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임의 문답쇼, 힘] 인권변호사 강신옥

“김재규는 최태민 문제가 10·26사태를 일으킨 원인 중 하나라고 말했어요. 최태민이 박근혜를 이용해 기업 갈취, 여자문제, 부정축재 등 국정농단을 저지른다고 보고했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딸인) 박근혜 말만 듣고 덮어버렸다는 거죠. (나중에라도 진상이 밝혀졌다면) 박근혜는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거고, (최태민의 딸인)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대통령 파면 사태도 없었을 겁니다.”

민청학련과 10.26 등 주요 시국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강신옥(81) 변호사가 8일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에 출연, 박근혜 당시 영애를 이용한 최태민 목사의 국정농단이 박정희 저격 동기 중 하나였다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진술을 공개했다.

“김재규, 학생·시민 희생 막으려 박정희 제거 결심” 

강 변호사에 따르면 1979년 10월 26일 서울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 살해한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변호인 면담에서 “부마항쟁 등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학생·시민의 저항이 심상치 않다고 보고했으나 대통령이 일축해 거사를 결심했다”고 범행 동기를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과 달리 스스로 물러날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 제거하지 않으면 유신독재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고 많은 학생과 시민의 희생이 불가피할 것으로 봤다는 것이다.

▲ 강신옥 변호사는 “유신 독재를 끝낸 김재규는 역사적으로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 SBSCNBC 갈무리

김 전 부장은 이와 함께 최태민 박근혜 문제를 보고했는데도 박 대통령이 ‘모함’이라는 딸의 항변만 믿고 덮어버린 것도 저격 결심을 굳힌 이유가 됐다고 변호인 면담과 항소이유서 등을 통해 밝혔다. 강 변호사는 “김재규 사형으로 최태민 문제의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고,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후에는 모든 의혹을 ‘찌라시’라고 부인했다”며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된 것은 사필귀정”이라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이날 방송에서 최태민 관련 내용과 함께 ‘박 전 대통령이 연예인을 포함한 100여명의 여성을 쾌락의 도구로 삼았다’는 진술이 담긴 김재규 면담노트를 공개하기도 했다. 

강 변호사는 “김재규는 유신독재를 끝내기 위해 의거를 했지만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수사과정에서 김재규를 파렴치범으로 몰아 사형시키고 자신이 권력을 잡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두환은 당시 김재규에게 자결하라고 했는데, 진짜 자결해야 할 사람은 전두환”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2000년부터 ‘10·26 재평가와 김재규 장군 명예회복추진위원회’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 강 변호사는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김재규는 의사(義士)로 재평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조선시대 단종의 복위를 도모한) 사육신도 당시에는 역적으로 몰렸지만 250년 뒤에 신원이 회복됐다”며 “김재규가 아니었다면 유신독재는 20년 이상 이어지고 수많은 희생자가 나왔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둑 대신 ‘도둑이야’ 외친 사람을 벌한 X파일 사건 

강 변호사는 지난 2005년 삼성X파일 사건 당시 제보자인 박인회씨를 변호했다. 당시 검찰은 뇌물을 주고받은 재벌과 정치인, 검사들은 수사하지 않고 제보자인 박씨와 이를 보도한 기자, 수뢰검사 명단을 공표한 국회의원 등을 처벌했다. 불법 도청의 결과물은 법 절차의 증거물로 쓸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에 대해 강 변호사는 “삼성의 정경유착을 밝히려던 제보자의 용감성과 진실성, 애국심 등은 다루지 않고 완전히 협박범으로 취급했다”며 “(김기춘 전 청와대비서실장 등이 연루된) 1992년의 초원복국집 사건처럼 도둑은 안 잡고 ‘도둑놈이야’ 외친 사람을 조사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당시 삼성이 사법부에 엄청나게 로비를 해서 결과적으로 아주 잘못된 재판이 됐다”고 꼬집었다. 그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속설이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사법부가 바로 서려면 법관들이 초심으로 돌아가 흔들리지 않는 정의감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강 변호사는 법관들이 초심으로 돌아가 정의감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 SBSCNBC 갈무리

민청학련 변호하다 법정 구속돼 7개월 복역 

강 변호사는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당시 김지하 시인과 한국기독교학생총연맹(KSCF) 소속 학생들을 변호하다 법정모욕죄 등으로 10년형을 선고받고 7개월간 복역한 일이 있다. 그는 “엄청난 용공조작 사건으로, 재판도 아니고 쇼였다”며 “멀쩡한 시민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까지 선고하는 것을 보고 ‘사법살인’이라고 외쳤다”고 회고했다. 그는 180명이 구속기소된 이 사건의 재판정에서 “악법에는 저항할 수 있다. 나도 차라리 피고인석에 서겠다”고 말했다가 현장에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체포됐다.

변호사가 법정에서 체포된 초유의 사태는 당시 미국 <뉴욕타임스> 1면에 실리는 등 세계적 반향을 일으켰고, 국제인권단체 등에서 경제적 지원을 했다. 당시 국내 변호사 거의 전원이라고 할 수 있는 125명이 변호인단을 구성해 그를 변호하기도 했다.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들은 40여년 후 재심을 통해 무죄를 인정받았다. 강 변호사는 당시 무리하게 기소하고 중형을 선고했던 검사, 판사들에 대해 “아무리 시대적인 어려움이 있었다고 해도, 출세를 위해 불의에 눈감았던 당시 법관들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 민청학련 사건을 변호하다 법정모욕죄 등으로 체포되던 상황을 설명하는 강신옥 변호사. ⓒ SBSCNBC 갈무리

‘반대는 가장 높은 형태의 애국심’

판사가 된 지 1년 만에 박정희 정부의 사법부 인사전횡에 항의해 사표를 던졌던 강 변호사는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미국에 법학공부를 하러 갔다가 변호사의 역할과 사명에 대해 눈을 떴다고 말했다. 그는 풀브라이트 전 상원의원이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면서 “반대는 가장 높은 형태의 애국심”이라고 한 연설을 인상 깊게 듣고 이를 민청학련 등의 변호에 활용했다고 회고했다. 우리나라의 반체제, 반정부 청년들의 저항 역시 애국심에 따른 것이라는 얘기다.

강 변호사는 풀브라이트가 인용한 러시아 철학자 차다예프의 ‘광인의 변’도 소개했다. 차다예프는 니콜라이 황제에게 바른 소리를 하다 ‘미치광이’란 낙인이 찍혀 연금 당했는데, “나는 나라를 사랑하는데 눈을 뜨고 사랑하지, 입을 열고 사랑하지, 귀를 열고 사랑하지, 침묵하고 눈치 보지 않는다"고 썼다. 강 변호사는 정보기관에 끌려가 고초를 당하고 감옥살이까지 하면서도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던 것은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우라고 한 가르침을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믿었고, 결국 정의가 이긴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전체 영상은 아래 링크에서도 다시 볼 수 있습니다.

http://sbscnbc.sbs.co.kr/read.jsp?pmArticleId=10000862007


경제방송 SBSCNBC는 지난 3월 16일부터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가 진행하는 명사 토크 프로그램 ‘제정임의 문답쇼, 힘’ 세 번째 시즌을 시작했다. 매주 목요일 오후 9시부터 50분간 방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사회 각계의 비중 있는 인사를 초청해 정치 경제 등의 현안과 삶의 지혜 등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풀어간다. <단비뉴스>는 매주 금요일자에 방송 영상을 싣는다. (편집자)

편집 : 임형준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