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 ⑧ 버릴 곳 없는 핵폐기물

“이곳은 우리가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언가를 묻은 곳입니다. 큰 고통을 치르면서 말이에요. 이곳은 당신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건들지 말아야 하는 곳이죠. 절대 가까이 오면 안돼요.”

느리고 낮은 목소리의 내레이션(설명)과 함께 카메라가 어두컴컴한 지하터널 안으로 천천히 들어간다. 잠시 후 어둠 속에서 ‘탁’ 하고 성냥불을 켠 남자가 카메라를 응시하며 비밀을 털어놓듯 말한다.

“여기는 당신들이 와서는 안 되는 곳, ‘온칼로’입니다. 은신처(hiding place)라는 뜻이죠.”

세계 최초의 핵폐기물 영구처분장 ‘온칼로’

▲ 사용후핵연료 처분을 위해 핀란드 올킬루오토(Olkiluoto) 섬에 건설되고 있는 '온칼로(Onkalo)'의 내부사진. ⓒ Posiva

지난 2010년 마이클 매드슨 감독이 덴마크·핀란드·스웨덴·노르웨이 합작으로 만든 다큐멘터리(기록영화) <영원한 봉인>의 첫 장면이다. 이 다큐는 핀란드 남서부 발트해역의 올킬루오토(Olkiluoto) 섬에 건설되고 있는 핵폐기물 처분장 '온칼로(Onkalo)'를 다뤘다. 핀란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폐기물 영구처분장 부지를 확보해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나라다. 지난 2004년 첫 삽을 떴고, 오는 2020년까지 지하 100층 규모의 시설을 지은 뒤 100년간 9000톤(t) 가량의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하게 된다. 그리고 2120년에는 이 공간을 콘크리트 등으로 완전히 메운 뒤 폐쇄할 예정이다.

▲ 핀란드의 올킬루오토섬에 건설 중인 온칼로는 단단한 화강암을 뚫고 지그재그 형태로 만든 5km 길이의 터널 끝에 핵폐기물을 저장하게 된다. 지상으로부터의 깊이는 500m에 달한다. ⓒ Posiva

다큐에 등장하는 각 분야 전문가들은 사용후핵연료의 방사선량이 자연 상태로 줄어드는 데 필요한 ‘최소 10만년’간 어떻게 해야 미래 인류가 온칼로에 ‘침입’하지 않을 것인가를 고민한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말한 ‘당신들’은 바로 미래의 인류다. 까마득한 훗날 인간이 지금과 같은 언어를 그대로 쓴다는 보장이 없고, 어딘가에 기록을 남겨도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라 장담할 수도 없다. 자칫 잘못했다간 인류의 후손들이 사용후핵연료통을 ‘숨겨 놓은 보물’로 오해하고 열어, 치명적인 방사성물질이 대기 중에 퍼지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이들은 걱정한다.

▲ 스웨덴 원전·핵폐기물관리회사(Svensk Kärnbränslehantering AB)의 연구감독 피터 위크버그(왼쪽)와 과학에디터 베릿트 룬드크비스트가 ‘온칼로의 존재를 미래 인류에게 어떻게 경고할지’를 놓고 토론하고 있다. ⓒ 다큐 <영원한 봉인>

미래 인류에게 ‘손대지 마시오’를 알리는 방법은 

다양한 아이디어가 도마에 올랐다. 핵폐기물전문회사인 포시바(Posiva)의 엔지니어링담당 부사장 티모 아이카스는 “비석에 국제연합(UN)의 여러 공용어로 메시지를 적어 세워 놓는 건 어떠냐”는 감독의 질문에 “일정기간은 유효할 것”이라고 말했다. 뒤집어 말하면 장기적으로는 유효하지 않을 것이란 뜻이다. 전문가들은 “여기에 당신들에게 유용한 물건은 없다. 위험한 장소이니 물러나라”하는 의미를 그림(일러스트)으로 표시하자는 아이디어도 제시했다. 또 에드바르트 뭉크의 그림 ‘절규’처럼 공포나 절망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회화를 활용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 여러 나라의 언어로 ‘위험물질이 저장돼있다’는 메시지를 알리는 비석(왼쪽)과 일러스트 활용의 예시. ⓒ 다큐 <영원한 봉인>
▲ 미래 인류가 사용후핵연료봉을 건드리지 않게 하기 위해 에드바르트 뭉크의 그림 ‘절규’처럼 공포나 절망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으로 표시하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 Flickr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보도에 따르면 이런 문제 외에도 핀란드의 환경단체들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지하수의 영향으로 폐기물의 방사성물질이 바다로 새나가진 않을지’, ‘빙하기가 닥쳐서 암반이 갈라지진 않을지’ 등을 걱정하고 있다. 올킬루오토섬의 암반이 매우 단단한 화강암이고 지하수도 적어 현재로선 핵폐기물처리장으로 적합하지만, 과연 10만년 동안 이런 조건에 변화가 없을지 알 수 없다는 얘기다.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건설을 시작도 못한 다른 나라 입장에서 보면 핀란드의 이런 논의는 사치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다큐 <영원한 봉인>은 ‘최소 10만년의 관리’가 필요한 맹독성 위험물질을 현재의 인류가 만들어 낸다는 게 얼마나 무책임한 일이 될 수 있는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안면도, 굴업도, 부안서 방폐장 반대 투쟁 

우리나라는 최초의 원전인 고리1호기가 1978년 상업가동을 시작한 후, 1983년부터 핵폐기물 영구처분시설 부지 확보를 아홉 차례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1990년에는 정부가 충남 태안군 안면도에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을 몰래 건설하려다 주민들의 저항에 부딪혀 백지화했다. 1994년엔 정부가 일방적으로 인천 굴업도를 방폐장 부지로 선정했으나 지질조사 과정에서 지진이 날 수 있는 활성단층이 발견돼 중단했다. 2004년 전북 부안에서도 방폐장 추진 시도가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후 정부는 고준위폐기물(사용후핵연료)과 중저준위폐기물(작업복, 기계부품 등)을 분리해서 저장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주민 반발이 덜한 중저준위폐기장을 경주에 건설, 2015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선을 내뿜는 사용후핵연료는 현재 각 원전 내부의 임시저장소에 보관 중이다. 가동 중이거나 가동정지 상태(고리1호기)인 25기 모두 원전 내에 수영장처럼 생긴 습식저장 시설을 만들어 사용후핵연료의 열을 식히고 있다. 매일 일정한 핵연료다발을 교체해 주어야 하는 중수로인 월성 1~4호기의 경우 습식저장 후 건식저장소에 옮겨 보관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발전소마다 한 개씩 있는 임시저장소는 거의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2019년 월성원전을 시작으로 2024년 한빛과 고리, 2037년 한울, 2038년 신월성원전의 임시저장시설이 포화된다. 사실 월성원전의 경우 올해(2017년)가 포화 시점이었으나 한수원이 수조에 사용후핵연료를 더 조밀하게 저장함으로써 포화 시점을 미뤘다.

원전 부지 ‘임시휴지통’ 2년 후 포화 시작

▲ 원자력발전소별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수조 포화예상연도와 저장률. ⓒ 박수지

조밀저장이란 사용후핵연료의 간격을 좁혀 원래보다 많은 양을 넣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녹색연합 윤기돈(46) 전 사무처장은 “저장을 하는 단계에서는 조밀하게 저장해도 안전하다고 볼 수 있으나, 사고가 나서 냉각장치가 작동하지 않으면 더 많은 양의 사용후핵연료가 같은 수조 안에 있는 만큼 더 많은 열이 발생하고, 더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며 방사능 누출량도 많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 기존저장대(왼쪽)와 더 많은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하기 위해 교체 설치한 조밀저장대(오른쪽)의 모습. ⓒ 한국원자력환경공단

한수원은 조밀저장으로도 2019년이면 포화상태가 되는 월성원전의 임시저장능력을 확충하기 위해 맥스터(조밀건식저장시설) 7기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한수원 최득기(53) 사용후핵연료사업팁장은 "원래는 21기를 지으려했는데, 새 정부 들어와서 설계수명이 지난 원전을 계속 운전하지 않는다는 방침이 있어서 7기만 신청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7기를 지어도 2027년이면 다시 포화되기 때문에 월성 4호기 설계수명인 2029년까지 나오는 연료를 저장하기 위해 2020년쯤 추가로 지을지, (4호기의) 가동을 중단할지 다시 논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상홍(43) 경주 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고준위핵폐기물은 저장고가 다 차면 설계수명과 상관없이 원전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활성단층 조사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지난해 경주에 지진까지 난 상황에서 임시저장시설을 추가 건설해 원전을 운영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뜻이다.

중간저장과 최종처분시설은 아직 논의도 못해

정부는 임시저장소에 있는 사용후핵연료를 중간저장시설을 거쳐 최종처분시설로 옮긴다는 기본 계획만 정해놓고 있다. 2016년 7월 박근혜 정부가 심의, 확정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에 따르면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을 동일 부지에 확보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중간저장은 영구처분시설이 건설될 때까지 지상에서 50~60년간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이고, 영구처분은 10만년 이상 갈 수 있는 지하저장공간을 만들어 사용후핵연료를 인간의 생활권에서 완전히 격리하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사용후핵연료 최종처분시설을 건설하는 데는 부지선정단계부터 총 36년이 걸려, 올해 부지 확보를 시작한다 해도 2053년에야 완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핵폐기장을 짓고 장기간 관리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드는데, 한수원은 이를 감추고 원자력발전단가에도 반영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24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한수원·한국원자력환경공단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홍의락(62·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고준위폐기물 처리장의 건설과 운영에 64조 1301억 원이 소요될 전망이지만 한수원이 사용후핵연료 관리비로 적립한 금액은 4조7384억 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홍 의원은 “중간저장 비용으로 2035년까지 26조3천565억 원, 2053년까지 영구처분 비용으로 37조7천736억 원이 드는데, 한수원이 계상한 사용후핵연료 관리비에는 사고위험에 대비한 보험비만 반영돼 있다”고 주장했다.

▲ 지난 20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정부에 최종권고한 내용에 따르면 시민참여단은 사용후핵연료 처리를 앞으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로 지목했다. ⓒ 연합뉴스TV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공론화를 통해 사용후핵연료 정책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공론화를 다시 추진하는 이유는 지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이뤄진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위원장 홍두승)의 활동이 민주적이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시민사회단체 추천위원들은 위원회 구성이 편향적이라고 이의를 제기하며 불참을 선언했다. 이와 함께 탈원전 정책으로 고준위폐기물 발생량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기본계획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백운규(53) 산업부 장관도 지난달 12일 경주 월성원전을 방문한 자리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사용후핵연료 재공론화 정책을 통해 주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적합한 부지 찾을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사용후핵연료 처리의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보면서도 과연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 비관적인 입장을 보였다. 원자력안전위원을 지낸 김익중(57) 동국대 의대 교수는 “심층처분에 적합한 부지를 찾기 위해서는 전 국토를 조사해야 하는데, 아직 심지층이 어떻게 생겼는지 조사 시작도 하지 않았다”며 “(적합한 땅이) 한반도에 존재할지도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설사 적절한 부지가 있다하더라도 지역주민들이 동의할 리가 없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핵폐기물 처분에 대해 “풀 수 없는 문제라 생각한다”며 “원자력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답을 내놓아야 하는데, 이들 역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원자력은 시작하지 말았어야 옳았다고 생각한다”며 “핵폐기물은 이 땅의 후손들에게 영원히 경제적 부담을 줄 것이고, 위험 또한 떠안겨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처장은 핵폐기물 최종처분장 건설에 대해 “기술 검토와 사회적 합의 모두 중요하다”고 말했다. ⓒ 박수지

양이원영(46)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국 처장은 “독일은 암염이라는 소금덩어리 땅인데 그 단단한 땅에도 핵폐기물을 묻을 결정을 쉽게 못하고 건식저장하면서 더 좋은 기술이 나올 때까지 지켜보고 있다”며 “최종적으로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기술이 나올 때까지 (영구처분장 건설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탈핵에너지교수모임을 이끌었던 이원영(60·수원대·국토미래연구소장) 교수는 “산업자원부가 핵발전소 추진과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동시에 다뤘다면 함부로 원전 건설을 추진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를 따로 다루는 것 자체가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그는 “공론화에 들어가기 이전에 산업자원부가 주민들과 일반 국민에게 여러 대안을 내놓을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 오염, 그리고 후쿠시마 참사가 보여 준 원전재난의 가능성은 ‘더 이상 위험한 에너지에 기댈 수 없다’는 깨달음을 확산시키고 있다.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 중단으로 본격화한 탈핵 논쟁은 우리 사회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에너지체제를 전환할 수 있을 것인지 가늠할 시험대가 되고 있다. <단비뉴스>는 기후변화와 원전사고의 재앙을 막고 ‘안전하며 지속가능한 에너지구조’를 만들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모색하는 심층기획을 연재한다. (편집자)

① “아이들 미래 위해 원전 말고 안전!”

② '블랙스완' 부인하다 일본도 당했다.

③ 생존배낭 챙겨 두고 ‘쿵’ 소리에도 깜짝

④ 동해안 원전에 쓰나미 덮칠 수도

⑤ 100만 명 ‘7시간 내 대피’ 가능할까

⑥ 사고 은폐, 불량부품에 근무 중 마약도

 사용후핵연료 저장건물 테러 무방비

편집 : 김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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