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안형기 기자

정보기술(IT) 기반의 혁신적 금융서비스를 뜻하는 핀테크는 ‘4차산업혁명’의 핵심 분야 중 하나로 꼽히며 주요국에서 급속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의 알리페이, 미국의 렌딩클럽, 영국의 트랜스퍼와이즈 등은 등장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아 세계적 기업으로 우뚝 섰고, 금융의 판도를 바꿔가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 속도 세계 1위의 ‘IT강국’임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기록은 아직 초라하다. 삼성페이 등 지급결제, 토스 등 간편 송금,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전용은행이 속속 등장하고 있으나 전반적인 투자금액, 소비자 체감도 등에서 아직 ‘시작 단계’ 혹은 ‘정체 상태’라는 평가에 머무르고 있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이 세계 1위 거래량  

핀테크 산업의 뜨뜻미지근한 상황과 대조적으로 비트코인을 포함한 가상화폐 거래는 폭발적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가상화폐 데이터 제공업체 코인힐스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가상화폐 거래시장 규모는 일본, 미국에 이어 세계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때는 인구 5100만 명의 한국이 인구 3억2300만 명의 미국을 추월해 세계 비트코인 거래량의 25%를 차지하기도 했다. 가상화폐 거래소 역시 국내업체인 ‘빗썸’이 세계 최대 거래량을 기록하고 있다. 미래의 디지털화폐로서의 잠재력은 있으나 아직은 투기 일뿐이라는 평가를 받는 가상화폐에 ‘한탕’ 열기가 쏠리면서 거래소 해킹 등 사고와 사기사건도 빈발하고 있다.

▲ 우리나라의 가상화폐 거래시장 규모는 세계 3위이며 월간 거래액은 56조원에 이른다. 세계 비트코인 거래량의 약 25%를 우리나라가 차지하고 있다. ⓒ flickr

이렇게 가상화폐 거래는 뜨거운 반면 핀테크 산업은 아직 미지근한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국내 금융시장의 특수한 환경을 탓하고 있다. 은행계좌를 갖지 못한 소외 인구가 워낙 많은 탓에 모바일뱅킹 수요가 폭발한 중국, 인도 등과 달리 우리나라는 신용카드, 온라인뱅킹 등 기성 은행 서비스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그래서 지급결제나 간편송금 등의 핀테크 서비스가 중고령층까지 급속히 확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소비자 수요의 특성과 함께 규제의 영향도 크다는 지적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핀테크를 주도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정보기술기업이다. 예를 들어 P2P(개인 간 거래)방식의 간편 외환송금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국의 트랜스퍼와이즈는 기존 금융회사와 무관한 IT 스타트업이다. 이 회사는 영국의 법과 제도에 제약을 받지 않고 은행이 하던 외환송금서비스를 훨씬 값싸고 빠르게 제공하면서 세계적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트랜스퍼와이즈와 같은 외환송금서비스를 한국 IT기업이 한다면 ‘환치기(불법외환거래)’가 돼 처벌을 받게 된다. 또 모바일플랫폼이 본업인 카카오는 인터넷전용은행인 카카오뱅크를 만들면서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지분소유제한) 규정 때문에 의결권 지분을 4%밖에 가질 수가 없었다. 그러면 혁신적 기술을 기반으로 신속, 편리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창업목적을 주도적으로 구현해 나가기가 어렵다.

‘어둠의 거래’ 규제하되 포용적 금융 키워야

지난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대형 금융회사들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대안으로 등장한 핀테크는 ‘포용적 금융(inclusive finance)’의 확산이라는 관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중국, 인도, 케냐 등 신흥국 혹은 개발도상국에서는 수많은 금융 소외 인구가 모바일 계좌 등을 갖게 되면서 정상적 경제활동에 편입되고 있다. 또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에서도 이주노동자의 본국송금, 저소득층의 대출 등이 훨씬 편리하고 저렴하게 이뤄져 소득불평등을 완화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래서 각국 정부는 금융산업 발전 뿐 아니라 포용적 금융의 확산을 위해서도 핀테크를 적극 육성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핀테크 기업들이 다양하고 자유로운 시도를 하게 한 후 사후적으로 꼭 필요한 규제만 도입하는 영국이 대표적이다.

▲ '엠페사(M-Pesa)'는 은행 계좌 없이도 돈을 이체할 수 있는 케냐의 모바일 결제 및 송금 서비스다. 금융 인프라가 매우 취약한 케냐에서 금융 소외 인구를 정상적 경제활동에 편입시키는 '포용적 금융'을 실현하고 있다. ⓒ flickr

이런 맥락에서 우리도 핀테크 산업이 꽃 필 수 있도록 규제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 업계에서 요구하는 것처럼, 허용된 것 외엔 모든 것을 금지하는 ‘포지티브’ 규제방식에서 금지 목록을 정해놓고 그 외엔 모두 시도할 수 있도록 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반면 가상화폐 투기를 부추기는 행위와 가상화폐를 이용한 불법거래, 탈세 등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대처해야 한다. ‘어둠의 거래’는 막고 포용적 금융은 키우는 규제 혁신이 절실한 시점이다.


편집 :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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