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양특강] 김진혁 전 EBS PD
주제 ① 지식채널e, 이렇게 기획했다

‘지식채널e즘’. EBS 시사교양프로그램인 ‘지식채널e’가 사회적 파급력을 더하자 만들어진 신조어다. 딱딱하던 지식 전달 프로그램과 달리 ‘지식채널e’는 재미를 기본 요소로 하며 많은 이들이 쉽게 지식을 접할 수 있도록 만들어 호응을 얻었다. 프로그램 탄생을 이끌었고 지금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인 김진혁 전 EBS PD는 “교육적이면서도 재밌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재미있으면서도 교육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했다”며 기획의도를 전했다. 전에 없던 새로운 형식의 프로그램이 나오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을까?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지식채널e’의 탄생 비화를 김 PD가 직접 털어놨다.

꼰대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EBS, ‘지식채널e’ 낳다

김 PD는 2002년 EBS에 입사했다. 당시 EBS는 교육방송의 딱딱한 이미지를 고민하던 상태였다.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등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자 노력했지만 국민 다수는 EBS를 수능 교육 프로그램이라 여겼다. ‘공부할 게 아니면 EBS로 채널을 돌리지 않는다’는 것이 사람들 인식이었다. 아무리 공영방송이라 하더라도 시청률이 저조하다보니 부담이 따랐다. ‘어떻게 하면 EBS로 사람들의 이목을 모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것이 ‘지식채널e’의 출발이었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을 찾은 김진혁 전 EBS PD가 자신이 기획한 ‘지식채널e’의 탄생 비화를 털어놓고 있다. ⓒ 고하늘

“칠판 강의 또는 어린이 프로그램 이미지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고민했죠. 그러다가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사이 광고 시간을 노려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 시간에 시청자들은 한 채널에 있지 않고 여러 채널을 돌리니까요. 돌리다가 우연히 EBS를 틀었는데 짧지만 여운 있는 영상이 나온다면 사람들이 EBS에 시선을 두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식채널e’는 기획 당시 여러 요소보다도 ‘시간’에 초점을 뒀다. 러닝타임을 짧게 두는 것이 첫 숙제였다. 길어봤자 1분 30초가 될 것이라는 게 초반 예상이었다. 그러나 ‘지식채널e’가 실제로 방영되면서 5분까지 늘어나게 됐다. 프로그램을 구성하면서 스토리텔링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김PD는 “짧은 시간도 중요하지만 시청자들이 충분하게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기획 당시 ‘어떤 태도로 프로그램을 전할 것인가’도 주요 고민 중 하나였다. 기존 교육 프로그램은 계도 형식의 일방향적 지식 전달이 다수였다. 방송국 프로그램 제작자 주도로 지식을 선별해 국민에게 전하는 방식이었다.

김 PD는 기존 흐름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 다른 프로그램과 차별을 두는 ‘지식채널e’만의 경쟁력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지식을 받아들이는 수용자가 좀 더 능동적으로 지식을 해석하거나 개입하길 원했다”며 “프로그램의 결론을 시청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수평적 지식 전달로 시청자에게 생각의 시작과 끝을 맡기는 것이 ‘지식채널e’의 프로그램 방향이 됐다.

문제는 재미⋯형식과 편집도 새롭게

‘지식채널e’의 특징 중 하나는 내레이션 없이 자막과 배경음악 중심으로 영상이 구성된다는 점이다. 보통의 방송 프로그램이 화면을 설명하거나 돋보이게 하는 부차적인 요소로 자막을 여기는 것과 다르다. 그는 ‘영상의 형식을 취한 텍스트’라 이름 붙였다.

자막을 주요 소재로 사용한 것에는 당시 편성부장이던 한 선배의 조언이 한몫을 했다. 김 PD의 선배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영상 클립을 그에게 전했다. 캐나다 지역방송국에서 방영했던 <Matters>라는 프로그램이었다. 태양계 탐사선이 우주를 돌며 찍은 사진들을 영상으로 구성하면서 클래식 음악을 배경으로 깔고 내레이션 없이 자막을 주된 요소로 이용한 형식이었다. 두 달 남짓한 시간 동안 프로그램 형식과 방향을 고민하던 김 PD에게는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문제는 재미였다. 새로운 형식을 도입하되 시청자의 흥미를 돋울 수 있어야 했다. 그는 고민 끝에 자막 위치와 음악 선정을 새롭게 바꿔보고자 마음먹었다. 화면 아래 고정됐던 자막 위치를 위나 옆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음악도 클래식을 벗어나 영화 배경음악이나 팝 등 대중음악까지 범주를 넓혔다.

▲ ‘지식채널e’ 프로그램 중 시청자에게 호평을 받은 ‘포기할까 말까’ 편.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 이야기를 다루며 수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의 고민을 담았다. 당시 영상 프로그램에서 정적이던 자막 위치를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새로운 시각적 효과를 얻기도 했다. ⓒ EBS ‘지식채널e’ 갈무리

무엇보다도 획기적이었던 시도는 디지털 편집이었다. 2000년대 초중반 당시만 하더라도 지금과 달리 디지털 작업이 일반적이지 않았다. 특별한 연출 시에만 10초 정도 사용하는 게 다였다. ‘지식채널e’는 전체 영상을 디지털 특수 편집으로 작업하며 형식과 내용뿐 아니라 편집까지 새로운 시도를 더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2005년 9월 ‘지식채널e’ 첫 방송 이후 시청자의 이목이 쏠렸을 뿐 아니라 방송계의 호평도 이어졌다.

다양한 관심사를 반영할 수 있었던 까닭

“지식채널e’는 ‘다품종 소량생산’입니다. 아이템 제한 없이 무엇이든 만들어낸 프로그램은 ‘지식채널e’가 대한민국에서 유일할 겁니다. 여러분 머릿속에 기억하는 ‘지식채널e’가 과연 옆 사람과 같을까요? 아마 다를 것으로 생각해요. 여러 유형 중 본인이 즐겨보던 패턴이 바로 자기가 생각하는 ‘지식채널e’입니다.”

김 PD는 사람들 인식 속에 ‘지식채널e’의 이미지가 다른 이유를 다양한 유형 때문이라 말했다. 시청자의 여러 취향을 모두 만족시키고자 아이템 범주를 가리지 않았다. 과거 소품종 대량생산에만 머물렀던 산업화 시대 태도에서 벗어나 다양한 패턴을 시청자에게 고루 선보이고 싶었다. ‘다품종 소량생산’이 ‘지식채널e’가 가진 또 하나 특성이 됐다.

‘지식채널e’ 타이틀에 붙은 ‘e’는 <EBS>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영어 단어에 있는 모든 철자 e를 뜻하기도 한다. 그는 “과학(sience) 등 붙일 수 있는 타이틀만 해도 50개가 넘을 것”이라며 “사실은 하나가 아닌 50개짜리 프로그램”이라고 덧붙였다. 대중도 이러한 유형의 프로그램을 받아들일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당시 문화적인 면에서 스포츠를 넘어서 다양한 지식을 소비하고자 하는 성숙한 니즈(요구)가 지식채널e와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다양한 유형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넓은 관심사와 개성을 갖춘 인력이 필요했다. PD 수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보니 대신 작가 수를 최대한 확보하는 방식으로 프로그램 범주를 확장했다. 작가를 섭외할 때 중요한 기준은 기존 작가와 색깔이 달라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야 다양한 패턴의 프로그램을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자주 보는 작가, 영화를 좋아하는 작가 등 다양한 관심사를 갖춘 구성원들 덕분에 다품종 소량생산을 현실화할 수 있었다.

▲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지식채널e’가 만들어진 과정을 듣고 있다. ⓒ 고하늘

박지성 편이 성공한 이유

프로그램 첫 방영 후 호평을 얻으며 사회의 주목을 받았지만 어려움 역시 있었다.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내부에 일부 갈등이 빚어진 탓이다.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 중에 ‘메시지’를 넣을 것인가와 관련한 논쟁이 벌어졌다. ‘누가 봐도 동일하게 지식을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당시 선배 PD들의 주장이었다. ‘언론은 누가 봐도 불편부당함 없이 완벽하게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김 PD는 고민 끝에 ‘인간다운 것이 무엇인가’를 전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좌우 이념을 넘어 모두가 고민에 동감할 수 있는 주제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효순이 사건 관련 집회가 벌어지고 광우병 사태로 촛불집회가 확산하면서 대중 역시 새로운 요구를 더했다. 그는 “진보적인 이야기를 다루더라도 인간 보편 범주 안에서 논하고자 노력했다”며 “그래서 보수적인 학교에서도 수업중 부담 없이 프로그램 영상을 틀 수 있었다”는 말을 덧댔다.

프로그램 수명과 관련한 고민 역시 있었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도 3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것이 방송업계의 불문법이었다. 김 PD는 “EBS에 시네마천국이라는 좋은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담당자가 계속 바뀌는 등 우여곡절이 생기더니 결국 만신창이가 됐다”며 ”프로그램을 오래 이끌 수 있는 동력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김 PD는 ‘지식채널e’의 생명력을 유지하면서 시청자와 호흡하려는 방편으로 시의성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당시 EBS는 황우석 사태로 사회가 들썩거리는 와중에도 그와 관련한 방영을 하지 않고 자연 다큐멘터리를 다뤘다. 그는 “방송이 사회 논의와 함께 가는 것 같지 않았다”며 시의성을 고민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지식채널e’ 프로그램 중 가장 효자였던 것은 뜻밖에 박지성 편이었습니다. 방영되자 반응이 정말 폭발적이었죠. 사실 박지성 선수를 소재로 다룬 것은 시의성을 실험해보고자 했던 의도가 컸습니다. 시의성은 EBS가 그동안 다루지 않았던 영역이라 부담이 컸지만 방영 후 생각이 명확해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 여러 프로그램 중 특히 시청자의 사랑을 받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박지성’ 편. 그의 칠전팔기 축구 인생을 다룬 이야기에 시청자는 감동했다. ⓒ EBS ‘지식채널e’ 갈무리

“지식채널e와 함께 성장했다”

시의성을 더하면서 제작진은 자연스레 더 깊이 있는 고민을 하게 됐다. EBS는 타 방송사와 달리 취재 다닐 수 있는 기자가 없었다. 이는 곧 취재한 아이템을 프로그램에서 직접 다룰 수 없다는 의미였다. 김 PD는 “지식채널e가 시의성 있는 사회 이슈를 다룰 때 어떤 태도로 무슨 아이템을 선정해서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며 “기존 뉴스 저널리즘 프로그램들이 다루던 각도와 차별성을 둬야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고민 끝에 ‘취재’할 수는 없어도 ‘취재해서 보도하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김 PD는 “저널리즘이 아니라 메타저널리즘을 생각하게 됐다”며 “저널리즘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저널리즘이 특정 아이템을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한계는 무엇인지를 ‘지식채널e’에서 다루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초기에는 신문방송학 이론과 심리학 연구들을 소개했다. 이후 단순히 완결성 있는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발생하는 사건을 능동적으로 해석하는 힘을 어떻게 기를 수 있을지 고민을 이어갔다.

갈증을 느끼던 김 PD에게 해결책을 준 건 하나의 책이었다. 작가 중 한 명이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싶다며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쓴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건넸다. ‘프레임(frame)’ 개념을 중심으로 계몽주의적 신념이 왜 현실에서 통하지 않는지를 밝힌 책이었다.

책에 따르면 같은 이슈를 두고도 언론사별로 다른 논조를 보이는 것은 언론사마다 다른 프레임, 곧 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유권자인 국민, 곧 미디어 수용자가 전해지는 지식에 어떤 프레임이 있는지를 살피는 일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를 위해서는 상식에 질문하는 일 역시 필수였다. 김 PD는 “’지식채널e’를 만들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폭을 넓히게 됐다”고 고백하며 첫 번째 강의를 마쳤다.

▲ 세금 정책을 예시로 들며 프레임의 중요성을 다룬 ‘Frame’ 편. 영상에서는 세금감면과 세금구제가 같은 정책이지만 ‘감면’에 비해 ‘구제’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더 긍정적인 효과를 거둔다고 밝혔다. 이는 사람들이 ‘구제’라는 단어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 고통을 줄여주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 EBS ‘지식채널e’ 갈무리

“지식채널e의 첫 카테고리는 사이언스(science)였습니다. 과학은 가치 판단을 개입할 필요가 없는 손쉬운 아이템이었죠. 이후 고민을 거듭하다가 시사성 강한 소사이어티(society) 영역으로까지 나아가게 됐습니다. 이는 사람이 처음에는 지식을 수동적으로 배우다가 후에는 주체적으로 자기 의견을 갖게 되는 과정과 같습니다. 저를 비롯한 제작진은 ‘지식채널e’와 함께 성장하며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7년 1학기 [사회교양특강]은 홍기빈 박상훈 전중환 김진혁 서남수 김동춘 곽정수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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