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열망과 절망’

▲ 윤연정 기자

열정과 냉정’, ‘사랑과 증오’, ‘기쁨과 슬픔’, ‘열망과 절망’. 이 단어 쌍들의 공통점은 감정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영향감정’이라는 것이다. 보통 한쪽 감정이 극대화하면 할수록 상반되는 감정도 커진다. 동전이 뒤집어지듯 감정이 변하면 걷잡을 수 없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감정’은 보통 우리가 ‘관계’했을 때 생긴다. 대상에 관여하기 때문에 느끼는 정서다. 격한 ‘정서’는 사람들을 분열시키기도 하지만 뭉치게도 한다. 증오하고 열망하기 때문에 뭉치고, 사랑하고 절망하기 때문에 뭉친다.

‘뭉치는 힘’은 대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국가론이 기승을 부리는 정치 풍토에서 강조된다. 국민정서를 동원해 정치를 하는 맥락에 이어진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담론에서 조금씩 벗어나 개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더 평등하고 보편적인 가치로 여기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을 뜻하는 86세대를 비롯해 자유를 갈망하는 젊은 세대가 사회의 주력이 되고 있는 점과 진보정권으로 교체된 배경이 맞물린다.

87년 6월항쟁 때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염원하며 투쟁했다. 전두환 정권이 무너지고 꿈에 그리던 ‘민주주의’를 이뤄냈을 때 열망은 앞으로 대한민국이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품게 했다. 하지만 이후 진보정권을 거치면서 국민의 열망은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나’라는 절망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30년이 지난 뒤 우리는 다시 광화문에서 정권교체를 외치며 민주주의를 열망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정권교체로 출발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은 것이다. 민주주의를 소원하는 열정은 민주주의가 삶 전반에 걸쳐 일상에서 실천될 때, 그리고 그 변화의 시간을 다수가 인내할 수 있을 때 지속가능하다.

▲ '정치적 감정'(political emotion)은 정의를 지키는 인간 고유의 무기다. ⓒ pixabay

절망이든 열망이든 격정적인 정서를 함께할 때 우리 힘으로 뭔가 이뤄냈다는 체험도 진하게 할 수 있다. 미국 정치철학자 미사 누스바움은 우리에게 인지적이고 윤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정치적 정서’(political emotions)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치적 정서’는 국가주도적 차원이 아닌 개별적 차원에서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공동체적인 삶, 공감적이고 이타적인 공동선(善)을 실행하며 살 수 있는 방법이다. ‘정치적 정서’에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면 극대화한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막고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인 민주적 정치체제를 회복하는 동력이 생길 수 없다.

‘열망과 절망’이라는 정서는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사회•경제 양극화, 신자유주의에 따른 승자독식체제, 그리고 공동체의 파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자 희망이다. 타인을 공감하는 것에서 오는 연대는 이성과 개인, 그리고 필요에 의한 계약적 관계만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적 관점을 뛰어 넘어 ‘함께’ 분노할 수 있는 힘을 솟구치게 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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