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도심 속 공동묘지

▲ 남지현 기자

올 여름 누굴 만나러 광주에 갈 일이 있었다. 일을 마치고 기차 시간까지 남은 시간을 어찌 보낼까 궁리하다 5∙18국립묘지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로 30분을 달려 도착한 국립묘지는 예상 밖으로 발랄한 분위기였다. 노란 옷을 입고 유치원 생들이 견학을 온 모양이었다. 구수한 향내를 뒤로 하고 유골이 안치된 묘역으로 걸음을 옮겼다. 8월 뙤약 볕에 숨이 막혀왔다. 걸음걸음마다 방아깨비가 놀라 도망을 쳤다. 너무 많아 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묘비가 서글펐다. 진한 풀 냄새에 코 끝이 찡해졌다. 한 봉분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2살도 안 되어 보이는 아이의 사진이 명패에 붙은 무덤. 짧고 아픈 생이 마음에 남았다.

얼굴 없는 마네킹에 입혀진 검갈색 모피며 빨간 구두, 보라 빛 타조가죽 핸드백을 보고 있자니 그때 생각이 난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본 백색 건물이 비석 같다. 자본주의가 살해한 라쿤, 북극여우, 밍크, 송아지, 악어의 공동묘지가 압구정 한복판에 있다. 군화 발에 짓밟혀 스러져간 이들을 그리워하듯 말 못하는 생명들의 고통스러웠을 죽음에 마음이 아려온다. 고작 3천원에 팔릴 털가죽을 위해 덫에 발이 끼어 굶어 죽었을 여우와, 부드러운 겨울 외투 장식이 되기 위해 세상에 나와 눈 뜬 순간부터 좁은 우리에 갇혀 살다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라쿤과, 구두로 쓸 가죽을 얻기 위해 태어난 지 3개월만에 어미에게서 떼어져 눈 앞에서 다른 송아지들 목이 잘리는 걸 보며 공포에 떨다가 죽어간 송아지들을 떠올린다. 오돌토돌한 질감을 살리기 위해 산채로 전기 톱에 목이 잘려간 타조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 압구정 현대백화점 쇼윈도우에는 동물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상품들이 화려하게 전시되어 있다. ⓒ 남지현

누구도 슬퍼 않고 위로 않는 죽음이다. 우리가 무지하고 외면하는 죽음이 여기에 모여있다. 화려한 조명에 반짝이는 대리석 바닥과 친절한 직원들은 무고한 생명의 사체를 상품으로 포장한다. “모피 아니고 진짜 토끼 털이예요, 손님. 한 번 입어보고 가세요.” 백화점 회전문을 열고 들어간 내게 광대까지 힘껏 웃어 보이면서 한 남자가 말한다. 야속하지만 눈을 한껏 흘기며 “됐어요”라고 말할밖에 도리가 없다.

마하트마 간디는 “한 사회가 동물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 사회의 수준을 알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피터 싱어는 <동물 해방>에서 자본주의 사회가 동물을 자원으로 인식하고 착취하는 생명 경시를 고발했다. 정말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만 쓰고 살아있는 생명을 존중하는 삶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더욱 어려워졌다. 깔끔하게 포장된 쇠고기나 예쁘게 디자인된 겨울 외투는 그 상품이 매대에 화려하게 오르기 위해 거친 역사를 은폐하고 있다. 돈이 목적이 되니 다른 생명의 고통은 비용 절감이라는 이름 아래 가려진다. 쇼윈도우의 화려함에 빠지지 말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가엾이 여기길 기도하며 백화점을 나선다.


편집 :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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