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집 재밌는 곳] 경산시 부적리 벽화마을

최근 도시재생 붐이 일면서 낡은 집과 담벼락이 많은 마을들이 벽화로 마을을 꾸미는 데 재미를 붙였다. 골목길 담벼락에 그림 몇 점 그려 넣었을 뿐인데, 삭막했던 분위기가 포근한 느낌으로 변했다. 서울시 동대문 인근 이화벽화마을과 경남 통영시 동피랑마을이 대표적이다. 이 마을들은 한때 평범한 산동네에 불과했지만, 벽화마을이 된 뒤로 외국인과 내국인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 통영시 동피랑 마을은 2년마다 공모를 통해 벽화를 새롭게 단장하는 전략으로 방문객과 재방문객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 daum 블로그

“로봇이요? 사람이 그린 줄만 알았어요”

지금까지 벽화골목은 장애인, 예술인, 자원봉사단체, 어린이부터 대학생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꾸며 왔다. 그런데 최근 벽화 그리는 데 로봇 화가가 동참한 벽화마을이 생겨 났다. 경상북도 경산시 압량면 부적리 벽화마을이 그곳이다.

가을 햇살이 따스한 지난 4일 부적1리 벽화마을을 찾았다. 마을 가운데로 난 은행나무 길을 따라 마을을 한바퀴 돌았다. 경산 시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았지만, 도심의 번잡함보다는 시골 마을의 한적함이 더 돋보인다. 마을 입구에서 바라보는 신대부적재개발지구 아파트촌과 영남대 원룸촌 사이에 섬처럼 남아 있는 부적1리는 밖에서 보면 좀 어둡고 쓸쓸한 분위기가 감도는 듯하다.

하지만 고즈넉한 마을 초입의 마을회관을 끼고 들어서자 갑자기 동네가 환해졌다. 한쪽 벽면에 짙은 남색 차림 ‘헨젤’과 분홍색 차림 ‘그레텔’이 방문객을 반갑게 맞이 한다. ‘헨젤 & 그레텔 – 부적리 이야기 마을’. 로봇 화가가 그린 벽화마을로 들어선 것이다.

▲ 경산시 부적1리 벽화마을 입구의 '헨젤과 그레텔' 벽화. ⓒ 오수진

‘헨젤과 그레텔’ 그리고 ‘걸리버’가 사는 마을

입구를 지나면 첫 테마존인 ‘7080 사계(四季)’가 나타난다. 이 마을의 추억 속 4계절을 로봇 화가가 그린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네 개의 벽화를 보고 지나가면 ‘걸리버 여행기 동화여행’ 구역이 나타난다. ‘걸리버 여행기’ ‘아기돼지 3형제’ ‘잭과 콩나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등 우리에게 익숙한 동화 이야기를 그린 벽화가 방문객을 맞는다.

좀 더 걷다 보면 ‘명화여행’ 구역이 나타나고, 장 프랑수아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이 벽 한가운데 ‘걸려 있어’ 마치 미술관 전시실에 들어온 기분이 든다. 명화들을 감상하고 다른 골목길로 접어 들면 ‘헨젤과 그레텔의 세계여행’ 구역이 나타난다. 미국 뉴욕의 명소인 ‘LOVE’ 조각을 그린 것을 비롯해 세계 유명 관광지 그림들이 줄지어 등장한다.

▲ 로봇 화가가 그린 부적 1리 벽화마을의 첫번째 테마존 ‘7080 사계’에 있는 ‘SUMMER’(여름). ⓒ 고하늘
▲ ‘로봇이 그린 벽화마을’ 부적1리 ‘명화여행’ 구역의 벽화들. ⓒ 고하늘

시안 입력하면 로봇이 움직이면서 벽화 그려

부적1리가 벽화마을로 변신한 것은 2017년 6월, 경산시가 ‘마을환경개선사업’의 하나로 이 마을에 로봇이 그린 벽화마을을 만들면서다. ‘마녀를 물리치고 안전한 집으로 돌아 간다’는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범죄환경예방디자인(CPTED)과 접목해 어둡고 침체돼 있던 마을 분위기를 한층 밝게 바꾼다는 목적으로 조성했다.

이런 취지에 걸맞게 로봇 화가가 그려 놓은 벽화 갤러리는 마을 주민과 어린이들에게는 즐거운 산책길이 되어준다. 또 안전한 마을이라는 이미지에 따른 범죄예방 효과와 관광객 유입 효과까지 거두고 있다. 마을 주민 방옥분(58) 씨는 “벽화가 그려진 뒤 관광객이 많이 늘지는 않았지만 마을이 예전보다 환해졌다”면서도 “벽화가 로봇이 그렸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로봇이 그렸다 하니, ‘붓을 든 로봇’이 벽화를 그린 것으로 상상해볼 법도 하지만 그건 아니다. 벽화를 그린 ‘로봇 화가’는 전문 디자이너들이 선택한 벽화시안을 컴퓨터에 입력하면 프린터가 벽에다 원본과 같은 그림을 인쇄하듯이 그려 넣는 장치다.

▲ 부적1리 벽화를 그린 ㈜로보프린트의 아트봇이 벽화 시공작업을 하고 있다. ⓒ 로보프린트 누리집

이 로봇 화가는 사람 손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미지나 세밀한 부분까지 ‘프린팅 머신’으로 찍어 낸다. 보통 컴퓨터 프린터는 인쇄가 되는 종이가 움직이면서 인쇄작업이 이뤄지지만, 로봇화가의 프린터는 다른 공법을 적용해 프린터가 이동하면서 고정된 벽면에 그림을 프린트한다. 보통 프린터는 표면이 매끄럽지 않고 거칠거나 불규칙한 옹벽이나 아파트 벽면에 프린트를 할 수 없지만, 벽화 그리는 로봇은 압축공기를 이용한 정밀 프린팅 공법을 이용해 벽화를 그린다. 곡면이나 요철이 있어도 압축공기로 잉크를 구석구석 뿌려 넣는 방식이다.

이런 기술 덕분에 거친 벽면에도 상세한 이미지까지 컴퓨터에 입력한 원본 그림대로 완벽하게 벽화로 재현해 낸다. 전시장에 가서나 보던 유명한 그림 작품을 골목 벽화에서 실사화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고층건물 외벽 도색 때 발생하는 사고도 예방

로봇이 벽화를 그리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외벽 도색 사업을 하던 중소기업 로보프린트가 도색 작업중 추락 사망 사고 등이 발생하자 대책 마련에 골몰하다 지난 2012년 건축물 페인팅 로봇 ‘아트봇’을 개발하며 시작됐다.

▲ 로봇 화가가 그린 부적 1리 벽화마을 ‘헨젤과 그레텔의 세계여행’ 구역의 뉴욕 벽화. ⓒ 고하늘
▲ 부적 1리 벽화마을의 벽화. ⓒ 고하늘

로보프린트가 로봇 화가를 현장에 투입한 결과, 밧줄과 크레인 등을 이용해 세 사람의 작업자가 20일 걸려 완성하는 작업을 로봇은 나흘만에 해치웠다. 소요 비용도 아파트 벽면 250㎡ 도색하는 데 사람이 하면 3200만원 정도 들어가는 데 비해 로봇은 2318만원이면 된다고 한다. 비용, 인력, 작업 기간을 절감하거나 단축하고 위험한 작업에 로봇을 투입해 안전성도 확보한 것이다.

이 업체는 대구 동서아파트 대형 벽화 그리기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100여건의 중원경 경관 벽화와 옹벽 등 마을벽화 작업을 하고 있다. 올해는 대구 동구 ‘생활문화로 공간재창조 사업’과 서울 구로구 ‘한뜻모아마을 정비사업’ 등에 참여하고 있다. 어둡고 낡은 동네나 철거대상 마을 등 혼자 걷기가 무섭거나 어두웠던 지역을 아트 갤러리로 탄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로보프린트 이재진 상무는 “도심 곳곳에서 대한민국과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갤러리화하는 것이 목표”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과 협력해 도심 경관 개선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부적1리 벽화마을 사업 후 모습이다. 걸리버 여행기 동화구역. ⓒ 오수진

<부적1리 벽화마을 가는 길>
부적1리 마을회관: 경북 경산시 압량면 압량시장길 14

 

편집 : 홍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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