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tvN 드라마 '라이어게임'의 게임 규칙

한국 도박 중독률은 5.4%(2014)로 영국, 프랑스(2.5, 1.3%) 등에 비해, 2배 이상 높다. 그리고 프로 스포츠의 발달과 불법 온라인 도박이 급증해 20-30층이 여기로 유입되고 있으며, 그와 함께 도박 중독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대박을 바라며 도박판에서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어떤 싸움에서도 이겨내서 보물을 찾아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꿈꾸는 이들이 늘고 있다. 마치 영웅 신화의 주인공 같다. 하지만 대박은 고향은 염원에 불과하고 실패가 더 일상적이다.

케이블 채널 tvN에서 방송해 1%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라이어게임>은 도박을 소재로 한 심리 추적물이다. 원작은 일본 도박 만화 <라이어게임>이다. 도박꾼들의 영웅이자 천재 사기꾼인 27세의 청년 야키야마 신이치가 주인공이다. 그는 우연히 LGT 사무국이라는 조직이 운영하는 라이어게임에 출전해 예선 4회전을 거쳐  결승전까지 가는 12종류의 게임에서 최종 우승자가 된다.

만화 속 게임의 기본 규칙은 제로섬 게임이다. 게임을 시작할 때마다 사무국은 플레이어들에게 1억 엔을 제공하고, 플레이어들은 룰에 따라 상대방의 '머니'를 획득하거나 자신의 ‘머니’를 뺏기게 된다. 이 규칙대로라면 최종 승자를 제외한 다른 이들을 모두 사무국에 1억엔의 빚을 지게 된다. 그런 점에서 최종 승자인 신이치를 진짜 영웅이라고 보기 어렵다. 진짜 영웅으로 18세의 칸자키 나오가 나온다. 그가 신이치에게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모두 서로 믿고 빚을 나누면 1억 엔의 빚을 지지 않고 0원으로 끝낼 수 있다. 라이어게임은 거짓말을 해서 이기고 싶은 욕망을 극복하고, 정직해질 수 있느냐를 시험하는 게임이다.” 이에 따라 그는 협력한 다른 플레이어들의 빚을 약속한 대로 갚아준다.

▲ 라이어게임 만화의 표지에 주인공 신이치(왼)와 LGT사무국 직원(가운데) 그리고 칸자키(오)가 나와있다. ⓒ 학산문화사

<라이어게임> 속에서 칸자키는 거짓말을 못 하며 남의 거짓말에도 속는 ’빌리버‘다. 그래서 게임에 참여하긴 하지만 게임 밖에서 사고(thinking)한다. 그 때문에 그는 절대로 승과 패라는 상황에 함몰되지 않는다. 신이치와 대립하는 사고방식이다.

“돈은 ‘위대한 어머니’의 원형을 지니고 있다. 돈이 탄생했을 때 어머니의 신화가 만발했다. 돈으로 쓰인 가축은 풍요와 다산의 원형인 여성과 밀접하며, 원시 화폐로 쓰인 조가비도 여성의 성기, 나아가 생명의 잉태와 탄생을 뜻한다. 심지어 ‘머니’(money)의 어원은 로마 신화의 여신 유노의 별칭 모네타(Moneta)에서 유래한 것이다.” 초기 유로화 창설자인 버나드 리테어의 주장이다. 그는 심리학자 칼 융의 ‘원형(原型ㆍarchetype)’ 개념을 바탕으로 돈이 지닌 깊은 상징성과 여성성을 조명했다.

그에 따르면 위대한 어머니인 돈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화폐 시스템이 바뀌었다. 위대한 어머니를 억압하는 사회는 탐욕을 정당화하고 빈곤에 대한 두려움을 과장하고 조장하는 억압적인 화폐 시스템이 구축되며, 여성을 존중하는 사회에선 높은 수준의 복지와 부를 향유했다는 것이다. 신이치를 비롯한 도박사의 세계는 이 어머니를 되찾으려는 아들의 세계라면 칸자키는 위대한 어머니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위대한 어머니를 억압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만화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칸자키가 없었다면 도박 천재 신이치는 다시 감옥에 갔을 것이다. 신이치나 도박의 세계와 우리 역시 무관하지 않다. 우리 역시 늘상 돈이 없다고 느끼며 돈이 갑자기 많아지면 이 허기가 채워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한국 가계부채가 1300조 원을 넘은 것 역시 돈의 여성성 억압을 심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모모>의 작가 엔데는 우리가 돈의 노예처럼 살지 않으려면 돈이 노동이나 상품의 물적 가치와 같은 가치여야 한다고 했다. 그런 인식에서 출발한 대안 화폐 운동은 전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미국 타임 달러는 현대판 품앗이로, 일한 시간만큼 다른 사람의 재화 또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다. 이자 없는 올(all) 크레디트 화폐는 거래 참여자들 사이에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일반화한다.

대안 화폐에 기본소득제를 접목할 수도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도입한 성남시 청년수당은 초보적인 기본소득 형태다. 기본기초생활비 성격이기 때문에 전액 소비로 지출되어 개인 자산으로 축적되지 않는다. 지급수단인 ‘성남사랑 상품권’은 성남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어 대안 화폐의 속성을 갖는다. 브라질 쿠리티바시는 최근 25년 동안 소득의 30%를 대안 화폐로 지급해, 최저 빈곤층의 생활 수준 뿐만 아니라 시 전체의 1인당 소득도 빠르게 증가시켰다.

교환기능만 갖는 지역화폐 ‘레츠(LETS)’는 실업자나 소외계층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가치의 생성과 유통을 주목적으로 발행되고 있다. 이들을 경제적인 빈곤에서 탈출시킬 뿐만 아니라, 이들이 사회적 고립과 무기력을 극복하고 타인 및 사회와의 접점을 회복하는데 레츠가 기여하고 있다. 지역사회 복지나 자연보호처럼 사회에 공헌하는 사업을 높은 이윤보다 더 가치 있게 보고 선별 투자하는 독일의 GLS 은행과 같은 소셜뱅크도 나타나고 있다.

사회적 협동을 끌어내고 삶을 풍요롭게 가꾸는 화폐 시스템으로 전환하면 인간과 돈의 관계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돈에 깃든 ‘위대한 어머니’의 원형을 되찾아 이타주의적이고 평등한 질서를 바탕으로, 경쟁보다는 사용자 사이의 협력을 조장하는 매개자로서의 돈을 회복해 우리가 모두 서로에게 빌리버가 될 수 없을까? 그렇게 되는 날, 라이어게임은 현실이 아니라 ‘게임’으로만 머물 수 있을 것이다.

* 본 기사는 조성애 교수의 <도박과 돈>논문을 참고하였습니다.


편집 : 강민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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