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수 칼럼] 거짓말 일삼는 후보에 부화뇌동... '보수의 위기' 자초

▲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

나는 TK(대구경북) 출신이다. 그런데도 ‘진보성향’이었으니 TK의 덕을 본 적은 없다. TK 출신의 진보성향 정치 지도자가 집권한 일 자체가 없으니 줄을 댈 일도 없었다. 박근혜 정권은 <한겨레>에 이어 <경향신문>에서 시민편집인으로 활동하던 나를 ‘블랙리스트’에 올려 한국언론재단의 지원을 중단시켰다.

초⋅중⋅고 동창회 같은 데 가끔 나가면 유럽에서는 중도보수쯤으로 분류될 나에게 ‘좌빨’이라며 핀잔을 주거나 “니가 우야다 그리 됐노”라며 진정으로 걱정해주는 이도 있다. 그러나 이제 ‘왕따’를 당하더라도 진정한 보수를 살리기 위해 할 말은 해야겠다. 홍준표 후보 같은 극우 포퓰리스트가 우리 고향에서 지지율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사태를 그냥 넘길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보수와 진보는 세상을 움직이는 두 바퀴이며 어느 한 쪽이 너무 약해져도 안 되는 상보관계에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중도를 내세우는 후보가 있지만 정치에서 중도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유럽에서는 간혹 중도정당이 집권해도 양쪽 눈치만 보다 모두를 실망시켜 조기 퇴진한 사례가 많다. 유럽을 복지국가로 만든 것도 보수와 진보가 번갈아 집권하면서 복지를 둘러싼 정책 경쟁을 벌인 덕분이다.

영국에서 복지국가의 주춧돌을 놓은 쪽은 보수당이었다. 보수당의 아버지로 불리는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노동조건 개선을 외친 것은 그러지 않으면 영국사회를 지킬 수 없다는 보수파의 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복지정책에서 노동당이 전향적이지만 노동당 정권이 시행한 복지정책은 보수당이 집권해도 함부로 되돌리지 못한다.

홍준표 후보는 선전선동의 '능력자'

▲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지난 5월 3일 대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에서 유세를 펼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홍준표 후보는 어떤가? 복지정책에는 가장 후진적이면서 노동정책에는 노동자를 향한 적개심이 가득하다. 그는 경제위기가 강성노조 탓이라는데, 그러면 한국보다 노조가 강한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 대부분 선진국들은 경제강국이면서 복지국가라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건가? OECD 국가의 노조조직률은 2013년 기준 26.4%였는데 우리는 10%도 안 된다. 한국경제를 망친 책임을 가장 무겁게 져야 할 집단은 엉뚱한 데 돈을 쏟아 부은 보수정권, 그리고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다.

홍 후보의 말버릇을 두고 무식하다며 얕보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그가 나치 선전장관 괴벨스의 선전선동술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본다. “승리한 자는 진실을 말했느냐 따위를 추궁당하지 않는다.” “이성은 필요 없다. 감정과 본능에 호소하라.” 그는 단순화, 과장, 책임전가, 감정이입 등 선전선동의 수법을 체득하고 있는 듯하다. 일부 귀족노조를 들어 노조 전체에 경제위기의 책임을 전가한 것은 전래의 수법이다.

홍준표∙유승민이 문재인에게 제기한 ‘대북 인권결의안’과 ‘주적’ 논란에 안철수가 가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괴벨스는 “대중을 가장 빨리 뭉치게 하는 것은 증오심”이라 했다. 히틀러는 “선전의 소비자는 대중이지 지식인이 아니다”라고 했다. 대중이 증오하는 김정일∙김정은과 상대 후보를 ‘한통속’으로 묶으려 했던 것이다.

국방백서에 ‘주적’ 규정이 없다는 사실 등이 밝혀져 논란은 가라앉았지만 홍준표∙유승민은 보수층 결집 효과를 누렸다. ‘말 안 되는 말’이 선전에 크게 기여하는 것은 그럴수록 더욱 두드러져 보이는 ‘현저성 효과’ 덕분이다. 다만 안철수의 지지율이 떨어진 것은 진보∙보수 양쪽에서 모호한 그의 정체성에 더욱 의구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왜곡에 따른 자발적 동의가 더 무섭다

▲ 5월 3일 부산 중구 BIFF광장에서 열린 홍준표 후보 유세에서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TK지역을 중심으로 한 홍준표의 지지세 확장은 그가 선거에 패배한다 하더라도 한국정치, 나아가 한국사회에 갈등의 핵으로 존재할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강압이 아니라 사실왜곡에 의한 자발적 동의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독재시대보다 더 뿌리깊은 갈등요소가 될 수 있다. 국정농단 세력 청산도 ‘통합’이라는 이름 아래 여러 번 실패한 우리 역사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

최악은 극우정당이 세력화하는 것이다. 홍준표는 물론이고 ‘말 안 되는 말’을 일삼는 김진태 윤상현 김문수 조원진 등은 항간에서 말하듯이 ‘또라이’가 아니라 극우정당의 리더가 될 가능성이 있다.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까지 진출한 르펜도 처음에는 지지세가 미약했고 브렉시트를 주도한 영국 극우정당도 원래는 존재감이 없었다.

그러나 경제가 어려워지고 실업자가 늘면 트럼프의 이민자 추방 정책 같은 극우노선이 지지세를 급속히 확장하게 된다. 트럼프도 지식인들한테는 비난받지만 서민들 중에는 열광하는 이가 많다. 문제는 언론이 극우정당의 허구성을 까발려야 하는데 오히려 비호할 수구언론이 많고 일부 진보언론도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어 큰 기대를 하기 힘든 환경이다.

보수 후보 사이를 오락가락한 진보언론의 한계

우리 진보언론의 한계는 바른정당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드러난다. 바른정당이 탄생할 때부터 그랬지만 일부 바른정당 의원들이 자유한국당으로 복귀하자 남아있는 의원들이 마치 진정한 보수정당의 희망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도했다. 자유한국당에 견주어 양식있는 의원의 비율이 조금 높다고 할 수는 있어도 근본이 수구적인 인물이 많은 현실을 간과한 것이다.

하태경은 극우인 일베를 적극 옹호해왔고 주호영은 “세월호 사건은 기본적으로 교통사고”라는 인식을 드러낸 바 있다. 김무성은 국정교과서를 적극 옹호했고, 유승민은 사드를 더 많이 들여와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남북관계에서는 북한의 선군주의를 방불케 하는 수구성을 드러냈다. 유승민은 증세를 주장하는 등 경제 부문에서 소신있는 발언을 해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으나, 그가 KDI 연구위원 시절 삼성의 자동차산업 진출에 결정적 공헌을 해 외환위기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은 어떤 언론도 지적하지 않는다.

유럽에 견주면 수구정당을 보수정당으로, 보수정당을 진보정당으로 포장해 온 데는 한국의 보수언론뿐 아니라 진보언론도 책임이 크다. 한국사회뿐 아니라 한국언론도 심하게 우경화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극심한 양극화와 ‘헬조선’이다. ‘진보언론의 맏형’임을 자부하는 <한겨레>도 창간 초기에 견주면 진보성을 많이 상실했다고 본다. 중도보수인 문재인과 뭘 봐도 보수인 안철수 사이에서 오랜 기간 오락가락하는 보도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빛나는 특종들을 쏟아내고도 정치부 일부 기자와 논객에 의해 정체성이 흔들리면서 정치 보도에 민감한 일부 진보성향 독자들의 비난을 샀다.

사실 안철수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진보 색깔 옷을 벗어 던지고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 내 건전한 보수세력과 손잡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샌드위치 신세 대신 보수의 희망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도 진보 정치인들을 영입해 진보성을 강화했더라면 어쩌면 한국정치사에서 그의 집권보다 더 중요한 업적을 남길 수도 있었다. 진정한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이 양립해 서로 경쟁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것이야말로 한국 민주주의가 순조롭게 굴러갈 궤도를 놓는 일이 아닐까?

보수의 희망을 좌절시키는 몰표 현상

▲ 홍준표 후보가 5월 3일 대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에서 열린 유세에서 손을 들어 V 표시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그런 열망을 가로막고 있는 게 TK지역의 못 말리는 수구정당 몰표 현상이다. 김재원 의원만 하더라도 박근혜 대통령의 정무수석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할 사람인데 4.12 보궐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 그는 김무성 의원에게 ‘형님께서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 국회의원이 독립된 헌법기관이기는커녕 조폭과 다름없는 패거리 의식을 드러낸 자이기도 하다.

영남은 전체 유권자 4,243만 가운데 출향인을 뺀 지역 유권자만 1,091만에 이르고 TK만으로도 호남을 능가한다. 그들 중 상당수가 홍준표 후보를 미는 것은 보수를 살리는 게 아니라 보수의 위기를 자초하는 일이다.

언론은 홍 후보가 ‘아니면 말고’ 식 비방을 한다고 보도했는데, 그는 분명 알면서도 세력 결집을 위해 새빨간 거짓말을 한다는 점에서 노회하기까지 하다. ‘좌파가 집권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하지만, 그러면 유럽 선진국들은 다 망했을 터이다.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문재인의 햇볕정책이 신용등급 개선에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먼 예를 들 필요도 없이 서울시와 성남시에 이른바 ‘좌파 시장’이 취임했지만 ‘우파 시장’이 초래한 수십조원의 채무를 없앤 게 그들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영국 <가디언>에 세계 5대 혁신시장으로 선정됐고, 이재명 성남시장은 분당의 보수층에도 인기가 높다. 이명박∙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이대엽 전 성남시장은 우파 포퓰리스트였지 진정한 보수가 아니었다.

TK가 자랑스런 보수의 본거지가 되려면

TK지역은 원래 보수가 아니라 진보의 본거지였다. 조선시대에는 남인의 세거지로서 기득권층인 노론에 목숨 걸고 저항했고 일제시대에는 좌우 가릴 것 없이 수많은 독립투사를 배출한 지역이었다. 심지어 박정희 시대에도 저항정신을 이어가다가 인혁당 사건 등으로 큰 희생을 치른 곳이기도 하다.

그런 전통이 장기집권하는 사이 변질돼 어느덧 기득권층의 좋지 못한 행태들을 체득하게 됐다. 경상도 출신, 특히 TK 출신 남자들은 서울에 와서도 사투리를 버리지 않는 이가 많다. 팔도 사람이 어울려 사는 곳에서는 가능하면 사투리를 쓰지 않는 게 상대방을 위한 배려일 텐데 경상도 사투리를 무슨 지배계층의 언어쯤으로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남아선호의식이 유달리 강하다든가 김형태-심학봉 의원 등으로 성추문 사건이 이어지는 것도 가부장적 의식 또는 권력남용의 한 형태일 수 있다.

국정농단 세력 중에도 경남의 김기춘 등을 빼면 TK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 박정희 이래 경북고 출신을 중심으로 하는 극소수 엘리트들이 중앙권력을 농단하는 사이에 TK지역은 보수여당의 집토끼로 인식되면서 오히려 낙후된 측면이 있다. 대중이 출세한 TK를 자신과 동일시하고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특혜를 받지 못해 일부 공직에서 배제된 것을 ‘잃어버린 10년’으로 보고 절치부심했다.

TK 엘리트들은 기득권 유지를 위해 개혁적 보수 정도인 더불어민주당을 좌파로 규정하고 집권을 저지하겠다고 선동한다. ‘보수주의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드먼드 버크도 말했지만, 보수는 그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개혁해야 한다. 선거를 전후해 보수를 진짜 위기로 몰아갈지 위기에서 구해낼지 여부는 온전히 TK의 손에 달려있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와 동시에 실립니다.

편집 :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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