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인사

▲ 박진홍 기자

“월나라는 정치가 어지럽고 병사들 사기가 꺾여 있으니 하늘이 준 기회가 아닌가?” 초(楚)나라 장왕(莊王)이 월(鉞)나라 정벌을 주장하자, 신하 두자(杜子)가 일침을 놓았다. “우리는 패배한 병사들이 영토를 버리고 도망갔고, 한 간신은 도적질을 일삼고 있지만 다른 신하들은 이를 그냥 두고 있습니다. 병력이 쇠약하고 정치가 어지러운 것은 월나라보다 더한데도 월나라를 정벌하려고 하니, 이것은 지혜가 눈과 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눈으로는 백 보 밖 먼 곳은 볼 수 있지만 자신의 눈썹은 볼 수 없다(目不見睫). 두자가 지혜를 눈에 비유한 이유다. 이 말을 들은 장왕은 결국 월나라 정벌의 꿈을 접었다.

“역대 정권 통틀어 가장 균형인사, 탕평인사, 통합 인사라고 긍정적인 평가들을 국민들이 내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내각‧비서진에 대한 자신의 인선에 후한 점수를 매겼다. 당시만 해도 박기영 교수가 황우석 사태 연루 전력으로 과학혁신본부장 직을 사퇴한 직후였고, ‘코드 인사’라 비판받던 류영진 식약처장이 ‘살충제 달걀’ 파동에 대한 부실한 업무 파악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다가 자신의 눈썹 아래는 살피지 않은 대가는 참담했다. 연이어 터진 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 사퇴,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장관 후보자의 뉴라이트 사관과 창조과학 논란은 문 대통령의 안일한 자평에서 보듯 예고된 ‘인사 참사’다.

▲ 목불견첩(目不見睫) 고사는 중국 전국시대 말기 사상가 한비(韓非)가 쓴 '한비자(韓非子)’의 유로편(喩老篇)에 나온다. ⓒ 위키피디아

눈썹을 보려면 거울이 필요하다. 문 대통령이 꺼내든 거울은 참여정부였다. 참여정부는 인사수석이 추천한 인물을 민정수석이 검증해 비서실장이 의장인 인사추천위원회에 올려 후보자를 압축, 대통령에게 추천하는 체계적인 검증 시스템으로 고위공직자를 임명했다. 참여정부에서 인사청문 대상 고위공직자 78명 중 낙마한 사람은 3명(낙마율 3%)에 그쳤다. ‘Anything But Roh(노무현 것은 무조건 부정한다)’ 기조로 검증시스템을 바꾸고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 인사를 이어간 이명박 정부는 111명 중 10명이 낙마(낙마율 9%)했다는 점에 미뤄보면 참여정부 인사검증 시스템은 큰 성과를 냈다. 지난 6월 안경환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낙마하자 청와대가 참여정부 시스템을 부활시킨 것은 옳은 처방이었다.

하지만 참여정부와 같은 시스템을 도입하고도 인사 논란이 끊이지 않자, 문 대통령은 결국 4일 인사시스템 개선에 손을 댔다. 인사 원칙과 검증 기준을 구체화하고 추천 폭을 넓히라는 주문이다. 민간이 참여하는 인사검증자문회의처럼 참여정부에는 있었으나 현재는 없는 기구 등 필요한 시스템 보완은 늦기 전에 하는 게 옳다. 그렇지만 연이은 인사실패의 원인이 시스템보다는 문 대통령 자신에게 있는 것은 아닐까? 참여정부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문 대통령은 기준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인사는 예외 없이 추천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해 ‘면도칼 검증’이란 수식어까지 붙었다. 후보 시절 ‘5대 원칙’에 벗어나는 인물은 등용하지 않겠다더니, 당선 뒤 인사 기준에 걸리자 “공약한 것은 그야말로 원칙이고, 실제 적용에는 구체적 기준이 필요하다”며 발을 뺀 문 대통령. 두자의 쓴 소리를 수용한 장왕처럼, “목불견첩에서 벗어나, 자신이 세운 인사 기준과 철학부터 바로 지키라”는 고언(苦言)의 거울을 바로 볼 때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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