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집 재밌는 곳] 영주 부석사

부석사 일주문 가는 도로는 화엄 세계로 올라가는 길이다. 가을이면 양쪽으로 빨간 사과가 열린 과수원이 펼쳐지고 노란색으로 물든 은행나무 길을 오르다 보면 화엄 도량 부석사 경내로 들어선다.

빨간 사과와 노란 은행잎의 시선 쟁탈전

오르막 직선도로가 따분해 보일까 봐 배려해둔 걸까? 길에는 쓸지 않은 은행잎이 수북이 쌓여 걷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빨간 사과와 노란 은행잎이 서로 시선을 빼앗으려 경쟁한다. 오르막길을 걷는 이들의 발걸음은 사진 욕심에 더욱 더디다. 그러나 극락세계에 먼저 갔다 온 이들의 내려가는 발걸음은 가볍고 얼굴은 부처의 온화한 미소를 흉내 내는 듯하다. 싸웠던 부부도 다정하게 손잡고 내려오는 길이다.

▲ 부석사는 일주문으로 오르는 길부터 탐방객의 시선을 빼앗는다. ⓒ 안형기

일주문을 거쳐 천왕문을 지나면 불교의 108번뇌를 상징하는 108계단이 시작된다. 실제로는 108개보다 많지만 묵직한 돌계단을 디딜 때마다 ‘청춘의 고뇌’도 사라지는 듯하다. 돌계단을 두 팔을 벌리듯 안고 있는 석축은 길이 75m, 높이 4.3m나 되는데, 큰 막돌 사이에 작은 돌을 채워 넣어 빈틈없이 어우러진 모습을 하고 있다. 창건주 의상이 <법성게(法性偈)>에서 말한 “모든 것이 원만하게 조화하여 두 모습으로 나뉨이 없고, 하나가 곧 모두요 모두가 곧 하나”라는 원융(圓融)의 경지가 석축에도 구현되고 있다.

가람 배치와 설계에도 불심 깃들어

범종루 앞뜰에 이르니 문화재해설사의 설명이 한창이다. “부석사는 가을에 오면 더 좋은 곳입니다. 젊은 사람보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오면 더 좋지요.” 둘러선 어르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 앞은 팔작지붕 뒤는 맞배지붕을 얹은 범종루는 수려한 멋과 단아함이 살아있는 누각이다. ⓒ 안형기

보통 전통 건축물은 정면은 길고 측면이 짧지만, 범종루는 정면이 짧고 측면은 길다. 범종루는 팔작지붕 얼굴에 맞배지붕 뒤통수를 한 독특한 건축미를 뽐내는 누각이다. 맞배지붕을 얹었다면 뒤로 멀리 보이는 무량수전을 짓누르는 형국이지만, 팔작지붕을 얹음으로써 부처가 계신 곳을 누르는 것을 막았다. 설계자의 불심(佛心)이 숨어있는 것이다. 범종(梵鐘)이 있어 범종루였지만 지금 범종은 범종각에 따로 보관한다. 법고(法鼓)와 목어(木魚)만이 덩그러니 걸려있어 허전함이 남았다.

극락왕생의 길이 여기에

▲ 부석사 무량수전은 자리앉음새가 탁월하다. 봉황산 자락이 두 팔 벌려 껴안은 듯한 모양새다. 멀리 안양루와 무량수전 지붕이 보인다. ⓒ 안형기

안양(安養)은 극락(極樂)의 또 다른 말이니 안양문을 통과하는 것은 극락으로 가는 셈이다. 안양루 아래 안양문에 있는 묵직한 돌계단을 디디고 올라서면 국보 17호인 석등을 마주하게 된다. 석등이 국보 18호인 무량수전의 중심부에서 왼쪽으로 살짝 벗어나 있어, 찾는 이는 자연스레 석등의 오른편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무량수전 아미타불은 정면이 아닌 왼쪽에 자리 잡고 있다. 서방정토인 극락세계를 무량수전에 표현한 듯하다.

▲ 무량수전 앞 석등 네 면에 정교하게 새겨진 보살상. 독특한 점은 사진에 보이는 이 보살만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는 건데, 연유는 아직 모른다. ⓒ 안형기

정토신앙에서는 이런 가람 배치를 극락세계에 이르는 방법 가운데 하나인 구품만다라를 구현한 것이라 본다. 천왕문에서 범종루 앞마당까지 하품단, 범종루에서 안양루까지 중품단, 안양루에서 무량수전까지가 상품단이다. ‘삼품삼생론’으로 <무량수경>에 나오는 말이다. 극락세계에서 왕생하는 아홉 단계다. 속세에서 온 중생들은 무량수전에 들어서는 순간 진정한 극락세계의 길을 가는 것이다. 다른 해석도 있는데 천왕문에서 무량수전에 이르는 10단계의 석단 배치가 화엄경에 나오는 10지도론이라는 것이다. 부석사가 화엄십찰 가운데 하나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곡선의 푸근함에 기대고 싶은 배흘림기둥

절을 지은 이의 지혜는 무량수전에도 배어있다. 우리나라에서 봉정사 극락전 다음으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라는 역사적 가치가 버금이라면 과학적 건축미는 으뜸이다. 무량수전의 씩씩하고도 우아한 팔작지붕을 떠받치는 것은 배흘림기둥과 활주다. 배흘림기둥은 기둥 가운데를 불룩하게 깎아 만든 것으로 흔히 기둥이 가늘어 보이는 착시현상을 보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착시 보정을 위한 것이라면 우리 눈에는 원통형으로 보여야 한다는 서현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의 지적도 일리 있지만, 기둥에 곡선의 푸근함을 입히려 한 의도가 아닐까?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을 쓴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자세를 취해보고 싶은 욕망이 문득 생기는 이유다.

▲ 극락세계에 이르는 곳인 무량수전은 빼어난 건축미를 자랑한다. ⓒ 이연주

무량수전은 팔작지붕 집으로 정면 다섯 칸에 측면 세 칸이다. 설계자는 길게 내뻗은 모서리 처마인 추녀가 처지는 것을 막기 위해 활주라는 기둥을 받쳐 건물에 안정감을 더했다. 활주가 없으면 팔작지붕의 추녀가 처져 우울한 곡선이 됐을지도 모른다. 주심포 양식은 견고해 경외감마저 든다. 가장자리 기둥 윗부분인 귀기둥은 안쏠림 기법을 써 보가 무너지는 것을 막았다. 무량수전은 전통 목조건축 기술의 총집합체이다.

스님을 사랑한 여인의 사연

무량수전 왼편으로 돌아가면 나타나는 거대한 바위가 바로 부석(浮石)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부석사의 ‘뜬 돌’에 대한 감상을 <택리지>에 남겼다.

“불전 뒤에 큰 바위 하나가 옆으로 서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두 돌 사이가 서로 이어지거나 눌러져 있지 않다. 조금 빈틈이 있어, 실을 넘기면 걸리지 않고 드나든다. 그제야 비로소 떠 있는 돌(浮石)인 줄 알게 된다. 절이 돌 때문에 ‘부석사’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이렇게 떠 있는 이치는 자못 알 수가 없다.”

▲ 부석사 창건 설화가 깃든 ‘부석’. 동전 따위를 바위에 붙이며 소원을 이뤄달라는 인간의 이기심이 문화재를 해치고 있는 현장이다. ⓒ 안형기

이 뜬 돌에는 부석사 창건 설화가 숨어있다. 송나라 승려 찬녕의 <송고승전>이 자세히 전한다. 의상과 원효가 불법을 구하러 당나라에 유학 가다가 원효는 중도에 깨달음을 얻고 돌아왔다. 의상은 당에서 한 신도집에 머물렀는데 그 집 딸인 선묘가 의상에게 반했다. 그러나 선묘는 속세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고 몇 번이든지 다시 환생해서 의상을 스승으로 삼고 귀명(歸命)해 의상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맹세했다.

▲ 선묘는 기꺼이 용으로 변해 의상의 귀국을 도왔다. 선묘각에 걸려있는 그림이다. ⓒ 이연주

의상이 화엄학을 배우고 귀국하던 날 선묘가 손수 지은 법복을 전해주려 부둣가에 갔지만, 의상은 이미 떠난 뒤였다. 선묘는 의상이 무사히 신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며 바다에 몸을 던져 용이 됐고, 의상이 탄 배를 호위했다. 의상은 봉황산 중턱에 이르러 이곳이야말로 참된 법륜을 굴릴만한 곳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소승 잡배 무리 500명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에 선묘가 큰 바위로 변해 하늘로 떠오르자 무리가 놀라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이곳에서 의상은 운집하는 대중에게 화엄경을 설파했고 문무왕 16년(676) 부석사를 창건했다.

이보다 아름다운 정원이 있을까

▲ 조사당과 선비화. 과잉보호가 자연스러운 멋을 해친다. ⓒ 이연주

삼층석탑 옆으로 난 오솔길을 올라가면 의상의 초상을 모신 국보 19호 조사당이 맞배지붕의 담백함을 드러낸다. 이 단정한 기품을 해치는 것은 조사당 정면 반쪽을 차지한 투명 구조물이다. 의상대사가 땅에 박은 지팡이에서 잎이 자라 골람초가 됐다는 이른바 ‘선비화(禪扉花)’를 인간의 손길에서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철망도 모자라 투명 아크릴 같은 것으로 박스를 씌워놓았는데 과도한 보호장치가 아닌지 모르겠다.

▲ 소백산맥의 장관이 안양루 기둥 사이로 병풍처럼 들어온다. ⓒ 이연주

부석사는 소백산맥을 정원으로 삼은 차경(借景)이 일품이다. 무량수전과 안양루, 산줄기의 곡선미가 물결치듯 이어진다. 가을의 해질녘은 아름다움을 덮어버리니 더욱 쓸쓸해 보인다. 저물어가는 주변 풍경을 열심힌 사진에 담은들 떠나야 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최순우 선생은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지만, 우리는 무엇을 묻고 또 답해야 할까?

▲ 늦가을 부석사에서 바라본 일몰. 봉황산에는 어스름이 깔렸지만 멀리 소백산맥 능선 너머에는 아직 노을이 붉다. ⓒ 안형기

 


편집 : 조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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