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공공성포럼] 가짜 경제뉴스 실상과 대응책 모색

24일 전태일기념관에서 ‘가짜뉴스가 한국경제 망친다’는 주제로 미디어공공성포럼 공개 세미나가 열렸다. 포럼 위원장인 이창현 국민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인사말에서 “권력으로부터 자유를 넘어 경제권력으로부터 자유를 모색해보자는 계기로 오늘 이 세미나를 열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전태일 열사가 외친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라’는 외침이 50년 전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이 땅에 있는 노동자들 이야기”라며 “이것이 어쩌면 경제뉴스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녹아 들어가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이 공간에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은 주제발표를 통해 한국 언론 상당수가 경제 저널리즘의 표준에서 크게 벗어나 경기 침체를 부추기는 등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 강도림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은 ‘가짜뉴스가 한국경제 망친다’는 주제 발표를 통해 “경제뉴스는 ‘가짜’일지라도 우리 경제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고 정책을 왜곡해 체질 개선을 막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가짜 경제뉴스는 통계 오용해 사실로 믿게

경제저널리즘을 전공한 이봉수 원장은 주제발표에서 ‘가짜 경제뉴스’가 얼마나 많이 유포되고 폐해가 큰지 한국 경제저널리즘의 역사와 현주소를 살펴본 뒤 “경제 관련 ‘가짜뉴스’는 통계까지 선별적으로 오용·남용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사실로 믿기 쉽다”며 “이는 소비심리와 투자심리를 위축시켜 실제로 경기침체를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한국은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GDP 성장률이 높은데도 성장률이 매우 높은 중국 인도 등 후발국들과 비교해 경기침체라고 진단한 뒤 소득주도성장 탓이라고 비판하는 언론도 있다. ⓒ OECD

그는 “8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도 뉴욕과 런던의 금융자본이 금융 관련 뉴스의 지배력을 강화해왔다”며 “특히 한국에서는 뉴스 소스인 재벌이 오히려 뉴스 매체를 지배하는 현상이 일반화해 경제저널리즘이 비판 기능을 상실하는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이봉수 원장은 이른바 ‘경제위기설’ 보도와 관련해 전반적으로 과장이 심하고 정파적 보도를 일삼는가 하면 정권에 대한 호불호에 따라 낙관적 또는 관성적 보도를 하는 사례도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하나인 최저임금제와 관련해 2018년 한 해 동안 6개 경제지를 ‘최저임금’으로 검색하면, 매체별로 최대 4343건, 최소 2232건의 기사가 뜬다”며 “대부분 기사에 ‘해고 도미노’ ‘고용 참사’ ‘물가 폭등’ 등 부정적 제목이 달려있다”고 말했다.

▲ 저임금근로자 비중이 작아지고 임금격차가 줄어드는 등 소득주도성장의 성과가 일부 나타나고 있는데도 보수언론 대부분이 최저임금 인상을 계속 비판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고용 느는데 실업자 수 증가만 부각

그는 “청년실업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지만 최근 전반적으로는 고용이 늘고 저임금노동자 비중이 줄어드는 등 소득주도성장정책의 일부 성과도 나타나고 있지만 실업자 수 증가에 초점을 맞추는 등 보도하고 싶은 것만 보도하는 프레이밍 현상이 경제현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예로, 6월 12일 통계청이 5월 고용동향을 발표하자, <한겨레>는 ‘5월 취업자 26만명 증가…생산가능인구 고용률도 역대 최고’라는 제목을 달았으나, <조선일보>는 ‘실업자 수 5월 기준 사상 최대...3040·제조업 취업자 감소 장기화’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이는 둘 다 사실이지만, <조선>은 취업을 포기했던 여성 등이 경제활동인구로 유입됨에 따라 실업률이 올라갔음에도 고용 사정이 개선되고 있는 사실을 제목에서 부각하지 않았다.

▲ 한국의 재정은 독일과 비교해도 건실한데 언론이 ‘재정위기설’을 퍼뜨리기도 한다. ⓒ <Foreign Affairs>

‘재정위기설’ 보도와 관련해서는 국제통화기금(IMF) 분석과 <포린어페어스>(Foreign Affairs) 보도를 인용해 “한국의 2019년 재정정책은 ‘중도적’(modest)이란 평가를 받았다”며 “보수진영이 경기침체를 걱정한다면 오히려 확장정책을 쓰라고 주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기사는 취재원 편향 심각

이 원장은 보수언론에 의해 진보정권의 부동산 정책이 무력화하는 과정을 분석하고 부동산값이 조금 내린 것조차 문제 삼는 보수 언론의 부동산 기사 취재원이 주로 은행 부동산자산관리팀 간부인 점을 들어 부동산 보도의 편향성을 지적했다.

그는 ‘상속세 높아서 이민 간다’는 프레임이나 ‘반기업 정서’의 허구성을 분석하고,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하는 '국가경쟁력'에서 한국이 한 단계 떨어진 것을 크게 보도하는 한국 언론의 ‘순위지상주의’를 꼬집었다.

그는 또 ‘회계 사기’로 번역해야 마땅한 ‘accounting fraud’를 ‘분식회계’로 화장해주거나 기업의 가격 ‘인상’을 ‘조정’으로 표현하는 등 경제 보도 전반에 걸친 언어의 공공성 문제를 제기했다.

이봉수 원장은 결론적으로 “그릇된 경제뉴스 보도가 특히 경기침체 때는 지렛대 구실을 한다”며 “경제는 소비심리와 투자심리 등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보도 용어를 선택할 때도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언론은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경제위기’라는 표현을 함부로 쓰는데, AP의 경우 보도지침에 두 분기 이상 마이너스 성장을 해야 ‘경기후퇴’(recession)라는 표현을 쓰도록 돼 있다. 이 원장은 “경제 관련 뉴스는 오보나 과장보도일지라도 경제현실을 그렇게 만들어가는 ‘자기달성 효과’(Self-fulfilling effect)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의 자유도가 높을 때 가짜뉴스가 창궐하고 신뢰도가 떨어지는 현상이 벌어지는 데가 우리나라”라며 “극우 유튜버들도 심각한 문제지만 영향력 면에서 보면 기성언론의 책임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 영국 옥스퍼드대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언론의 신뢰도는 비교대상국 가운데 한국이 꼴찌다. ⓒ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기회 늘려야

이봉수 원장은 한국경제를 망치는 ‘가짜뉴스’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본에 종속돼 가는 경제저널리즘이 제자리를 찾아야 하고, 언론인 양성과 재교육 과정에서 경제저널리즘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성 언론, 특히 공영 언론이 가짜뉴스에 관한 사실확인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고, 민간 언론사도 미디어 자체비평과 상호비평을 대폭 강화해야 하며, 일반인을 상대로 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기회도 크게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심의를 강화하는 한편으로 언론운동단체나 비영리 대안 매체의 언론 감시 활동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이 ‘세습자본주의’ 탈피할 방법 찾아야

경제뉴스 보도와 관련한 부정적 언론 현상을 어떻게 보고 바로잡을 것인지를 논의하는 미디어공공성포럼 세미나에서는 김중배 언론광장 상임대표의 축사, 이봉수 원장의 발제, 조영철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최경영 KBS 기자의 토론으로 이어졌다.

▲ 조영철 고려대 교수가 토론에서 해외에서는 예외로 받아들여지는 ‘세습자본주의’가 한국 언론에 일반화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 강도림

조영철 고려대 교수는 “경제뉴스와 관련한 가짜뉴스들은 오보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며 말문을 열었다. 2017년과 2018년은 외환위기 이후 고용률이 가장 좋았던 두 해인데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최저임금과 관련한 수천 건의 부정적인 뉴스가 나왔다고 지적했다. 나중에는 <경향신문>과 <한겨레>도 ‘고용 쇼크’라는 말을 따라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언론도 ‘세습자본주의’와 얽혀 있다”며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효과에 의문을 제기했다. 잘못됐다고 지적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일러 기사 올 수 없다’는 가짜 기사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모니터링 작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가짜뉴스를 유포하는 언론의 프레임을 파악하려면 개별 사안들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조선일보>가 보도한 1월부턴... 밤에 오들오들 떨어도 보일러 기사 못 옵니다 기사를 가짜뉴스 사례로 꼽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하는 주52시간근무제 때문에 보일러공이 가정에서 사용하는 보일러가 고장 나도 A/S를 못 해준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김 처장은 “기사에는 보일러 직원 몇 명이 있다고 회사 규모를 설명했으나 그 규모라면 올해 주52시간제 적용이 안 되는 회사”라며 “지난해에도 24시간 일하는 보일러 기사는 없었기 때문에 A/S는 올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 처장은 많은 시민들이 가짜뉴스가 유포되고 있는 현실을 인지하고 있지만 경제뉴스 자체를 아예 외면해 언론 불신이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나무 한 개, 한 개 지적하면서 팩트체크를 해봤자 사람들은 피곤해하고 언론 전체를 안 보게 된다”며 “2000년대 초반부터 경제보도에 왜곡이 많아졌던 만큼 일희일비하지 말고 프레임 속에 당하고 있는 현실을 보다 쉽고 편안한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공황' '패닉' 등 선정적 단어로 공포감 조성

최경영 KBS 기자는 “한국 언론이 경제위기를 과장해서 보도하면 투자자들이 혼란스러워지고 결국 자본주의에도 도움이 안 된다”며 언론인의 각성을 촉구했다. 그는 “한진그룹 승계 문제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을 다룰 때 <조선일보>와 <이데일리>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어머니인 이명희 씨가 재판 과정에서 울었다’는 보도를 했다고 비판했다. 지상파 방송3사조차 명품을 국적기로 밀수한 혐의를 받고도 집행유예로 풀려난 재벌 일가에게 ‘자숙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비판하는 데 그쳤다.

▲ 최경영 KBS 기자는 토론에서 ‘저널리즘 토크쇼 J’ 같은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이 많이 등장하고 그러한 시장이 형성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강도림

최 기자는 “미국 외신 <블룸버그 비즈니스 위크>는 고용률은 높고 실업률은 낮은데 임금 인상이 안 되는 이유로 임금 협상을 할 수 있는 노동조합의 몰락을 원인으로 꼽았다”고 말했다. 실업률이 아무리 낮아도 임금을 올릴 수 없으니 물가나 금리가 상승하지 않고 선순환 경제를 이룰 수 없다는 이론을 자본주의 통신사조차 스스럼없이 지적한다. 그러나 한국 기자들은 빨갱이로 낙인 찍힐까 봐 지적하지 못한다. 그는 “오히려 '경제침체' '공황' '패닉' 같은 선정적 단어를 헤드라인에 사용하면서 공포심을 자극한다”며 “좀 더 많은 미디어 비평가가 등장하고 관련 시장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미나에 참여한 대학생 장유진 씨는 “경제뉴스가 일반인한테 생소하고 어려운 분야인데 경제뉴스를 보다 쉽고 재밌게 전달하면서도 가짜뉴스를 거르는 방법은 없는지 고민하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 이날 공개 세미나에는 김태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맨 앞)을 비롯한 교수, 학자, 학생, 언론인 등이 대거 참석했다. ⓒ 윤종훈

이날 세미나는 정재철 단국대 교수가 사회를 봤고, 이수호 전태일기념관장, 양길승 원진직업병관리재단 이사장, 강기석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 김지영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 정연우 민언련 대표, 이도경 KBS 시청자센터장, 이채훈·정길화 MBC 국장, 김서중·김수정·김세은·남인용·박용규·정인숙·최은경 교수, 조선희 작가, 강병인 캘리그래퍼 등이 참석했다. 미디어공공성포럼은 지난해 10주년을 맞이한 뒤 지난 10년을 기억하고 새로운 10년을 모색하는 기념사업으로 시민에게 공개되는 세미나를 개최했으며 후반기에 세미나를 또 열 계획이다.


편집 : 황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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