건물의 식당에는 사원증을 목에 건 직장인들이 줄지어 선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시청역 지하도를 지나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그 바쁜 길 한 켠에 또 사람이 있다. 풍찬노숙. 바람 속에서 식사를 하고 이슬을 맞으며 잠든다는, 얼핏 들으면 낭만적인 장면은 현실에 없다. 옛 서울역사 뒤편 큰길, 여의도공원 좁은 길, 시청역 지하도에서 한뎃잠을 자는 노숙인에게 길은 치열한 삶의 현장이자 한 몸 누일 집이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함 속 노숙인은 적막하고, 짜증과 즐거움이 섞인 표정 속 노숙인은 무표정하다. 서울역과 시청, 여의도 거리는 사람들이 ‘서울’하면 떠올리는 서울의 얼굴이지만, 한편으로 노숙인이 박스로 얼굴을 덮고 고단한 몸을 누이는 안식처이기도 하다. 

   
▲ 서울의 '얼굴'인 서울역은 노숙인이 고단한 몸을 누이는 안식처이기도 하다. ⓒ 연합뉴스

서울시가 발표한 ‘2019년 노숙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에는 노숙인 3253명이 있다. 이들은 저마다 방법으로 길에서 하루를 보낸다. 단속을 피해 하룻밤에도 두세 번 잠자리를 옮기다가 날이 밝으면 교회나 복지관이 운영하는 무료급식소로 간다. 폐지를 줍거나 구걸을 해서 번 약간의 돈으로 남은 하루를 보내고 다시 잠든다. 권일혁은 시 ‘빗물 그 바아압’에서 무료급식소에서 빗물 섞인 밥을 먹는 서러움을 말했다.

장대비 속에 긴 배식줄
빗물바아압 빗물구우욱 비잇무울 기이임치이
물에 빠진 생쥐새끼라 했던가.
물에 빠져도 먹어야 산다.
이 순간만큼은 왜 사는지도 호강이다 왜 먹는지도 사치다.
인간도 네 발 짐승도 없다 생쥐도 없다.
오직 생명뿐이다.
그의 지시대로 행위할 뿐,
사느냐 죽느냐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오로지 먹는 것 쑤셔 넣는 것
빗물 반 음식 반 그냥 부어 넣는 것이다.

우리 밥상의 기본인 밥과 국은 야외에서 공짜 밥을 먹는 노숙인에게 한없이 늘어지는 서글픔으로 ‘바아압’과 ‘구우욱’이 된다. 장대비 속에 긴 배식 줄을 기다려 배 채운 이들은 소주와 새우깡으로 더 주저앉을 곳 없는 삶을 한탄한다. 가정 해체, 사고, 실직 등으로 사회 변두리로 나온, 혹은 떠밀려온 이들은 다시 일어설 의지를 잃고 거리에 갇힌다.

바깥에 갇힌 사람들에게 노숙인은 신분이 아니라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단체 중 하나가 ‘성프란시스대학’이다. 노숙인 자활을 지원하는 서울시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가 2005년 개교한 우리나라 최초 노숙인대학으로, 인문학을 가르친다. 노숙인이나 전과자 등을 대상으로 정규 대학 수준 인문학을 가르치는 미국의 ‘클레멘트 코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물질적으로 당장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 근본적인 재기 방법은 인문학 공부를 통한 자존감 회복이라는 생각으로 문학, 역사, 철학, 예술사, 글쓰기 강의를 한다.

지난해 10월, 이 대학을 거쳐간 졸업생들의 시와 산문 167편이 책 <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로 세상에 나왔다. 1998년 외환위기 때부터 노숙 생활을 시작해 동료 노숙인들마저 징그럽다며 회피하는 ‘왕따 노숙인’이던 권일혁 시인이 ‘빗물 그 바아압’을 쓴 것처럼, 책은 모두 노숙인으로 지낸 이들이 겪고 감당한 이야기로 이뤄진다. 집을 떠나 거리에 스스로를 가두며 느낀 정신적 열패감을 인문학적 성찰로 극복하고, 솔직하게 풀어냈다. 문학으로 치유받은 이들이 다시 세상에 돌려준 문학이다.

   
▲ 길에서 겨울을 견뎌야 하는 사람들은 길이 있어도 갈 데가 없다. ⓒ pixabay

길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기도 하지만, 구분 짓기도 한다. 스스로 또는 남에 의해 ‘길 가의 사람’으로 구분된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누군가에겐 끝없이 이어져 한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의 길이, 누군가에겐 너무나 길어 빠져나오고 싶어도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가 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더 시린 겨울. 한뎃잠을 자는 이들에게 겨울은 아직 길다. 길에서 이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은 길이 있어도 갈 데가 없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김은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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