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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서도 집착하는 패망의 길

기사승인 2017.09.12  22:3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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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교양특강] 곽정수 한겨레 선임기자
주제 ① 재벌 경영권 세습

“이번 국정농단 사건에서 삼성이 왜 400억 넘는 금액을 출연하게 되었을까요?”

<한겨레>에서 20여 년간 재벌 문제를 파헤쳐온 곽정수 선임기자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에서 “삼성의 뇌물 공여는 편법적 경영승계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재벌의 미래가 “경영승계 문제를 포함한 합리적 경영 시스템의 구축 여부에 달렸다“며 지금이 그 전환점이라고 강조했다. 곽 기자는 <재벌들의 밥그릇> <한국경제 새판 짜기> 등의 저서를 통해 재벌과 한국 경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관계를 규명해왔다.

한국 재벌의 두 가지 폐해

곽 기자는 우리나라 재벌의 폐해로 ‘경제력 집중’과 ‘기업 지배 구조’를 꼽았다.

“한나라의 경제 규모에서 재벌들이 과도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경제력 집중’입니다. 이런 독점 상태는 담합으로 이어집니다. 담합은 그 수준이나 양태와 관계없이, 무조건 불법이에요. 외국도 마찬가지죠.”

담합을 하면 시장에서 정상적인 상품•서비스 경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시장에 수백 개 기업이 있다면 가격이나 수량에 관해 몰래 입을 맞추기 어렵다. 하지만 두서너 개라면 담합은 쉽게 이루어진다. 서비스는 적당히 하고 가격은 유지하거나 올리려 한다. 그 피해는 전체 시장과 소비자들이 고스란히 보게 된다. 재벌에 편중된 한국 경제는 담합이 발생하기 쉬운 구조다.

“기업 지배 구조도 문제입니다. 우리나라 사외이사들은 거수기 역할만 해요. 그러다 보니 흔히 말하는 대기업 총수라는 사람들 있죠. 예전에는 오너라는 표현을 썼는데 요즘은 잘 안 쓰는 것 같아요. 총수라는 용어 자체가 모순이거든요.”

기업의 법적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는 크게 사내이사와 사외이사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기업지배구조 개선 차원에서 사외이사 제도를 법으로 못 박았다. 외국에서는 사외이사들이 경영진을 독립적으로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하는데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기업을 소유하는 동시에 경영하는 재벌 총수 일가의 거수기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오너’보다 ‘총수’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 이유다.

재벌의 아킬레스건

“삼성은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뒤 두 가지 과제에 봉착했어요. 하나는 ‘비즈니스 리스크’에 대처하는 문제, 두 번째는 ‘승계 리스크’에 대처하는 문제죠.”

‘비즈니스 리스크’는 휴대폰 사업의 수익성 악화다. 삼성의 전통적인 효자 종목이었던 휴대폰 사업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야심 차게 내놓았던 갤럭시노트7의 배터리 발화 사고가 기점이다. 중국 휴대폰 회사들의 약진도 한몫했다. ‘휴대폰 사업 경쟁력을 어떻게 지속하느냐’가 향후 삼성의 중요한 과제로 남게 되었다.

‘누가 총수 역할을 대신할 것인가’의 문제도 본격적으로 대두됐다.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고 재판까지 받게 되면서 삼성의 ‘승계 리스크’는 현실이 됐다.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무리하게 합병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국민연금은 이 합병에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국민연금 쪽에서는 수천억 손실이 발생하는 결정이었지만 삼성 승계 문제에 휘말려 국민에게 배임행위를 한 셈이 됐다.

“승계 리스크는 왕조시대를 떠올려보면 쉽습니다. 우리가 흔히 재벌을 왕조에 비유하지만, 왕조시대에도 승계를 둘러싼 굉장히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왕조가 승계를 잘하면 안정적으로 가지만, 그렇지 않으면 왕조 자체가 위기에 처하는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하는 거죠.” 

승계 리스크의 3가지 요인

“중국이 사드 문제로 한국 기업에 경제적 불이익을 가하면서 중국 내 현대자동차 판매량은 40%정도 줄어들었습니다. 한국 경제의 1,2위를 다투는 기업의 사정이 이러하니 나머지 기업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고 볼 수 있죠.”  

승계 리스크는 크게 외부요인과 내부요인으로 나뉜다. 외부적으로는 재벌에 대한 여론의 감시와 비판이 강해지면서 법제도가 변했고, 재벌의 성장세가 둔화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국내시장은 내수가 침체되고, 해외시장은 더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황에서 국내는 독점으로도 사정이 어렵고, 해외에서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데 이마저 쉽지 않은 것이다.  

편법 승계 방식의 진화

   
▲ 법과 제도가 변화하면서 재벌의 승계 방법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 곽정수

기업 내부에 합리적인 승계시스템이 없는 것은 승계 리스크의 마지막 요인이다. 우리나라에는 후보를 교육하고 평가한 뒤 경영능력이 검증된 후계자를 선정하는 승계 시스템이 없다. 대부분 재벌은 큰 문제가 없으면 오너가 죽은 뒤 장남이 기업을 물려받는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편법 승계 방식들은 잊을 만하면 터지는 한국 사회의 고질병이 됐다. 편법으로 기업을 승계한 후계자들의 부실한 경영능력은 한국 경제에도 부정적 요인이다.

“주식을 공익재단에 주면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돼요. 재벌이 경영승계에 많이 악용하는 방법입니다.”

삼성은 공익재단을 통해 편법 승계를 해왔다. 재벌 총수가 회사 승계를 위해 후계자에게 주식을 주려면 세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주식을 공익재단으로 주면 재단의 특성상 각종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재벌의 다양한 편법승계 사례를 설명하는 곽정수 선임기자. ⓒ 이창우

 “1999년으로 기억하는데요, 이건희 회장이 가지고 있던 삼성 생명 지분이 갑자기 뻥 튀었어요. 당시 참여연대(현 경제개혁연대)가 문제제기를 해서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끌었죠.”

또 하나는 ‘차명주식’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1999년 삼성은 임직원 명의로 숨겨왔던 대규모 차명주식을 매입했다. 삼성은 차명주식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경제개혁연대는 세금 탈루를 철저히 조사할 것을 촉구했다. 2008년에는 삼성비자금 관련해서 특검이 있었고 약 4조에 이르는 엄청난 차명주식이 드러나기도 했다. 곽 기자는 차명주식은 금융실명제 아래서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거라고 전망했다.

“오누이가 삼성 SDS의 BW(신주인권부사채)를 7천~9천원 사이에 매입했는데, 당시 장외시장에서는 5만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된 사실이 인정된 거예요. 저라도 그런 식으로 재산을 넘겨받으면 금방 재벌이 되겠죠.”

‘주식 관련 사채나 비상장주식을 이용해 상장차익을 남기는 방법’도 있다. BW와 CB(전환사채)는 주식의 성격을 갖는 회사채다. 이자도 받지만 어떤 조건이 갖춰지면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도 붙어 있다. 95년, 삼성 일가는 삼성엔지니어링을 비롯한 비상장 주식을 싸게 매입해 상장했다. 그 돈으로 에버랜드의 CB와 삼성 SDS의 BW를 헐값에 사들였다.

그 후 에버랜드는 제일모직과 합병하고, 제일모직은 삼성물산과 합병해 지금의 삼성물산이 되었다. 삼성물산의 지분을 이재용 부회장이 15%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에버랜드에서 CB를 매입한 과거로부터 이어진 것이다.

“삼성물산 지분을 1995년에 증여받은 60억, 정확히는 증여세 16억을 제외한 44억으로 확보한 거예요. 그때는 삼성물산 합병까지 내다보지 않았겠지만 에버랜드가 보유한 주식이 결국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지렛대가 된다는 점은 이미 다 알았던 거죠.”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물산 지분을 가지는 것은 삼성그룹 지배권 확보를 위해 중요한 일이다. 삼성물산이 삼성의 핵심회사인 삼성전자 주식을 4% 이상, 또 하나 축인 삼성생명 주식도 20%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새로운 신종 기법은 일감몰아주기입니다. 1세대는 공익재단과 참여 주식을 이용했고, 2세대에서 금융실명제와 같은 제도가 도입되니까 95년 이후에 주식 관련 사채를 이용했지만 배임죄에 해당하죠. 2013년에는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총수 일가가 사익을 편취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3세대로 나온 것이 일감몰아주기 방식이죠.”

경제학에서 내부거래가 불법은 아니다. 기업이 거래하는 방식은 시장거래와 내부거래가 있는데, 원자재나 노동력을 시장에서 사려면 그것을 찾는 데 드는 서칭(searching) 비용이 발생한다. 그러나 내부에서 스스로 만들면 가격이나 품질을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원하는 수준을 충족할 수 있어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따라서 경제학에서 내부거래는 오래 전부터 발달되어 왔고 경영학에서도 아주 중요한 방식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일감몰아주기처럼 내부거래 조건을 특정한 대주주 일가에게 유리하게 조작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총수 일가의 지분이 있는 회사는 사익 편취로 문제가 되고, 총수 일가가 지분이 없는 경우에도 시장가격과 달리 거래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양쪽 모두 회사에 손실을 입히는 행위다.

독일과 한국 기업의 차이

“‘히든 챔피언’ 알죠? 작지만 강한 중소기업이란 뜻이죠. 독일과 한국 기업 모두 가족 경영으로 시작했는데 어디서 차이가 나는 걸까요?”

곽 기자는 한국기업 특유의 문제로 ‘가족소유경영’을 꼽았다. 가족경영 자체로는 장기적 관점에서 리스크를 점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삼성의 경우 80년대 중반 반도체로 엄청난 적자가 났지만,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를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가족경영의 장점이다. 그러나 삼성의 자동차 사업은 이와 반대 경우이다. 문제는 가족경영 자체에 있다기보다 가족이 소유와 경영을 동시에 하고, 소유 분산도 이루어지지 않은 데 있다.

   
▲ 밀레는 두 가문이 번갈아 경영을 승계해 230년을 이어오고 있는 독일 기업이다. ⓒ 밀레 홈페이지

“‘밀레’라는 주방가전업체는 두 가문이 공동 창업한 가족경영 체제예요.”

유럽 ‘프리미엄 넘버 원’ 가전업체인 밀레의 예는 흥미롭다. 이 회사는 1890년에 만들어져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 회사의 이사회 구성원은 5명으로, 각 가문 대표자 2명과 전문 경영인 3명으로 이루어진다. 게다가 만장일치제에다 가문 대표들은 매년 기술파트와 경영 파트를 나누는 등 엄격한 심사를 거쳐 정한다. 가문 내부에서 갈등이 일어나지 않으면서도 전문경영인을 함께 고용해 합리적 승계 시스템을 마련한 것이다.

   
▲ 독일 슈투트가르트 인근 로이틀링겐에 위치한 세계적인 강철선 가공설비 생산업체 바피오스의 공장 모습. ⓒ 바피오스

공동 가문 창업의 사례로는 강철선 가공 설비를 만드는 바피오스도 있다. 세 가문이 동업하는 이 회사는 5세대 이상 거쳐오고 있는데 세대마다 최고경영자를 차출하는 ‘윤번제’를 차용했다. 그런데 지난 10년 전, 큰 내분이 벌어졌고, 공평하게 모두가 경영에서 손을 떼고 전문경영인체제로 바꾸었다. 가문의 소유경영보다 기업의 존속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재벌 망해라’ 이런 말할 필요가 없어요. 왜? 스스로 역량이 되면 존속할 것이고 아니면 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150년 자본주의 역사를 살펴보면 재벌들이 우리가 겪은 승계와 관련한 일들을 경험하면서 합리적 경영 시스템을 마련한 곳은 살아남고 아닌 곳은 망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재벌도 지금, 그런 전환점에 서있습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7년 1학기 [사회교양특강]은 홍기빈 박상훈 전중환 김진혁 서남수 김동춘 곽정수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조승진 기자

박진영 서지연 이창우 기자 irondumy@icloud.com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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