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기획] 명절 앞두고 커지는 유전자변형식품(GMO) 불안감

설날 연휴를 앞둔 23일 오후 서울 구로동 이마트 식품 매장. 명절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붐비는 매장 한복판의 선물세트 진열대에 카놀라유를 넣은 선물상자들이 빼곡했다. 카놀라유만으로 구성한 상자도 있고, 통조림 등 가공식품과 여러 종류의 식용유를 조합한 선물세트도 있었다. 올리브유, 포도씨유처럼 '프리미엄 식용유'로 분류되지만 가격은 절반가량인 카놀라유는 설날, 추석 등 명절 연휴 때 선물용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식용유다. 그러나 각종 전류와 부침 등 음식 준비에 기름을 많이 쓰는 주부들 중에는 '카놀라유를 안심하고 써도 될까' 불안해하는 사람도 많다.

명절 인기 선물상품 카놀라유 유해성 논란

▲ 설을 앞두고 대형마트에서 판매하고 있는 가공식품 선물세트. 대부분 카놀라유를 포함하고 있다. ⓒ 김은초

네이버 등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카놀라유'를 검색하면 이 기름이 인체에 해롭다는 내용의 블로그, 카페 게시글이 줄을 잇는다. 카놀라유 연관 검색어 첫 번째가 '카놀라유 부작용'일 정도다. 팔로어가 35만명가량인 한 블로거는 '우리가 카놀라유를 먹지 말아야 하는 이유'라는 글에서 "카놀라유는 유전자변형식품(GMO)이라 암과 알레르기 등을 일으키는 원인 물질로 작용하며 불임, 난임 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생활 및 건강정보를 주로 올리는 한 블로거는 '카놀라유 부작용 4가지'라는 글에서 "심장 기능을 저하시킬 수 있고 기억력 감퇴를 불러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포털 사이트에 ‘카놀라유’를 검색하면 이 기름의 부작용 등 유해성을 다룬 게시글이 줄줄이 이어진다. ⓒ 김은초

이들이 제시하는 근거는 대부분 영국 과학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2017년 12월 실린 연구논문이다. 미국 필라델피아 템플대 의대 치매센터 도메니코 프라티코 교수 연구팀은 동물실험 결과 카놀라유가 치매 악화 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실험용 쥐를 유전자조작으로 알츠하이머에 걸리게 만든 뒤, 증상이 나타나기 전인 생후 6개월 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쪽엔 일반 먹이를, 다른 쪽엔 카놀라유를 넣은 먹이를 줬다. 6개월 후 측정한 결과 카놀라유를 많이 먹인 쥐들은 체중이 평균 18% 무거운 데다, 미로실험 등에서 기억력과 학습능력이 낮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치매를 유발하는 유해성분이 많이 쌓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동물실험 결과가 그대로 인체 유해성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라는 전문가 지적도 있다. 오창환 세명대 바이오식품산업학부 교수는 "쥐를 이용한 동물실험 연구 하나만으로 인간에게도 유해하다고 결론을 내는 건 지나친 확대해석"이라며 "아직 실험이 더 필요한 부분이라 유해한 식품이라고 단언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종합하면 카놀라유 부작용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해로울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불안감을 느끼는 셈이다.

대두유, 올리브유 등 제치고 국내 판매량 1위

카놀라유는 국내 식용유 중 가장 많이 팔리는 품목이기 때문에, 만일 건강 유해성이 있다면 그 결과는 그만큼 심각할 수 있다.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식용유 품목별 소매점 매출액은 2017년 전체 판매액 약 3천2백억원 가운데 카놀라유가 37.6%로 1위였다. 이어 대두유(23.0%), 올리브유(14.5%), 포도씨유(13.0%), 옥수수유(4.2%) 등의 순이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2017년 내놓은 '가공식품 세부시장 현황: 식용유 시장' 보고서에서 "카놀라유는 프리미엄 식용유로 분류되면서도 올리브유나 포도씨유 등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발연점이 높아 전반적으로 활용도가 높다"고 분석했다.

소비자단체들은 카놀라유의 인체 유해성이 아직 입증되지 않았어도 GMO라는 사실 자체를 문제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카놀라는 1970년 캐나다에서 유전자조작을 통해 유채꽃의 '에루스산(eruric acid)' 등 독성 성분을 제거하고 개발한 품종이다. 환경단체들은 미국 종자기업 몬산토가 살충제와 제초제 등에 강한 GMO작물을 상품화한 이후 '인위적으로 결합한 유전자가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 유채 품종의 하나인 카놀라는 유전자변형을 거친 GMO 작물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카놀라유는 이를 압착해서 만든 기름이다. 사진은 경남 창녕의 낙동강 유채꽃 축제 모습. ⓒ KBS 창원 뉴스

시민단체 'GMO 완전표시제' 요구

카놀라유를 포함한 GMO 유해성 논란은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소비자단체들이 카놀라유를 포함한 식용유 전체, 나아가 유전자변형 작물을 원료로 하는 가공식품 전체에 GMO 표시를 의무화하는 'GMO 완전표시제'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식용유에 주로 쓰이는 대두, 옥수수, 카놀라 등 작물은 대표적인 GMO 원료인데, 식용유는 GMO 표시 의무화 대상이 아니어서 소비자들이 이를 잘 알지 못하고 있다.

GMO 표시제는 유전자변형 기술을 이용해 재배된 농·축·수산물 등을 원료로 가공식품을 만들었을 경우 이런 내용을 제품에 표시하도록 의무화한 제도로, 국내에서는 2001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식품위생법은 가공한 뒤 유전자변형 성분의 디엔에이(DNA)나 단백질이 남아 있지 않으면 GMO 표시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다. 특히 식용유는 단백질이 아니고 원료에서 지방만 추출한 제품이라 표시 대상이 아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소비자의정원 등 소비자단체는 이런 식품위생법의 맹점을 지적하며 원료 기반의 GMO 완전표시제를 요구하고 있다. 2018년 12월에는 'GMO 표시제도 개선 사회적 협의체'가 출범했는데, 여기 참여했던 시민단체들은 지난해 9월 논의 중단을 선언했다. 정부 부처가 참여하지 않고 시민·소비자단체와 식품산업계로만 협의체가 구성돼 양측 협의가 평행선을 달렸기 때문이다.

▲ GMO 완전표시제를 촉구하는 국민청원에 시민 22만여명이 참여한 후 시민단체들이 2018년 4월 청와대 분수광장에서 정부 답변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MBC 뉴스

윤철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소비자정의센터 정책실장은 "현재 과학기술 발전 수준을 고려할 때 (GMO가) 100% 안전하다고 결론 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최미옥 소비자의정원 이사는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GMO제품의) 생산과 유통 경로를 아는 것"이라며 "GMO 유해성 논란은 쉽게 해결되기 어려우니 우선 소비자의 알 권리와 선택할 권리를 위해 완전표시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GMO 완전표시제는 국회에서 4년째 계류 중이다. 2016년 GMO 완전표시를 골자로 식품위생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실의 김성훈 보좌관은 "동물사료 GMO 완전표시제는 2018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는데 사람이 먹는 식품에 GMO 완전표시제를 적용하는 문제는 왜 논의조차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편집 : 이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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