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기획] 농촌 현장 인터뷰

선거철마다 전통 시장에는 후보자들의 '먹방'이 넘쳐난다. 그러나 정작 먹거리의 생산지인 농촌을 들여다보는 정치인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4월 13일 대선 주자들은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주최로 열린 '선택 2017! 한농연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미래 먹거리를 위해 농촌을 살리겠다고 설토했다. 하지만 농촌 공약은 선거 때마다 반짝 나타났다가 정책에는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박근혜정부의 대선 공약 이행률을 점검한 경실련에 따르면 '행복한 농어촌'의 전체 세부공약은 62개나 되었지만 12개만 완전 이행되었고, 농촌을 위한 복지정책은 오히려 후퇴하였다. <단비뉴스> 지역농촌부는 5월 농번기에 열리는 19대 대선을 앞두고 농업과 농민을 위한 정책이 제대로 갖춰졌는지 점검하는 기획 기사를 2회에 걸쳐 싣는다. 농촌정책에 대한 농민들의 생각은 어떤지 농민과 농정 관계자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유력 대선 후보 5인의 농촌정책을 두루 살펴본다. (편집자)

촛불대선을 앞뒀지만 농업정책은 외면받고 있다. 내년까지 5년마다 정하는 ‘쌀 목표가격’을 적용해야 하는 등 현안이 쌓여 있지만 다른 이슈에 밀려 있다. <단비뉴스> 지역농촌부는 제천에서 농사 짓고 있는 농민들과 관계자들을 찾아가 농촌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았다.

자식에게 물려주기 미안한 가업

김태완(63)씨는 충북 제천시에서 40년째 딸기 농사를 짓고 있다. 평일에는 부인과 함께 농사를 짓고, 휴일이면 도시에서 일하는 자식들이 찾아와 일을 거든다. 김씨는 “내가 아쉬워서 (휴일마다) 부르고 있다”며 자식들을 대견스러워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거리가 너무나 많지만 농촌은 대부분 가족농으로 일손을 해결한다. 일꾼을 고용해 부족한 일손을 메우기에는 인건비가 부담되기 때문이다.

▲ 김태완씨는 “농촌에도 젊은 사람이 필요하다”며 안타까워했다. ⓒ 김효진

김씨는 노지 재배를 하다가 7년 전부터 비닐하우스 재배를 시작했다. 비닐하우스는 계절의 영향을 덜 받고 품도 덜 든다. 하지만 김씨는 여전히 농촌이 어렵다고 말한다. 노력한 만큼 소득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씨가 자식에게 선뜻 가업을 이어받으라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다.

“농촌 고령화가 제일 심각하죠. 농협 가보면 조합원들이 다들 어르신들이에요. 60대인 내가 영계소리를 들어요. 허허, 자식 세대가 대를 이어줘야 하는데…”

비교적 ‘젊은 농부’인 배윤수(45)씨는 의림지 근처에서 과수원을 운영한다. 74년에 아버지가 일군 과수원을 물려받아 사과농사를 지은 지 올해로 10년째다. 그전에는 도시에서 직장을 다녔다. 배씨는 농사를 지을 생각이 없었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관광객이 많은 의림지에 과수원이 있어 과수원을 물려받기로 결심했다.

▲ 배윤수씨는 “정부 주도의 변화가 없다면 농촌에 희망은 없다”고 말했다. ⓒ 김효진

“저는 관광객과 직거래를 하니까 편하게 농사 짓는 편이에요. 과수원 농사는 판로가 없는 게 가장 힘들어요. 농사를 아무리 잘 지어도 판로가 없으면 소용이 없어요. 제값을 못 받아서 소득이 안 나오죠. 농민이 판매에 뛰어들게 내버려두면 안 돼요. 농민은 판매로 유통업체를 이길 수 없어요. 선진국들을 보세요. 농부가 농사를 지어 놓으면 조합을 통해서 품질에 맞게 공정한 값을 받아요.”

20년 전 수준으로 떨어진 쌀값

최근숙 할머니(85)는 자신 소유의 1천여 평 논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고 지금은 작은 텃밭만 가꾼다. 최 할머니는 임대료가 생활에 도움이 되냐는 물음에 “도움은 뭘, 쌀이나 조금 받는 거지”라고 답했다. 임차인들도 인건비와 기계 대여 비용을 빼면 남는 것이 없을 거라고 한다. 할머니는 쌀값이 너무 싸다는 말을 반복했다.

▲ 최근숙 할머니는 쌀값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현실을 걱정했다. ⓒ 김효진

“쌀값이 너무 싸. 한 가마니에 15만원도 안 하니. 10년 전엔 16만원, 17만원씩 갔는데 더 떨어졌어.”

고도환 제천시 농협미곡종합처리장장도 농촌의 가장 큰 문제는 “20년 전 수준으로 떨어져 한 가마니에 10만원이 겨우 넘는 쌀값”이라고 지적했다. 올해 정부가 제시한 쌀 목표가격은 18만8천원이다. 그러나 실제 쌀값은 13만원대 이하로 떨어졌다. 영농비를 생각하면 20만원은 돼야 한다.

▲ 고도환 제천시 농협미곡처리장장은 지역 시민의 의지가 있다면 쌀 소비 문제를 어느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곽호룡

쌀값이 떨어진 이유는 외국산 값싼 쌀이 대량 수입되는 데다 식생활의 변화로 쌀 소비량이 20년 전보다 반으로 줄어든 탓이다. 고 장장은 “생산조정제를 통해 공급량을 줄여야 한다”며 “우리밀이나 두류 등 수요에 맞춘 대체작물 재배방법을 농가에 알리기 위한 대책을 논의중”이라고 밝혔다.

‘농민들은 농협에서 쌀을 더 많이 수매해주기를 바라지 않느냐’는 질문에 “제천 오대쌀 지역 자급 소비량은 20%”라며 쌀 판매에 어려움이 있다고 답했다. 고 장장은 생산과 공급 측면은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지만, 소비 측면은 지역의 소비자 단체, 요식업 조합이 힘을 뭉치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며 ‘지산지소(지역에서 생산되는 쌀을 지역에서 소비한다)’는 정신을 강조했다.

고 장장은 “대선을 급하게 치르다 보니 농촌에 필요한 대책을 많이 발굴하지 못한 것 같다”며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격 변동에 취약한 농산물 유통구조

배윤수씨는 농촌이 살려면 농산물 유통구조가 정부주도로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변화가 실제로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치인들은 농민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기 때문이다.

“이해는 해요. 정치인은 표를 먹고 살잖아요. 농업 정책보다 일자리나 상공업 정책을 말하는 것이 표가 훨씬 많으니까. 모두를 안고 갈 수 없다면 농업부터 버리는 거죠.”

과수원 농가의 가장 큰 고민은 판매의 어려움이다. 농산물공판장 원종현 경매사는 “이마트∙롯데마트 등 대형 물류 회사들이 농가를 직접 방문해 물건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공판장으로 작물을 가져다 주는 농민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 제천 미곡종합처리장(RPC)의 내부 모습. 정부예산이 투입된 전국의 RPC는 쌀 소비가 줄어 도산 위기에 놓였다. ⓒ 곽호룡

농가에서는 소매 판매를 선호한다. 농가수익면에서 훨씬 낫기 때문이다. 공판장은 가격 차이가 너무 심하다. 오늘은 2,000원짜리가 내일은 300원이 될 수 있다. 시장 상황에 따라 경매가격이 다르다. 농산물은 제때 팔지 못하면 버려야 하기 때문에 가격 변동이 크다.

정치인은 농민과 소통할 의지가 없다

밭농사를 짓는 김호찬(59)씨는 정치권에 소통을 바랐다. 대통령이 모든 지역을 다닐 수 없으니 국회의원이나 시의원이 중간 다리가 되어 지역 현안을 전달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김씨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이런 델 와요”라며 소통이 없는 현실을 꼬집었다.  대다수 농민들은 현재 농촌에 적용되고 있는 정책을 ‘사탕발림’, ‘땜질 처방’이라며 불신했다. 근본적으로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고 했지만 정치권에 기대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농가 기본소득제 실시해야

19대 대선이 급히 치러지면서 농촌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쌀은 주권이다>의 저자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에게 자문을 구했다.

“복잡하게 직불금과 보조금 제도 만들어 농민들 어렵게 하지 말고 직불금과 보조금의 절반 정도인 4조원 정도를 농가 기본소득제로 지급하는 것이 농가에게는 가장 좋습니다. 4조면 농가당 평균 연 400만원을 지급할 수 있는 액수예요.”


편집 : 곽호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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