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명대 인문주간] 독서골든벨과 인문학특강

“다음 문제입니다. <청춘의 독서>에서 저자는 종의 기원이 인간이 어디에서 왔는지 납득할만한 설명을 최초로 제시한 책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처럼 <종의 기원>을 서술해 인간의 유래를 설명한 작가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외국 사람이죠. 자, 10초 드리겠습니다.”

싸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11월의 첫날, 민송도서관 1층 라운지는 째깍째깍 초침 소리를 배경음 삼아 머리를 싸맨 학생들의 열기로 후끈했다. 대부분은 문제를 듣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정답을 적어낸 반면 답이 생각나지 않는 사람들은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지난 10월 30일부터 11월 2일까지 진행되는 세명대 ‘2017 인문주간’ 행사 중 하나로 열린 독서 골든벨 풍경이다.

▲ 민송도서관 임진택 과장이 진행한 골든벨에서 학생들이 나름대로 생각한 답을 적은 화이트보드를 들어올리고 있다. ⓒ 유선희

“정답 들어주세요! 어디 보자. 다윈, 찰스 다윈... 포기? 벌써 포기하면 어떡해? 문제가 많이 남았어요.”

주어진 시간이 지났음을 알리는 사회자 임진택 민송도서관 과장의 목소리가 들리자 학생들은 답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임 과장은 화이트보드에 적힌 답들을 둘러보다 ‘포기’라는 글자를 찾아냈다. 골든벨이 시작되자마자 나온 첫 포기자에 좌중에는 웃음이 터졌다.

가을은 ‘독서하기 좋은 계절’이 아닌 ‘취업하기 좋은 계절’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가을은 독서하기 좋은 계절’이란 말은 옛날얘기다. 대기업 공채가 많이 열리는 가을은 ‘취업하기 좋은 계절’로 통한다. 예쁜 모양의 붉고 노란 나뭇잎을 곱게 펴서 책 사이에 끼워 넣곤 하던 가을의 낭만은 사라진 지 오래다. 서늘한 바람과 따스한 햇살이 드는 책상에 앉아 여유 있게 책을 읽는 것은 사치스럽게 여겨질 정도다. 요즘은 공부와 취업으로 내가 필요한 책을 골라서 당장 습득할 필요가 있는 부분만 읽는 ‘편식형 독서’가 대세다. 특히 인문학 분야는 이해하기 어렵고 딱딱한 내용을 다뤄 청년들 사이에서는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이유로 기피하는 이가 많다.

▲ 정답이 발표되자 기쁨과 아쉬움이 엇갈린 표정을 짓는 골든벨 참여자들. ⓒ 유선희

올해 처음 시행된 인문주간은 학생들이 인문학을 친근하고 즐겁게 느낄 수 있도록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독서 골든벨에 출제된 문제는 <나무야 나무야> <덕후감>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청춘의 독서> <자존감 수업>에 서술된 내용으로 구성됐다. 이 책들은 우리 삶에서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사회 현상을 인문학적 요소를 활용해 글로 풀어놓거나, 인문학을 처음 맛보는 사람들이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쓴 것들이다.

행사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받은 사전신청이 조기 마감될 정도로 인문학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50여 명 골든벨 참가자들은 문제를 맞출 때마다 기뻐하는 것은 물론 문답의 의미를 되새기며 지적 호기심도 함께 채우는 모습이었다.

▲ 행사를 지켜보다가 난데없이 시상자로 호명된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이 골든벨을 울린 김차영 씨에게 상을 주고 있다. ⓒ 유선희

이날 골든벨을 울린 주인공은 세명대 간호학과 김차영(25•여) 씨였다. 그는 “기분이 엄청 좋다”며 “이번 2학기 들어 독서동아리에 참여했는데, 그때 독서골든벨이 열린다는 걸 알고 책을 읽으며 준비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생애와 직업이 결부된 인문학적 삶

인문학을 향한 산뜻한 접근은 특강으로도 이어졌다. 강의는 디지털컨텐츠창작학과 김정진 교수가 맡았다. 김 교수는 “직업이나 생계를 인문학적 삶과 결부시켜 사는 게 좋은데 현실에서는 그러기 힘들다”면서 자신의 경험을 소개했다.

“졸업을 하게 되면 원치 않는 회사에서 원치 않는 일을 할 수 있어요. 저도 그랬어요. 졸업하고 무역회사를 3년간 다녔어요. 영어도 짧은데 바이어한테 영어로 거짓말을 하면서 ‘내가 왜 이렇게 원치 않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나는 왜 이렇게 인간적 삶을 살지 못하고 회사에서 바람직한 삶을 살지 못할까’라는 자괴감에 빠졌어요. 그래서 그만두고 글로 입신양명하리라 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쉽지 않았어요. 십 년 넘게 걸렸어요, 문학평론가로, 소설가로 등단하기까지.”

▲ 김정진 교수가 ‘인문학적 삶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유선희

김 교수는 등단 전 유명한 작가들을 만나 배울 점을 찾으면서 “나보다 문학에 대한 관심, 애정, 정보, 지식이 없는 분도 있었다”며 “그때 ‘인문학적 삶과 자기 작품을 연결해 사는 사람이 많지 않구나’라는 걸 느꼈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런데 우리나라 작가 중 자기 삶과 자기 작품을 연결해서 평생 살아온 이가 유일무이하게 염상섭 선생”이라고 설명했다.

염상섭 문학은 그의 삶 자체

김 교수에 따르면 염상섭은 우리나라 작가 중 가장 많은 글을 썼다. 염상섭은 죽음을 맞기 전까지 장편 27편, 단편 180여 편을 남겼다. 평론, 서간문, 문학비평 등도 합하면 총 500여 편의 글을 썼다. 김 교수는 염상섭의 출생부터 소년, 청년, 중년, 노년에 이르기까지 그의 일대기를 청년들에게 전했다. 소설가 염상섭이 삶을 살아가며 겪은 일들은 그의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염상섭의 소설 <해바라기>에 당시 그가 흠모했던 여성화가 나혜석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식이다.

“자기 소설을 쓰려면 DB(데이터베이스)가 있어야 하는데, 염상섭 선생은 자기 삶에서 그런 DB를 계속 가져온 거죠. (문학과 삶을) 연결시켜서 살았어요. (염상섭은) 소설 같은 삶을 살았고, 소설로 자기 삶을 재구성하고 형상화했다는 점이 위대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 교수는 글쓰기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살면서 겪는 이야기를 책으로 쓴다는 것은 참 소중한 일”이라고 말했다. 일기를 쓰면 그 기록으로 ‘젊은 날의 내가 누구인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사실 인문학 특강이라기보다 선배로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말하는 거다”라고 강의의 목적을 요약했다.

“염상섭 씨는 어떻게 그렇게 피곤하게 살았을까요? 그런 걸 반추하면서 (나의 삶을) 생각하면 돼요. 인간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하면 그게 바로 인문학적 삶입니다.”


편집 : 남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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