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이철재 환경운동연합 생명의 강 특위 부위원장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잖아요. 우리 주위에 환경관련 정보나 지식은 이미 많이 널려 있어요. 검색만 해도 충분히 찾아볼 수 있죠. 중요한 건 그걸 ‘어떤 관점에서 바라볼 것인가’예요. 흩어져있는 환경관련 정보를 환경철학적, 환경정의적 시각에서 꿰어 시민들에게 전달하는 것, 그게 ‘에코큐레이터’가 하는 일이죠.”

이철재(46) 환경운동연합 생명의 강 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2013년 ‘에코큐레이터’라는 직함을 스스로 만들었다. 환경·생태를 뜻하는 ‘에코(eco)’와 박물관·미술관 등의 전시기획자를 일컫는 ‘큐레이터(curator)’를 합친 말이다. 중어중문 전공의 대학생이던 1990년대 초 처음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이후 20여 년 간 활동가로 살면서 ‘정보를 독점한 이들의 의도적 왜곡과 은폐’가 환경문제 해결을 어렵게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지난 6월 3일 서울 종로2가 육의전박물관 사무실에서 그를 직접 만나고, 지난 25일 전화로 추가 인터뷰했다.

흩어져 있는 환경정보를 꿰어주는 ‘에코큐레이터’

▲ 이철재 에코큐레이터 겸 환경운동연합 생명의 강 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6월 3일 서울 종로2가 육의전박물관 사무실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나혜인

“박정희식 성장제일주의는 이미 1990년대부터 한계를 드러냈어요. 댐 문제만 봐도 이미 70, 80년대에 지을 곳은 다 지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진영은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 냈어요. 1998년 처음 환경운동연합에 들어와 부딪혔던 동강댐 문제가 그렇고, 이후 4대강 사업이나 최근 이슈가 된 원전 문제 모두 마찬가지예요.”

이 부위원장이 ‘콘텐츠를 목적에 따라 분류하고 배포하는 일’을 의미하는 ‘큐레이션(curation)’을 환경 분야에 도입한 이유는 ‘현재’와 ‘인간’만을 생각하는 사고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4대강이나 원전 등의 환경 관련 사안은 당장 눈에 띄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 세대가 경제적 이익을 위해 환경을 훼손한 만큼 미래세대와 자연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데, 우리 사회에는 이들의 입장에서 환경이슈를 해석해줄 사람이 부족하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이 부위원장은 지난 20일 ‘건설 재개 권고’로 결론이 난 신고리원전 5, 6호기 공론화 과정에 대해서도 “공론화 과정의 성과와 의미, 결과를 존중하지만 역시 이번에도 미래세대와 비인간적 존재에 대한 고려와 논의가 부족했던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지속가능한 민주주의를 위해 ‘현 세대’, ‘지금의 가치’만을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부위원장이 ‘에코큐레이터’로 활동하게 된 건 시민들이 환경이슈와 좀 더 친해지길 바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존 환경단체들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시민에게 운동의 메시지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여전히 딱딱한 부분이 있다고 그는 느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환경정의·철학을 시민사회에 쉽고 재미있게 뿌리내리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가 ‘영화 속 생태이야기’다. 지난 2013년 환경운동연합 상근직을 그만두면서 개인 블로그와 온라인 매체 <민중의소리>에 글을 연재했다. 인기 영화의 소재나 장소, 인물이 상징하는 것들을 환경적 관점에서 흥미롭게 풀어낸 이 연재물은 시리즈 중 한 편이 포털사이트 기준 2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 이철재 에코큐레이터가 운영하는 개인 블로그의 ‘영화 속 생태이야기’ 코너 웹페이지. ⓒ 네이버 블로그 갈무리

영화를 소재로 친근하게 풀어간 생태 이야기 

“이를테면 영화 <엑스맨>에서 돌연변이 울버린을 개조하는 은밀한 실험의 공간이나, <트랜스포머>에서 막강한 에너지원 큐브가 숨겨져 있던 지하기지는 모두 미국 후버댐(Hoover Dam)으로 설정돼 있거든요. 그런 공간들이 왜 하필 댐인가. 저는 이 영화들이 댐이 가지고 있는 자연지배적 속성을 포착했다고 봐요.”

후버댐은 1936년 미국 남서부 콜로라도 강에 세워진 높이 221미터(m), 너비 200m의 대형 댐이다. 저수량은 320억세제곱미터(㎥)로, 우리나라 강원도 춘천시 소양강댐(저수량 29억㎥)의 10배가 넘는다. 이 부위원장은 “후버댐은 세계적으로 ‘댐 광풍’을 일으켰던 거대한 인공물”이라며 “영화 속에서 인간들이 괴물을 만든다거나(엑스맨) 에너지원을 두고 서로 싸우는 건(트랜스포머) 결국 자연 상태를 거스르는 행동들인데, (미국 제작자들이) 그 배경에 댐이라는 공간적 속성을 상징적으로 반영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 영화 <트랜스포머>의 무대가 됐던 후버 댐(Hoover Dam). 미국 남서부 콜로라도 강에 있다. ⓒ 영화 <트랜스포머> 갈무리

그는 2012년작 국산 영화 <연가시>에 대해서도 “(이 영화에서 드러나는) 표면적인 공포의 원인은 변종 연가시(치명적인 기생충의 일종)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보다 근원적인 공포는 물에 있다”고 분석하면서 “아주 익숙한 것이 죽음과 연관돼 있을 때 느끼는 공포가 비단 영화 속 얘기만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오염된 4대강처럼 ‘병든 강’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언제라도 우리 모두를 옥죌 수 있다는 얘기다.

“4대강은 토건진영의 먹거리를 위한 사업” 

이 부위원장은 자타공인 ‘강 전문가’다. 1998년 환경운동연합에 들어가 새내기 간사로서 ‘동강댐 백지화 운동’에 앞장섰고, 결국 2000년 6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건설계획 폐기선언을 이끌어 내는 데 기여했다. 이후 2000년대 초 ‘도시하천 살리기 운동’을 거쳐 2007년에는 환경운동연합 물·하천센터 국장을 지냈다. 같은 해 대선 국면에서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대운하건설 공약을 발표하자 바로 문제제기에 나섰고,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지금도 이른바 ‘4대강 독립군’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끊임없이 4대강 복원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생명의 강 특별위원회 부위원장직은 비상근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은 토건진영의 미래 먹거리를 위한 사업이었고, ‘강 살리기’는 허울뿐인 프레임이었다”고 일갈했다.

▲ 2012년 6월 2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이철재 당시 환경운동연합 정책처장.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 사업으로 홍수와 가뭄을 방지했다”고 국내외에 밝힌 데 대해 비판하는 내용이다. ⓒ 이철재

“2013년 7월 감사원이 발표한 감사 결과에도 드러났듯 결국 4대강 사업은 ‘한반도 대운하’를 염두에 두고 진행한 겁니다. 운하는 필연적으로 주변 재개발을 동반하게 돼 있죠. 이명박 정부 때 나온 4대강 정비사업 조감도를 봐도 보 주변에 거대한 건물, 놀이시설을 비롯한 각종 개발계획이 잔뜩 포함돼 있어요. 4대강은 결국 개발논리에 이용당한 겁니다.”

이 부위원장은 2012년 개통된 경인운하도 ‘유령운하’라고 꼬집었다. 그는 “인천에서 서울로 화물을 나르는 데 화물차를 이용하지 않고 굳이 운하에 가서 배로 싣고 온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결국 모든 건 개발진영의 먹거리를 보장해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4대강 문제의 해법으로는 “결국 ‘흐른다’는 물의 고유성을 회복시켜주면 된다”며 “4대강 보 수문을 개방해 유속을 회복시키고, 낡은 보나 댐은 철거해 나가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강줄기만을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강이 강답게 흐르려면 주변의 땅을 함께 봐야 합니다. 4대강이 국토 전반에 나뉘어 흐르고 있으니, 결국은 국토 전체를 환경적 관점에서 다시 보자는 거죠. 강과 하천은 주변 토양의 특성을 그대로 담아서 흐릅니다. 주변 땅이 오염돼 있으면 물도 더럽고, 땅이 깨끗하면 물도 깨끗하기 마련이죠. 단순히 보를 얼마나 개방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우리 사회의 생명인식, 환경인식을 높이고 사람이 사는 땅을 깨끗하게 유지해야 강도 살 수 있습니다.”

▲ 이철재 에코큐레이터가 2013년 직접 촬영한 경인운하. 당초 건설 목적이었던 화물운송은 이루어지지 않고 주변 자전거 도로에만 사람들이 가끔 보인다. ⓒ 이철재

‘소 잃기 전 외양간 고치는 정책’ 추진해야 

이 부위원장이 처음 환경운동에 뛰어들었던 20여 년 전에 비해 우리 사회의 환경의식 수준이 높아진 건 사실이지만, 사전예방적 환경정책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1991년 낙동강 페놀오염사건부터 최근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항상 충격적인 사건·사고를 겪고 나서야 환경정책을 손봤다는 것이다. 이 부위원장은 “물론 소 잃고도 외양간을 안 고치는 것보다는 (나중에라도) 고치는 게 낫지만, 사전예방대책이 미흡하다는 건 우리 환경정책의 분명한 한계”라고 꼬집었다.

▲ <다음스토리펀딩>에 소개된 이철재 부위원장 프로필. 그는 <다음스토리펀딩>에서 4대강 문제를 다룬 ‘개고생 취재나선 금강요정 김종술’, ‘4대강 독립군 미국에 가다’와 탈핵시리즈 ‘방사능시대를 살아가는 당신에게’ 등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 다음스토리펀딩 페이지 갈무리

에코큐레이터로서 앞으로도 무엇보다 ‘강 문제’에 주력할 예정이라는 그는 “국민들이 보다 절실하게 환경문제를 바라봐 달라”고 당부했다.

“이명박을 두고 역행보살(그릇된 행동을 통해 교훈을 주는 이)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결국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건 우리잖아요. 자연, 환경은 일단 제쳐두고 잘 살아보자, 성장에 대한 환상에 취했던 거죠. 성장이든 발전이든 다 자연생태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 아닌가요. 우리는 사람과 자연, 동물이 더불어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고민해야 합니다."


편집 : 임형준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