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새’

▲ 고하늘 PD

"생태로 생각하지 말고 사진예술로 생각하면 될 텐데…" 2012년 김탑수 작가는 사진전 <새의 눈물>로 동물 학대 논란에 휩싸였지만 뻔뻔했다. 그는 어린 새를 둥지에서 꺼내 나뭇가지에 앉히고, 둥지를 가린 나뭇가지를 꺾은 뒤 촬영했다. 사진작가는 사진전을 열어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려 했지만, 새들에게는 생명을 위협하는 테러였다. 2016년에는 사진동호회 회원들이 시화호 인근에서 수리부엉이를 찍다 단속에 걸렸다. 수리부엉이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동물이다.

수리부엉이 새끼는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었고 둥지를 감싼 나뭇가지는 잘려나가 있었다. 조류학자 윤무부 교수는 "새는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천적들 눈에 띄지 않게 둥지를 짓는다"고 말했다. 잘려나간 나뭇가지와 훤히 드러난 둥지는 사진 몇 장 찍어보려던 인간의 욕심이었다. 그러나 관계부처는 책임을 떠넘기기 바빴다. 천연기념물을 관리하는 문화재청은 둥지를 훼손해야만 처벌할 수 있다고, 멸종위기 동식물을 지정하는 환경부는 보호구역 밖에서 벌어진 일이라 처벌규정이 없다고 했다.

인간의 이기심과 무책임은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 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죽음을 부른 실습>은 현장실습을 하다 발생한 사고를 교육부와 노동부가 서로 떠넘기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교육부는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일만, 노동부는 노동자들에게 일어나는 일만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현장실습을 한 학생은 학생도 노동자도 아닌 골칫거리 취급을 받으며 목숨과 미래를 빼앗긴다. 학교도 기업도 정부도 이들을 보호해주지 않는 게 현실이다.

지난 11월 제주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이민호 군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실습생의 사고와 죽음은 반복됐다. 2011년 기아차 광주공장 뇌출혈, 2012년 울산 신항만공사 작업선 전복, 2014년 CJ 제일제당 진천공장 자살, 현대차 하청업체 지붕 붕괴, 2016년 성남 외식업체 자살, 구의역 은성PSD 사망, 2017년 전주 LG유플러스 고객센터 자살. 그러나 누구도 이들의 죽음을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사회는 이들의 죽음을 개인 탓으로 돌렸다.

▲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 SBS 뉴스

학교는 실적을 올리기 위해, 기업은 값싼 노동력을 얻기 위해 현장 실습생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정부 또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이들 죽음을 외면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낸 아픔과 슬픔은 오롯이 가족과 친구들 몫이었다. 더는 꿈 많은 학생이 안타깝게 죽는 현실을 지켜봐서는 안 된다. 학생을 위험한 현장으로 내보낸 학교도, 학생이 안전하게 일할 환경을 제공하지 않은 기업도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를 방치한 정부 책임도 분명히 해야 한다.

12월 1일 정부는 학습중심 현장실습만 허용하고 조기 취업 형태로 운영하던 현장실습을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정부 발표도 의미 있지만, 현장 실습생을 바라보는 학교와 기업의 시각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학교는 학생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기업을 발굴하여 연결해주고 진로변경에 따른 사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기업은 학생이 안전하게 실습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춰야 하며 이들이 노동자가 아닌 실습생이라는 인식을 해야 한다.

기성사회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어린 새들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과 같은, 이기심과 욕망의 덩어리를 내려놓아야 한다. 학생들이 날갯짓하며 사회를 향해 날아갈 때 곳곳에 착취와 무책임의 그물이 드리워져 있다면, 우리 사회는 그들의 미래를 열어주는 게 아니라 ‘헬조선’으로 초대하고 있을 뿐이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김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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