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제16기 예비언론인 캠프’

5일 소한 추위가 어김없이 제천을 덮쳤지만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만은 1박2일간 열기 속에 휩싸였다. 과정이 빡빡하기로 ‘악명’ 높은 ‘언론인을 꿈꾸는 예비언론인 캠프’가 16번째로 개설됐기 때문이다. 전국 대학에서 선발된 56명 참가자들은 밤늦도록 거의 쉴새 없이 짜인 일정에도 흐트러짐 없이 강의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부산에서 온 김민수(24·인제대 신문방송)씨는 “진로를 고민하고 있어서 캠프에 참여하게 됐다”며 “언론인 출신 교수님들의 짜임새 있는 강의를 듣고 오랫동안 간직해온 기자의 꿈을 현실로 바꾸고 싶었다”고 말했다.

캠프 개소식에는 세명대 설립자의 외아들인 권동현 기획실장이 참석해 “한국언론에 좋은 인재를 공급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하기에 재단이 파격적인 장학지원을 하고 이런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며 참가자들을 격려했다.

이봉수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은 “기성언론을 향한 불신이 특히 한국에서 심각한 것은 한국 언론의 충원·교육과정이 잘못됐기 때문”이라며 “실력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입사하면 그때부터 고통이 시작되는 게 언론사이고 결국 권력과 자본에 굴종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원장의 ‘무엇이 우리 가슴을 뛰게 만드나’란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이상요 교수의 ‘영상제작 Key-Finding’ ‘PD는 기획으로 말한다’ 순서로 오후 강의가 진행됐다.

▲ 대학신문·방송 기자·PD 등 전국에서 온 예비언론인 56명이 강의에 집중하고 있다. ⓒ 임형준

최순실 특종보도의 비결

이번 캠프에는 김의겸 전 <한겨레> 선임기자가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취재기’를 속속들이 털어놓아 큰 관심을 끌었다. 김 기자는 2016년 <한겨레>에서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취재팀인 ‘최찾사(최순실을 찾는 사람들)’의 팀장을 맡아 대특종들을 수없이 터뜨려 대통령이 탄핵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 

김 기자는 고려대 법대 학생회장으로서 민정당 정치연수원 점거농성을 주도했다가 2년6개월간 투옥됐고 <한겨레> 공채 합격 후 수감기간을 경력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그는 <한겨레>에서 정치·사회에디터, 논설위원 등을 역임했고, ‘최찾사’팀을 이끈 뒤 내외부 사정으로 지난해 7월 사표를 냈다. 그는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을 특종보도 할 수 있었던 첫 번째 비법으로 ‘호기심’을 꼽았다.

“기자를 움직이게 하는 내연기관은 ‘왜’라는 호기심입니다. 최순실에 관한 호기심을 꺼버리거나 검사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면, 최순실과 박근혜는 그대로 있었을 겁니다.”

▲ 김의겸 전 <한겨레> 선임기자가 강연하고 있다. 그가 이끈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취재팀은 한국기자협회의 제48회 한국기자상 대상을 받는 등 각종 언론상을 휩쓸었다. ⓒ 임형준

‘최찾사’는 끈질겼다. 그 결과로 연쇄 대특종의 결실을 얻었다. 김 기자는 “(2016년) 9월초 후배들과 일을 시작했는데, 무작정 취재를 하지 않고 어디를 집중적으로 공략할 것인지 설계도를 그렸다”고 말했다. 취재팀은 <TV조선>이 이미 훑고 지나간 미르재단은 포기하고 K스포츠재단을 파헤치기로 했다. 막내 방준호 기자가 정동춘 전 K스포츠재단 이사장이 영업하던 CRC운동기능회복센터를 찾아갔다. 그러나 문은 이미 굳게 닫혀 있었고 취재도 난관에 부닥쳤다. 이때 방 기자가 인터넷을 검색해 정 전 이사장과 함께 센터를 만든 이모씨를 찾았고, 끈질기게 인터뷰해 “센터는 최순실이 자주 드나들던 곳”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2016년 9월 20일, <한겨레> 1면에 최순실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보도가 나간 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서 “우리가 돈을 모아 자발적으로 만든 것”이라며 해명했다. 김 기자는 “기자는 그렇게 말하는 주장에 반격할 수 있는 증거를 찾고 보도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전경련 주장이 맞다면 전경련 직원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사무실을 계약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일대 부동산을 뒤졌지만 허탕을 쳤다.

김 기자는 계속된 고민에 잠을 설쳤다. 어느 날 새벽, 자다 깨서 본 노트북에서 국정감사 자료에 담긴 미르재단의 임대차 계약서를 발견했다. 류이근 기자가 보내놓은 메일에 첨부된 것이었다. 백사장에서 바늘 찾는 것과 같은 일이 동시에 일어났다. 간절함이 낳은 기막힌 우연의 일치였다.

▲ 예비언론인들이 강의를 경청하고 있다. 대학언론의 기자•PD와 언론고시 준비생 등이 전국 각지에서 모였다. ⓒ 이민호

사람을 섬기는 기자가 ‘진짜 기자’

‘최찾사’는 정현식 전 K스포츠 사무총장을 인터뷰했다. 재단의 내밀한 사정을 잘 아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류 기자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정 사무총장 집을 찾았으나 문전박대를 당했다. 류 기자는 공손히 명함을 내밀며 연락을 달라고 했다. 취재원에게 예의를 갖추자 제보를 받을 수 있었다. 정 전 사무총장이 사건 전모를 털어놓은 것이다. 취재진이 정 전 사무총장에게 <한겨레> 20년사 책인 <희망으로 가는 길>을 주며 믿음을 준 게 것도 한몫했다.

“한겨레는 가난하고 작은 신문사입니다. 정치적 견해는 선생님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의를 보고 타협하지 않는 신문입니다. 그리고 정직합니다. 저희 입맛에 맞게 사실을 왜곡하지 않습니다. 저희를 믿고, 선생님이 보고 들으신 걸 말씀해주십시오.”

<한겨레> 취재팀은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K스포츠재단이 SK그룹에게 80억원을 요구한 것과 롯데그룹이 최순실에게 70억원을 준 사실 등 한동안 다른 언론은 거의 받지 않은 ‘고독한 특종’을 잇달아 터뜨렸다. 이듬해 정 전 사무총장은 진실을 밝힌 취재에 고마움을 표하려고 김 기자와 류 기자를 초대했다. 그는 김 기자를 보자마자 껴안으며 “형제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취재할 때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통하는 것을 절대로 빠뜨릴 수 없다”고 당시를 회상하며 “사람을 섬기라”고 강조했다.

“기자·PD란 좋은 세상을 만들려는 꿈을 꾸는 자”

▲ 장해랑 EBS 사장이 예비언론인이 갖춰야 할 덕목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2014년부터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였고 사장이 된 이번 학기에도 프로그램기획구성론을 가르쳤다. ⓒ 임형준

“신문이 뭔가요? 방송이 뭔가요? 기자란 누군가요? PD란 누군가요?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던진 적 있나요? 이런 철학적 질문부터 던지세요. 그 답을 찾고 나면 세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부터 보세요.” 

장해랑 EBS(교육방송) 사장은 ‘공영방송의 비전과 원하는 인재’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언론인이 되려면 언론이 해야 할 일을 먼저 파악하라”고 말했다. 그는 “단지 프로그램과 기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금기와 성역에 도전할 수 있고 세상의 진실을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것이 기자·PD”라며 “좋은 언론이 좋은 세상을 만든다”고 강조했다.

▲ 교수진의 열강에 캠프 참가자들이 열중하고 있다. ⓒ 임형준

장 사장은 기사와 프로그램이 담아야 할 철학으로 ‘기록정신’과 ‘시대정신’을 꼽았다. 그는 “KBS와 MBC가 무너진 것은 우리가 알아야 할 삶의 현장을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언론이 ‘기록’이라는 저널리즘적 역할을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장 사장은 “EBS도 시대 흐름에 맞춰 ‘지식민주교육’과 ‘창의융합교육’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2018년이라는 시대에 맞는 언론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뉴미디어’에 잘 적응할 것을 강조했다. 그는 “언론사들이 올드 저널리즘의 기능을 강화하는 동시에 뉴미디어에 잘 적응하고 변신하지 않으면 독자를 만날 방법이 없어질 것”이라며 “언론사가 원하는 인재가 되기 위해서는 디지털·모바일 시대에 맞는 다양한 플랫폼과 콘텐츠를 파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강의를 마무리 하며 “좋은 세상을 만들려는 꿈을 꾸는 자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첫날 강의가 끝나고 밤 10시에 시작된 ‘사귐의 시간’에는 캠프 참가자는 물론이고 교수강사진과 저널리즘스쿨 재학생, 그리고 과일 상자를 갖고 온 몇몇 졸업생들까지 함께해 새벽 1시가 넘도록 뜻깊은 대화를 나눴다. 상당수 학생들은 교수들이 경품으로 내놓은 저서들을 받았는데, 단체게임에서 우승한 기자2반은 전원이 이봉수 교수가 쓴 <중립에 기어를 넣고는 달릴 수 없다>는 미디어비평집을 받았다.

▲ 캠프 첫날 밤에는 치맥 파티가 열려 자기소개, 상식퀴즈 등으로 경품을 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제정임 교수(왼쪽 줄 앞에서 네번째)와 핀란드 유학중 잠시 귀국한 최원석 전 YTN 기자(오른쪽 줄 가운데, 캠프1기, 저널리즘스쿨4기) 등이 예비언론인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이민호

“가슴이 뜨거워진 시간” 

둘째 날은 언시생들에게 ‘새벽’이나 다름없는 7시20분에 아침을 먹는 것을 시작으로 김문환 교수의 ‘레벨업! 방송리포팅’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이봉수 교수의 ‘개인 DB 만들기’ ‘칼럼쓰기 어렵지 않다’ ‘자기소개서 클리닉’, 제정임 교수의 ‘시사현안 100분 토론’, 김용진 교수의 ‘세상을 바꾸는 힘, 탐사보도’ 등의 강의와 튜토리얼이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1주일 안에 논작·칼럼·PD기획안을 제출하면 온라인 첨삭지도를 받고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에서 당선되면 책 선물을 받게 된다.

캠프 참가자들은 서울행 전세버스 등에 올라 귀가하기 전 ‘최후의 만찬’을 즐기며 석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최고령자인 이응주(34·세종대 영어영문 졸)씨는 “가슴을 뜨겁게 불태운 시간이었다”며 “예비언론인으로서 과연 준비를 잘하고 있는 건지 불안감을 안고 있던 참가자들에게 따끔한 충고와 용기를 준 감사한 자리였다”고 말했다.

김태형(26·동아대 관광경영 졸)씨는 “오랫동안 언론고시를 준비하며 이 길이 정말 내게 맞는지 고민하다 캠프에 참가했다”며 “교수님들의 열강과 캠프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좋은 언론인’이야말로 인생을 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편집 : 곽호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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