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책] 장시간 노동자 ①

안산 시화공단에서 일하는 홍성구씨(40·남) 이야기

장시간 노동이요. 분명 잘못됐죠. 분명 법에는 8시간 노동이라고 적혀 있잖아요. 미국에서 노동자들이 12시간 근무를 8시간으로 줄여달라고 시위를 하고 8시간 노동을 쟁취한 것이 200년 전이에요. 하루에 8시간 노동하라. 글로 된 법이 있는 법치국가에서 8시간 노동마저 현실이 아니고 주5일 근무도 현실이 아니에요. 기사나 교과서에서 배운 것들이 현실이 아니었어요. 이렇게 일만 주구장창 할 줄 몰랐어요. 벌이는 괜찮아요. 빚도 없어요. 적금도 부을 정도니까요. 문제는 ‘일’이에요. 일 때문에 아이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안사람이랑은 대화도 많이 못해요.

▲  1866년 마르크스가 제1차 인터내셔널 강령에서 8시간 노동제의 법제화를 요구한 이래 8시간 노동제의 문제는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단계로 이행하던 19세기 후반 세계 노동운동의 중심적 문제였다. Ⓒ Pixabay

1년 353일, 하루 10시간 반을 일해요

대학에서는 토목공학을 전공했습니다. 제가 입학할 때,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끊어지고 했거든요. 저는 토목 공부를 해서 부실한 건축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어요. 사회학 소모임 활동도 했구요. 그런데 대학생활을 하다 보니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대학에서 대학을 부정한 셈이죠. 간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어요. 대학 졸업장을 받더라도 비전은 없었습니다. 차라리 돈을 벌자고 생각했고, 노가다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일거리가 많은 안산에 정착했습니다.

지금은 자동차 회사에 피스톤을 공급하는 1차 하청공장에서 10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용광로에서 금속을 녹이고 조형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하루에 10시간 반 일합니다. 주간조는 오전 7시 반부터 작업을 시작합니다. 늦어도 새벽 6시엔 집에서 나와야 하죠. 야간조 근무는 밤 8시부터 작업을 시작해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일합니다. 그런데 그 새벽에 퇴근하는 사람은 없어요. 5시 퇴근이나 1시간 반 잔업을 더해 6시 반에 나가나 별 차이가 없잖아요. 야간조 인원 3분의 1은 ‘조식근무’라 해서 일을 한 시간 더 합니다. 주간조가 작업을 시작할 때까지 1시간 더 일을 하는 거죠. 쉽게 말해 아침 식사 시간동안 일을 하는 겁니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특근을 해요.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회사에 나가요. 일이 있다고 말하면 “꼭 가야하냐?”고 물어봅니다. 동료들 모두 나와 일을 하는데 저만 빠진다고 하면 눈치가 보이죠. 오늘처럼 야간조-주간조가 바뀌는 일요일은 잘 쉬지도 못합니다. 일요일 오전에 퇴근해서 월요일 새벽에 출근하니까요. 주야간 근무가 1주일 단위로 바뀌는데 야간조 근무주는 정말 힘듭니다. 잠도 잘 못 자요. 아침에 출근하는 안사람이랑 어린이집 가는 아이도 챙겨주고, 야간 근무하는 동안 신경 못쓴 집안일도 해야 해요. 그러면 이미 해는 중천에 떠 있어요. 많이 자봤자 하루에 4시간? 주간조가 차라리 나아요. 주간조 근무도 아침 7시 반에 출근해서 잔업마치고 집 돌아오면 10시 가까이 됩니다. 잠자는 시간도 비슷하긴 한데 아무래도 밤에 자는 거랑 낮에 자는 거랑 다르잖아요. 한 달에 하루정도는 휴가를 냅니다. 사실 내일과 모레 연차를 쓴다고 말해두긴 했어요. 세 살배기 아이가 입원했거든요. 감기에서 기관지염으로, 기관지염에서 폐렴으로 악화됐다고 합니다. 맞벌이하는 부인은 지난주 내내 휴가를 내 병원에서 아이를 돌봐줬습니다.

▲ 장시간 노동자의 취미생활은 술로 귀결된다. Ⓒ Pixabay

바쁜 아빠들의 취미생활은 술로 귀결

일하다보니 제 삶이 없어졌어요. 처음에는 회의도 좀 들었어요. 나는 사람이 아니라 기계부품이구나.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지니 그 생각도 없어졌어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살고 있어요. 취미라든가 개인시간 같이 회사 밖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둘씩 없어지니까 무감각해졌다고 할까요.

그래도 삶의 재미를 찾고자 회사 동호회 활동도 하고, 부인을 만났던 주말농장도 나가고 있습니다. 헌데, 그럼 몸을 버리죠. 몸 곳곳에서 신호가 와요. 손목을 돌리면 아프고 어깨를 들면 쑤시고. 무리가 가도 그것마저 하지 않으면 삶의 재미가 없어요. 대부분의 아빠들이 혹은 남자들이 직장 생활하면서부터 개인의 취미생활이 술로 귀결되잖아요. 등산이나 축구, 스키 같은 직장 내 동호회가 있긴 하는데 전체 직원 중 25% 정도만 참석하는 수준이에요. 그중에서도 절반만 잘 나오고 나머지는 회비만 내고 있어요. 동료들 대부분도 저처럼 쉴 시간이 모자라서 그렇겠죠. 하루 24시간 중 회사에 매인 시간은 15시간 정도 됩니다. 출퇴근 시간에 작업, 잔업시간까지 더하면요. 그럼 나머지 9시간을 쪼개야하는데, 잠자는 시간 빼고 나면 서너 시간밖에 남지 않아요. 그 시간 쪼개서 공차고, 등산하고 하다보면 제가 쉴 시간이 없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술을 찾나 봅니다. 짧은 시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게 술 말고 더 있나요? 1주일에 4일 정도는 동료들과 ‘비공식 회식’을 합니다. 술 마시다보면 잠을 더 자야하고, 그만큼 가족과 보내는 시간도 줄어요.

한 달에 한 권 정도 책을 읽자고 마음먹었는데, 읽다 포기한 책만 쌓여만 갑니다. 그래도 인터넷으로 뉴스는 틈틈이 보는데요. 가끔 이런 기사 나오잖아요. ‘책 읽지 않는 한국사회.’ 장시간 노동해 봐요. 책 볼 시간이 있나. 영화관에 간 것도 기억이 없네요. 한 10년은 넘지 않았을까요. 친구와 연락은 꾸준히 하려해요. ‘카톡’이나 인터넷으로요. 그런데 직접 만난 건 손에 꼽습니다. 직장 동료 말고 친구를 만난 건, 아마 제가 결혼할 때 일 겁니다. 3년 전쯤? 다들 바쁘게 살아서 그렇겠죠.

부부 사이 문제도 장시간 근로 때문

일 년에 3천 시간 넘게 일하는 만큼, 봉급이 적진 않아요. 그런데 가끔 부인은 월급명세서를 보고 “돈 많이 벌어오면 뭐해”라고 장난을 칩니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걸 꼬집는 진심반, 농담반의 푸념이죠. 이건 저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제가 알고 있는 회사 동료 열 명이 근 5년 새 이혼했어요. 젊은 친구들은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미혼’이 되더라구요. 각자 사연이 있겠지만 장시간 노동이 가정에 미치는 영향은 실재합니다.

분명 부부사이 문제가 생긴다고 하면 아빠의 장시간 근로가 원인이 될 거라고 봐요. 장시간 근로는 아빠의 피로로 이어지고, 아빠의 피로는 휴식으로 이어지겠죠. 청소, 설거지,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 아내와의 대화시간도 휴식으로 돌려야겠죠. 그러면 아빠가 집에서 하는 게 뭐가 있냐는 불평불만으로 이어지지 않을까요? 저야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이도 어리다보니 괜찮은데 주변 형님들 이야기 들어보면 가족 관계가 느슨해진 게 보여요. 아빠는 돈 벌어오고, 엄마는 집에서 아이보고, 각자만의 생활을 하는 거죠. 함께 일하는 형님들은 부인에게 갱년기라 서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농담 섞어 말하는데요. 각자만의 생활이 지속되다 보면 서로 지쳐가고, 서로가 서로를 기대하지 않는 상황이 오겠죠. 그렇게까지 되면 외도나 이혼을 할 가능성도 충분히 생길 거라고 봐요.

대학 다닐 때에는 친구들과 학회하면서 정치에도 사회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때만큼 못한 거 같아요. 아무래도 바쁘다 보니 뉴스나 핸드폰으로 간간히 보고 있죠. 대학 친구들과는 간간히 연락하긴 하는데, 아무래도 어렵죠. 다들 사느라 바빠선지. 오늘같이 이런 얘기할 사람도 없어요. 회사에도 분명 사회 문제에 관심이 있는 동료가 있을 거예요. 그런데 일도 힘든데 사회문제에도 신경 써야하나하고 서로가 말을 하지 않으려는 분위기도 분명 있습니다.

회사가 바뀌지 않는 이상 아이에게 쏟을 여력 없어요

가족 식사는 야간조 근무 주에만 가능해요. 이론적으로는 한 달에 2주 정도는 가족과 식사를 할 수 있는데 그것도 쉽지 않죠. 주간조 근무일 때는 아이 얼굴을 거의 못 보구요. 아이가 일어나기 전에 집에서 나가고 일 마치고 돌아오면 아이는 자고 있죠. 장시간 노동을 계속한다면 아이와 놀아줄 시간도 없을 거예요. 아빠가 집에 집중할 수 없게 되는 거죠. 아이에게 아빠가 필요한 시기가 분명 존재하잖아요. 아빠와 정서적 교감이 있는 아이들이 더 창의적이고 논리적이라는 통계도 있다고 하잖아요. 게임 중독이나 스마트폰 중독도 더 낮다는 야이기도 들리고.

저도 아이에게 뭘 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어요. 제 생활 패턴을 바꿔야겠죠. 야간조 출근 전에 아이에게 좀 더 집중해야겠고, 잔업이나 특근도 빼야겠죠. 그런데 회사가 바뀌지 않는 이상 어려울 듯합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재벌중심이잖요. 하청업체는 끊임없이 단가경쟁을 하고 있어요. 하청업체 최고경영자가 돈을 더 벌 수 있어야 사람을 더 고용하거나 기계를 더 두거나 기업규모를 키울 수 있겠죠.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그럴 여유가 없어요. 심지어는 이런 일도 있어요, 예컨대 한 2차 하청업체에서 채용을 늘리거나 임금을 인상했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1차 하청업체 경영자가 모여 이야기를 나눈답니다. 저 회사 임금 늘렸다더라, 여유가 있구나. 그러면서 바로 단가확인을 한다는 거죠. 그게 부담스러워서 중소기업, 영세기업이 정규직을 뽑기란 쉽지 않은 거고. 있는 정규직 노동자에게 일을 더 시키거나 파견직이나 계약직을 더 부리는 거죠.

장시간 노동을 없애려면 한 사람이 부담하는 일의 양을 나눠야 할 텐데 그게 어려워요. 파견직이나 계약직으로는 ‘숙련도’라는 한계가 있잖아요. 지금 상황에서 저 같은 정규직 숙련 노동자가 ‘잔업 좀 그만합시다’이러면 ‘다른 회사 알아보세요’라고 말하겠죠.

아이가 잘 자라줬으면 좋겠는데 그게 마음처럼 쉽진 않아요.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경기가 악화돼 아빠 수입이 줄어들면, 엄마도 일을 구해요. 그래도 여의치 않으면 애들 다니는 학원을 끊더라고요. 아이들이 학원에 가지 않으면 친구들이랑 놀겠죠. 친구들이랑 노는 것까진 괜찮은데 ‘무엇’을 하고 놀까. 이게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도 있겠지만 청소년 일탈 문제가 불거질 겁니다. 장시간 노동자의 아이를 정서적으로 길러줄, 의지할 만한 곳이 없다고 할까요? 그래서 엄마들도 악착같이 돈을 벌어 아이를 학원에 보내려는 건 아닐까요. 아이가 있는 부모라면 가정과 교육, 문화적, 정서적 배경을 최고로 제공하고 싶겠죠. 그러기위해 부모 모두 일을 한다면 또 부모와 아이 간의 정서적 여백이 발생하겠죠. 악순환이죠. 이 악순환,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진 않네요.


단비뉴스팀은 (사)다른백년과 함께 ‘사랑하지 않는 대한민국’을 주제로 6편에 걸쳐 우리 주변의 삶을 들여다본다. 장시간 노동자, 청년 실업자, 경쟁에 시달리는 직장인, 노인, 청소년들이 그들이다.

노인은 말동무를 찾아 매일같이 탑골공원에 간다. 취업 못한 청년은 안전한 직장을 가질 때까지 스스로 고립된다.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는 직장인은 연인을 만날 시간조차 없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 사는 현대인에게 사랑은 사치다. 각자도생 사회에서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누구에게도 고민을 털어놓지 못한다.

기사는 총 7부로 1부(프롤로그)를 제외한 각 부는 사람책과 기획기사로 구성된다. [사람책]에선 한 사람의 생애를 있는 그대로 전한다면 [기획기사]는 현실을 진단하고 원인과 대안을 보여준다.

당신은 사랑하고 계십니까. (편집자) 

이 기사는 (사)다른백년(http://thetomorrow.kr)과 경향신문(www.khan.co.kr)에도 실립니다. 

편집 :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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