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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나라냐? 1 - ‘국민’ ‘가치의 법제화’

기사승인 2019.12.26  12: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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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기자들의 시선] ⑪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공명지조’를 뽑았다. 한 몸에 머리를 둘 가진 새가 있었다. 낮에 활동하는 머리는 건강한 음식을 찾아 먹는데, 밤에 활동하는 머리가 질투해 독초를 먹어버렸고 결국 새는 죽고 말았다. 오늘 이 나라를 명징하게 드러내는 말이다. 주위를 돌아보면 정상적인 곳이 하나도 없다. 정치도, 종교도, 법도, 언론도, 학교도, 사회도 다 비정상이다. 이번 주 <청년기자들의 시선> 주제는 ‘이게, 나라냐?’로 정했다. ‘국민, 가치의 법제화, 조각도, 긱경제’ 네 키워드로 다시 국가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묻는다. (편집자)

<키워드 하나, 국민>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처음 국가란 존재를 느낀 건 초등학교 일학년이던 ‘2002 한일 월드컵’ 때였다. 태극전사들이 골을 넣을 때마다 부모님은 소리를 질렀고, 나도 덩달아 들떠 방방 뛰며 학교 준비물이었던 소고를 탕탕 두드렸다. 한국의 4강 진출이 확정됐을 때 아빠는 내 소고를 빼앗아 들고 아파트 베란다로 달려가 마구 두드리며 “대~한민국, 탕탕탕~ 탕탕”하고 외쳤다. 아빠 목소리는 건너편 아파트에 부딪혀 다시 메아리로 울려왔다. TV화면에는 ‘붉은 악마’들이 거리와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외신도 연일 ‘붉은 악마’를 보도했다. 엄마는 어마어마하게 모인 TV 속 군중과 환호성을 보며 “우리나라, 참 대단하다”고 감격했다. 이유를 물었다. 엄마는 내가 태어나고 2년 뒤 IMF 외환위기가 터져 나라 경제가 어려워졌을 때 국민들이 금을 모아 우리나라를 살렸다고 설명했다. 어린 마음에 뭔가 뿌듯했다. 국민이 나서 금을 모아 나라를 구하고, 월드컵 4강까지 진출한 나라가 우리나라라는 게 자랑스러웠다.

   
▲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뜨거웠던 응원 열기. 수많은 국민이 거리와 광장에 모여 한마음으로 응원을 펼쳤다. ‘붉은 악마’의 응원에 놀란 외신도 보도를 쏟아냈다. ⓒ KBS

국가에 대한 좋은 이미지는 오래가지 못했다. 중학교 3학년이 된 2010년, 천안함이 침몰했다. 해군 아저씨 46명이 침몰하는 함선에 타고 있었다. 그때 ‘에어 포켓(air pocket)’이라는 말도 처음 알았다. 선체가 가라앉더라도 에어 포켓이라는 공기주머니가 있어 그 산소로 최대 69시간 동안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교실 뒤편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며 차가운 물 속에서 버티고 있을 군인 아저씨, 아니 오빠들을 생각했다. ‘우리 사촌오빠도 군대에 가 있는데….’ 선생님은 오빠들이 곧 구조될 거라고 했다. 국민이 위험에 처했을 때 보호하는 게 국가의 존재 이유라는 가르침도 잊지 않았다. 구조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구조될 거라던 선생님 말씀은 틀렸다. 국가는 존재 이유를 상실했다.

자랑스러웠던 내 나라

2014년, 성인이 되었다. 내 생활비는 스스로 벌겠다고 백화점 아이스크림 가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손님이 없는 오전 시간 태블릿 PC로 실시간 뉴스를 켰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단원고 학생들이 탄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었다.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천안함 사건이 떠올랐다. 천안함에 타고 있던 군인 오빠들의 나이가 된 내가, 나보다 어린 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하는 걸 보고 있었다. 에어 포켓이 남아있을 69시간. 구조는 이뤄지지 않았다. 2010년처럼 아이들이 탄 배는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세월호 유가족은 사고 당시 생존자를 구조할 시간이 충분했는데도 구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진상을 밝혀 달라고 요구했지만, 정부는 무시했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고 배웠는데 눈앞의 현실은 달랐다.

   
 
   
▲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단원고 학생과 여행객이 탄 세월호가 침몰했다. 유가족들은 구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이유를 물었지만 정부는 응답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조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 KBS

국가란 국민이다

“이게 나라냐?”

국민이 물었다. 더 이상 국민을 위해 작동하지 않는 국가를 향해. 2016년 광장에 모인 국민은 붉은 티셔츠 대신 붉게 빛나는 촛불을 들었다. 여덟 살 때 보았던 ‘붉은 악마’가 떠올랐다. 깨어 움직이는 국민으로부터 국가의 존재가 느껴졌다. 매주 광장에 나와 촛불을 밝히는 국민에게 입법부와 사법부는 ‘대통령 탄핵’으로 응답했다.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가 정상 작동한 순간이었다. 깨어 있는 국민에게서 모든 권력이 나온다. 국가란 국민이다.

(권영지 기자)

<키워드 둘, 가치의 법제화>

“밥 한번 먹자.” “나중에 보자.” 의례적 인사다. 정말 상대방과 만나 밥을 먹고 얼굴을 보고 싶으면, 구체적 날짜와 시간, 장소를 약속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던진 ‘공정, 균등, 정의’ 가치가 인사치레에 머물러 있다. 특히 노동문제가 역주행하고 있다. 강력한 약속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서 약속은 제도를 뜻한다. 제도 없이 ‘말’만으로 국가가 운영되지 않는다. 왕정국가에서만 ‘말’에 의한 통치가 이뤄진다. 현대사회 국가에서 그 어떤 가치도 대통령의 ‘말’만으로 바뀌지 않는다. 말뿐인 공정한 과정과 균등한 기회가 정의로운 결과로 구현될 리 없다.

   
▲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는 취임사를 밝히고 있다. ⓒ YTN 캡처

공정, 균등, 정의는 살아있는가

공정한 과정이 반드시 정의로운 결과를 낳지 않는다. 노동자가 산업 현장에서 목숨을 잃을 때마다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생기거나, 정부 가이드라인이 나왔다. 사고의 원인을 밝히고 해결책을 내놓아야 공정한 과정이 실현된다. “온통 깜깜했다.” 지난 4월 김용균 군이 숨진 현장을 방문한 특조위 판사가 한 말이다.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제2의 김용균을 막을 조명 등 안전장치는 현장에 여전히 없었다.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본부는 이를 설치했다고 했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민주노총이 지난 5~11월 촬영한 영상에서 태안화력소 노동자들은 손전등을 들고, 먼지가 가득한 컴컴한 작업장을 둘러본다. 김용균 군이 사고를 당했던 같은 장소와 환경이다. 특조위, 조사위원회, 고용노동부 모두가 깜깜한 작업장을 밝힐 조명설비를 사고방지를 위한 핵심사항으로 권고했다. 이들의 목소리와 정부 가이드라인은 전문용어로 ‘권고안’이라 부른다. 권고안은 아무런 힘이 없는 말일 뿐이다. 기업이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이 아니다. 따르지 않아도 처벌받지 않는 일종의 선언문이기 때문이다.

균등한 기회도 정의로운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정부는 공공기관에 블라인드 채용제도를 도입했다. 지원자에 성별, 출신지, 학교 등을 알 수 없게 했다. 보다 균등한 기회를 청년에게 주기 위함이었다. 블라인드 채용이라는 균등한 지원 기회가 주어졌지만, 결과는 정의롭지 않았다. 균등한 기회뿐 아니라, 차별을 상쇄할 제도가 뒤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의 2017년 하반기 공공기관 입사자 분석에 따르면, 여성 채용 비율은 블라인드 채용 이후 44.9%에서 42.4%로 더 줄었다. 블라인드 채용으로 뽑힌 여성이 면접에선 떨어진다. 가스안전공사는 지난해 채용과정에서 면접 점수를 조작해 여성 합격자 명을 탈락시키고, 불합격자였던 남성 지원자를 선발한 것으로 드러났다. 산업은행 등 서울에 있는 주요 금융 공기업 8곳에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출신 신입사원도 블라인드 채용 시행 이전보다 더 늘어나거나 비슷했다. 특히 금융감독원을 합격한 이들의 반 이상(53.4%)은 SKY 출신이었다. 블라인드 채용 제도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가치를 법제화하라

가치의 법제화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균등, 정의, 공정’의 가치를 권고안이라는 ‘말’에만 담았다. 영국은 이를 법에 담았다. 노동자의 사망사고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강력하게 묻는다. 이 과정에서 사업주의 이름을 공개하고, 상한선 없는 벌금을 매긴다. 영국 법원은 2011년 토목기업에 벌금 5억 8천여만 원을 선고했다. 해당 기업이 파산에 이를 금액이었다. 노동자 1명이 근무 중 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OECD 회원국 중에서 산업재해 사망률 1위인 한국에선 노동자 사망에 대한 벌금은 대부분 500만원 선에 그친다. 차별을 시정해야 할 인권위원회의 진정은 권고적 효력만 있다.

   
▲ 영국은 2007년 ‘기업 과실치사 및 기업 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을 제정해 노동자의 안전을 외면한 기업에게 높은 벌금을 매긴다. ⓒ Pixabay

기업은 말로만 가치를 외쳐도 된다. 벌금을 낼 일도, 법정에 설 일도 없다. 정부가 내놓는 권고안에는 반드시 따라야 하는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김용균씨는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는 법에 보호받지 못한다. 산업안전보장법(김용균법)의 도급 금지 대상은 금속을 물체에 얇게 입히는 도금작업과 수은, 납, 카드뮴 등 몇몇 유독물질만 다루는 작업만이다. 큰 기업이 인건비 절감을 위해, 위험한 작업의 안전관리 책임을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도급을 멈출 수 없다. 김용균 군은 이 도급 금지 업무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 전기설비 노동자다. 촘촘한 제도와 명시된 법에 의한 처벌강화 등 강력한 약속 없는 가치는 외침으로 끝날 뿐이다.

(신수용 기자)


편집 : 박두호 기자

권영지 신수용 기자 sinsy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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