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월드] 노동자의 날에 조명하는 ‘동등임금 인증제’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하는 성평등 지수 순위에서 2009년 이후 8년 연속 1위를 차지한 아이슬란드가 ‘남녀동등임금 인증제’ 추진으로 또 한 걸음 앞서가고 있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세계 여성의 날인 지난달 8일 동등임금 인증제 도입계획을 발표했고, 지난 4일에는 의회가 법안을 발의했다. 현재 야당도 법안에 찬성하고 있어 순조로운 통과가 예상되고 있으며, 빠르면 내년 1월 시행될 전망이다. 세계노동자들이 권리를 위해 투쟁한 역사를 기념하는 5월 1일 메이데이(노동자의 날)를 맞아 아이슬란드가 추진 중인 동등임금법안의 취지와 한국에 주는 시사점을 조명한다.

‘동등임금’ 어기는 기업에 벌금 부과

아이슬란드가 추진하는 동등임금 인증제는 기업이 성별, 인종 등과 관계없이 동일한 노동을 한 직원에게 동등한 임금을 지급하고 회계 감사를 통해 정부의 인증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고용인원이 25명 이상인 공공 기관이나 민간 기업이 모두 적용대상이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이 법을 통해 향후 5년 내 성별 임금 격차를 뿌리 뽑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아이슬란드에는 원래 1961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평등임금법(Equal Pay Act)’이 있다. 새 법안이 기존의 법안과 다른 점은 동등임금을 인증하지 않는 기업에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까지 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미네소타 주와 스위스에서도 ‘동일노동 동일임금’ 인증 제도를 운용하고 있지만, 벌금 등 처벌규정까지 둔 경우는 아이슬란드가 처음이다.

▲ 2016년 아이슬란드의 민간 부문 중 남녀 상근 노동자들의 평균 월급 비교. 남성의 평균 월급은 53만4000크로나(약 570만원), 여성의 평균 월급은 45만8000크로나(약 490만원)다. Ⓒ 아이슬란드 성평등센터의 보고서 ‘Gender Equality in Iceland 2017’

정치권의 지지 움직임과 달리 아이슬란드의 재계는 이 법안이 ‘불필요한 관료주의’라며 비판하는 분위기다. 아이슬란드경영자연합의 할도르 소르베르그손 회장은 “노동자와 기업의 이익을 위해 평등임금을 도입해야 하지만,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르스테이든 비글륀손 사회평등 장관은 “불평등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대담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성평등 지수 1위인 아이슬란드도 2016년 기준 민간 부문 일자리의 남성 평균 월급은 53만4000크로나(약 570만원), 여성 평균은 45만8000크로나(약 490만원)로 여성이 남성보다 14% 정도 적다.

격월간지인 <아이슬란드 리뷰>의 온라인판은 지난해 10월 24일자 ‘아이슬란드 여성들, 오후 2시38분에 일터를 떠나다(Women in Iceland to leave work at 2:38PM)’란 제목의 기사에서 당일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열린 여성들의 대규모 노동 파업을 소개했다. 해당 기사는 ‘동등임금’ 운동을 사회에만 맡겨둔다면, 아이슬란드의 남녀임금격차를 완전히 해소하는 데 52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비글륀손 장관은 “일터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성별 장벽을 무너뜨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각국 여성노동자, 만성적 임금 불평등 시달려

성별 임금 격차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의 ‘임금 평등을 위한 전국위원회’는 1996년 ‘평등임금의 날(Equal Pay Day)’을 지정했다. 여성이 다음해까지 얼마나 더 일해야 남성의 1년 치 임금에 해당하는 보수를 받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날짜다. 2017년 미국 ‘평등임금의 날’은 4월 4일이었다. 2016년 한 해 동안 남성들이 받은 임금만큼 여성들이 받으려면 2017년 4월 4일까지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 2007년 4월 24일 열린 ‘평등임금의 날’ 행사에서 연설하는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부 장관. Ⓒ 미국 대학여성 협회(American Association of University Women)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미국의 유타주도 평등임금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유타 주 와사치 카운티의회의 공화당 소속 제임스 그린 부의장은 지난 2월 지역 주간지 <와사치 웨이브(The Wasatch Wave)> 기고를 통해 “유타 주가 추진하는 평등임금 법안은 가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남녀가 평등한 임금을 받으면 남성의 임금이 줄어들 수밖에 없으며, 가장으로서 남성의 자리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해당 편지는 여성계 등의 반발을 불렀고, 논란이 커지자 그린 부의장은 “평등임금 법안으로 정부의 영향력이 커질 것을 우려한 것이지 여성에 대한 공격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낮 2시 38분 이후 여성의 노동은 공짜”

아이슬란드가 동등임금 등에서 가장 앞서 갈 수 있는 것은 여성 노동자들이 총파업 등을 통해 강력한 목소리를 내온 때문이다. 아이슬란드 여성 노동자들은 1975년 10월 24일 하루 총파업을 통해 여성 노동권 보장을 요구했다. 당시 아이슬란드 전체 인구가 약 22만 명(현재 약 33만 명)이었는데, 수도 레이캬비크에 약 2만5000명의 여성이 모여 행진했다. 전국적으로 여성 노동자의 90% 가량이 당시 총파업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 2016년 10월 24일 아이슬란드 여성들이 수도 레이캬비크 거리에 모였다. 그들은 의회 건물 맞은편에 위치한 외이스투별트루르(Austurvöllur) 광장에서 성별 임금 격차 해소를 외쳤다. Ⓒ twitter@salkadelasol 영상 갈무리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05년 10월 24일, 아이슬란드 여성들은 남녀동등임금을 강력히 요구하며 다시 거리로 나섰다. 이날 파업은 낮 2시 8분에 시작했다. 당시 남녀 임금격차를 감안하면 오후 2시 8분 이후의 여성 노동은 공짜, 즉 무임금이나 마찬가지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2008년 세 번째 파업에서 여성들이 일터를 떠난 시간은 2시 25분, 2016년 파업은 2시 38분이었다.

한국 여성노동단체도 ‘3시 스탑’으로 가세

한국에서도 지난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한국여성노동자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33개 단체가 연대해 여성 조기퇴근 시위인 ‘3시 스탑(STOP)’ 공동행동을 벌였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 주최 측 추산 1500여 명이 모여 “고질적인 성별 임금 격차를 해소하라”고 촉구했다.

회계컨설팅 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지난 2월 발표한 ‘여성경제활동 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한국의 남녀임금격차는 3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악의 불평등 국가임을 보여준다. 남성 노동자가 100만 원을 받을 때 여성 노동자는 64만 원을 받는다는 의미다. 2015년 한국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정규직 남성 노동자가 한 시간에 평균 20,008원을 벌 때 정규직 여성 노동자는 12,995원을 번다. ‘36%’라는 지표와 하루 8시간 노동을 가정한다면 한국 여성은 3시 이후 이후에 돈을 받지 않고 일하는 셈이다.

OECD가 성별 임금격차 조사를 시작한 2000년부터 한국은 15년째 불평등 순위 1위다. 2000년 성별 임금격차 지수인 41.7%에 비해 아주 근소하게 개선되었을 뿐이다.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유럽연합 통계청(Eurostat)의 통계치를 참고한 성별 임금격차 그래프. OECD는 상근 노동자의 중간소득 차이를 비교했고, Eurostat는 실제 소득을 비교했다. Ⓒ PwC의 보고서 ‘여성경제활동 지수’

지난 1월 취임한 아이슬란드 총리 뱌르드니 베네딕트손은 지난달 세계 여성의 날 행사에서 “성평등은 우리 모두에게 이롭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미국 백악관은 같은 맥락에서 ‘평등임금 선언’을 통해 “평등임금은 기업에 유능한 인재가 공급되도록 만들고 생산성과 이익을 높인다”고 천명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애플, 인텔, 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들도 이 선언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반면 남녀 임금격차가 OECD 회원국 중 가장 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임금차별도 심각한 한국에서는 정부도, 재계도 ‘남녀동등임금’과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지향하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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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송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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