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가족’

▲ 황금빛 기자

엄마가 달달한 커피를 좋아할 줄은 몰랐다. 동생과 커피를 사러 카페에 간 날이었다. 내 것과 동생 것을 한 잔씩 주문했는데, 엄마 것은 뭘로 사야 할지 몰라 잠시 멈칫하다 무난한 ‘아메리카노’를 외쳤다. “아니, 엄마도 캐러멜 마키아토 먹던데…” 그러면서 동생이 주문을 바꿨다. 엄마가 예전에 달달한 커피를 먹지 않았던 것은 “시도해본 적이 없어서였다”는 말도 덧붙였다.

최근 엄마는 내 옷을 입어보는 일이 부쩍 늘었다. 내가 안 입는 옷이길 바라는 눈치다. 요즘 들어 젊은 애들이 입는 옷이 입고 싶다며 말끝을 흐린다. 이런 엄마에게 나는 요즘 엄마가 좋아하는 ‘생크림 도넛’도 사다 주고, 엄마가 접해본 적 없는 ‘브라우니’도 내가 먹지 않고 넘겨준다. 물론 엄마는 “살찌게 이런 거 왜 먹느냐”며 거절하다 마지못해 먹는 척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아는 맛 좋은 음식의 출처는 엄마였지만, 나는 엄마에게 새로운 음식을 맛보여 준 적이 없다.

▲ 엄마는 쉽게 '여자'로 돌아가지 못했다. ⓒ flickr

어쩌면 엄마는 자식을 다 키우고 다시 ‘여자’로 돌아갈 날만 기다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쉽게 ‘여자’로 돌아가지 못했다. 예순을 넘기고도 여태 자식을 부양해야 하는 현실 탓이다. 예전에 한 선생님이 ‘엄마한테 미안해하지 말고 일단 꿈을 향해 달려가라’던 말을 내가 너무 오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엄마가 여자로 돌아가지 못한 게 내 탓은 아닐까?’

<4천원 인생>이란 책에는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청년이 자기 부모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모른다. 그가 부모 사정에 밝지 못한 것은 제 앞가림이 급하기 때문이다. 앞만 보고 달릴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뒤도 아닌 바로 옆도 볼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잔인하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새로운 경험도 하지 못하고 ‘여자’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엄마, 그리고 그걸 나중에 깨닫고 후회하는 자식. 더는 후회하지 않기 위해 우연히 본 엄마의 휴대전화 사진첩에 있던 엄마의 처녀시절 사진을 내 메신저로 전송했다. 내가 엄마를 잠깐이나마 ‘여자’로 돌려세울 수단이 이것뿐인 현실…… 슬프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안윤석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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