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웹툰 '우리 집에 곰이 이사 왔다'로 보는 이 땅의 '갑질'

▲이연주 PD

잠들기 전 웹툰을 즐겨본다. 최근 보는 웹툰은 작가 켄타의 <우리 집에 곰이 이사 왔다>다. 아기자기한 그림체와 웹툰 주인공인 털북숭이 곰 토토의 인상은 귀엽다. 하지만 곰 토토의 인간생활 생존기는 마음을 짠하게 만든다. <우리 집에 곰이 이사 왔다>는 곰 토토의 인간 세계 적응기를 그린다. 인간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곰 토토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 ‘을(乙)’의 현실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을’ 곰 토토의 인간세계 ‘갑질’ 적응기

인간들처럼 말하고 생각하는 털북숭이가 사는 마법의 숲 ‘테바’. 곰 토토는 어둠의 숲에 사는 괴물로부터 마법의 숲 ‘테바’를 지키는 털북숭이 부대 ‘에이스팀’의 팀장이다.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곰 토토는 테바 국왕의 명령에 따라 인간의 기술과 지혜를 배우기 위해 인간세계로 내려오게 된다.

▲ 마법의 숲 ‘테바’에 사는 토토는 인간들의 문화와 지혜를 배우기 위해 인간세계에 왔지만, 인간의 갑질에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다. © 네이버 웹툰 <우리 집에 곰이 이사 왔다>

키가 25cm에 불과한 토토에게 인간 세상은 거인들의 세계다. 왜소한 토토는 당장 머무를 집을 구하는 것조차 힘들다. 인간들은 곰의 모습을 한 토토의 외모를 차별하며 자신들의 집에 들이지 않는다. 토토는 월세 외에 마당 청소, 쓰레기 분리수거 등 잡다한 일을 하는 조건으로 어느 가정집 마당의 빈 개집에 간신히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주인집 아들은 토토집을 발로 차고 모욕적인 말로 토토를 괴롭힌다. 마법의 숲 ‘테바’에서는 용감한 전사였던 토토지만 주인집 사람들의 구박과 멸시에도 아무 말 할 수 없다. 언제 개집에서 쫓겨날지 몰라 눈치를 봐야 하는 ‘을’이기 때문이다.

토토는 본격적으로 인간들의 지혜와 문화를 배우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패스트푸드점에서 감자에 소금을 뿌리고 패티를 끼우는 일, 사람들이 편하게 핫도그를 먹을 수 있게 핫도그를 입속으로 올려주며 인간들의 문화와 기술을 배우려 노력한다. 하지만 토토는 동물이라는 이유로 일당을 떼인다. 사장은 ‘인간도 아닌 짐승새끼를 고용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라며’ 적반하장으로 비난을 쏟아낸다. 토토는 꾹 참는다.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쫓겨나면 당장 월세 낼 돈을 마련할 수 없다.

토토의 모습을 보며,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청년 아르바이트생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최저임금이 법적으로 정해져 있지만, 프랜차이즈나 편의점 같은 경우는 최저 임금도 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작년 고용노동부는 이랜드파크 외식사업부의 프랜차이즈를 조사했다. 이랜드는 2015년 말부터 2016년 말까지 4.4만 명의 아르바이트생에게 총 약 84억 원의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임금 체납에도 아르바이트생들은 자신들의 정당한 임금을 요구하지 못했다. 그들도 토토와 같은 처지의 ‘을’이기 때문이었다.

을이 다시 갑이 되는 ‘갑질’ 문화의 병폐

인간세계에서 ‘갑질’을 당하며 사는 토토는 우리 사회의 실상을 그대로 드러낸다. 땅콩 회항 사건부터 종근당 회장의 운전기사 폭언 사건까지 기득권층의 ‘갑질’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물리적, 경제적 ‘갑질’만 아니라 인격적 모욕까지 일삼는다. 나는 돈을 주는 ‘갑’이고 너는 돈을 받는 ‘을’을 막 대해도 된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갑의 ‘갑질’에 ‘을’은 맞서지 못한다. 불이익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아들 같은’ 공관병에게 전자 팔찌를 채워 일을 시키고, 영창을 보내겠다고 협박하며 괴롭힌 육군 대장과 그 부인에게 공관병은 아무 대응을 할 수 없었다. 부당함을 알려도 개선되지 않았고, 오히려 더 큰 보복이 돌아왔다.

‘갑질’은 을에서 그 아래인 병(丙)으로 내려오면서 더 큰 사회적 갈등을 낳는다. ‘갑질’은 단지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사와 부하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이웃인 을이 다시 갑이 되어 자신보다 더 힘없는 병을 학대한다.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말자는 입주민, 알바생에게 막말을 하는 손님, 선생님 카톡 프로필 사진도 간섭하는 학부모는 전형적인 ‘을’의 ‘갑질’이다. 토토에게 일을 못 한다며 폭언한 패스트푸드 매니저는 ‘갑’처럼 보이지만 ‘갑’이 아니다. 그 또한 본사에 고용된 ‘을’이다. 매니저는 자신이 ‘갑질’로 받은 스트레스를 ‘병’인 토토에게 풀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국방부와 경찰청, 외교부 등 정부의 모든 부처가 ‘갑질 문화’에 대해 전수조사를 한 결과를 국무조정실에 보고했다. 국무조정실은 ‘갑질 문화’에 대한 대책을 곧 발표할 예정이다. 제도적인 개선도 중요하지만 ‘을’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을’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을’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을’들은 ‘갑’의 요구에 당연히 응해야 한다는 권위적인 사고로 인해 ‘을’들은 목소리를 낼 수 없다. 땅콩 회항 사건 피해자인 박창진 사무장은 사건을 폭로한 뒤 내부고발자로 찍혀, 회사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 ‘갑질’에 ‘을’이 목소리를 내면 ‘을’은 더 큰 피해를 본다.

을이 되고서야 을의 고통을 이해한 토토

웹툰 속 토토가 돈을 아끼기 위해 1000원짜리 토스트 대신 풀을 뜯어 먹으며 말한다. “배고픈 생명의 마음을 아는 것도 참 소중한 것이야.” 토토는 마법의 숲에서는 잘나가던 ‘에이스팀’의 팀장이었고, 아랫사람에게 지시 하는 ‘갑’의 위치였다. 인간세계에 와서 ‘을’이 되었다. ‘을’이 되어서야 그들의 아픔을 직접 겪으며 ‘을’의 고충을 이해하게 된다.

▲ 토토가 인간 세계에서 버틸 수 있는 건 그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해주는 사람들 덕분이다. © 네이버 웹툰 <우리 집에 곰이 이사 왔다> 캡처

인간의 ‘갑질’에 상처받은 토토를 위로해 주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다. 자신을 괴롭히던 주인집에서 갑자기 쫓겨난 토토는 현호라는 초등학생 집에 머무르게 된다. 현호는 다른 사람들처럼 토토를 무시하지도, 괴롭히지도 않는다. 함께 밥을 먹고 생활하면서 인간세계의 생활에 지친 토토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주고 힘이 되어준다. 현호는 동등한 인격체로 토토를 대한다. 토토는 현호로부터 인간 세계에서 계속해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

토토는 ‘테바’에 정기적으로 인간세계 보고서를 보낸다. 토토는 어떤 말을 썼을까. 아직 웹툰 상에는 토토의 보고서 내용을 자세히 볼 수 없다. “아들 같아서” 갑질 했다는 어떤 장군의 부인이나, “대견해서” 임시 채용 된 대학생에게 성추행을 한 러시아 전 문화원장에 대해서 썼을지도 모른다.

<우리집에 곰이 이사왔다> 속 토토를 보면서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면서 반성을 하게 되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선배라는 이유로, 손님이라는 이유 등으로 내가 당연히 받아야 하는 권리라고 생각하며 ‘갑질’을 하지 않았을까. 갑질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모두 노력해야 한다.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을’에게 막 대해도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을’ 또한 ‘갑질’을 당했을 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사회적 보호망이 만들어져야 한다. 사회 구성원의 노력이 있다면, 언젠가 인간세계의 따뜻함과 동등한 사회 문화에 대한 토토의 보고서가 테바로 보내지지 않을까.


편집 : 남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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