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환의 유물 풍속문화사] ⑬ 2800년 된 ‘인류의 축제’

▲ BC 776년 1회 올림픽이 열린 올림피아 스타디온. BC 720년 15회 대회부터 나체 경기가 시작됐다. ⓒ 김문환

BC 720년. 제15회 올림픽이 열린 올림피아(olympia) 경기장. 스파르타 출신 아칸토스가 장거리 달리기(오늘날 5000m) 돌리코스(dolichos)에 참가해 발가벗고 달려 1등을 거머쥐었다. 이후 올림픽 선수들이 페리조마(perizoma)라고 불리는 샅바 비슷한 허리옷(loincloth)이나 팬츠를 벗는 나체 경기 풍속이 생겼다고 BC 1세기 로마 시대 그리스 역사가 디오니시오스는 적는다. 200년 뒤 2세기에 활약했던 그리스 지리학자 파우사니아스는 BC 720년 올림픽 경기 나체 달리기의 주역이 단거리 달리기(오늘날 200m) 스타디온(stadion)에 출전한 메가라 출신 오르시포스라는 주장을 편다. 일설에는 오르시포스가 페리조마 끈에 걸려 넘어지자, 부상 방지를 위해 나체 경기 규정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2700여 년 전 같으면 알몸 선수들의 경기를 실컷 볼 평창동계올림픽이 17일 앞으로 다가왔다. 고대 올림픽 풍속도를 들춰본다.

올림피아 헤라 신전, 평창올림픽 성화 채화… 히틀러가 시작한 이벤트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 올림피아로 가보자. 크로노스산 기슭에 고대 올림픽 스타디온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향토적인 맨흙 운동장에 양쪽으로 자연 경사를 이루는 녹색 잔디 관중석이 파란 하늘 아래 싱그럽다. 진흙탕이던 이곳을 1829년 되살려낸 프랑스 ‘모레 학술탐사대’(expedition scientifique de moree)에 감사해야 한다. ‘모레’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또 다른 이름이다. 당시 터키에 맞서 그리스 독립을 돕던 프랑스 군대를 따라간 탐사대원 17명의 노고에 이어 독일팀이 세기를 넘겨 1961년까지 말끔하게 되살려냈다. 폐허 올림피아의 위치를 맨 처음 찾아낸 이는 1766년 영국의 고고학자 리처드 챈들러(R. chandler)다. 

스타디온은 원래 길이 단위다. 192.27m. 천하장사 헤라클레스가 한숨에 달릴 수 있는 거리다. 나중에는 이 규격에 맞게 만든 운동장도 스타디온이라 불렀다. 로마 시대 라틴어로 스타디움(stadium)이 돼 오늘에 이른다. 올림픽 선수가 돼 경기장을 둘러보는 감흥에 젖은 뒤, 스타디온 크립트(chrypt·아치형 지붕을 갖춘 지하통로)를 빠져나오면 오른쪽으로 당시 그리스 폴리스들이 보물을 보관하던 12개의 보물창고 잔해가 나온다. 50여m 더 가면 도리아 양식 기둥이 우아한 곡선미를 뽐내는 신전에 이른다. 그리스 최고신 제우스의 아내 헤라를 모시는 신전 헤라이온(heraion)이다. 신전 앞에 작은 돌 구조물이 보인다. 여기서 2017년 10월 24일 평창동계올림픽 성화가 불붙었다. 성화는 11월 1일 인천공항에 도착해 지금까지 전국을 도는 중이다. 올림픽 성화는 히틀러가 체제 홍보로 활용한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처음 시작됐다.

▲ 제우스 신전. 지금은 폐허로 변했지만, 헬레니즘 시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선정된 제우스 동상이 있었다. ⓒ 김문환
▲ 올림피아 헤라 신전 헤라이온. 이곳에서 평창올림픽을 비롯해 동계·하계올림픽 성화가 채화됐다. ⓒ 김문환

올림픽의 시작은… 불효자 기원설과 효자 기원설

올림픽은 누가 시작한 것일까? 전승 신화 2가지가 흥미롭다. 첫째, 불효자 기원설. 올림피아가 위치한 곳은 피사(pisa) 지방이다. 고대 피사의 왕 오이노마오스에게 경국지색(傾國之色)의 딸 히포다메이아가 있었다. 오이노마오스는 사위 손에 죽는다는 신탁(oracle)을 얻었다. 죽지 않으려면 방법은 하나. 딸을 결혼시키지 말아야 했다. 오이노마오스는 아버지인 전쟁의 신 아레스(마르스)가 물려준 바람처럼 빠른 명마가 있었다. 여기에 마부는 최고의 기마술을 가진 미르틸로스. 옳거니. 오이노마오스는 딸 결혼 정책 방을 내붙였다. “나와 전차 경주를 벌여 이기면 내 딸과 결혼하고 지면 죽는다”. 12명의 젊은이가 덤벼들었다 저승길에 올랐다.

이때 머리 회전이 빠른 펠로프스가 나섰다. 왕의 마부 미르틸로스를 꼬드겼다. 자신이 경주에서 이겨 결혼하면 첫날밤을 공주와 함께 자게 해주겠다는 말도 안 되는 유혹에 어리석은 마부가 넘어갔다. 마부는 경기 전날 밤 왕의 전차 바퀴에서 굴대를 고정시키는 나사를 뽑고, 구멍을 밀랍으로 메웠다. 전차가 달리면서 밀랍이 녹아 바퀴가 빠져 왕은 죽고 말았다. 펠로프스는 공주와 결혼하고 피사의 왕이 됐다. 그러고서 승리 감사 기념제를 제우스에게 바친 것이 올림픽의 기원이란다. 삼강오륜(三綱五倫)이 없던 고대 그리스이니 불효막심한 기념 축제가 가능했겠다. 전승이 하나 더 있다. 천하장사 헤라클레스가 12가지 과업을 수행하는 과정에 피사 옆 지방 엘리스(elis)의 아우게아스 왕 소유 축사를 청소한다. 이때 약속을 어긴 아우게아스 왕을 죽인 뒤, 아버지 제우스를 위한 제전을 연 것이 올림픽의 기원이라니 효심의 산물이다.

올리브 기름 바르고 나체로 경기… 여성 관람객은 사형시켜

앞서 살펴봤듯이 BC 720년부터 나체로 진행된 올림픽. 만약 올림픽에 여자 선수가 있었다면 그게 가능했을까? 운동으로 다진 아름다운 육체를 자랑스럽게 여기던 그리스라 해도 쉽지는 않았을 거다. 고민의 여지가 없다. 고대 올림픽에서 여성은 선수가 될 수 없었으니 말이다. 여성은 경기는커녕 구경조차 금지됐다. 그래도 스포츠를 너무 좋아해서, 아니면 멋진 남자 나체를 보고 싶어서 몰래 경기장 관중석에 끼어든 여인이 있다면 어찌 됐을까? 경기장 옆에 있는 크로노스산 티파이온(typaion) 절벽에서 밀어 죽였다.

중동의 이란을 비롯해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도 남자 경기를 여인들이 관람하다 적발되면 징역 사는 것보다 심한 일을 치렀다. 그러나 요즘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축구 경기 관람이 허용됐다. 그리스에서도 BC 6세기 초 분위기가 바뀌어 여자 경기가 생겼다. 헤라(hera) 여신을 기념해 헤라이아(heraia)로 불렸다. 남자 올림픽 전에 운동장 크기를 6분의 5로 줄여 펼쳤다. 나체로? 머리를 늘어트리고 무릎 위까지 살짝 올라가는 키톤(chiton)을 입고 경기를 벌였다. 우승한 여성에게는 희생의식 때 잡은 소고기를 부상으로 안겼다. 현대 올림픽에서 여성의 참가가 허용된 것은 1912년 5회 대회 수영 종목부터다. 고대 올림픽 선수들은 경기 전 햇볕에 그을거나 부상당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올리브 기름을 썼다. 스트리질(strigil)이라는 밀개로 온몸에 발랐다.

▲ 올림피아 박물관에 보관된 희생의식용 황소 조각. ⓒ 김문환

자유시민 자비로 경기 참가, 10달 전부터 혹독한 훈련

누가 선수였을까? 지금이야 전 세계 젊은이들이 모이지만, 당시는 그리스어를 쓰는 그리스 도시국가의 자유시민들만 참여할 수 있었다. 요즘처럼 국가가 비용을 대는 게 아니라 개인이 자기 돈으로 장비도 사고, 여행 경비도 마련하는 점이 달랐다. 특별한 후원을 받지 않을 경우 부유층이 아니면 사실상 참가가 어려웠다. 선수들은 참가 전 10개월 동안 고국에서 훈련을 받았다. 대회 한 달 전 올림피아 옆 폴리스 엘리스에 모였다. 올림피아는 4년에 한 번씩 제전을 치르면 텅 빈다. 사람 사는 곳이 아니다. 가장 가까운 폴리스는 58㎞ 떨어진 엘리스였다. 엘리스가 나머지 폴리스에 중립국을 선포하고 올림피아를 돌보며 올림픽을 주관했다.

엘리스에서 한 달을 훈련하고, 자격 심사를 통과해야 경기에 참가할 수 있었다. 요즘 못지않은 강훈련이 필요했던 거다. 자격 심사를 통과한 선수들은 경기 이틀 전까지 올림피아로 걸어서 갔다. 황소 100 마리를 앞세웠다. 엘리스가 제공하는 소다. 어디에다 쓰나? 올림픽은 제전(祭典)이기 때문에 소는 희생의식으로 제우스에게 바치는 짐승이었다. 물론 의식 뒤에는 맛난 음식으로 변해 참가자들의 배를 불렸다. 10달 전부터 올림픽을 준비하는 진행요원을 헬라노디카이(hellanodikai)라고 불렀다. 엘리스 시민 가운데 추첨으로 뽑았다. 심판도 이들 가운데서 뽑았다. 레슬링같이 격한 경기는 심판이 회초리를 들고 있다가 반칙이 나올 경우 매질로 떼어놨다. BC 400년 95회 대회부터는 9명, BC 368년 103회 대회부터는 12명이었다. 각 경기에 얽힌 재미난 에피소드와 선수 얘기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시 낭송 월계관… 체육경기 올리브관… 폭군 네로의 우승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으로 가보자. 성화 채화 장소인 헤라 신전에서 가깝다. 실상은 금실(琴瑟)이 별로 좋지 않은 부부였는데… 지금은 건물터에 무너진 기둥 조각만 나뒹굴지만, 헬레니즘 시대인 BC 2세기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선정된 제우스 조각상이 안치된 명소였다. 신전 뒤 올리브 나무에서 잎이 달린 가지를 정성스럽게 잘라 어디에다 썼을까? 우승자에게 올리브관을 만들어줬다. 올리브관은 엄밀히 말해 체육 경기 분야다. 그렇다면 체육 말고 다른 경기도 있었는가?

시 낭송 분야 즉 문학·예술 분야가 있었다. 리라를 켜면서 시를 낭송하는 대회에서 우승하면 월계수 잎으로 만든 월계관(月桂冠)을 씌워 줬다. 로마 시대 폭군 네로는 그리스 문화에 심취했고, 올림픽에 직접 참가했다. 언제? 네로의 참가를 위해 개최 시기를 연기해 열린 제211회 67년 대회다. 분야는? 시 낭송. 성적은? 당연히 우승이었다. 월계관을 쓰고 그가 키타라(개량형 리라)를 켜며 낭송하는 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원로원 의원들을 네로 역시 이해하지 못했다. 로마에서 성대한 개선 행사를 치르지만 68년 반란에 자살로 생을 접는다. 영국 왕실에서 뛰어난 시인이게 내리는 칭호 계관시인(桂冠詩人)은 이 올림픽 전통을 따른 것이다. 야자수 잎도 승리를 상징했다. 이 전통 역시 프랑스 칸(cannes) 영화제의 대상인 팔므 도르(palme d’Or·황금 종려상)로 이어진다. 금으로 만든 야자 잎, 종려(棕櫚)다.

에케케이리아(올림픽 휴전)… 남북이 화해 협력으로 세계 평화 선봉에

‘에케케이리아(ekecheiria)’. 그리스 전승에 올림피아를 사이에 두고 엘리스와 피사 두 나라가 전쟁을 벌인다. 엘리스 왕 이피토스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강국 라케다이몬(스파르타) 왕 리쿠르고스와 올림피아를 성지로 삼아 무력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조약을 맺는다. 이어 피사의 왕 클레오스테네스와 휴전하고 올림픽을 연다. 물론 정확한 역사 기록은 아니고, 전승이다. 이렇게 시작됐다는 올림픽 휴전(olympic truce)을 ‘에케케이리아’라고 부른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런 평화 정신으로 처음에는 올림픽 전후 1달, 나중에는 3달간 전쟁 없는 시기를 보냈다.

2017년 11월 13일 유엔은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적대행위 중단 결의안을 채택했다. 1993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유엔이 “올림픽 이상과 스포츠를 통한 평화롭고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자”는 결의안을 채택한 이후 전통이다. 2018년 1월 1일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를 시작으로 남북 고위급회담이 열리면서 남북 한반도기 동시 입장, 여자 하키 단일팀 구성, 예술단과 응원단 파견, 금강산 전야제, 마식령 스키장 활용 등 남북 협력이 무르익는다. 고대 올림픽의 나체 풍속을 계승하기에 동계올림픽은 춥다. 남북이 화해와 신뢰의 따듯한 옷을 입고 라틴어 올림픽 정신 ‘키티우스(citius, 빠르게), 알티우스(altius, 높게), 포르티우스(fortius, 강하게)’ 평화의 새장을 세계 앞에 펼치는 모습이 3달의 에케케이리아를 넘어 지속되길 기대해 본다.


<문화일보>에 3주마다 실리는 [김문환의 유물로 읽는 풍속문화사]를 <단비뉴스>에도 공동 연재합니다. 김문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서양문명과 미디어리터러시' '방송취재 보도실습' 등을 강의합니다. (편집자주)

편집 : 안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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