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사드 (1) 경북 성주군 소성리

2016년 9월 30일. 국방부는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롯데스카이힐 성주컨트리클럽 골프장(이하 롯데골프장)을 사드 체계(THAAD·종말단계 고고도지역방어체계) 배치부지로 최종결정했다. 이후 주한미군은 두 번에 걸쳐(2017년 4월 26일·9월 7일) 사드 포대 임시배치를 마쳤다. 그사이 국정 농단의 박근혜 정부가 촛불 민심으로 물러나고 국민의 새로운 선택으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사드 배치를 온몸으로 막고자 했던 소성리 주민들에게 지난 1년은 어떤 의미였을까? 정권 교체는 무슨 의미를 가질까? 현지 주민들을 만나 취재한 진솔한 이야기를 2회에 나눠 싣는다. (편집자)

지난 21일 토요일 오전, 김천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틀자 ‘사드배치 결사반대’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왕복 2차선 도로 양옆은 플래카드로 가득 찼다. 빼곡한 플래카드 너머로 수확기 황금 들녘이 가을바람에 출렁였다. 9월 7일 사드 발사대 4기의 추가 임시배치가 단행되던 날. 소성리 주민과 경찰 8천여 명이 밤새워 대치하던 모습을 떠올리기 쉽지 않을 만큼 평화롭고 고즈넉한 분위기다.

▲ 소성리로 들어가는 길에 바라본 풍경. 수확기를 맞아 농민의 손길을 기다리는 황금들녘이 출렁인다. ⓒ 이민호
▲ 산과 산 사이 아늑하게 자리한 소성리는 ‘고향’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린다. 오른쪽 뒤편으로 사드 반대 단체에 붙인 플래카드가 보인다. ⓒ 이민호

갈등의 현장 소성리 보건진료소 앞에 도착하자 2명의 경찰과 경찰승합차가 눈에 들어왔다. 갈등이 끝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복선일까. 경찰을 뒤로하고 소성리 일대 플래카드와 마을 분위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그때 훤칠한 키에 야구 모자를 눌러쓴 남성이 다가왔다.

“여기 사진 찍으시면 안 돼요. 어디서 나오셨어요?”

소성리 사드철회 성주주민대책위원회(이하 소성리주민대책위) 종합상황실 김영재(47) 팀장이었다. 신분을 밝히고 취재 이유를 설명하니 종합상황실 대변인을 맡고 있는 원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 강현욱(35) 교무에게 안내해 줬다.

언론의 왜곡보도가 무장경찰보다 더 큰 공포

강 교무에게 사진 촬영에 민감한 이유를 물으니 바로 답이 돌아왔다. “일부 보수 언론과 지역 언론의 왜곡 보도 때문입니다.”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어간다. “언론은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무엇이 문제인지, 어디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따져서 기사를 써야 하는데, 지금은 중립적인 기사만 나와도 감지덕지인 상황일 만큼 왜곡이 심해요.” 아쉬움 가득한 볼멘 표정이다.

“사드 포대 배치가 완료된 뒤로는 주요언론에서 소성리의 목소리를 찾기 어려워졌어요. 언론이 나라에 영향을 주는 거대 담론은 다루지만, 일상 폭력에 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뼈 있는 지적에 한마디 덧붙인다. “사드 반대 투쟁의 의미를 이 지역 문제로 좁히지 말고,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문제로 확장하면 좋겠습니다.”

강 교무의 안내를 받아 마을회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100m 남짓한 오르막길에 소성리 주민이 세운 통행 제한 입간판과 지난 9월 사드 추가배치 당시 경찰이 철거한 천막 등의 잔해가 수북이 쌓였다. 마을회관 앞마당에 이르자 사드 반대 집회와 촛불문화제를 위한 무대 배경 현수막의 ‘평화’라는 큼직한 붓글씨가 맞아주었다.

▲ 지난 9월 사드 추가배치 당시 경찰이 강제 철거한 천막과 잔해 더미. ⓒ 이민호
▲ 마을회관 앞마당 무대 전경 사진. ⓒ 이민호

마을회관 안으로 들어가자 해장국 냄새가 피어올랐다. 사드 반대 포스터와 현수막으로 벽면이 도배된 회관 거실에서 할머니 세 분이 식사를 준비하고 계셨다. 나그네와 밥한 끼라도 나누는 할머니들 인심에 해장국 한 그릇을 건네받아 거실 한쪽에서 숟가락을 들었다.

“아까 마을 입구에서 사진 찍고 계셨을 때, 저희한테 바로 신고 들어왔어요. 외부인이 사진 찍는다고. 그래서 저희는 조중동에서 나온 줄 알았다니까요.”

맞은편에서 식사하던 김영재 팀장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그 역시 일부 언론사의 왜곡 보도에 불만이 쌓여있었다. “일부 언론 보도의 경우 주민들에게 너무나 큰 상처를 줍니다.” 어떤 상처일까? “사드와 소성리에 대한 왜곡 보도가 나가면 전국 단위로 극우단체들이 찾아와 협박시위는 물론 욕설과 기물파손 등으로 주민들의 삶을 무너트립니다.”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사드배치 이후 서로 얼굴만 쳐다봐도 울었다”

식사를 마친 뒤 마을회관 한편에 앉아계시던 도금연(81·초전면 소성리), 박규란(67·초전면 소성리), 임순분(64·초전면 소성리) 세 분의 할머니에게 조심스레 사드 배치 이후 달라진 삶에 관해 물었다. 임순분 할머니가 종이컵에 커피믹스를 타주시며 말문을 열었다.

“80이 넘은 할머니 한분이 사드 생각하며 방에 누워있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여기서 막 싸우고 했던 것들 있잖아. 그게 보인거야. 얼핏 깨어나 내가 빨리 가서 사드 막아야 된다고 막 뛰쳐나왔대. 빨리 가려고 신발도 안 신고 미는 거(보행보조 유모차) 밀고 막 여기까지 올라오니까 아무도 없는 깜깜한 밤이었다고 하더라구.”

사드 후유증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증언은 계속된다. 소성리 부녀회장을 맡고 있는 임 할머니가 왜 얼굴을 마스크로 반쯤 가리는지 도금연 할머니가 설명하면서다. “미군이 온 날(지난 4월 26일 사드 포대 핵심장비인 X-밴드 레이더와 발사대 2기를 배치한 날), 골프장으로 올라가던 길목을 막고 있었는데. 경찰이 팔꿈치로 입을 친 거야. 실신했다 깨어나 보니 앞니가 심하게 흔들렸고 결국 모두 뽑아냈어.” 그 뒤 임 할머니는 커다란 마스크로 늘 얼굴을 가리고 다닌다.

임 할머니는 “나 같은 경우도 (사드 배치 이후) 한참 동안 꿈속에서 사드 차량 들어오는 거, 이런 거에 매일같이 시달렸어. 배치 이후 열흘 정도는 우리끼리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도 울었지.” 처음에는 그때 질문을 받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다고 들려준다.

“우리가 또 다시 얘기를 하면 울어야 하잖아. 일단은 눈물이 먼저 나와. 그리고 너무너무 아팠잖아 우리가. 정신적으로도 아팠고.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그 자체가 힘들었어.”

힘들 때 함께 해준 외부의 성원

지친 삶을 치유해주고 함께 버텨준 것은 전국에서 오는 자원봉사자들과 이곳에서 ‘지킴이’로 불리는 소성리주민대책위다. “저 멀리 상주에서 출근하는 지킴이들은 직장에서 퇴근하고 바로 이리로 와서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청소만 해놓고 갔어. 우리가 서서히 마음 치료도 좀 되고, 그분들 덕분에 우리가 다시 사드 빼낼 때까지 싸우자고 다잡을 수 있었지.” 임 할머니의 말이다. 지킴이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소성리를 방문해 주민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해주는 동안 지자체나 정부 차원에서 내민 손길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어. 소성리 주민들 치료를 좀 해야 된다, 검사를 좀 해봐야 된다, 이런 이야기를 했지. 다쳤는데 병원을 안 갔어. 심하게 다친 사람은 병원에 갔지만 찰과상 같은 것은 병원에 안 갔는데. 그런데 정부가 아직까지 그 어떤 것도....”

“박근혜 사드는 나쁜 사드고 문재인 사드는 착한사드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대통령 당선 뒤, 변화가 찾아왔다. 강렬하면서도 꾸준했던 사드 반대 목소리가 전보다 시들해졌다. 지난 8월에는 성주읍에서 주로 활동하는 ‘사드 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이하 성주투쟁위)’가 투쟁방법과 운영 방식에 대한 견해 차이로 ‘사드배치반대 연대회의체’에서 탈퇴했다. 임 할머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성주촛불(성주투쟁위)은 문재인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아. 일단은 우리가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면 듣기가 싫으니까 집회도중에도 빠져나가버리고 이러면서.... 심지어는 ‘박근혜 사드는 나쁜 사드고 문재인 사드는 착한 사드’라고 공개발언을 해버리는.... 그래서 내가 그런 발언을 한 사람에게 사드는 다 똑같은 사드지 박근혜 사드와 문재인 사드가 다른 게 뭐냐고....”

임 할머니의 격양된 감정은 사드 임시배치를 강행한 국방부와 문재인 정부로 옮겨갔다. 언론에는 정부 관계자나 국방부 장·차관이 소성리 주민들과 대화를 시도했다고 보도되지만, 주민 누구도 그들과 대화를 한 적이 없다. 실제 배치 장소와 거리가 멀리 떨어진 성주읍 주민들의 여론만 듣고 배치를 강행했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사드 해결에 대한 복안을 갖고 있다고 했지만, 그 복안이 한밤중 12시부터 ‘군사작전’하듯 주민들을 끌어내며 기습 배치하는 것이냐”며 목청을 돋운다.

또 다른 변화는 사드 배치와 관련한 성주 군수의 입장이다. 임 할머니는 “최초 사드 배치 부지로 성주읍이 선정되었을 당시 절대 반대 입장에 섰던 군수가 소성리로 배치부지가 바뀌자 돌아섰다”고 말했다. 사드부지가 성주 끝자락인 소성리로 옮겨져 김천을 향하자 군수가 중앙 정부 예산을 챙길 수 있는 사드 찬성으로 선회했다는 얘기다.

“열손가락 중에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 그러나 부득이하게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 이게 군수 얘기야. 그래서 내가 소성도 성주다, 왜 버린 자식 취급하냐고 따지니까 ‘마음은 아프다 그러나 여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더라고. 여기 소성은 인구도 적고 나이 많은 어르신들만 살고 이러니까 이쪽은 버리고 나머지를 껴안겠다는 거지.”

주한미군의 미사일기지가 된 소성리

임순분 할머니와 대화를 마치고 마을 회관을 나와 사드가 배치된 롯데골프장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마을회관에서 북쪽으로 나 있는 소성길은 롯데골프장 입구 격인 진밭교까지 700m 오르막길이다. 소성길 역시 왕복 2차선 도로 양옆으로 플래카드가 빈자리 없이 줄지어 걸렸다.

▲ 소성리 마을회관에서 진밭교로 올라가는 700여 미터 길 양 옆으로 플래카드가 줄지어 걸려있다. 사드 배치 반대 투쟁 연대 단체들이 걸었다. ⓒ 이민호

진밭교를 건너 1.5km 정도 오르면 사드 포대가 나온다. 사드 기지로 올라가는 유일한 도로다. 진밭교를 건너기 전 오른쪽으로 갈라진 샛길은 김천-성주간 국도와 연결된다. 마을회관에서 올라오는 소성길과 이 샛길이 사드 포대 조성에 필요한 공사 장비와 자재를 실어 나르는 보급로다. 소성리 주민들과 지킴이들은 진밭교와 마을회관 앞에서 공사 장비나 자재 수송 차량 통행을 막고 있지만 주한미군은 유류를 비롯해 주요 자재를 헬기로 나른다. 아쉽게도 이날은 주말이어서 헬기나 자재 반입 차량을 목격할 수 없었다.

▲ 사드 기지로 올라가는 길목인 진밭교에서 지킴이들이 나서 공사 차량을 막는다. 진밭교를 건너 1.5km 정도 오르면 롯데골프장 부지가 나오고 그곳에 사드가 배치됐다. 오른쪽 텐트는 원불교에서 세운 평화교당이다. 소성리 평화를 염원하는 원불교도들의 기도가 225일째 이어진다. ⓒ 이민호

진밭교를 건너자 가파른 오르막이다. 10분 정도 오르자 출입금지 경고문이 걸린 바리케이드와 경찰의 검문소가 보였다. 검문소엔 경찰 2명이 근무를 서고 있었다. 경찰 검문소에서 1km가량 더 오르면 사드 포대다.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맑은 계곡의 달마산(해발 680m)이 단풍으로 물드는 사이 주한미군 미사일 기지라는 어색한 옷이 걸쳐졌다.

▲ 진밭교에서 10분쯤 오르면 출입금지 경고문이 걸린 차량통행 차단 구조물이 나온다. ⓒ 이민호

경찰 검문소에서 돌아 다시 진밭교로 내려오는 길에 오르면서 못 봤던 감나무 농장이 보였다. 주먹보다 더 큰 감들이 진한 주황으로 빛났다. 감나무 사이에서 포장지를 접고 있는 주민은 부녀회장 임순분 할머니였다. 일하는 와중에도 임 할머니의 얼굴에는 여전히 커다란 마스크가 그날의 아픔과 함께 씌워져 있었다.

▲ 소성리 부녀회장 임순분 할머니가 감나무 농장에서 작업중이다. 임 씨의 외손주들이 맛있게 홍시를 먹는다. ⓒ 이민호

467일간 끊이지 않고 밝힌 소성리 촛불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저물고 저녁 식사를 마친 주민들이 마을회관 무대 앞으로 하나둘 모였다. 정부의 성주 사드 배치 발표 뒤 하루도 꺼뜨리지 않고 467일째 계속된 촛불 행사다. 이날은 외부 시민들도 함께하는 촛불문화제였다. 송대근(60·초전면 용복리) 씨가 사회 마이크를 잡았다. 지난 9월 ‘사드 반대’를 외치며 분신 사망한 조영삼(58·밀양) 씨 묵념으로 막이 올랐다.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이 이어졌다. 대열 앞쪽 소성리 할머니들 한쪽 손은 촛불을 들고, 다른 손은 주먹을 쥐었다.

▲ 소성리 할머니들이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대열 앞 쪽에 앉아있다. 이날 할머니들은 촛불과 ‘사드뽑고 평화심자’가 적힌 손 팻말을 들고 촛불문화제에 나왔다. ⓒ 이민호

소성리주민대책위 공동위원장 이종희(60·초전면) 씨가 무대에 올랐다. 이 씨는 다큐멘터리 영화 <소성리> 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우리 소성리가 이제 성주 소성리가 아니고, 대한민국 소성리도 아니고, 세계적인 소성리로 자리매김한 것 같습니다. 세계 5대 영화제라고 부산국제영화제를 칭하고 있으니까. 그 세계 5대 영화제에 출품해서 심사위원장이 직접 참석까지 해서 그런 광경을 내가 지켜보고 ‘먼 후세는 반드시 우리 소성리를 평화의 성지로 기록할 것이다’ 이렇게 힘주어 말하고 싶습니다.”

▲ 소성리주민대책위 이종희 공동위원장이 본격적인 문화제행사에 들어가기에 앞서 무대에 올라 격정적인 연설을 펼쳤다. ⓒ 이민호

영화 <밀양아리랑(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 투쟁기·2014)>, <깨어난 침묵(생탁 노동자 파업기·2016)> 등 소외된 이들의 현장을 다큐멘터리로 담아 온 박배일(36·부산) 감독의 노작이다. 영화는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소성리 할머니들의 일상에 갑자기 찾아온 사드의 긴장과 불안을 담았다. <소성리>는 지난 10월 18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은 <플래툰>, <JFK>의 올리버 스톤(71·미국) 감독도 관람과 함께 공감의 목소리를 보탰다.

이 위원장은 영화 <남한산성>에 등장하는 ‘죽음은 참기 어렵지만, 치욕은 참을 수 있다’는 대사 한 구절을 인용하며, 이전보다 사드 반대의 목소리가 작아진 것은 우리 국민이 전쟁의 참상을 직간접적으로 겪었고 그것의 참혹함에 대해 잘 알기에 외면하고 잊으려는 관성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그러면서도 주민과 지킴이들의 용기를 북돋는 말을 잊지 않았다.

“정의롭지 못한 국가공권력과 미국패권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소성리가 세계 평화의 성지가 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이종희 위원장의 연설에 공감하며 경청하고 있는 소성리 주민과 시민. ⓒ 이민호

연설은 제 1야당인 자유한국당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지난번 우리 촛불이 10만 청원 운동을 해서 백악관에 사드철회를 요청을 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 얼빠진 한국당은 미국 백악관 홈페이지에 전술핵 배치 청원운동을 하기로 결정했답니다. 우리는 국가안보를 위해서 사드배치하면 안된다고 청원했는데 일국의 공당이 어떻게 된 건지 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세금으로 세비 받아먹는 놈들이 제나라 정부 놔두고 미국 백악관에다가 청원운동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격정적이었던 이 위원장의 연설이 끝나자 무대 밑에서는 환호성과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할머니들과 주민들은 ‘옳소’, ‘잘한다’ 등의 추임새를 넣었다.

▲ 대구호산고등학교 국어교사 강성규 씨는 제자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감동적인 노래로 소성리 주민과 할머니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 이민호

이 위원장의 연설로 문화제가 한껏 달아오르자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공연 팀의 노래가 이어졌다. 대구호산고등학교 국어교사 강성규(41) 씨와 제자들이 함께 만든 공연은 주민들의 공감을 얻었다. 가수 라디(Ra. D)의 노래 ‘엄마’를 부를 때 옆에 있던 박규란(67·초전면 소성리) 할머니의 볼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감동 속에 촛불문화제가 밤 9시쯤 막을 내렸다. 잠시나마 촛불 속에서 몸과 마음을 녹인 주민들은 사드 후폭풍이 이어지는 일상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편집 : 안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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