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KBS 드라마 '쌈, 마이웨이'로 본 청년 연애

청년세대는 더는 청춘이라 불리지 않는다. 청춘(靑春)의 봄(春)이 무색하게 취업준비 고시생이 120만 명에 달하고 40%가 비정규직 일자리를 택하게 되는 청춘살이는 겨울이다. 모든 조사에서 청년들의 최대 관심사는 '취업 및 진로'와 '돈'이다. 절반이 취업도 하기 전에 노후 걱정을 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그들의 관심사가 연애에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취업이 어렵고 취업해도 40%는 서비스업계 비정규직 일자리를 얻어 생계조차 힘에 부치는 바람에 연애, 결혼, 출산을 점점 더 포기하게 되는 청년세대에게 연애는 사치스럽고 가진 자의 몫이 되어버렸다. KBS 월화드라마 <쌈, 마이웨이> 속 청년도 별로 다르지 않다. 고동만과 최애라는 20대 후반이지만 진드기 제거업체, 백화점 안내데스크 직원이라는 저임금 서비스 노동을 한다. 찌질하기만한 이들도 로맨틱 드라마의 주인공으로서 연애라는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 청년 세대 현실을 반영한 드라마 속 인물들이 개연성 있게 전개된다면 청년세대의 연애 성취가 어떻게 가능할지 일종의 케이스 연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1회부터 주인공 애라는 3년간 사귄 잘 생긴 고시생 남자친구를 '서민 갑부'라는 중년 여성에게 뺏김으로써 청년만의 전유물인 외모나 성적 매력보다 이미 획득한 자본이 더 우선시되는 청년 연애 시장의 사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애라가 그동안 고시생 남자친구에게 뒷바라지해온 정성은 서민 갑부 여성의 전폭적 지원 앞에 초라해진다. 한국 정서에서 여성은 남성을 뒷바라지하면서 대리 성공을 성취해온 것이 사실이나 그것조차 청년 여성들이 하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 드라마 <쌈, 마이웨이> 주인공 최애라(좌)와 고동만(우)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 KBS 홈페이지

그뿐 아니다. 결혼식 사회를 펑크낸 유명 아나운서 대신 사회를 본 애라를 두고 하객 무리 중 의사 4명이 내기를 한다. 호텔로 데리고 가면 100만원. 애라는 그들 사이에 끼어있다가 봉변을 당할 위기에 처하지만, 상황을 알게 되고 '깽판'을 친다. 애라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자기방어는 공격이다. 애라는 말로 점잖게 하는 여성이 아니다. 발로 자동차 백미러를 모두 부수고 '외제차니 100만원쯤 하겠다'며 자신에게 찾아오라고 큰소리친다. 이런 애라의 깡에 반했다며 다가온 의사는 남자친구가 되겠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세컨드 자리를 제안했던 것이 후에 밝혀진다.

이 모든 과정에서 유일하게 애라의 편이 되어주고 모든 사정을 알고도 같이 버팀목이 되어주는 사람은 고동만이다. 고동만은 태권도 청소년 유망주였지만 승부 조작에 가담해 선수 자격이 박탈된다. 평생 운동만 해왔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없어 진드기 업체에서 일해 왔다. 또래 여성들에게 매력적인 연애대상으로 보이기 어려운 스펙이다. 동만은 애라의 옆집에 사는 소꿉친구인데, 남자이기 때문에 그 둘은 서로에게 '남사친', '여사친' 관계가 된다. '남자사람친구'는 남자친구가 아니라 순전히 친구라는 뜻에서 남자와 친구 사이에 '사람'을 넣어 만든 신세대 조어다. 이런 남사친 관계가 어떻게 가능할까? 소꿉친구라서, 서로에 대해 시시콜콜한 것까지 잘 알아서 이성이기 전에 사람으로 보이거나, 각자 연애를 하고 있거나 해와서 서로 이성적 관심을 두지 않거나. 그런데 이런 관계는 그냥 남사친, 여사친이 아니다. 유사가족이다.

한국 사회에서 연대란 희귀하다. 연대 지수에서 한국은 OECD 최하위다. 힘든 상황에서 연락할 친구 하나 없는 삶이 한국인들의 삶이다. 연대를 이룰 수 있는 최소한의 공동체는 그나마 '가족'일 것이다. 최애라와 고동만은 그런 가족의 울타리에 있다. 커플인 소꿉친구는 바로 윗집에 산다. 이 네 명이 옥탑 평상 위에서 술 한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서로의 집에서 식사도 종종 함께하면서 20대를 살아왔다. 이런 유사가족이 있기 때문에 고동만과 최애라는 크게 외롭거나 극한 상황에 내몰리지 않고 살아온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로맨스는 일종의 운명이다. 기존 로맨스 장르에서 반복되어온 스토리처럼 할아버지끼리 갓난아기일 때부터 혼담을 주고받았다는 전통에 기댄 운명이 아니라, 청년 실업과 서울 고물가, 그리고 유사가족 역사에서 비롯된 88만원 세대의 운명이다.


편집 : 박진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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