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추한’ 섹스 주홍글씨 군형법 92조 6항

해당 인터뷰는 A대위 변호를 맡았던 김인숙 변호사와 성소수자 김기홍 씨의 대화 내용을 재편집한 가공 인터뷰임을 밝혀둡니다. (편집자)

"미쳤구나, 미쳤어. 동성애자가 무슨 신체 특정 부위에 미쳐 있는 성욕의 화신처럼 보이나? 동성애자를 사람으로 취급도 안 하네. 육군 장교 A대위 사건 말이야. 자기 숙소에서 마음 맞는 사람하고 한 걸 가지고 군사법원이 처벌했잖아. 영내에서 그런 것도 아니고, 강제로 추행한 것도 아니야. 동성애라는 이유만으로 전과가 생긴 거야."

▲ 김기홍(35)씨는 직접 겪었던 동성애 차별 경험과 혐오 발언을 들려주며 애써 웃었다. © 고하늘

지난 5월 24일 육군보통군사법원은 육군 장교 A대위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A대위의 죄목은 ‘추행죄’. 군형법 92조 6항(추행)에 따르면 군인과 군무원, 예비역‧보충역 등 군인에 준하는 사람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하면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이때 ‘추행’은 ‘더럽고 지저분한 행동’이다. 강제추행을 처벌하는 조항(군형법 제92조3항)은 따로 있다.

군사법원은 A대위가 “일과 시간 중 병영 내에서 하급자와 추행 행위를 한 점”을 판결 이유로 들었다. A대위와 B군인은 점심시간에 독신자 숙소에서 합의 하에 성관계를 맺었다. 두 사람은 소속 부대가 달라 지휘 관계의 상하급자가 아니었다. 독신자 숙소는 병영 내 공간이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1월 “독신자 숙소는 내무실과는 엄연히 다른 사적 공간”이라고 밝혔다.

“누가 먼저 샤워했니? 키스는 누가 했어?”

"야만 그 자체야. 갑자기 찾아와서 '게이인 것 알고 왔다'면서 성생활 여부나 다른 동성애자 색출 자백을 강요했어. 그 상황에 어느 누가 정신 차릴 수 있을까? 영장도 없이 함정 수사를 한 거지. 수사관이 하는 조사 자체도 성희롱이야. 누가 앉아서 나한테 성생활을 코치코치 묻는다고 생각해봐. 샤워를 누가 먼저 했는지부터... 수사가 아니라 고문이지."

사건의 발단은 한 동영상이었다. 올 초 두 남성이 성행위를 하는 동영상이 SNS에 올라왔다. 육군 중앙수사단(이하 중수단)은 영상 속 두 사람을 군인으로 추정했다. 군형법 92조 6항 추행죄 위반과 정보통신망법 44조 7항 불법정보유통금지 위반(음란한 영상 배포)을 근거로 수사에 들어갔다. 수사관은 압수수색 영장도 없이 핸드폰 임의제출에 "협조”하라고 요구했다.

수사관은 조사 대상자의 핸드폰에 있는 메시지 애플리케이션 등을 샅샅이 뒤졌다. 이 과정에서 중수단은 해당 동영상과 관련 없는 다른 동성애자까지 추적하며 함정 수사를 벌였다. 동성애자가 자주 사용하는 데이트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해 동성애자로 위장한 것이다. 그렇게 판 함정 수사는 A 대위에 이르렀다. A대위 변호를 맡았던 김인숙 변호사와 군인권센터가 8월 초 파악한 수사 피해 군인은 28명이다.

군인권센터는 지난 4월 17일 기자회견을 열어 일련의 조사가 장준규 전 육군참모총장의 지시로 육군 전 부대에서 벌어진 ‘동성애자 색출 작전’이라고 폭로했다. 중수단이 해당 사건을 검찰에 넘기기도 전에 고등검찰부에서 기소(검사가 일정한 형사사건에 대하여 법원의 심판을 구하는 행위)지침을 하달한 문서가 증거다. 해당 문서는 육군 전 부대에서 사건 처리를 통일하도록 요구했다. 중수단 민원실은 “장 전 육군참모총장의 지시로 육군 내 동성애 색출 작전을 진행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며 답변을 피했다.

▲ 2017년 3월 23일 법무실 고등검찰부가 군형법 92조 6항에 대한 처리 기준을 하달한 문서. 장병 간 합의에 따른 성관계도 군대에서는 '추잡한 행위'가 된다. © 군인권센터

수사관은 동성애자 병사를 조사하며 다른 동성애자 병사에 대한 제보를 유도하거나, 다른 병사와의 성관계 여부, 체위 등을 물어 성적수치심을 유발시켰다. 변호사를 선임한다는 피해 군인을 가리켜 아웃팅(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대해 본인의 동의 없이 밝히는 행위)을 자처한다며 다른 피해 군인을 윽박질렀다. 육군은 부대관리훈령에 따라 동성애자 병사를 적극적으로 식별하고 조사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훈령 제254조(신상비밀 보장)에 따르면 지휘관 등이 동성애자 병사의 성 경험이나 상대방 인적 사항 등 사생활 관련 질문을 할 수 없다. 훈령은 동성애자 병사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다. 동성애자 병사가 다른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군 복무를 할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보장해 군 전력을 향상하고 복무 수행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서다.

동성애자라면 모두 가해자가 되는 성범죄

"법리적으로만 따지면 92조 6항에 ‘동성애’라는 표현은 없어. 그런데 동성애와 관련해서만 적용했다는 거야. 해당 조항은 군형법 적용 대상을 ‘사람’이라고만 말했어. 그럼 생각해봐, 부부 중 한 사람이라도 군인인 경우 그 법의 적용을 받겠지. 우리가 흔히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이성 간 사랑위에서도 엄밀히 따지면 군형법 92조 6항에 의해 처벌받는 게 있는 거야. 육군참모총장부터 시작해서 모든 군인,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지난밤 행위를 조사해서 '혐오스럽다'라는 판단이 나오면 처벌인 거지."

군형법 92조 6항은 1962년 제정 당시부터 동성애를 차별하는 법이었다. 해당 조항의 원안(구 군형법 92조)은 ‘계간(鷄姦)’을 금지했다. 계간은 닭의 성행위를 일컫는 말로, 남성 간 성교를 비하하는 단어다. 2009년 법정형을 ‘1년 이하’에서 ‘2년 이하’로 강화했다. 2013년에는 ‘계간’을 ‘항문 성교’로 변경했지만 차별은 그대로 남았다.

군형법에는 이미 위계질서나 힘의 논리에 의한 강제적 성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이 있다. 군형법 92조(강간)·92조의 2(유사강간)·92조의 3(강제추행)·92조의 4(준강간, 준강제추행) 등이 그것이다. 92조 6항만이 ‘항문성교’라는 구체적 체위를 처벌한다. 합의에 의한 성교라도 군인에 준하는 신분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항문성교를 할 때 처벌받을 수 있다. 쌍방이 자유롭게 성행위를 한 결과 모두 ‘항문성교를 한 가해자’가 되는 셈이다. 군형법은 이성애를 사랑의 기준으로 삼고 이성 간 ‘정상 체위’만 법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항문성교’나 ‘기타 추행’은 ‘비정상 체위’로 받아들여지며, 이와 같은 체위를 한다고 여기는 동성애자들이 법의 표적이 된다.

▲ 전역을 일주일 앞둔 A대위는 결국 전역모를 쓰지 못했다. © 고하늘

군형법 92조 6항이 실제로 군인을 처벌한 사례는 드물다. 2004~2007년 4년 동안 육군에서 추행죄가 적용된 사례는 총 176건이다. 그중 172건은 강제추행으로, 성폭력 범죄의 친고죄 규정(피해자나 법률이 정한 자가 직접 고소하거나 고발해야 공소 가능)의 한계를 에두른 것이다. 나머지 4건만이 강제성이 없는 동성애 행위를 문제 삼았는데 1건은 기소유예, 3건은 선고유예로 종결됐다. A대위에게 내려진 징역형은 전례 없는 일이다. 이성애 병사든 동성애 병사든 사적 영역에 속하는 자발적 성행위라면 처벌한 적이 없다는 말이다.

군 기강 위해 ‘인권의 도살장’ 만들다

“오래전에는 우리나라도 미군 부대 근처에 기지촌 만들어서 외화벌이하려고 여성들 성매매하게끔 했잖아. 그런 식으로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행태는 장려했으면서 왜 동성 간의 사랑만 군기를 흐린다고 문제 삼지? 진짜 가부장제를 군대 안에 모셔놓고 제사 지내는 기분이야. 실제로 한국성폭력상담소 보고서를 보면 남성 군인 간 성폭력 사례에서 가해자는 주로 동성애 혐오가 강한 이성애자 남성이라고 나왔어. 군기를 어지럽히는 건 바로 동성애가 아니라 ‘위계적 폭력’인 거지. 약한 사람 괴롭히는 거야.”

군형법 92조 6항을 둘러싼 논란이 처음은 아니다. 해당 조항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판결을 세 차례 받았다. 2002년 6대 2, 2011년 5대 4, 2016년 5대 4. 헌재는 군형법 92조 6항이 정당하다며 위헌제청을 모두 기각했다. 2002년 헌재는 ‘개인의 성적 자유보다 군에서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라는 사회적 법익을 보호’해야 한다고 봤다. 2016년에는 동성애자 군인에 대한 차별 취급이 ‘군의 특수성과 전투력 보존을 위한 제한으로써 합리적 이유가 인정된다’며 차별에 면죄부를 줬다.

남성 간 합의된 성행위는 이성 간 강제적 성행위보다 엄한 처벌을 받는다. 군사법원이 제출한 <군내 여군 피해 범죄사건 및 처벌현황>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발생한 여군 피해 범죄사건 132건 중 83건이 성범죄였다. 그러나 83건 중 실형은 단 3건에 그쳤다. 영관급 이상 피의자 8명 중 1명을 제외한 7명은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솜방망이 처벌로 끝났지만 남성 간 합의된 성행위는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젠더연구팀은 <‘성’스러운 국민>(2017)에서 근대 한국에서 구축된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이분법적 성구분이 수많은 성차별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때 성소수자는 여성과 남성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비정상’적인 존재로 취급된다.

마음을 허락받아야 하는 사람들

"동성애자를 사람으로 안 보는 거야. 사람들이 무심코 내뱉는 '게이 같다'라는 말에 상처 많이 받았거든. 대학 선배들은 또 '군대 가서 비누 줍지 마'라면서 장난치는 거야. 동성애 혐오 발언이지. 동성애 하면 한 사람의 연애 지향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야. 이런 편견 자체가 군형법에 담긴 거고. 소수자를 지워버리는 방법 중 하나가 '소수자의 존재 자체는 윤리적이지 않다. 존재할 수 없고, 일시적인 것'이라고 외치는 거야."

2012년 유엔 국가별 보편적 정례인권검토(UPR)와 2015년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규약위원회는 인권침해를 이유로 군형법 92조 6항 폐지를 권고했다. 동성애는 한 개인의 정상적인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 중 하나다.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일은 한 개인의 존엄을 해치는 일로 본 것이다. 1957년 미국 심리학자 에블린 후커는 임상 심리 검사를 통해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판단력이 차이가 없다고 결론 냈다. 이후 정신의학계는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보지 않는다. 미국 심리학회(APA)는 동성애자를 똑같은 시민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세계적으로도 군대 내 성소수자 차별 조항을 폐지하는 추세이다. 미국은 2003년 동성애 성행위를 금지했던 일명 ‘소도미 법(sodomy law)’을 위헌이라 밝히고, 동성 간 성관계 처벌에 종지부를 찍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성소수자 스스로 성적지향을 감추도록 하는 DADT(Don't ask don't tell,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 조항을 없앴다. 빌 클린턴 정부가 해당 조항을 제정한 이후 18년 만이다. 1999년 유럽인권재판소는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해직된 영국 군인들의 손을 들어줬다. 2004년 9월 독일 국방부는 “성적 지향은 연방 군인이 갖는 보편적인 인격권의 일부이며 복무법의 관여를 받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법이 사람의 마음을 짓누른다면

다시 5월 24일. A대위에게 징역형이 선고되던 날 정의당 군사전문가 출신 김종대 의원은 군형법 92조 6항을 삭제하는 군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합의에 의한 동성 간 성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2월에는 인천지방법원 이연진 판사가 헌재에 해당 조항의 위헌심판제청을 냈다. 동성 간 성교가 형사처분할 정도로 군 기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취지에서다.

▲ 육군참모총장은 국방부 장관의 명을 받아 육군을 지휘하고 감독한다. 참모총장의 지휘 의도 중 하나는 헌법적, 보편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 대한민국육군 공식 웹사이트 갈무리

군 기강 확립과 전투력 보존은 군의 절대적 과제다. 평시에도 전투 수행능력을 길러 전쟁을 억제하고 국민의 안전과 편익을 도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육군을 지휘‧감독하는 참모총장의 지휘 의도가 ‘헌법적, 보편적 가치를 소중히 지키는 육군 건설’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성숙한 개인의 자기결정권에 징역 6개월의 죄를 묻는 곳 또한 대한민국 군대 인권의 현주소다.

"우리는 남 일기장도 함부로 안 봐. 사생활이니까. 상대를 나와 같은 사람으로 존중하는 거야. 그런데 이건 인간의 가장 내밀한 성생활을 국가가 통제하는 거 아니야? 성적 자기결정권은 근본적인 권리야. 식욕, 성욕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이라고. 이걸 침해하는데 무슨 인권이 있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있겠어. 상식적으로 본다면 군형법 92조 6항 폐지해야 해. 폐지되지 않는다면 헌법재판소의 존재 이유가 없고, 헌법의 질서도 무너지겠지. 개인이 서로 자유롭게 사랑하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게 헌법의 기본 토대잖아."


편집 : 곽호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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