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그들을 밟고는 민주주의가 설 수 없다

기사승인 2017.11.12  11:33:22

공유
default_news_ad1

- [단비발언대] 안형기 기자

   
▲ 안형기 기자

지난겨울 광장엔 민주주의를 외치는 촛불이 뜨거웠지만, 지금은 불행히도 ‘혐오’가 넘실대고 있다. 지난 19대 대선 TV토론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유도 질문에 넘어가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말한 게 기폭제였다. 기대했던 후보에게 상처받은 성 소수자들이 반발하자 자칭 촛불 시민 중 일부는 그들을 공격했다. “문재인이 만만해 보이냐”, “저들의 행위는 테러다” 등의 독기 서린 말들이, 기자회견장에서 문 후보 연설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요구사항을 외친 성 소수자들에게 쏟아졌다. 인터넷 게시판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이런 혐오의 발언을 쏟아낸 사람들은 꼭 ‘수구꼴통’이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만은 아니었다.

   
▲ 지난 19대 대선 4차 TV토론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동성애 반대 발언에 성 소수자 단체가 항의하고 있다. ⓒ YTN 뉴스 갈무리

광장의 대중이 표출하던 성 소수자 혐오는 이제 새로운 정치공세의 도구로 정치인들의 손에 쥐어졌다. 색깔론과 지역주의의 ‘약발’이 예전만큼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정치인들은 재빨리 대중의 ‘성 소수자 혐오’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보수 야당은 동성애 질시를 공격적으로 활용하며 보수 기독교단 등 지지계층의 결집을 노리고 있다. ‘진보’를 자처해온 집권 여당은 종교인들의 눈치를 살피며 과거에 공약했던 차별금지법 제정 등에서 뒷걸음을 치고 있다.

지난 몇 달간 진행된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는 이런 상황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와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성 소수자 혐오’가 넘쳐나는 현장이었다. 자유한국당 이채익 의원은 김명수 후보자 청문회에서 성 소수자를 근친상간, 소아성애, 시체성애 등에 비유하며 “성 소수자를 인정하면 인간 파괴와 파탄이 불 보듯 뻔하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김 후보자에게 “동성애 부분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보이라”고 다그쳤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김 후보자가 동성애를 옹호한다는 건 허위사실’이라고 해명하기에 급급했다. 헌법에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보장되어 있고,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는 나라에서 대법원이 ‘혐오의 정치’에 무릎을 꿇은 셈이다.

올해 초 <한겨레>는 촛불 이후 한국 사회에 필요한 개혁과제를 선정하기 위해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시민들에게 물었다. 설문조사 결과 최우선 개혁과제로 ‘검찰의 공정성과 독립성 확보’(19.9%)가 꼽혔고, 두 번째로 ‘시민의 직접 정치참여’(13.7%)가 선택됐다. ‘경제적 불평등 완화’와 ‘재벌 개혁’은 그다음이었다. 촛불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낸 시민들은 앞으로도 자신들의 다양한 요구가 바로 반영될 수 있도록 정치과정이 개혁되길 희망했다. 그렇다면 누구보다도 그런 직접 참여를 통해 현실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이 바로 극심한 차별과 혐오에 시달리는 성 소수자들 아닐까.

   
▲ 촛불 이후 한국 사회에 필요한 개혁과제로 시민들은 검찰개혁에 이어 시민의 직접 정치참여를 꼽았다. ⓒ freeqration

촛불의 힘으로 정권교체의 등성이를 넘은 우리는 이제 좀 더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지향해야 마땅하다. 다양한 시민의 정치참여가 꽃피길 희망하면서, 한편으로 성 소수자 혐오를 함부로 내뱉는 사람들이 많다면 우리 민주주의의 앞날은 어둡다. 성 소수자를 차별하는 사회는 다른 무엇도 차별할 수 있는 사회다. 여성이라고, 비정규직이라고, 장애인이라고, 이주민이라고 부당하게 차별하는 일들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개인의 성적지향이나 성 정체성은 피부 색깔이 각각인 것처럼 ‘다른’ 특성일 뿐, 옳고 그르거나 우열을 가릴 수 있는 요소가 아니다. 단지 대다수 구성원과 다른 특성을 가졌다고 해서 소수자들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나라는 국민 모두의 주권과 존엄성을 보장해야 하는 민주주의 요건에 미달이다.

성 소수자 혐오가 정치 책략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는 지금, 시민들은 다시 촛불을 들어야 한다. 부당한 차별과 배제, 공격 앞에 얼굴을 드러내지도 못한 채 신음하는 성 소수자들을 끌어안아야 한다. 당장 목표는 성별, 장애, 인종, 종교, 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부당하게 차별하지 못하도록 처벌규정을 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혐오의 전위대가 되는 대신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뛰도록, 광장의 시민들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더 크게 외쳐야 한다.


편집 : 임형준 기자

안형기 기자 indiepublic@naver.com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