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박진홍 기자

▲ 박진홍 기자

“자본주의에서 불평등이 사라지지 않는 건 토지소유자들이 사회가 만든 부를 수탈하기 때문이다.” <진보와 빈곤>을 쓴 경제학자 헨리 조지는 토지 독점이 불황과 빈곤을 불러온다고 설명했다. 생산물의 가치는 지대‧이윤‧임금으로 나눠 갖게 되는데, 지대가 커질수록 임금이 줄어 일하는 사람 몫은 줄고 땅 주인 몫은 커지기 때문이다. 조지가 1879년 지적한 내용은 2017년 우리나라 상황을 보고 묘사한 듯하다. 양극화 해소가 모든 대통령 후보의 공약이었을 정도로 불평등이 심한 나라의 GDP 1,400조원 중 매매차익‧임대료 등 부동산에서 나온 소득이 400조다. 복지를 위한 증세를 논할 때 부동산을 가장 먼저 다뤄야 하는 이유다.

고속 경제성장을 이룬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혜택을 본 이들은 부동산 보유자다. 경실련에 따르면 1964년부터 50년간 쌀값이 45배, 휘발유값이 62배 오를 동안 민간 소유 땅값은 5,000배가 뛰었다. GDP 증가분의 4배를 넘는 수치다. 땀이 아닌 땅이 돈을 버는 나라다. 땅으로 번 돈은 상류층 몫이었다. 땅값 상승 불로소득 6,700조원은 상위 1%가 38%, 10%가 83%을 가져갔다. 땅값이 오르면 주택 분양가‧거래가가 올라가고 임대료와 상품 제조원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부동산 부자들은 앉아서 계속 돈을 벌고, 땅값 상승에 따른 부담은 집이나 땅 없는 사람들‧자영업자‧소비자에게 돌아간다.

▲ 우리나라에서 고속 성장 혜택을 가장 많이 본 이들은 부동산 보유자다. ⓒ flickr

부동산 보유가 불러온 불평등은 보유세로 풀어야 한다. 보유세를 올리고 거래세를 내리면 불로소득을 비정상으로 많이 올리는 상류층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는 동시에, 불필요한 부동산 매각으로 이어져 실수요자가 혜택을 본다.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 집 없는 사람이 구매할 수 있고, 걷은 세금으로 정부가 부동산을 직접 매입해 필요한 사람에게 공급하는 등 각종 주거지원 정책을 펼칠 수도 있다.

현실은 정반대다. 2015년 부동산 보유세로 거둬들인 세금은 9조5683억원이었지만, 부동산 취득세로 걷은 세금은 16조8053억원으로 보유세보다 7조원가량 많았다. 부의 재분배를 통한 불평등 완화는 국가가 세금을 걷는 목적이자 효과다. 보유세를 배 이상 걷어도 부동산 소득 재분배를 달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판에, 다주택 보유자 등 부동산을 많이 가진 사람에게 관대한 현재 조세제도는 재분배는커녕 불평등을 고착화한다.

조지는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일해서 벌어들인 소득세 등 다른 세금은 모두 없애고 토지에만 세금을 물리자는 ‘토지단일세’ 도입을 주장했다. 토지사유제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현대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무리지만,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자조까지 나오는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불로소득을 최대한 세금으로 환수하자는 ‘조지스트’들의 주장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복지를 위해 증세가 필요하다면 곁가지보다는 가장 불평등한 기둥부터 과감히 뿌리뽑아야 한다.

▲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작년 12월 27일 열린 <2018년 경제정책방향 합동브리핑>에서 "보유세율 인상 언급은 앞서 나간 얘기"라며 선을 그었다. ⓒ 연합뉴스TV

근원적 처방은 부동산 보유세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힘있는 집권 초기에 보유세 처방을 외면했다. 부동산 문제가 가라앉지 않자 ‘2018년 경제정책방향 합동브리핑’에서 보유세 개편 방침을 다시 꺼냈지만 정책의지가 강한 것 같지는 않다. 김동연 부총리는 “보유세율 인상은 앞서 나간 얘기”라며 “공시지가 등 여러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의지가 강력해도 뚫기 힘드는 게 보유세 저항인데 스스로 힘을 빼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부르주아의 일상사를 처리하는 위원회’에 머물 작정인가?


편집 : 이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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