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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됐다’는 말의 주제넘음

기사승인 2018.02.17  17: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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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사전] ‘새’

   
▲ 민수아 기자

나는 새를 무서워한다. 어릴 때 내가 살던 동네에는 길고양이가 많았고, 깃털 뭉텅이 등 취식의 흔적을 발견하면 딴 데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도 눈을 감고 상상하면 그 모습이 떠올라 속이 메슥거릴 정도다. 날아가는 새가 싼 똥을 맞은 적도 있다. 찝찝한 기분에 내 손으로 머리카락을 잘라낸 기억이 생생하다. 개똥 밟을 확률보다 새똥 맞을 확률이 더 낮다는데 무슨 운을 타고난 건지 새와 악연이 깊다. 이젠 길을 가다가 비둘기만 봐도 질겁한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새>는 감히 볼 엄두도 나지 않는다. 영국 소설가 대프니 듀 모리에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새가 노부인을 공격하거나 새에게 눈알이 파먹힌 인간의 시체가 나오기도 한단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이 영화를 계기로 조류공포증(ornithophobia) 발병이 증가했다는 연구보고까지 있다. 공포증을 극복해보겠다고 굳이 이 영화를 보고 싶지도 않다. 그만큼 나에게 새는 무섭고 두려운 존재다.

요즘엔 내가 그 ‘새’ 같은 존재가 된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지난해 한 동물 다큐멘터리 방송에서 새끼 뻐꾸기를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 방송은 뻐꾸기의 탁란(托卵)을 다뤘다.

   
▲ 탁란(托卵)은 자기 스스로 둥지를 만들지 않고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두견이과의 새(뻐꾸기류)가 탁란하는 새로 유명하다. ⓒ SBS <동물농장> 화면

어미 뻐꾸기가 딱새 둥지에 알을 낳고 떠나버리자, 알을 깨고 둥지에 자리 잡은 새끼 뻐꾸기는 딱새를 부모로 인식한다. 자기가 더부살이하는 처지인 줄도 모르고 비좁다고 딱새 알을 둥지에서 밀어낸다. 딱새가 알을 깨고 나오자 작은 새끼 딱새를 큰 몸으로 깔아뭉갠다. 어느새 어른 딱새보다 덩치가 커진 새끼 뻐꾸기는 먹이를 가져오라고 딱새 입보다 훨씬 큰 입을 쩍쩍 벌린다.

생물학적 모녀 관계가 확실하다는 점 빼고는 내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나는 키만 엄마보다 크지 여전히 내 감정이 우선인 철딱서니다. 함께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위풍당당하게 합격 소식을 전하고 싶었지만 결국 엄마에게 내뱉는 말은 ‘힘들어 죽겠다’는 푸념이 고작이다. 혼자 조용히 준비할 수는 없었을까 후회가 남는 요즘이다.

줄탁동기(啐啄同機)는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의 불교 용어다. 병아리와 어미 닭이 동시에 알을 쪼기는 하지만, 어미 닭이 병아리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지는 않는다. 어미 닭은 도움만 줄 뿐, 정작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병아리 자신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도 비슷한 맥락이다.

나는 어쩌면 내가 그렇게 혐오하던 새조차도 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알 안에서 다 자라지도 않았는데 세상에 나오려는 마음만 앞섰다. 아직 알도 깨지 못한 뻐꾸기가 <데미안>을 어설프게 따라 하다가 체하고 말았다. 아니,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가 다리가 찢어졌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김미나 기자

민수아 기자 sooahmin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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