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토마스 사라세노 '행성 그 사이의 우리' 전

토마스 사라세노의 작품을 제대로 만나기 위해서는 1층 출입구로 들어가지 않고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작품 전체를 위에서 조망하며 관람을 시작하길 바란 작가의 의도다. 2층 출입구에 두 겹으로 쳐진 검은 장막을 손으로 걷고 들어서자 커다랗고 하얗게 빛나는 구(sphere)가 전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전시장으로 내려가면 거대한 구에 가려졌던 다른 구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노랑, 잿빛, 흰색 등 다양한 색의 구들은 크기와 재료가 다르고 빛의 밝기도 다르다. 구들은 색과 모양이 다른 행성들이 모여 있는 우주의 모습을 닮았다. 검은 배경에 설치된 형형색색의 구들이 설치된 전시장으로 천천히 내려가는 동안에 관람객은 자신이 우주 안으로 빨려들어 가는 느낌을 받는다. 건축가이자 예술가인 토마스 사라세노의 국내 최초 개인전 <행성 그 사이의 우리>는 관객을 전시의 일부로 끌어들이며 색다른 체험을 안겨준다.


▲ 토마스 사라세노 '행성 그 사이의 우리' 전시 영상스케치. ⓒ 박수지

먼지의 움직임을 우주 스케일로 바라보다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 1관은 가로 60m, 세로 23m, 높이 18m로 일반 건물의 4층 높이에 달하는 규모를 자랑한다. 사라세노는 이곳에 거대한 우주를 재현했다. 전시장 2/3 이상에 모두 12개의 구를 그물로 연결해 공중에 띄웠다. 큰 구를 중심으로 작은 구 2개씩을 양쪽에 연결하는 방식으로 총 4쌍의 구조물을 설치했다. 1쌍씩 보면 좌우 대칭을 이뤄 안정적이고 4쌍 전체를 보면 크기와 색이 다른 구들이 가로 세로로 서로 엇갈리며 조화를 이룬다. 원형의 빛줄기 하나가 벽을 비추며 만들어 낸 평면 구는 ‘달’을 의미한다. 평면형태의 달과 12개의 구는 우주라는 입체적 공간을 만든다. 관객은 그 공간을 다니며 지구가 돼, 전시물의 일부가 되어 우주를 여행한다. 우리는 지구와 인간이 우주의 중심인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사라세노의 작품은 인간의 천박한 인식을 깨며 우주망 안에서 우리 자신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가를 환기시킨다.

▲ 전시 <행성 그 사이의 우리>는 은은한 빛을 발하는 아홉 개의 거대한 구(sphere), 먼지 입자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대규모 영상 프로젝션, 거미와 거미줄 그리고 저주파 사운드로 구성된다. ⓒ 박수지

전시장 전체에는 NASA의 도움을 받아 채집한 실제 우주소리가 흐른다. 지하철 승강장이나 지하 주차장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같이 음산하면서도 웅장하다. 우주의 소리는 관객들의 소리와 어우러진다. 관람객들이 움직이면 진동에 의해 먼지가 이동한다. 전시장에 놓인 카메라가 먼지 입자의 속도와 크기를 3차원으로 인식하고 미리 설정된 알고리즘을 통해 소리로 변환시킨다. 사람들의 움직임에 따라 먼지의 진동이 달라지고 소리도 달라진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커지면 진동이 커지고 사람들이 조심스레 움직이면 진동이 수그러든다.

전시는 달과 9개의 구 사이에서 집을 짓고 있는 네필라 거미(Nephila spider)가 만들어내는 소리도 만들어 낸다. 거미는 행성과 같은 거대한 구나 인간에 비하면 지극히 하찮은 존재다. 사라세노는 그런 거미가 주인공처럼 눈부신 빛을 받으며 우리 눈에는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의 섬세한 움직임으로 집을 짓게 설치했다. 거미가 움직이며 집을 짓는 동안 거미줄이 튕기며 작은 소리가 난다. 너무 저주파라 들을 수 없는 이 소리는 거미줄 아래에 설치된 고감도 마이크에 의해 증폭된다. 먼지 입자와 거미가 만들어내는 두 소리는 서로 포개지며 조화를 이루고, 합쳐진 소리가 다시 공간 안의 먼지 입자를 진동하고 흩날리게 한다. 전시공간은 우주 소리와 거미와 먼지, 인간이 만들어낸 즉흥연주로 채워진다. 생물과 무생물이 함께 만들어낸 소리는 우주 소리와 어울려 화음이 되고, 우주의 일부가 된 관객과 그를 둘러싼 생태계는 더불어 하나가 된다.

▲ 먼지가 튕겨지며 내는 전파와 거미줄에서 나는 미세한 음이 전시 공간을 채우며 우주 안에서 인간과 공존하는 존재들을 느끼게 해준다. ⓒ 박수지

먼지와 거미의 움직임은 귀뿐만 아니라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공기 중에 부유하는 먼지들은 빛을 먹고 궤적을 그린다. 카메라가 포착한 먼지의 움직임은 한쪽 전면을 채우는 너비 22m, 높이 11.5m의 거대한 검은 스크린에 별자리를 그리듯 푸른빛으로 표현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먼지 입자의 궤적은 멀티미디어를 통해 확장되어 미시적이면서도 광대한 우주를 생중계한다. 이 화면 역시 관람객의 움직임과 거미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사라세노는 느껴지지 않고 보이지 않는 우주먼지를 시각과 청각으로 관람객들에게 선보인다. 그는 일상적인 것들을 다르게 보여주는 작업을 통해 부유하는 우주먼지와, 살아있는 거미가 부유하는 것을 발견하길 바란다. 이 발견으로 인간이 지구에서 다른 종류의 자원들과 살아가는 창의적 방법을 배우라고 역설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천장에 닿을 만큼 엄청나게 큰 구도, 먼지의 궤적도 볼 수 있어요. 일상적 요소를 다른 스케일로 바라보도록 초대하는 전시입니다. 구가 실질적으로 행성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일상의 요소를 크게 부풀려 다른 의미로 와 닿을 수 있는 지 제시하는 겁니다." 

하늘을 날고 공중 주거공간에서 살다

토마스 사라세노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건축학도로 예술과 건축, 자연과학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실현가능한 유토피아’를 위해 예술적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천체 물리학, 대기의 열역학, 거미집 구조를 연구하며 과학자들과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시각화하기 어려운 사회적, 생태학적, 미래적 이슈들을 구체화해 왔다. 이번 전시는 실현 가능한 유토피아를 제안하는 그가 그동안 진행해온 프로젝트들을 총망라해 제작한 작품이다. 그의 대표작인 공중에서의 삶을 꿈꾸는 <클라우드 시티(Cloud Cities)>와 화석 연료 없이 부유하는 <에어로센(Aerocene)> 의 콘셉트도 녹아 있다. 전시장의 커다란 구들은 <에어로센> 프로젝트의 기본 개념과 원리에 서 따왔다. 비닐봉지를 공중에서 거꾸로 잡고 공기를 넣으면, 그 안에 따뜻한 공기가 채워져 봉지가 뜨는 원리다. 봉지는 태양광에 의해 가열된 구 내외부의 온도차로 부력을 얻어 부유한다. 이 작품은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태양열과 지열, 바람 등 지구가 가진 기본적인 에너지만으로 자유롭게 이동하고 다양한 종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는 사라세노의 생각이 집약돼 있다.

▲ 지난 7월 14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야외에서 ‘에어로센’을 시연하고 있는 작가 토마스 사라세노.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사라세노는 이 원리를 이용하면 사람들이 석유연료를 태우지 않아도 부유하며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공기에 의해서 팽창되고 태양에 의해서 들어 올려 져 바람에 의해서 운반되는 에어로센은 깨끗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지향한다.

사라세노는 에어로센이 미래의 주거공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공중에서의 삶을 꿈꾸는 그는 구름 위를 자유롭게 부유하는 초국가적 모듈도시 <클라우드 시티(Cloud Cities)>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는 지속가능한 건축의 새로운 모델이다, 이번 <행성 그 사이의 우리> 전시에서 보여준 9개의 거대한 구들은 <에어로센>과 <클라우드 시티> 비전의 연장으로, 작가는 이와 같은 커다란 구를 공중에 띄워 주거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거미에게 건축을 묻다

거미를 사랑하는 그는 거미에게 건축이 무엇인지 묻는다. 거미는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집을 지은 동물이자, 일주일에 두 번의 밥과 물이 있다면 계속해서 열심히 집을 지을 수 있는 건축가다. 환경에 ‘폭력’을 가하지 않는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어디서든 집을 지을 수 있다. 사라세노는 거미처럼 어디든 돌아다니며 살 수 있고, 공중에 집을 지을 수 있는 세상 그리고 다른 종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꾼다. 이번 전시에서 거미를 주인공처럼 표현하고 그 움직임을 증폭시켜 소리와 빛으로 보여준 <아라크니아(Arachnea)>는 작가의 상상력을 표현한 작품이다.

“우리는 공기 속에 부유하며 살거나, 구름처럼 생긴 미래 도시를 구성할 지도 모릅니다. 화석연료와 같은 자원은 부족하고 많은 경쟁을 야기하기에, 화석연료를 연소시킬 필요 없이 공중을 날 수 있는 관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지구와 공생하는 다른 방식을 기대해보자는 것이죠.”

지금은 ‘인류세(人類世, 인류가 지구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친 시기)’로 불린다. 토마스 사라세노는 이번 전시를 통해 인간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지구 안의 다른 종과 생태계, 지구 너머 우주와 함께 살 수 있는 실현가능한 유토피아를 역설한다. 관객들은 과학과 건축의 유기적이고 시적인 통섭을 통해 신비로운 우주의 감각적 체험을 하며, 화석연료 없이 하늘을 날고 공중에서 부유해 살며 더 나아가 우주로 자유롭게 나아가는 삶을 열망하게 된다. <토마스 사라세노 : 행성 그 사이의 우리>는 행성 그 ‘사이’의 지구와 인간의 관계와 우리의 미래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전시는 내년 3월 25일까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에서 열린다.


편집 : 강민혜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