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매트릭스는 무엇을 상징하나

1999년에 개봉한 영화 <매트릭스>는 워쇼스키 자매가 제작한 매트릭스 시리즈 첫 편이다. <매트릭스>에서 인공지능은 인간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인간을 건전지처럼 착취한다. 매트릭스는 인간을 더 효과적으로 착취하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램 또는 가상세계이다. 주인공 네오와 모피어스를 비롯한 저항군은 인공지능과 맞서 싸우며 매트릭스를 붕괴시키기위해 고군분투한다.

매트릭스와 현실세계가 상징하는 것

매트릭스는 2199년, 1999년의 인간 세계를 모방해 설계된 프로그램에 불과하지만 인간 뇌로 자극을 전달해 작동하기 때문에 매트릭스에서 깨어나 현실세계를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매트릭스 속에 있음을 알아채지 못한다. 매트릭스를 붕괴시키기 위해 프로그램 안으로 잠입한 인간 반군들을 처리하는 역할을 맡은 요원의 우두머리가 스미스다. 그에 의하면 사람들이 너무 빨리 죽어버리는 바람에 떨어지는 생산성을 올리기 위해 고안된 것이 매트릭스다. 매트릭스 없이는 인간이 버틸 수 없도록 만들어진 세계에서 인간의 생명을 연장해 한 명에게서 뽑을 수 있는 에너지를 극대화하는 것, 이를 통해 인간을 에너지원으로 삼는 현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매트릭스의 목표다.

▲ 텔레비전 속 평범해 보이는 세계가 매트릭스다. 아래는 영화 <매트릭스> 속 햇빛이 사라지고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현실세계의 모습이다. ⓒ 영화 <매트릭스> 화면 갈무리

매트릭스는 인간이 상상한 세계 혹은 인공지능이 그렇게 상상하도록 주입한 세상의 모습이다. 인간이 인공지능의 건전지로 소비되는 현실 세계의 모습을 감춘다는 점에서 매트릭스는 인공지능이라는 지배계급이 인간을 착취하는 지배-착취 구조를 숨기고 존속시키는 데 기여한다.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에서 매트릭스는 현실을 숨기고 왜곡하는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존 스토리는 대량생산 대량소비 사회에서 상품으로 전락한 ‘대중문화’는 마르크스적 의미의 상부구조를 구성하는 이데올로기적 형태 중 하나라고 말했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인간사회의 생존에 필요한 물질적 요소를 생산하기 위해 조직된 하부구조가 정치, 문화적 행위를 포함하는 상부구조의 모습을 결정한다. 마르크스는 물질적 생산 수단을 지닌 지배 계급은 상부구조의 지배력도 갖는다고 말했다. 지배 계급의 사상은 어느 사회에서나 지배적인 사상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지배 계급이 자신의 이익과 사상이 보편적인 것이라고 주장하게 만든다. 지배계층이 보편성을 독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대중문화라고 보는 관점은 프랑크푸르트학파에 의해 집중적으로 논의된 바 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사회에서 태동한 대중문화는 그 이전의 문화와 완전히 성격을 달리 한다. 대중문화는 예술가 개인의 작품이라기보다 문화산업의 제품이다. 상투적이고 보수적이고 규격화되어 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일원인 마르쿠제는 대중문화가 노동계급을 착취하는 현실을 노동자들이 외면하게 할 뿐 아니라, 노동자들로 하여금 자본주의 구조를 삶의 방식으로 내재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했다. 대중문화를 통해 학습한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이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있는 자본주의를 벗어난 삶의 방식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들어 이들의 정치성을 희석시키고, 자본주의 틀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그들의 목표를 제한한다는 것이다.

그는 대중문화를 ‘긍정적’ 문화라는 개념과 대비시켰다. 이는 현실세계에 대한 비판 의식을 토대로 더 높은 이상을 표현하는 문화를 말한다. 대조적으로 대중문화는 더 나은 세계에 대한 욕망을 지피기보다 현실을 왜곡해 버틸만한 것으로 만들고 체제전복적이지 않은 목표를 제시한다. 그는 대중문화가 고통스러운 삶의 무게를 이 같은 방법으로 완화해서 억압적인 지배구조를 연장하는 기능을 한다고 주장했다.

▲ 네오가 매트릭스에서 깨어나 현실에 눈뜬 모습. 인간이 기계를 위한 에너지원으로 재배되고 있다. ⓒ 영화 <매트릭스> 화면 갈무리

영화 <매트릭스>가 제시하는 세계의 모습에는 인공지능이 인류를 지배하는 모습이 철저하게 은폐되어있다. 그 세계에서는 인간 뇌를 충분히 몰입시키기 위해 적절한 수준의 고통과 역경이 가해지기도 한다. 매트릭스를 뇌에 주입받는 인간들은 이 허구의 세계에 완전히 함몰되어 현실에 눈 뜰 수 없다. 인공지능의 노예로 전락하는 것이다. 매트릭스 속에서 돈과 명예를 추구하는 행위는 결국 현실에서 인간이 인공지능에 저항할 역량을 앗아가는 가짜 목표에 불과하다. 그러나 매트릭스가 완전히 허구인 것만은 아니다. 매트릭스라는 정신세계에서 입은 상처가 고스란히 신체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매트릭스라는 정신적 세계와 현실의 인간 신체 간 유기적 관계는 대중문화에 깔린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노동자 계급의 혁명을 차단하는지 보여준다. 정신의 구속이 신체의 구속과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한 것이다.

매트릭스 속 요원들은 이데올로기의 상징

네오에게 디스토피아적인 현실을 깨우쳐주는 인물은 저항군의 수장 모피어스다. 그는 네오가 매트릭스를 무너뜨리고 인간을 구원할 영웅이라고 믿는다. 인공지능과의 싸움에 대비해 네오를 훈련시키면서 모피어스는 그에게 요원들을 특히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인공지능의 매트릭스 속 화신인 만큼 인간을 초월한 강력한 힘을 가진 요원들은 높은 건물의 옥상 사이를 손쉽게 뛰어다니고 강력한 근접 전투 능력을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요원들은 매트리스 속 사람들이 남긴 정신적 흔적을 추적해 매트리스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파악한다. 그들은 매트릭스 속 사람들의 ‘몸’을 빌려 순식간에 먼 거리를 이동하기도 하고, 그들의 몸으로 저항군과 싸우다가 상처를 입거나 죽으면 다시 그들 몸에서 빠져나오면서 영생하는 존재다.

▲ 매트릭스 속 요원들은 시민들의 '몸'을 옮겨다니며 네오를 추적한다. ⓒ 영화 <매트릭스> 화면 갈무리

이 같은 매트릭스 속 요원과 대중의 관계 때문에 모피어스는 매트릭스 속 사람들을 당장의 적이라고 규정한다. 궁극적으로는 매트릭스 속 사람들은 네오와 저항군이 해방시켜야 할 대상이지만 매트릭스 속에 있는 그들은 요원들의 수단으로서 매트릭스를 수호하는데 동원되기 때문이다. 매트릭스를 대중문화로 해석했던 맥락이 요원과 매트릭스 속 대중의 관계를 설명하는데도 이어진다. 인공지능이라는 지배계급의 이해 관계를 수호하기 위해 활동하는 요원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로 볼 수 있다. 대중들은 자신을 억압하는 지배 구조를 수호하는 이데올로기에 다양한 방식으로 동원되고 선동된다는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이 요원과 대중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다.

▲ 네오가 매트릭스의 실체를 꿰뚫어 보자 요원들의 총알은 더이상 그에게 범접할 수 없게 됐다. ⓒ 영화 <매트릭스> 화면 갈무리

네오는 매트릭스가 허구의 세계임을 깨닫고 억압적인 현실에 눈뜬 인물이다. 그의 현실 인식이 저항군 동료였던 트리니티와의 사랑과 결합했을 때 연대의 힘이 더욱 커지며 지배담론에 더욱 강력하게 저항할 수 있게 된 것을 영화에서 볼 수 있다. 트리니티의 사랑으로 부활한 네오가 요원들이 쏜 총알을 한 손으로 저지하고 요원의 안으로 파고 들어가 그를 안에서부터 터뜨려버린 장면은 이 같은 마르크스 담론의 영화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매트릭스> 속 전위당론(Vanguardism)

<매트릭스>에서 네오는 매트릭스를 붕괴시킬 유일한 힘을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네오(Neo)’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독보적인(One) 존재다. 네오를 필두로 한 저항군이 매트릭스에 종속된 인류를 구하려는 과정은 레닌이 마르크스주의를 이해한 방식과 흡사하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이 충분히 누적되면 노동자들이 부르주아에 대항해 혁명적인 계급 투쟁을 일으킬 것으로 보았다. 로자 룩셈부르크에 이르러 이 노선은 확고한 자리를 잡는다. 반면에 레닌은 대다수의 노동자 계급보다 사회 현실과 마르크스 이론에 더 눈 뜬 지도층이 혁명의 과정을 이끌어야 한다는 전위당론(Vanguardism)을 추구했다. 마르크스가 <매트릭스>를 보았다면 저항군이 매트릭스 속 대중을 계몽되어야 할 수동적 존재로만 그린 점을 비판적으로 보지 않았을까.

영화 <매트릭스>는 현대 자본주의와 대중사회, 대중문화에 대한 은유로 가득찬 영화다. 디지털적 은유를 겉으로 드러내지만 속으로는 대중문화에 대한 마르쿠제적 비판과 맞닿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네오의 정체를 밝히는 일은 이 영화 해석의 열쇠다. 네오는 전위론적 리더일까, 영웅서사 스토리텔링의 주인공 캐릭터일 뿐일까? 해석은 오롯이 관객의 몫이다.


편집 : 남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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