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월드] 동남아 ‘수산업 노예’와 한국의 ‘염전 노예’

“선원들이 언제든 죽어 나갈 수 있는 환경이지만, 선장은 신경 쓰지 않는다. 바다에 내다 버리면 그만이니까.” (생존 노예의 증언)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3000킬로미터(km)가량 떨어진 외딴 섬 벤지나(Benjina). 2015년 3월 미국 통신사 <에이피(AP)>가 ‘수산업 노예’의 실상을 보도하기 전까지 이곳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섬이었다. 수천 명 노예가 철창에 갇혀 지내며 강제노동에 시달리거나 무덤에 묻혔지만, 바깥세상에서는 알 길이 없었다.

▲ 벤지나 섬 위치. 인도네시아와 호주 사이 바다 한복판에 있다. Ⓒ 구글 지도

2014년 11월 이곳을 찾은 <AP> 기자들은 끈질긴 취재 끝에 소문으로만 떠돌던 수산업 노예의 실상을 밝혀냈다. 그리고 2천 명이 넘는 이들을 구출하는 ‘역사’를 썼다. 태국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저가 수산물 수출업의 뿌리에 잔혹한 노예 노동이 있다는 ‘섬뜩한 진실’이 세계에 알려졌다. <AP>는 9개월간 집요한 보도를 이어가며 6건의 심층 기사, 2건의 영상, 1건의 인터렉티브(반응형) 보도물을 남겼다. 이 보도로 <AP> 취재진은 2016년 퓰리처상 공공서비스부문상을 수상했다. 퓰리처상 중에서도 ‘대상’에 해당하는 공공서비스부문 수상은 1892년 <AP> 창간이래 처음이었다. <AP> 취재진은 같은 해 전미탐사보도협회(IRE) 대상도 받았다.

▲ 퓰리처상을 받은 기자들. 왼쪽 두 번째부터 로빈 맥도웰, 마지 메이슨, 에스더 투산, 마서 멘도사. Ⓒ 퓰리처상 홈페이지

채찍질 시달리며 하루 20시간 고기잡이
 
태국에서 노예 노동이 빈번하다는 건 수산업계에서 알만한 이는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open secret)’이었다고 한다. 기자들은 이 비밀을 백일하에 드러내고 싶었다. 태국 정부가 발뺌하지 못할 결정적인 증거가 필요했다. 인도네시아 벤지나 섬에 숨어 들어간 취재진은 전·현직 노예 선원을 40명 넘게 만났다. 이들의 국적은 미얀마(버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등 다양했다. 지구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미얀마 출신이 특히 많았다. 이들은 좀 더 나은 삶을 찾아 고향을 떠났지만, 머릿수 당 1천 달러에 팔리는 노예로 전락했다.

이들이 탄 고기잡이배는 오스트레일리아와 인도네시아령 뉴기니 섬 사이에 있는 아라푸라 해를 떠돌며 오징어, 새우, 도미 등 해산물을 잡아 벤지나 섬으로 가져왔다. 해산물은 벤지나 섬에서 태국으로 가는 배로 갈아탔다. 그리고 태국 수산물 시장에서 전 세계로 팔려 나갔다. 한국의 대형마트에서도 태국산 냉동 해산물을 흔히 볼 수 있다. 배를 갈아타는 과정에서 인도네시아 바다에서 벌어진 노예노동의 기록은 사라졌다. <AP>는 이렇게 보도했다. “노예들은 벤지나 섬을 세계의 끝으로 알고 지냈지만, 그들이 잡은 해산물은 세계로 수출됐다.”

▲ 철창에 갇힌 벤지나 섬의 노예들. Ⓒ AP 홈페이지

노동 환경은 최악이었다. 이들은 더러운 물을 마시고, 하루에 20~22시간 노동을 하고, 휴일 없이 일했다. 급여는 없거나 적었고, 학대에 시달렸다. 불평하거나 쉬려고 하면 발로 차이거나 주먹질을 당했다. 독성이 있는 물고기인 토시소녀가오리의 꼬리로 채찍질을 당하기도 했다. 맨몸으로 해산물 냉동 창고에서 일할 때면 손발이 얼어붙었다. 이런 실상을 알고 벤지나로 온 사람은 없었다. 미얀마 출신 청년 마웅 소는 태국에서만 일하는 조건으로 배에 올랐다고 취재진에게 말했다. 인도네시아로 간 선원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탄 배는 계약서와 다르게 인도네시아로 향했고, 그는 벤지나 섬에 갇힌 노예가 됐다.

벤지나 섬을 ‘노예섬’으로 만든 것은 태국 수산업체 ‘푸사카 벤지나 리소스’다. 태국 선장이 운영하는 노예선을 90개 이상 거느린 이 업체는 벤지나 섬 항구를 장악하고 노예들을 통제해왔다. 푸사카는 처음부터 끝까지 불법으로 점철된 회사다. 서류상으로 인도네시아에 등록돼 있지만, 선장은 태국인이다. 노예들은 인도네시아 정부 허가를 받기 위해 가짜 이름을 썼다. 노예선이 인도네시아에서 조업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태국 정부도 관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태국의 한 전직 국회의원은 자신이 인도네시아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먹여서 태국 배들의 인도네시아 해역 조업을 도왔다고 <AP>에 실토했다.

▲ 아라푸라 해역에서 일하고 있는 선원들. 바다 위 그물로 뛰어내려 위태롭게 작업하는 모습이 보인다. AP는 2012년에 촬영한 영상이라고 밝혔다. Ⓒ AP 보도 갈무리

태국·미국 정부와 소비자의 책임까지 고발

취재는 벤지나 섬에만 머물지 않았다. 기자들은 사태를 방관하는 태국 정부와 미국 정부, 그리고 수산물 거래 기업들이 십여 년간 이어진 노예 노동의 책임자임을 드러내는 데 주력했다. 처음 <AP>가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지는 노예 노동을 고발하자, 태국 정부는 “불법 행위는 태국 국경 밖 바다 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단속이 어렵다”고 발뺌했다. 그러자 <AP> 기자들은 방콕 외곽에서 외국인 노동자와 아동을 노예처럼 부리는 해산물 가공 공장을 밀착 취재했다. 이곳에서 불법 이민자들은 공장주에게 신분증을 뺏긴 채 일하고 있었다. 태국 도심 한복판에서 13살 어린이가 하루 10시간 새우를 까는 모습이 버젓이 생중계되자 태국 정부도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AP>는 이어 미국 정부와 기업, 소비자를 겨냥했다. 기자들은 노예 선원들이 인도네시아 해상에서 잡은 수산물이 미국인의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파헤쳤다. 미국은 약 70억 달러(한화 약 7조 7천억 원)에 이르는 태국의 연간 수산물 수출액 중 약 20퍼센트를 차지하는 주요 고객이다. 미국의 대형 식품유통업체 크로거, 알버슨, 세이프웨이는 물론 최대 소매점 월마트 등도 태국 수산업 공급망에 포함된다. 애완동물 식료품 회사들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들은 그동안 강제 노동을 비판하고, 자신들은 이를 막기 위한 절차를 밟아왔다고 홍보해 왔지만, 현실은 달랐다.

<AP>는 ‘노예 노동과 관련 없다’고 발뺌하는 미국 식품유통업체들을 압박하기 위해 노예들이 잡은 해산물이 옮겨지는 과정을 차로 뒤쫓고, 고화질 위성으로 추적했다. 수산물 수입업체들의 거래 내역을 분석해 푸사카와 거래하는 업체와의 연결고리를 확인해 내기도 했다. 미국에는 강제노동, 인신매매로 생산된 상품을 수입 금지하는 법이 있지만 미국정부는 노예 노동으로 유명한 태국 수산물을 문제 삼지 않았다.

미 국무부의 켄드라 크리에더미 연구원은 “납치되고, 속아서 배에 탄 후 신체적으로 학대당하는 상황은 명백한 현대판 노예제”라고 일갈했다. 미 국무부는 지난 2015년 태국을 ‘인신매매를 근절하지 못한 국가’ 목록에 올렸다. 북한, 시리아, 이란과 같은 등급이었다. 하지만 그 외 추가 조치는 없었다. 최근엔 이슬람국가(IS)의 등장으로 '테러와의 전쟁'이 중요해지면서 태국이 미국에 중요한 협력국으로 부상했다. 이런 정치적인 이해관계는 태국의 주요 산업인 수산업에 대한 제재를 꺼리게 하는 요인이 됐다.
 
미국 기업들로서는 저렴한 태국 수산물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소비자들의 저렴한 해산물에 대한 열망이 대량 강제 노동에 불을 지피고 있다“는 <AP>의 지적대로, 소비자들 역시 노예 노동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었다. “유럽인과 미국인들이 생선을 먹을 때, 우리를 기억해줬으면 해요. 바다 아래엔 분명히 뼈가 바다를 이룰 거예요. 사람 뼈가 섬이 됐을지도 몰라요. 그만큼 많이 죽었거든요.” 벤지나에서 도망친 흘라잉 밍(30)의 말이다.
 
<AP>의 보도 이후 기사에서 지적된 '글로벌 수산물 공급체인'의 부분마다 변화가 일어났다. 인도네시아, 태국, 미국 등 관련국 정부와 월마트 등 미국의 관련 기업들 모두 <AP>가 들이미는 명확한 노예노동의 증거 앞에서 대안을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벤지나에서 노예선을 운영하던 푸사카 벤지나 리소스사의 책임자는 구속됐고, 태국 정부는 새우 가공에 대해 가내 공업을 제한하겠다고 약속했다.

취재원 안전 확실해질 때까지 보도 미뤄  

가장 큰 변화는 노예들이 자유를 되찾았다는 것이다. 미얀마에 살던 소년 가장 마잉 나잉은 18살 때 ‘몇 달만 일하면 300달러를 주겠다’는 꼬드김에 넘어가 배에 올랐다. 하지만 실제 그에게 주어진 것은 한 달에 10달러 혹은 무급이었다. 그렇게 20년 이상을 동남아시아 곳곳을 떠돌았다. <AP>는 노예선에서 풀려난 그가 미얀마에서 가족과 재회하는 모습을 취재했다. 동영상 속에서 어느새 마흔 줄에 들어선 남성은 늙은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 22년 만에 집에 돌아온 마잉 나잉씨가 가족들과 재회하고 있다. Ⓒ AP 홈페이지

벤지나 섬의 현실을 파헤친 <AP> 기사가 보도되고 일주일 후, 인도네시아 정부는 조사에 착수했다. 공무원들은 벤지나 섬에서 노예 800명을 구출해 냈지만, 이미 노예선 90개 가운데 3분의 1이 파푸아뉴기니로 도피한 상황이었다. 각각의 배에는 15~20명의 선원이 타고 있었다. 기자들은 도망친 배들을 고화질 위성으로 추적해 노예들의 탈출을 도왔다. 국제기구를 통해 확인한 구출 노예 수는 대략 2천 명이다.

<AP> 취재진은 보도 과정에서 특종보다 노예들의 탈출에 방점을 뒀다고 밝혔다. 혹여 섣부른 보도로 취재원들의 신변이 위험해질까, 노예들이 무사히 탈출한 것을 일일이 확인한 후에야 기사를 내보냈다. <AP> 기자들은 비슷한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다른 저널리스트들에게 "인신매매 피해자들이 구출됐고, 안전한지, 그들의 이름과 사진을 출판하기 전에 명확히 하라. 안전하지 않다면 출판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 ‘현대판 노예제’로 이름 붙인 의 인터렉티브 기사. 노예 선원들이 자신의 본래 이름을 들고 카메라 앞에 섰다. Ⓒ AP 홈페이지

한국에선 ‘장애인 강제 노동’으로 파문
 
국내서도 언론 보도를 통해 노예 노동을 하던 이들이 구출된 사례가 있다. 2014년 2월 6일의 <제이티비씨(JTBC)> 전남 신안군 염전노예 사건 보도가 대표적이다. 염전 주인들이 지적 장애인, 노숙인들을 섬으로 납치해 하루 19시간 중노동을 시켜온 사건이다. 당시 신안군의 외딴 섬에서 염전노예 생활을 하던 시각장애인 김 모 씨가 섬을 극적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는데, 서울 구로경찰서는 이를 미담사례로 소개하는 보도자료를 각 언론사에 배포했다. JTBC는 이 자료를 단서로 신안군을 찾아가 추적취재한 뒤 섬에서 고질적으로 발생해온 노예 노동 현실을 고발했다. 이 보도가 나가자 전남경찰청이 특별 수사에 나섰고, 당시 22명의 피해자를 추가로 구출해냈다. 기자들의 집요한 취재 덕에 피해자를 구출했을 뿐 아니라 그동안 방치됐던 장애인 인권에 대해 사회적 관심을 환기할 수 있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최근 “염전 노예 사건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장애인에 대한 인권침해 방지법을 만들겠다”고 공약하기도 했다.

<한겨레21>은 지난 2014년 8월부터 12월까지 이어진 ‘인권 밥상’ 기획보도를 통해 이주노동자 노예 노동을 고발했다. 국내 농축산업과 어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다룬 기사다. 기자가 직접 확인한 현실은 참담했다. 한겨울에도 난방이 안 되는 컨테이너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밭에서 하루 12시간 넘게 일했다. 집안일도 하고, 불법 파견도 나가느라 휴일은커녕 휴식시간도 갖지 못했다. 이주노동자들은 고용주의 허가 없이는 사업장을 옮길 수 없다. 한국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고용주 말에 복종해야 한다. 폭력도, 성희롱도, 임금갈취도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다. 한국에 오기 전 작성한 근로계약서는 작업현장에서 휴지 조각만도 못했다. 인권감시단체인 국제앰네스티는 이 같은 한국 농축산업 종사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인신매매’로 규정했다. 이 보도는 2014년 11월 국제앰네스티 언론상을, 12월에는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하지만 <한겨레21>의 기사는 이주노동자들을 구해내지 못했다. 기획보도를 시작하면서 앰네스티와 함께 이주노동자 인권보장 서명운동 등 캠페인을 벌였고 보도 이후 정부가 관련 실태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고용주 허가 없이 사업장을 옮길 수 없도록 한 ‘고용허가제’는 여전하다. 앰네스티가 한국 정부에 수차례 수정을 권고했지만, 변화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도 우리의 밥상 위에는 누군가의 노예 노동으로 생산된 식품이 오르고 있을지 모른다. “‘편안한 일상’을 구성하는 ‘가혹한 현실’을 발견해내는 것이 이 시대 언어와 문자의 최전선이다.” <한겨레21> 인권밥상 기획을 이끈 이문영 기자의 말이다. 최전선을 뛰는 기자들의 어깨가 무겁다.


매해 미국에서 가장 가치 있고 실험적인 보도를 한 기자들에게 주어지는 퓰리처상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언론인들의 주목 대상이다. 공공서비스, 탐사보도, 지역보도 등 14개 부문에서 선정되는 수상작은 내용과 형식 등 여러 면에서 저널리즘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단비뉴스>는 역대 퓰리처상 수상작 중 우리나라 독자에게도 각별한 의미를 가질 만한 보도를 골라 격주로 소개한다. (편집자)

 편집: 이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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