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임의 문답쇼, 힘] 이용만 전 재무부장관

“경제성장을 위해 은행돈을 기업에 몰아줬고, 예금보다 대출이자를 더 싸게 해주는 역금리까지 불사했죠. 그런 금융의 희생에 각종 세제혜택과 산업정책으로 성장한 재벌이 다 자기 힘으로 그렇게 된 것처럼 승자독식하면 안 되죠.”

지난 60~70년대 재무관료로서 경제개발계획을 주도했고 신한, 외환은행장도 거친 이용만(83)전 재무부장관이 4일 SBSCNBC 방송 <제정임의 문답쇼, 힘>에 출연해 ‘관치금융(정부가 금융에 지나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의 유래와 재벌의 성장사를 회고했다.

▲ 과거 산업화시절 경제성장과 기업육성을 위해 관치금융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하는 이용만 전 장관. ⓒ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 갈무리

‘역금리’까지 불사하며 기업 지원  

그는 “(비판 받는) 관치금융의 주역 중 하나가 바로 나”라고 말문을 뗀 후 “성장을 위해 기업지원을 하려면 자금이 필요한데 당시 세수가 적은 정부가 재정으로 감당할 수 없으니 금융을 동원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에 금융자원을 몰아주기 위해 가계로 가는 소비금융은 억제했고, 기업의 비용을 낮추려고 예금과 대출이자의 차이인 ‘예대마진’은 최대한 좁혔다는 게 그의 증언이다. 이 전 장관은 “한때는 예금보다 대출이자를 낮게 책정하는 역금리까지 동원한 적도 있다”며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던 일”이라고 회고했다.

이렇게 무리한 금리정책을 써가며 정부는 수출을 최우선적으로 지원했고, 설비투자와 주택건설 등의 정책금융에 자금배분의 우선순위를 두었다. 반면 예대마진의 축소와 역금리 등으로 은행은 돈을 벌기 어려운 구조였고, 정부의 개입 때문에 경영자율성도 갖지 못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이 전 장관은 설명했다.

그는 “재벌을 키우는 과정에서 그렇게 은행이 희생했는데,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우리나라 은행은 나만큼의 신용도 없다’고 말하더라”며 당시 몹시 섭섭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힘들게 농사지어 아들을 가르쳐 놓았더니 ‘아버지 무식하다’고 하는 꼴이었다”고 덧붙였다.  

승자독식 버리고 동반성장 책임감 가져야

이 전 장관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재벌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 데 대해 “소수의 승자가 독식하고 패자는 갈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재벌이 정부의 세제·금융 등 전폭적 지원과 국민적 희생을 바탕으로 성장한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특히 약자인 중소기업과 동반성장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 이 전 장관은 재벌이 정부의 전폭적 지원과 국민적 희생을 바탕으로 성장한 만큼 중소기업과 동반성장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 갈무리

그는 그러나 재벌을 강도 높은 개혁의 대상으로 삼는 접근법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 전 장관은 “재벌기업의 변칙상속 등 불법행위는 엄단하되 그들을 털어서 못살게 하는 것보다는 일자리 창출, 투자 확대 등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낙하산 인사, 문제 있었던 것은 사실”

이 전 장관은 재무부출신을 비판적으로 일컫는 ‘모피아(재무부의 영문약자 MOF와 이탈리아 범죄조직 마피아의 합성어)’가 산하기관을 ‘낙하산 인사’로 장악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그런 측면도 없지 않다”고 인정했다.

▲ 이 전 장관은 과거 재무부 출신의 '낙하산 인사'에 대해 일부 잘못된 부분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 갈무리

그는 “금융기관이나 산하기관에 진출한 재무부 인사들이 다 잘했다는 보장은 없다”며 “내부에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는데’하는 생각이 왜 없었겠느냐”라고 말했다. 특히 자신이 행장을 했던 외환은행의 경우에도 잘 했던 사람, 잘 못 했던 사람에 대한 평가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가계부채 해결 위해 범정부적 접근 필요

이 전 장관은 심각한 수준에 와 있는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어느 한 부처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인 만큼 범정부적으로 대응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계부채는 성장, 금융, 일자리, 부동산 등 다각도의 정책조합이 있어야 해결이 가능하며 저소득층 지원강화, 가계소득증대, 일자리창출의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 전 장관은 이날 방송에서 6.25한국전쟁 당시 혈혈단신 월남한 17세 소년이 전쟁에서 총상을 입고도 살아남아 재무장관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주었다. 특히 토굴과 연탄창고방에서 지내며 고학하던 시절을 거쳐 재무관료로 승승장구하다가 1980년 신군부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의 처삼촌을 만나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직된 후 절치부심했던 사연 등이 눈길을 모았다.

* 전체 영상은 아래 링크에서도 다시 볼 수 있습니다.
http://sbscnbc.sbs.co.kr/read.jsp?pmArticleId=10000857908


경제방송 SBSCNBC는 지난 3월 16일부터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가 진행하는 명사 토크 프로그램 ‘제정임의 문답쇼, 힘’ 세 번째 시즌을 시작했다. 매주 목요일 오후 9시부터 50분간 방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사회 각계의 비중 있는 인사를 초청해 정치 경제 등의 현안과 삶의 지혜 등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풀어간다. <단비뉴스>는 매주 금요일자에 방송 영상을 싣는다. (편집자)

 편집 : 곽호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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