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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보수가 말로만 부르짖는 것

기사승인 2017.08.29  21:3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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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사전] '공공선'

   
▲ 남지현 기자

민주주의의 목적은 무엇일까? 존 듀이는 ‘민주주의와 교육행정’이라는 1937년 논문에서 시민들이 자신들에게 이로운 것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이를 지배계급이 규정하는 사회에서 개인은 보이지 않는 강압과 억압에 시달린다고 지적했다. 관습과 사회제도로 구현되는 억압은 사람들이 쉽사리 알아차릴 수 없어 신체적인 강압이나 협박보다 효과적이다. 사람들은 자기 능력과 미덕을 개발하고 삶의 가능성을 탐험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잊고 주어진 현실에 순응한다는 것이다.

   
▲ 존 듀이는 그의 1937년 논문에서 지배계급의 논리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시민사회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 Underwood & Underwood, N.Y.

민주주의는 대의정치와 권력분립을 통해 자유로운 시민사회를 보장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시민들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자유로운 상태에서 잠재력을 온전히 꽃피우고 인간다운 삶을 추구할 수 있게 한다. 개인은 각기 고유한 개성과 미덕을 가진 존재이고 그것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어야 개인도 행복하고 사회도 건강해진다. 바로 이런 믿음에 기반하는 게 민주주의다. 요컨대 민주주의의 목적은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개인들이 성숙한 자아를 실현하며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민주주의도 다른 모든 정치체제와 마찬가지로 공공선이라는 목표를 가진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개인들이 건전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해관계 조정의 기준이 될 공공선(common good)이 무엇인지 타협하고 합의해야 한다. 정치체제가 변혁을 거듭해 온 궤적은 공공선이 무엇인지를 누가 어떻게 정의할지 고민해 온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7년 직선제를 도입하며 형식적으로는 민주적 절차를 갖추었지만 우리 사회는 헌법 규정과 달리 민주공화국이라는 이름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려웠다. 사회 민주화가 미진해 공공선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공공이 배제되는 때가 많았다. 민주주의는 정치적 영역뿐 아니라 사회적 영역과 개인 관계에서도 자유와 평등을 강조하는 규범 체계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민주적 가치가 아직 사회 규범에 스며들지 않은 부분이 많다. 공적 지위를 남용해 사적 편의를 챙기는 ‘갑질’이나 전입시기나 나이를 따져 '군기'를 잡는 행위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 사회의 공공선은 공공성(公共性)이 부족하다. 공공성은 공평함을 의미하는 ‘공(公)’과, ‘함께’, ‘하나로’ 등을 의미하는 ‘공(共)’을 합한 말이다. 뜻을 풀면 개별 존재가 모두 함께 공평하다고 느끼는 것이 공공성이다.

   
▲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는 성숙한 민주주의의 지향점이다. ⓒ pixabay

원론적으로 한 사회의 공공선은 다양한 이해집단의 의견이 자유롭게 교환되고 공평하게 조정된 결과여야한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서는 수구보수세력의 이해관계가 공적 이익인 것처럼 곧잘 포장되어 왔다. 반대 의견은 이기적인 사익 추구로 호도되기 십상이다.

80년대 전두환 정권은 대학 구내에 경찰을 투입하는 걸 공권력 행사로 포장했다. 하일식 연세대 교수는 1999년 <한국역사연구회보>에 실은 글에서 '자신들이 행사하는 폭력은 사회 자체의 공적인 이익을 위한 것이고, 노동자·학생의 처절한 저항은 사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것'으로 규정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해방 전후 청산되지 못한 친일 세력이 군사정권에 부역하던 세력으로 이어지며 맥을 이어온 우리 보수의 뒤틀린 공과 사 개념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에서 장기적으로 비정규직을 줄여가겠다는 기조를 발표하자 자유한국당 정태옥 원내대변인은 “문재인식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 해법은 마치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여 돌진하는 착한 선의를 가진 돈키호테의 모습으로 연상될 뿐”이라며 ‘진짜 거인’은 “고비용이 들어가는 정규직 과보호의 틀”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를 필두로 보수 언론 역시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과 임금 인상을 위해서는 정규직 노조가 양보하는 것이 먼저라고 거들었다.

한국 보수세력은 경영자나 총수 일가가 가져가는 소득이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임금에 견주어 지나치게 많다는 사실은 철저하게 외면한다. 자본과 노동자 사이에 본래 그어진 전선은 숨기고 노동자와 노동자 사이에 새로운 전선을 긋는다. 법인세 인상이나 종부세 과세표준 인하, 부동산 보유세 인상 등 부자들 세부담을 늘리는 것은 반대하면서 서민 부담을 늘리는 부가가치세 인상과 근로소득세 인상에는 찬성한다.

20대 국회의원 중 새누리당 의원들 평균 재산은 26억원이었다. 자유한국당으로 이어지는 수구보수세력의 핵심 지지층은 한국에서 아파트값이 가장 비싼 여의도동과 압구정동 등 부자 동네 주민들이다. 지난 대선에서 홍준표가 문재인 대통령을 제친 지역들이다. 정치적, 경제적 기득권의 이해를 대변하면서 이를 사회 전체를 위한 것으로 포장하는 것은 사익을 공익처럼 포장해 공공선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왜곡하고 조작하는 것이다.

   
▲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지난 6월 의원총회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임명 강행을 규탄하는 모습. ⓒ 오마이뉴스사진부 영상화면 갈무리

우리 사회의 수구보수는 공적 지위에 대한 책임 의식도 부족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그랬다. 대통령이라는 공적 지위를 사적 이해를 충족하는 도구로 남용했다. 열렬한 지지자들 역시 공과 사 개념을 혼동했다. 박근혜를 측은하게 여기는 것은 그가 대통령이라는 막중한 공적 책임을 진 인물임을 망각하고 그를 한 개인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들이 2016년 100만명에 이르렀다. 2015년 기준 노인 10만 명 중 59명이 대부분 가난을 이기지 못해 자살했다. 2를 넘어야 인구 유지가 가능한 합계출산율은 80년대 후반 1점대로 떨어진 뒤 지난해에는 1.17에 머물렀다. 청년과 노인이 모두 살기 힘들어 아이 낳기가 무서운 사회에서는 사회안전망 확충이 공공선이다. 한국이라는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공(公)을 독점한 수구보수세력을 대체할 합리적인 개혁보수세력이 대두해 진보와 경쟁해야 한다. 공공선의 공공성 회복이 시급하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박진영 기자

남지현 기자 njihyun011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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