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임의 문답쇼, 힘] 최일도 다일공동체 대표

“평화(平和)란 입(口)에 쌀(米)이 골고루(平) 들어가는 거더라고요. 음식이 골고루 나눠지지 않고는 평화가 없는 거죠. 인도주의 입장에서 제발 밥을 나눕시다. 엄마들이 자식들 군대 보내잖아요. ‘밥퍼 앞치마 입고 남한 병사뿐 아니라 북한 병사도 밥해줍시다’ 하면요, 엄마들이 다 웁디다, 울어. 통일운동은 저렇게 고위정책 입안하는, 두뇌싸움 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서, 밑바닥에서 엄마들이 학생들이 뜨거운 마음 가지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노숙인과 저소득층을 위해 30여년간 무료배식과 의료구호에 앞장서 온 ‘밥퍼 목사’ 최일도(62) 다일공동체 대표가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에 출연해 나눔의 신념을 밝혔다. 1988년 서울 청량리역 광장에서 노숙인에게 라면을 끓여주며 시작된 ‘밥퍼나눔운동’, 취약계층을 무료 진료하는 ‘다일천사병원’, 노숙인 쉼터인 ‘다일작은천국’ 등을 이끌고 있는 그는 최근 ‘밥 피스메이커’라는 평화운동도 추진하고 있다.

“밥이 곧 평화다” 바닥에서 시작하는 통일운동

지난 2015년 시작된 밥 피스메이커는 남·북한 병사가 함께 밥 먹을 날을 기다리며 비무장지대(DMZ)에서 밥상 나눔 퍼포먼스, 평화 퍼레이드 등을 벌이는 행사다. 70여년간 서로에게 총을 겨눴으니 설날, 추석과 같은 명절만이라도 총을 내려놓고 함께 밥을 먹을 수 있게 해달라고 남북 당국에 촉구하는 것이다. 최 대표는 남북한 정부가 병사들의 밥 나눔을 허락할 때까지 DMZ에서 퍼포먼스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판문점에서 정상들끼리만 밥 먹고 가지 말고, 우리 엄마들이 해주는 밥 병사들과 같이 먹읍시다. 남한 엄마들이 북한 병사 밥 해주고, 북한 엄마들이 남한 병사 밥 해주고...서로 싸우면 제일 먼저 밥을 같이 안 먹어요. 그런데 싸웠던 사람도 화해하는 건 밥상에서 같이 밥 먹으며 하는 거예요.”

▲ 최일도 대표는 남·북한 병사들끼리 ‘밥 나눔’을 통해 아래로부터 평화통일운동을 벌일 수 있다고 말했다. ⓒ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

최 대표는 밥 피스메이커에 앞서 1995년 수필집 <밥 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 출판으로 받은 인세 3억원 중 1억 5천만원을 북한구호 활동을 펴는 유진벨 재단에 기부하는 등 일찌감치 북한돕기에 참여했다. 나머지 인세는 교인들의 성금과 합쳐 1999년 북한과 가까운 중국 훈춘에 ‘다일어린이집’이라는 고아원을 설립하는 데 썼다. 식량난 때문에 탈북한 ‘꽃제비’ 어린이 등을 돌보면서 장차 북한에 밥퍼를 진출시킬 교두보를 확보하는 의미였다고 한다.

노숙인 한 명 구하면 한 가정이 회복된다

최 대표는 지난 30여년간 노숙인들의 식사와 의료 지원을 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을 ‘봉사 받던 이가 봉사 하는 이로 거듭났을 때’라고 꼽았다. 17년간 노숙생활을 하다가 재기한 뒤 7년간 밥퍼에서 봉사하다 하늘나라로 간 노인도 있다고 한다. 그는 우리 사회 고위층이 노숙인의 재기를 돕는 대신 눈앞에서 치워버릴 궁리를 하는 것을 볼 때 분노를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언젠가 코레일(한국철도공사) 사장이 나를 부르더니 서울역에서 노숙인을 쫓아내 달라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살릴까가 아니라 내쫓을 생각만 하고 앉았으니, 어떻게 우리가 인간다운 삶을 살겠냔 말이에요. 내쫓는다고 없어지나요? 그들은 헤매다가 결국은 여기 또 와요. 한 사람이라도 살려보려고 해야지.”

서울시의 ‘2018년 노숙인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서울 노숙인의 거리 생활 기간은 평균 11년, 평균 나이는 54세다. 최 대표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엔 실직과 가정파탄을 겪고 거리로 나온 사람이 한꺼번에 수천명이 늘기도 했다며 신용불량, 파산 등 경제적 파탄과 이혼, 교도소 복역 이후 노숙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노숙인 중에는 한 때 잘 나가던 최고경영자(CEO)와 교수도 있다”며 “원래부터 노숙인이었던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노숙인들이 거리생활에 중독되기 때문에 벗어나기 쉽지 않지만 그래도 재활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숙인이 갱생하면 무너진 가정이 회복되고 서로 화해할 수 있는 기적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노숙인 보호시설인 다일작은천국이 서울시에서 유일한 요양쉼터인데, 노숙인의 재기를 돕는 시설이 구청마다 하나씩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최일도 대표는 “노숙인 한 명이 재기하면 한 가정이 회복된다”며 구청단위의 노숙인 요양쉼터 등 재기를 지원하는 시설이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

최 대표는 또 최근 늘어나고 있는 ‘고독사 위험군’에 대해서도 관심을 촉구했다. ‘2018 서울통계연보’에 따르면 서울시 전체 고령자(65세이상) 137만명 중 독거노인이 30만명이고 이들 중 9만명이 고독사 위험에 노출된 것으로 분석됐다. 최 대표는 “세 명 중 한 명이 1인 가구인 시대에 저소득층 독거 가구는 철저히 고립돼 외로운 죽음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며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문을 두드려보는 등 관심을 기울여 줄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금부터, 여기부터, 작은 것부터

최 대표는 신학대학원 졸업반 시절 서울 청량리역에 쓰러져 있던 노숙인에게 설렁탕 한 그릇을 대접한 것을 계기로 ‘밥퍼 인생’에 들어섰고, 그의 밥상 나눔은 31년간 1천만 그릇 이상을 기록했다. 지금은 캄보디아, 베트남, 필리핀 등 세계 10개국에서 밥퍼 운동 지부가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이름 없이 참여한 자원봉사자와 후원자들 덕”이라며 “나눔은 ‘지여작할라’의 정신으로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는 거예요. 지금부터, 여기부터,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나부터. 진정한 자원봉사란 지금부터 하는 것이지 돈을 번 후에, 내 집 마련한 후에, 못 합니다. 없는 사람이 더 없는 사람 생각하는 거예요.”

▲ 최일도 대표는 ‘지금부터, 여기부터,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나부터’가 진정한 나눔의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

그는 신학생 시절 우연히 성경에서 ‘정결하여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서 돌보는 일’이라는 문구를 발견했을 때 ‘활자가 튀어 나와 가슴을 불 지르는 듯한 뜨거움’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오늘 우리 시대에 소외된 사람들이 어디 고아와 과부뿐입니까? 그런 소외계층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삶이 진정한 경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방송 SBSCNBC는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가 진행하는 명사 토크 프로그램 ‘제정임의 문답쇼, 힘’ 2019 시즌방송을 3월 14일부터 시작했다. 매주 목요일 오후 11시부터 1시간 동안 방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사회 각계의 비중 있는 인사를 초청해 정치 경제 등의 현안과 삶의 지혜 등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풀어간다. <단비뉴스>는 매주 금요일자에 방송 영상과 주요 내용을 싣는다. (편집자)

편집 : 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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